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나의 고향 마을에도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마을의 정자나무로 자란 느티나무는 하늘을 덮을 듯 우람하게 컸다. 마을의 개구쟁이들은 틈만 나면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이런 저런 놀이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10살 때의 기억을 되살리면 마을의 느티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우리 마을의 느티나무에는 두 종류의 새가 살았다. 박새와 소쩍새였다. 희고 검은 빛의 박새는 낮에 눈에 띄었고 뿔이 달린 듯한 소쩍새는 밤에 별난 울음소리를 냈다. 이들은 해마다 느티나무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쳤고 구렁이처럼 음흉했던 아이들은 해마다 그 때를 기다려 이들을 괴롭혔다.
박새와 소쩍새가 느티나무를 선택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나뭇가지와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 그늘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느티나무 죽은 가지에는 둥지를 틀기 좋은 구멍이 많았던 것이다.
들쥐나 매미를 잡아먹는 소쩍새가 무서울 텐데도 박새는 소쩍새 둥지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소쩍새는 밤에 사냥을 하고 박새는 낮에 먹이를 찾아 나서니 서로 무관한 일이었다.
풀벌레를 물고 둥지를 드나드는 박새를 보고 아이들은 박새가 새끼를 기르는지 알았다. 느티나무 주변에 숨어 숨을 죽이고 들어보면 희미하게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새끼 박새들의 울음소리가 점차 커져가던 어느 날, 나는 박새 둥지에 손을 뻗어 새끼들을 꺼냈다. 어미 대신 내가 풀벌레를 잡아 먹여 기를 속셈이었다. 그러나 이내 아버지에게 들켜 혼쭐이 나고 꺼내온 새끼를 제자리에 돌려주어야 했다.
그 때 즈음에 소쩍새도 새끼를 길렀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타고 올라 높은 가지에 이르면 거기에 소쩍새 둥지가 있었다. 소쩍새는 굵은 삭정이의 텅 빈 구멍 속에 둥지를 틀었다. 어두컴컴한 둥지 속에 노란 구슬처럼 빛나는 물체가 있었다. 소쩍새 새끼들의 눈빛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소쩍새 둥지에 선뜻 손을 넣지 못하였다. 새로 나온 동전처럼 빛나는 물체가 새끼 소쩍새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끼 소쩍새의 눈빛이 아니라 구렁이의 눈빛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을 어른들의 말로는 소쩍새가 둥지를 튼 느티나무에서 구렁이를 여러 번 보았다고 했다. 거기에 더하여 아이들은 소쩍새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두려워했다. 수탁을 잡으려다 찍히고 긁혀본 경험이 되살아났다. 그런 까닭으로 아이들은 소쩍새 둥지에 손을 넣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노란 눈빛은 새끼 소쩍새의 것이 분명했다. 둘씩 짝을 지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인 까닭이었다.
뜸들이고 망설이다 팔을 조심스레 넣었는데 소쩍새 새끼들이 잡히지 않았다. 소쩍새 둥지가 저 멀리 있어 손에 닿지 않았다. 둥지에 손이 닿지 않으니 어찌해 볼 방도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느티나무를 내려와야 했다. 마을 어른들에게라도 들키면 또 한 번 혼쭐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때를 놓치면 소쩍새 새끼들은 서둘러 이소를 했다.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줄기에 나와 앉아 그 동그란 눈으로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새끼 소쩍새를 손에 넣지 못한 것을 마냥 아쉬워했다.

국보 제1호 남대문의 복원에 아름드리 금강 소나무가 쓰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주요 건축물에는 소나무 대신 느티나무가 쓰였다. 느티나무가 어느 나무보다 목질이 단단하고 뒤틀리지 않아 목재로써 중요하였다.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는 금강송 만큼이나 느티나무가 무성하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겨우 마을을 지키는 나무이거나 가로수로 살아남았다. 하늘로 쭉 뻗어 오른 기둥이 아니라 옆으로 푹 퍼진 모양의 정자 목만 살아남아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한다.
조선시대의 건축물도 노쇠한 지금 느티나무가 사용된 고려시대의 건축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겨우 겨우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황석산에는 느티나무로 만든 일주문이 있다. 투박하지만 묵직하고 웅장한 느티나무로 세운 일주문을 보면 고려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것과 같아 반갑다.
김천 황악산 직지사 경내에서도 느티나무로 만든 나무 수조를 볼 수 있다. 구유를 닮은 거대한 나무 수조를 보면 마음이 풍성하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위치한 화양구곡의 입구는 느티나무로 가득차있다. 괴산군槐山郡의 이름이 이곳 느티나무 숲에서 비롯되었다. 괴산군에서는 이 느티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힘을 쓴다. 그래서 병든 나무에는 링겔병을 달아 수액을 놓고 죽은 줄기는 수술을 하고 발포수지로 메워 더 이상 썪는 것을 방지한다.
그런데 이러한 보호 활동이 자연생태계에는 자칫 병 주고 약 주는 일이다. 풍경을 사랑하는 인간에게는 약을 주는 일이지만 나무에 깃들어 사는 새들에게는 병을 주는 일이다.
느티나무 굵은 가지가 죽으면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이런 구멍을 이용하는 둥지를 트는 새들이 많다. 박새나 소쩍새, 원앙새 등이 이런 느티나무 가지에 생긴 굴을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느티나무를 보호한다는 미명으로 이런 굴을 막아놓으니 나무에 둥지를 트는 새들은 갈 곳이 없다.
화양계곡에는 원앙이 느티나무 굴을 이용하여 둥지를 튼다. 수많은 느티나무가 있건만 유독 어느 한 나무에 집중한다. 그 느티나무는 등산객과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식당가에 위치한다. 다행히 높은 가지에 삭정이가 있어 속리산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도 가지를 쳐내지 않았다. 사람들의 접근을 극히 싫어하는 원앙이지만 새끼를 안전하게 기를 장소는 여기뿐이라고 원앙은 판단하였나보다.

느티나무도 꽃을 피운다. 꽃의 크기가 아주 좁쌀처럼 작고 미미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가로수나 정자나무로 쓸 느티나무만 기를 것이 아니라 일주문이나 궁궐의 기둥으로 쓸 느티나무를 길러야 할 때이다. 하늘로 쭉 뻗은 느티나무 수종을 찾아 널리 번식시켜야 할 일이다. 못 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는 하지만.
첫댓글 어쩜 이렇게 어릴적에도 세심함이 배어 있으신지요...
매년 태풍 피해를 많이 보는 나무가 플라타너스 나무류던데 쓰러져 부러진 나무 밑둥을 보면 늘 가운데가
둥그렇게 썩음 석음해요. 해서 저는 나무가 부실해서 그렇고, 부실하니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생각했지요.
고인돌님 글을 읽고서야 `그런 수종이 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내실을 기하지 못했다고 비웃지 말 일입니다.
잘 봤습니다.
늦가을에 핀 호박꽃이 참 예쁘지요
아...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