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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
설교일 : 2011년 9월 4일
본 문 : 행13:21-23
설교자 : 조재진목사
오늘은 우리 용두동교회 창립 104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용두동교회 100년사를 집필한 이덕주교수는 집필사 ‘쓰고 나서’에서 우리 용두동교회의 신앙전통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용두동교회의 신앙전통
“용두동 교회의 역사적 뿌리와 신앙전통의 특징적인 면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용두동교회는 한국교회의 복음전도에 뿌리를 두었다. 1907년에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고 1909년 100만명 구령운동이 일어나면서 용두동교회는 동대문교회 지교회로 서울 동북부 지역 선교 거점으로 세워졌다, 둘째 용두동교회는 지역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한 민중선교 전통에 충실하였다. 초기 한국 감리교회 선교 전통은 아펜젤로가 배제학당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지도자 양성을 추구하는 엘리트 선교와 스크랜튼이 시병원과 시약소를 중심으로 소외 계층 구제를 향한 민중선교로 나눌 수 있는데, 용두동교회는 동대문 밖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계층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였다. 셋째, 용두동교회는 미래 지도자 양육을 위한 교욱선교에 충실했다. 넷째, 용두동교회는 민족운동의 전통에 충실했다. 특히 민족대표 33인 중의 이필주 목사님과 박희도 전도사가 용두동교회 담임목회자로 섬겼다. 다섯째 용두동교회는 평신도 운동 전통에 충실하였다. 용두동교회는 그 처음 출발부터 목회자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교회를 섬겼다”
저는 이덕주 교수님이 정리해준 우리교회 신앙전통을 살펴보면서 우리교회가 가야할 길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설교주제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우리교회가 지난 100년 동안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앞으로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목과 은총을 받으며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섬김의 사명,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 계획 세우고 우리 마음대로 가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하는, 한마디로 하나님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언제나 기도하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교회의 가치나 종교의 가치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존재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과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제일 먼저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신 분이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마3:17) 여기에서 '기뻐하는 자'라는 말은 '내 맘에 맞는 자'란 뜻입니다.
또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었을 때에도 동일한 음성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변형되신 모습과 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을 들은 베드로가 놀라서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그리고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갑자기 구름 가운데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주님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맞는 다윗을 통해 당신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본문 21절과 2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여기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으로 베냐민 지파의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먼저 세웠습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이끌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사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폐하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울 왕과 다윗의 차이
그렇다면 여러분 사울은 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못했을까요? 사울이 아무 일도 안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은 하나님을 위해, 나라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의 삶은 온통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전쟁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사울 왕이 무슨 윤리적으로 치명적인 죄를 범한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윤리적인 시각으로 보면 다윗보다 사울이 더 도덕적입니다. 그런데도 왜 사울은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업적은 중요합니다. 또 얼마나 윤리적인가, 얼마나 선행을 했느냐도 중요합니다. 어떤 가문이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은 그런 것을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열심으로 일했을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요하게 보실까요? 하나님은 과연 어떤 사람을 버리시고 어떤 사람을 들어 쓰실까요?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신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가 사무엘상16:7에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 선지자는 사람의 외모를 보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닌 다윗의 중심을 보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윗의 중심이 어쨌다는 이야기입니까? 다윗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다는 걸까요?
명확하게 말하자면 다윗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는 사무엘상 17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울 때,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나와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습니다. 이방인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앞에서 주눅이 들어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을 면회 왔던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보고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에게 가서 ‘내가 싸우겠다’고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선 것입니다. 어린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을 이기겠습니까? 다 말렸습니다. 형들은 ‘너는 어려서부터 교만했느니라’ 사울왕도 ‘얘, 너는 아이지만 저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용사였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골리앗의 손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실제로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창이나 칼을 가지고 나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보십시오 다윗이 무엇을 가지고 나간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실제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실제로 믿었고,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을 보셨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 그 중심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하16:9에서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을 때 하나님도 그를 버렸지만,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높이실 때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다윗의 삶은 한 마디로 오직 한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삶,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와 함께 했고, 그의 삶이 놀라운 복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치 다윗이 저질렀던 간음과 살인이라는 추악한 죄를 다 잊어버리시기라도 한 듯이 하나님은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다윗의 중심에 있었던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순종의 마음이었습니다. 사도행전13:36에 보면 다윗의 삶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은 언제나 자신의 뜻, 자신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생각이나 자기 계획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쟁하러 나갈 때에도 하나님께 언제나 먼저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전쟁에 나갈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나가라고 하면 나갔고, 나가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께 묻고 행했습니다.
그는 또 자신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가던 시절에 한번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굴속에 다윗과 그 신하들이 있는데, 사울왕이 혼자서 굴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신하들이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 사울 왕을 죽이십시다’라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감정이나 정치적인 입지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의 중심에는 실제로 하나님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내 뜻을 다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 다윗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1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게 하셨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중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오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다윗은 왜 그토록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자신의 삶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사랑에 대한 빚진 마음이 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살아갔습니다.
이런 다윗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사무엘하5:12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여기에 보면 다윗이 알았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을 했는지 그는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저 시골 베들레헴, 이새의 막내 아들이요, 그저 목동에 불과한 자신을, 별로 뛰어난 것도 없고 아무도 자신을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보셨고, 그리고 자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평생 하나님께 대해 빚진 마음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이런 다윗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오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기뻐 뛰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여섯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진 송아지로 제사했고, 다윗 자신은 그 앞에서 베 에봇을 입고 춤을 추었습니다. 얼마나 힘을 다해 뛰었는지 바지가 흘러내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딸이요 아내인 미갈은 이런 다윗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이 염치없이 방탕한 자처럼 자기의 수치를 다 드러내셨군요’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마음으로 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자신의 전 삶을 드리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제가 용두동교회에 처음 부임할 때 간증한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제가 용두동교회에 부임하기 전에 제천제일교회를 섬겼습니다. 제가 제천제일교회에 부임했을 때, 장로님들이 저에게 교회를 건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를 지을 부지는 이미 준비해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임한지 6개월 정도 지난 후에 건축위원회를 열고 설계회사 선정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설계회사를 선정하고 기본설계를 가지고 시청에 들어가서 도시 개발과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땅에 교회를 건축할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실 제천제일교회는 교회 건축에 대한 아픔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 목회하셨던, 박내수목사님은 저와 제 아내 결혼 주례를 하셨던 분이셨는데, 100주년 기념예배를 건축하기고 결정하고 2,000평 정도의 땅을 구입하셔서 기공예배를 드리고 건축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기공예배 드린 지 일주일 만에 그만 시공회사가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착수금으로 준 수억의 돈을 그냥 날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으셨던 목사님이 새벽기도 인도하시다가 쓰러지셔서 그만 소천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신 목사님은 기공 예배드렸던 그 땅을 매각하고 대신 시 외곽에 만평의 땅을 매입하시고는 그곳에 교회 건축을 시작하려고 설계회사를 선정하시다가 그만 교회를 사임하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맡았는데... 시에서 건축을 못한다고 하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장로님들이 당황했습니다. 이게 해결 안되면 이제는 교회 공동체까지 흔들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장로님들에게 같이 기도하자고 말했고, 기도하며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2003년 11월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2월 달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제천 밀알 선교단 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장애인 쉼터를 건축하고 있는데 올해 성탄헌금으로 꼭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 이백 만원 정도 도와주면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장로님 한 분이 ‘밀알선교단 장애인 쉼터 공사가 돈이 모자라서 멈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가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기획위원회에 이 안건을 내고 장로님들과 의논했습니다. 물론 처음 이 안건을 내었을 때, 대부분의 장로님들은 반대하셨습니다. ‘우리교회도 지금 건축을 해야 하는데 이 마당에 어떻게 다른 데를 도와줄 수 있냐?’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마음에 계속 부담을 주었고 그 다음 기획위원회때 다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자 몇 몇 장로님들이 ‘그럼 얼마나 있으면 공사를 다 마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1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계속적으로 부담감을 주었기 때문에 저는 기도하면서 다음 회의 때에 다시 이 문제를 꺼냈습니다.
그날 회의 때, 한 분 장로님이 ‘제천제일교회가 제천의 모교회인데 이 일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자 또 어떤 장로님은 ‘교회에서 끌어 모을 수 있는 것 다 모으면 1억원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도와주십시다.’ 한 분, 한 분 돌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날 성령님께서 장로님들의 마음을 일치하게 하셨는데, 심지어 어떤 장로님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우리 교회가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 주신 것이 아니겠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성령님께서 장로님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셔서 도와주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손을 잡고 통성으로 기도를 했는데, 장로님들이 다 울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이일에 쓰임 받은 것이 감사했고, 성령께서 일치된 마음을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또 장로님들은 서로 허깅을 하면서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5천만 원씩 두 번 헌금을 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물론 장애인 쉼터는 다 지어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밀알 선교단에 일억을 헌금한 그 다음 주에 어떤 분이 무명으로 일억원을 건축 헌금했습니다. 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그 다음해, 2004년 1월과 2월에 걸쳐 제천시청 인사발령이 있었는데 ‘교회를 건축할 수 없다’고 한 도시 개발과 과장과 그 부서에 속한 모든 직원들이 다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한 부서가 몽땅 다 인사 발령이 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해 2월에 다시 시청에 들어가서 교회 건축을 의논했는데, 그곳에 교회를 지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해 1월에 대통령령으로 건축법이 한시적으로 일부 변경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를 지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시적이니까 빨리 건축허가를 받으라고 조언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기쁘시게 하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창립기념주일에 우리 용두동교회 교우들에게 기쁜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주 기획위원회에서 장로님들이 한 가지 결정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얀마 신학교를 건축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지난 16년 동안 미얀마 선교를 해오면서, 신학교 부지를 매입해 놓고 오랫동안 신학교 건물을 건축하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번번히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겨서 차일피일 미루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건축허가를 얻어 신학교를 건축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채플과 남자 기숙사, 여자 기숙사, 사무실 등 총 4동을 건축하기로 했습니다. 건축비는 20만 불, 약 2억 천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교회 건축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장로님들이 기도하면서 우리교회 건축보다 미얀마 신학교를 먼저 건축해야 한다는데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결정하면서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의 뜻,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라 섬겼듯이 우리가 저 미얀마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목회자를 키우는 신학교와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먼저 헌신하기로 한 것이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안하려고 합니다. 이 일에 헌신하는 분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채플 한 동과 남자 기숙사. 여자 기숙사, 각 한 동씩 그리고 사무실 한 동을 건축할 것입니다. 혹시 어떤 분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이 일에 헌신하라고 부담감을 주신다면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이 일에 꼭 헌금해야 하겠다’라는 마음이 있는 분들은 그 액수는 상관없이 동참할 수 있습니다. 혹시 자신의 회갑이나 칠순(팔순)을 기념하여 신학교 건물 한 동을 건축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한 동 전부를 그 분이 헌금해서 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교회 창립 10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용두동교회 담임목사로서 우리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1,000명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하기가 힘들겠어요. 1,000명의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때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1,000명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우리의 삶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맨 처음 우리 용두동교회가 세워졌을 때 하나님이 세우셨던 하나님의 뜻이 지금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서울 동북부지역의 선교거점으로,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섬기고, 그리고 우리 민족의 인재들을 키우는 그런 교회로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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