응암리 은행나무
윤홍진
괴산 백마산 아래 백마저수지를 지나면 응암마을이 나온다. 마을 중간부분 도랑 옆으로 도로 한켠에 거대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응암마을은 해평윤씨 집성촌이기도하고 선영이 있는 곳이다. 저수지 아래는 백마 초등학교가 폐교되어 농촌체험학습과 김장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펜션 역할을 하는 백마권역이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백마저수지는 시설들의 설치로 보아 낚시터로 변할 모양새다.
은행나무는 가을이 오면 손님을 맞는 여신이 되어 노란 황금색을 띄우고 어쩌란 말이냐며 미안한척 은행열매를 떨구며 궁색한 냄새를 피우면서도 웃는다. 그리고 사람들도 찡그리지 못하고 지나친다. 길바닥은 온통 열매가 짓밟힌 자국들이다.
나는 1년에 사계절 모두 한번이상 응암리에 다녀온다. 봄이면 한식일 전후로 일정을 잡는다. 봄의 은행나무는 두 팔 벌려 환영하며 파아란 잎들을 내밀고 조용히 참고 기다려온 시간을 드러내며 먼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가를 부르고 있다. 내 인생의 봄은 중구난방으로 개구장이들의 말과 행동처럼 제멋대로였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꽃샘추위도, 봄 가뭄도 이겨내고 물을 올려 잎사귀를 연둣빛으로 바꾸려는 은근과 끈기로 버티니 새들도 함께하자며 날아온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은행나무는 연둣빛이 태양에 태워져 녹색으로 변하고 누군가의 참견에 수긍한다. 푸른 잎을 빼곡하게 채워 새들의 안식처를 만들어주고 사람들에게도 휴식의 공간을 마련해 들마루로 사람들을 불러낸다. 매미들의 합창소리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개구리가 잠을 자는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선선한 바람이 일면 은행나무는 바람에 자신을 맡겨 불러오는 풍악소리에 덩더쿵 춤을 춘다. 새벽이 되면 샛별의 차가움에 움츠러들어 진저리 치다보면 은행 알들을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트린다. 그러면서도 인생의 열매를 독립시켜야 생명을 유지하기 쉽단다.
찬 서리 내리고 옷깃을 여미게 되는 한기에 나목이 되어 가면서도 내년을 위해 눈을 숨기고 훨훨 날리는 눈을 맞는다.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가지고 일백년 정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는 은행나무가 멋져 보인다.
은행잎과 열매는 혈행개선에 좋다고 알려지고 있다. 독성이 있어 열매 먹는 방법으로 하루에 5알 또는 10알 이내로 먹어야 한다는 다양한 말들이 있다. 그리고 은행나무는 숫나무와 암나무로 구분된다. 숫나무는 두 팔 벌려 만세를 부르고 있는 모양이고, 암나무는 겸연쩍어 하며 가지를 옆으로 벌려 어쩌란 말이냐며 무언의 동작을 하는 것 같다.
우리들 인생은 각자의 생각과 경험에 의해 성장하고 성숙해져 자신의 철학을 세워왔다. 그것이 자신만의 기준인 것을 타인에게도 똑같은 방법과 형식을 취함으로써 다툼과 불편을 야기한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눈에 비친 은행나무처럼 때로는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수용하고, 배려하면서도 당당함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싶다.
201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