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Los Angeles Times 2010-6-22 (번역)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자유의 투사에게 종신형 선고
Cambodia freedom fighter sentenced in fatal attacks
롱비치 거주 한 미국인이 화요일(6.22) 자신의 모국인 캄보디아에서 정치적 쿠테타 시도를 조직한 혐의로, 연방법원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 쿠테타 시도로 3명이 사망한 바 있다.
"캄보디아 자유의 투사"(Cambodian Freedom Fighters: CFF)라는 단체의 전직 회장이기도 한 추온 야싯 피고인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지난 2000년 11월 24일 발생한 무장공격과 관련하여 2008년에 구형을 받았다. 당시 그의 반군 중 3명이 사살됐고, 여러 명의 캄보디아 경찰 및 군병력이 부상했다.

(사진: BBC) 2000년 공격 당시, 당시 부상을 입은 캄보디아 군병력들의 모습.
추온 야싯 피고인은 초록색 자켓을 입고 허리에는 포승에 묶인 채로 눈물의 최후진술을 행했다. 그는 자신이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의 학살(genocide)에 고통받으며 아버지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불운하게도 미국에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캄보디아에서 출생했던 것입니다"라며 심경을 밝혔다.
추온 야싯 피고인은 1982년 난민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도, 자신의 모국이 정치적 혼돈으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그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실패했기 때문에 벌을 받습니다. 그것은 제에게 [훈센] 정부를 전복시킬 힘이 부족했음을 말해줍니다"라고 말했다.
딘 프레거슨(Dean D. Pregerson) 판사는 추온 야싯 피고인에 대해 "사악한 인간"(evil human being)이 아니라고 믿지만, 선고되는 형량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프레거슨 판사는 "저는 모든 그룹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미국에 대해 동일한 음모를 꾸민 사람에게 미국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룹들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검사는 2008년의 구형에서, 추온 야싯 피고인이 자신의 롱비치 소재 사무실에서 공격을 모의했다고 말했다. 검사에 따르면, 추온 야싯 피고인은 쿠테타 시도가 실패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언론을 통해 그 공격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밝히고, 향후 재차 시도할 것이라 밝혔다고 한다. 이후 미 연방 검찰청은 추온 야싯 피고인이 외국에서의 범죄를 규정한 몇몇 연방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사진) BBC와의 인터뷰 당시 추온 야싯 피고인의 모습. 그는 자신이 연간 1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회계사였지만,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었다.
검사는 추온 야싯 피고인이 1998년 캄보디아로 건너가, 훈 센(Hun Sen) 총리가 이끄는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에 반감을 가진 군사 요원들을 만났다고 한다. 이 만남 이후 "캄보디아 자유의 투사"(CFF)가 조직되었고, 추온 야싯이 회장으로 선출됐다고 한다.
미 연방 검찰청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의 반군 조직은 무기 획득을 원했고, 이에 대해 "캄보디아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킬 수 있도록" 추온 야싯 피고인의 단체가 기금 마련 행사에 나섰다고 한다. 기금마련 행사는 롱비치의 퀸메리(Queen Mary)에서 개최됐다고 한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추온 야싯 피고인이 분명하게 "훈센을 찢어서" 죽이려 했다고 한다. 또한 여타 고위 관료들에 대해서는, "목을 부러뜨린 후 곧장 지옥으로 보내려했다"고 자술서를 썼다고 한다.
추온 야싯 피고인은 분명 쿠테타 기도 당시 태국-캄보디아 국경에 은신해있었고, 약 200명 정도의 반군 병력들이 AK-47 기관총과 수류탄, 그리고 로켓포로 무장한 채 공격을 감행했었다.
기사작성 : My-Thuan Tran and Scott Gl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