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산에서,
자일과 카라비너는 사람과 바위를 연결 시켜주는 기능 때문에
바위 꾼 들 로 부터 목숨처름 아낌을 받는다.
그런 바위꾼 중에서도 나의 술 선배인 어느 박씨만큼 자일과 비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듯 하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딸의 이름이 각각 '자일'과'비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의 바위꾼인 손모씨에게로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가장 사랑하는 장비로 자일을 꼽는것은 서울의 박선배와
다소 다를바 없지만
'비나'를 검지에 꼽을 손씨는 아니다.
손씨의 아들 이름도 '자일'인데 손자일의 여동생은 비나가 아니다.
취사도구인 '바나'인 까닭이다.
박자일과 박비나의 아버지인 박선배와 손자일과 손버너의 아버지인 손씨는
자일을 공유한 산악계의 선후배로 친하게 지낸다.
그럼에도 기질면에서는 '비나'와 '바나'만큼 서로 다르다.
비나의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시고,
버너의 아버지는 항상 밥을
많이 먹는다.
자식의 이름에 자신이 좋아하는 장비이름을 붙힌 박씨나 손씨,
"장비이름파"라 불러본다면
서울의 최모씨와 두 김모씨
그리고,
대구의 홍모씨는 "산이름파"로 불린다.
낭가파르바트,안나푸르나,난다대비,초오유~~~
카라코람과 네팔,인도 히말라야에 솟은 7000~8000급 고봉인 동시에
앞에
열거한 이들의 딸 이름이다.
'최낭가'와'김안나'의 아버지들은 만년설이 뒤덮인 "신들의 거처"를
낭가와 안나 그리고 난다를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자녀의 이름에
차용하는
산사람의 배짱을 보여준다.
중략` (박인식의 무악 제4호에서 발췌)
그랬다.
어느해인가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할 무렵,
그들만의 놀이터인 부채바위 베이스 캠프에서 아이들 이름을
지었다.
다들 최낭가, 김안나,박비너,, 라고 지을때,
나는 태백산맥에 꽂혀있었다.
에베레스트, 로체원정이 내 삶을 비껴나갈때
나의 화두는 동계 태백산맥 단독종주 였다.
이듬해 있던 다울라기리나 추랜히말은 이미 물건너가고,
암튼 ,
그때 나는 아름다운 우리강산 이란 이름을 지었다.
옆에 같이 다니든 무식하고 순발력 있는 녀석이
라맨은 어때?
오뎅은??
이따위 발언을 하는놈도 있었지만
(당시
주메뉴가 라맨과오뎅탕,카레 였으니)
그리고 몇번의 원정을 놓치고 10년이 지날무렵
태백산맥 종주를 가게되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속으로 떠나며 이번 등반이 나의 산행에
종지부를 찍는 것 만 같은 두려움과 아쉬움을 안고,
몇 해 뒤,
결혼을 할때 우리 아이들 이름을 이야기 했다.
첫째는 무조건 딸이다,김아름
둘째는 무조건
아들이다,김다운
세째는 무조건 딸이다,김우리
네째는 무조건 아들이다,김강산
아내가 물었다,
그럼 나는 뭥교??
절묘하게 당시 산을 잠시 떠나 바다에 미쳐 있었다.
전라도로 제주도 바닷속의 산을 헤메고 나닐 쯤이니
당신은 미잘이,
"말미잘"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보호색이며,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촉수,
각설하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되었다.
먼산,흰산,히말라야,알프스의 폼도 좋지만,
금정산에서 백두산까지
하늘에서,바다에서,사시사철 느끼는 아름다운 우리강산이
뼈저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참 다행인 것은
첫애는 딸이라 '아름이'가 어울리고,
둘째는 아들이라 '다운이'가 멋지고,
세째는 딸이라 '우리'가
어울릴라 카는데!
톡`쏘는 촉수를 가지고 있는 미잘이,,,
미잘이의 촉수는 강했다.
보소! 또, 아를 나찬 말잉교~~
10년동안 젖 물렸음 됐지,으~아 ㅡ,.ㅡ
*내 인생의 첫번째 태클이 들어왔다.
여기서 마무리 짖지만 하는수 없이 세째 "우리"는'강산'이가 되었다.
요즘 물어본다,
진짜 우리 강산이는 오데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