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종착역 09 (2019 사토 아이코)
09 투쟁하는 삶 속에서 사람은 아름답게 완성된다. (84세 부인공론 2008년 2월 7일호)
09 멋지게 나이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할머니가 되어가는 것이니까 멋이고 나발이고 없어요! (웃음)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기 마련이잖아요. 그것을 무리하게 '멋지게'라고 말하면 곤란해집니다. 지금은 더욱이 저 같은 사람이 나설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삶"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여유가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여지가 생기겠지만.
제가 살아온 시절에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닥쳐오는 난관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그저 열심히 헤쳐 나갈 뿐이었습니다.
매일을 그렇거 보내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전쟁 중에는 특히 그랬습니다. 앞일을 생각해 봤자 언제 공습으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으니까요.
쇼와 50년대(*1975년 무렵)쯤부터인가, 여성 잡지가 "아내이자 어머니이기보다 여자로살자" 같은 특집을 자주 편성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느낌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나는 강연에서 "여자니까 아내이자 엄마가 되는 건데 굳이 떼어놓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 그런 하찮은 생각을 해야 하는가"라고 화를 내곤 했는데, 사회가 의식화된 결과, 말이 과장되어 전달되고, 사람들이 그것에 끌려들어 동조했다. 그기엔 매스컴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 '멋지게 나이를 먹고 싶다'고들 말하고 있는데 이전에 후쿠다 야스오 씨가 자민당 총재로 결정됐을 때 무심코 TV를 보고 있는데 지지자인 것 같은 50대 정도의 여성이 갑자기 후쿠다 씨에게 다가가 자신의 손수건으로 그의 이마의 땀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후쿠다 씨도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저는 눈을 의심했어요. 명색이 정당의 당수인 사람에게 취할 수 있는 행동일까요? 과거 일본에는 윗사람, 혹은 연상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미덕이 있었습니다.
일본인은 예의 바른 국민이라고 외국인으로부터도 칭송받고 있었는데 그것이 요즘 평등인지 민주주의인지를 잘못 받들여서 아래위를 모르는 예의가 없는 행동이 당연시 여겨지고 있습니다.
"멋지게 나이를 먹고 싶다"면 예의를 차리고 수치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저 같은 인간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내심, 부끄럽기는 하지만(웃음), 역시 인간이라면 조금은 수치심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일까요.
과거 일본에서는 나이에 상응하는 처신이 좋다고 여겨져,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을 남자도 여자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진부하게 여깁니다. 확실히, 매사에 '나이에 맞는'이라고 불리는 사회는, 답답하기는 했습니다.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라는 자유 따위는 전혀 없는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라왔고, 마침내 전쟁에 져서 일본은 불탄 허허들판 뿐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진 최저의 생활이었습니다. 국가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 놓으면서도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인내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 참는 힘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 무렵 우리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생활―그건 바로 지금과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편리하고 풍요롭고, 자유롭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인간관계도 합리화되어 남녀가 평등해지고, 며느리들은 참으며 견디는 고난에서 해방된 그러한 생활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이 현실이 되자 인간이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입고 먹는 것이 족해야 예절을 알게 된다" 라고들 말하지만 입고 먹는 것이 풍부해 지니 오히려 예절이 없어지고 참을성도 없어진 것입니다. 물질적인 행복의 대가로 잃어버린 것도 많아진 것입니다.
사생관(死生観)도 바뀌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언젠가 저승시자가 데리려 올거야" 라고 생각해서 마음속으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늛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늙음을 외면하고 언젠가 다가올 죽음이라는 것에 눈을 감고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 고 해도 그 너머에 노잔(老残)과 죽음이 싫어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지금은 '늙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번거로운 일, 괴로운 일은 피하고 싶다는 풍조 속에서 '늙음' 또한 싫은 일,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름이나 기미를 잡는 기술도 있고 돈만 내면 성형도 받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쇼와 40년(*1965년)대에 성형외과 여의사가 주인공인 "그때가 왔다" 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 여의사는 속마음으로 "이런 일을 해도 별 소용이 없는 일인데" 라는 생각을 하며 생활을 위해 수술을 해주고 있다.
가슴에 실리콘을 넣고 크게 만들어 본들 팔순 할머니가 되어 죽었을 때 육체의 다른 부분은 주름이 져 있는데 가슴만 빵빵한 신기한 시체를 보게 될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까 하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나이 먹기를 아무리 거부해도 먹는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나이가 들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일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군요. (웃음)
저희 어머니는 젊었을 때는 여배우를 하며 화려한 시기도 있었지만 억지다 싶이 아버지와 결혼하고 나서는 정말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 3년 전 40대인 내가 연애 문제를 일으켜 와글와글 떠들고 있을 무렵에 어머니가 코타츠 위에 손을 얹고 "이 손 좀 봐봐. 나이들면 모두 이렇게 된단다" 라고 말했습니다.
주름지고 뼈가 앙상한 전형적인 늙은이의 손을 보여주며 은근히 나를 나무랐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경험을 거치면서 해탈이랄까, 허무랄까, 그러한 조용한 경지에 들어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괴로운 일이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사람이 성숙해 가는 데 양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모순 투성이인 것 같습니다. 그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고 모순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를 알게 됩니다. 경험이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쾌락추구의 시대로 바뀌어 괴롭고 어려운 경험을 충분히 가지기 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쾌락추구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다 보면 뭔가 더 하고 싶고 더 자극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생기기 마련인데 언론마저 일흔이 되어도 연애를 하라, 섹스를 하라고 부추긴다. 그런다고 해도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지요. (웃음)
저는 언젠가부터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수행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괴롭고 울고 싶은 일이 있어도 이것을 수행이라고 생각하며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들 "즐거워야 한다" 는 강박관념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의 경우는 "예쁜 여자여야 한다" "멋지게 나이를 먹어야 한다" "멋진 연애를 해야 한다" 등등.
지금은 모두 그런 식으로 눈에 보이는 부분만 보고, 사색 같은 것은 포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 멋진 연애는 어떤 연애일까요?
---- 멋진 연애? 다시 한 번 어떤 연애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지네요. 제가 말씀드린 "말만 앞서고 있다" 는 게 바로 그런 거겠지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은데 그런 입장의 선생님이 보시고 저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던가요?
요즘 사람은 아니지만 어느 날 도쿄전차 안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노녀(老女)가 계셔서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고 본 적이 있습니다. 나이는 70 정도로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분이 가미치카 이치코(*神近市子1888~1981 언론인-작가) 씨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미치카 씨는 어렸을 때 부모 형제가 죽어 입양되었지만, 그 집에서도 찬밥신세였습니다.
어렵게 쓰다주쿠대학에 입학하여 히라츠카 레이테우(*平塚らいてう1886-1971사상가)가 주재하는 '청탑(青鞜세이토우: 여류문예잡지)'에 가입하여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하지만, 삼각관계의 얽힘으로 애인이었던 오스기 사카에(大杉栄1885-1924 사상가)를 찔러 징역형을 받습니다.
출옥 후 문필가가 되었고, 전후에는 여성 해방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어 인권을 위해 계속 투쟁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가미치카 씨는 도깨비 같은 얼굴이었다고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의 얼굴은 진짜 예뻤습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박력 있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투쟁하는 인생의 삶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며 뭔가를 성취하면서 노년을 마무리하고 있는 사람의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요? 한결같은 삶을 추구하고 있는 인생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없는 그러한 늠름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역시 헛되게 살아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좋은 인생의 끝맺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지금의 세상에는 받아들여 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만, 글쎄요.
(84세 2008년 2월 7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