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12코스(신망리역 - 군남홍수조절지)
1. 오랫동안 미뤘던 평화누리길 연천 코스의 비워있는 부분의 답사를 마무리했다. 신망리역에서 ‘군남 홍수조절지’까지 약 10km가 조금 넘는 코스이다. 코스는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풍경을 만나게 해준다. ‘신망리’라는 명칭은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정착을 위해 국가에서 100호를 뽑아 미군의 원조를 받아 땅과 물자를 지원하였고 그 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담고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역에서 출발한 길은 농로를 조금 걷다가 산으로 향한다. 산길은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평온한 길이다. 그 길을 따라 연천의 겨울을 감상한다. 멀리 웅건하게 땅을 옹위하는 산들의 위세는 힘이 넘친다. 산과 물은 조용하지만, 배경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최근 더 빡세진 군사훈련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여기저기서 사격소리가 산을 울린다. 전방임을 확인시켜 주는 메시지이다.
2. 3시간 정도 걷자 멀리서 댐이 보인다. 시각적 만남에서 약 3km정도 더 걸으면 군남댐(군남홍수조절지)를 만나게 된다. 연천의 상징이자 홍수 때마다 거론되는 이 댐은 북에서 흘러내려오는 임진강의 물줄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군남댐으로 내려가던 길에 연천의 유래를 알려주는 표지석을 만났다. ‘연천’에 대한 정확한 유래를 몰랐는데, 그 표지석에는 태종 이방원과 관계있다고 설명한다. 태조의 오래된 친구 이양소가 이곳에 살았고 태종은 그를 설득하여 벼슬을 주려고 5번을 방문했지만 결국 친구는 ‘고려진사’라는 이유로 거절해서 아쉽게 발을 돌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에서 눈물 흘릴 ‘연’과 하천이 많다는 ‘천’이 합해서 ‘연천’이 되었다고 한다. 냉혹하고 합리적인 태종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여서 흥미로웠다. 태종 또한 이성계의 자식 중에서 유일하게 고려에서 과거에 합격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3. 항상 오려했던 곳을 이제야 방문했다. 군남댐은 상당히 큰 규모였고 주변에는 두루미 테마공원이 만들어져 있어 여유롭게 주변을 관람할 수 있는 장소였다. 겨울철이어서 임진강 수량은 많지 않고 기온도 올라가고 있어 얼음도 단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멀리 북쪽의 산하를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있는 군남댐의 모습은 외롭지만 강인하게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용사와 같다는 인상을 준다. 변경의 장소와 겨울이라는 시간의 결합이 만들어낸 특별한 인상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레저용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로보고 싶은 광경이었다.
4. 군남댐에서 조금 내려오자 선곡리가 나타난다. 다행히 이 곳에서는 버스를 이용해서 신망리역으로 회귀할 수 있었다. 때론 버스도 없어 돌아갈 방법이 난감한 지역도 많다. 하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길을 걷던 노인에게 묻자 한 시간에 한 대가 운행한다고 한다. 사람도 적고, 그 적은 사람 중에서 대부분 노인인 연천은 경기도에서도 가장 먼저 소멸할 지역 중 하나이다. 50분 정도 기다렸다 탄 버스에도 탑승자는 나뿐이었다. 버스가 자주 운행할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한다. 경원선은 사라졌고, 대신 전철이 운행한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시행될지는 미지수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그것을 믿고 있고 연천군수도 전철유치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휑하니 빈 버스를 보면 경제적 이유로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람이 없는 공간은 점점 단절되고 갇혀버리며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만 고립되고 있다. 어둠이 내려오자 ‘신망리역’ 주변은 더욱 큰 침묵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첫댓글 - "사람이 없는 공간은 점점 단절되고 갇혀버리며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만 고립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