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우크렐레·오카리나·밤벨… 재소자들의 합주 "웬 악기?" 처음엔 시큰둥 보름에 한번 연주 수업 우울증·불면증 藥도 끊고 "함께 어울려 사는 법 배워"
"왼발, 오른발, 하나, 둘~. 오른발, 왼발, 셋, 넷~."
9일 오전 10시쯤, 푸른 옷에 노란 명찰을 단 남자 11명이 햇볕 스며드는 음악교육실(66㎡·20평)에 'ㄷ'자로 앉아 박자에 맞춰 발을 굴렀다. 한 사람이 한 박자 늦게 발을 구르자 옆에서 왁자지껄 핀잔을 줬다. "어허, 왜 그렇게 박자를 못 맞춰!" "벌칙 받아, 벌칙." 남자들이 두툼한 손바닥으로 박자 틀린 사람의 등짝을 시원하게 두들겼다. "인디아~안 밥!"
이곳은 '교도소 중의 교도소'라 불리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 청송교도소다. 야산에 에워싸인 인적 드문 벌판(221만5000㎡·67만평)에 청송교도소(1250여명 수감)·청송 제2교도소(350여명)·청송 제3교도소(270여명)·직업훈련교도소(400여 명) 등 4개 시설이 들어서 있다. 인적 드문 벌판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인가도 숲과 산을 헤치고 5㎞ 가야 나온다.
가장 악명 높은 건 제2교도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칼을 휘두른 지충호(53), '나영이'라는 여자 어린이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조두순(57) 등이 수감 중이다.
▲ 제공 9일 오전 푸른 옷에 노란 명찰을 단 청송교도소 재소자들이‘대전빛소리앙상블’회원들로부터 아코디언을 배우고 있다./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청송교도소는 2범 이하만 받는다. 제2교도소에 비하면 덜 험악하지만, 전국의 다른 교도소에 비하면 여전히 '센' 편이다. 10년 이상 장기수가 300여명, 무기수가 70여명쯤 된다. 정기명 교도관은 "수감자 1250여명 중 100여명이 노란 명찰을 달고 지낸다"고 했다. 노란 명찰은 우울증이 심하거나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는 이른바 '관심 대상자'들이 다는 명찰이다. 나머지는 흰색 명찰을 단다.
법무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지난 6월부터 '관심 대상자' 가운데 희망자를 뽑아 '조이뮤직스쿨'을 시작했다. 저소득층에 음악을 가르치는 봉사단체 '대전빛소리앙상블' 회원들이 보름에 한 번씩 오카리나, 밤벨, 우크렐레, 아코디언 등을 가져와서 2시간 동안 연주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단체 김광수(46) 대표는 "청송교도소 수업은 강제성이 없는데도 수업 때마다 꾸준히 15명 안팎이 모인다"고 했다. 주요 레퍼토리는 '나비야' '학교종' '얼룩송아지' 등이다.
강도살인죄로 17년형을 선고받고 8년째 복역 중인 김모(39)씨는 지난달부터 아코디언과 우크렐레를 배우고 있다. 라면박스를 구해 아코디언 건반을 그려넣고 시간 날 때마다 '종이 아코디언'에 손가락을 짚을 만큼 열심히 연습한다. 그는 "교도소 오기 전에는 기타 치는 걸 좋아했다"며 "기타와 비슷한 우크렐레를 쳤더니 사회 생각도 나고 과거에 내가 저지른 일이 후회된다"고 했다.
이날 재소자들은 소년들처럼 웃고 떠들며 연습에 몰두했다. 김 대표가 가져온 아코디언을 어깨에 걸치고, 왼손으로는 펌프를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건반을 누르며 신나게 연주했다. 누군가가 잘못 켜면, 옆에서 얼른 "옆에 까만 단추가 있잖아. 그걸 눌러야 소리가 나와!" 하는 식으로 '즐거운 훈수'를 뒀다.
정 교도관은 "노란 명찰을 단 재소자들은 방에 CCTV를 달아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야 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한 이들"이라며 "청송교도소에 16년째 근무 중인데 이렇게 활달하고 고분고분한 모습은 처음 본다"고 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분노, 절망, 고독, 죄책감 등이 겹쳐 삶의 의욕을 잃은 이들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울컥하고, 비뚤어진 말과 행동을 일삼고, 몇번씩 자살 시도를 하고요. 솔직히 '음악이 교정 효과가 있을까' 했는데 뜻밖입니다."
유인엽 사회복귀과장은 "음악교육 첫날만 해도 경계심이 꽉 찬 눈으로 교사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요즘은 '신문사에서 취재 나온다'고 하자 자진해서 음악교육실을 청소할 만큼 달라졌다"고 했다.
특수강도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3년째 복역 중인 최모(54)씨는 "음악을 배운 지 두달 만에 3년간 먹은 우울증 약을 끊었다"며 "약을 먹지 않아도 밤에 잠이 온다"고 했다.
"바깥에 있는 아내가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요. 전에는 툭하면 '이젠 날 잊고 살라'고 싸늘한 답장을 보냈어요. 음악을 배우면서 그동안 아내에게 매몰차게 군 게 미안해졌어요. 요즘은 '당신에게 미안하다. 나도 여기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 테니 당신도 힘내라'고 씁니다."
김 대표는 혼자 하는 독주보다 여럿이 '화음'을 맞추는 합주 훈련에 힘을 쏟는다. 음악을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어울려 사는 법'을 전하는 것이다.
"재소자들이 '음악을 배우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고, 그때 왜 그랬을까 반성한다'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한순간의 격한 충동을 참지 못했다. 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하고요."
법무부 사회복귀과 최세림 계장은 "'강력범에게 웬 음악교육이냐'고 하시는 분이 많은데, 음악을 통해 삶의 기쁨과 자신감, 따뜻한 감성을 되찾게 하면 형기를 마친 뒤 범죄를 되풀이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는 외국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조이뮤직스쿨을 기획한 이대영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은 "교도관들과 재소자들의 반응이 좋아 내년에도 계속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11시30분쯤, 2시간에 걸친 교육이 끝나자 재소자들은 곧바로 나가지 않고 김 대표 주위에 몰려들어 "내가 아코디언을 켜면 왜 소리가 이 모양이냐?" "다음번엔 우크렐레 배우는 시간을 더 늘리면 안 되나?"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재소자 김씨는 "비록 죄를 짓고 들어왔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며 "음악을 배우는 이 시간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했다.
첫댓글 박근혜대표 테러범이 청송교도소에 있었구나..망할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