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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사유”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서문
서양 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존재와 사유이다. 이는 파르메니데스부터 데카르트 그리고 하이데거까지 거의 모든 철학이 이들에 몰두한다. 우선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사유와 동일하다 즉 Being is identical with thought 라고 하여 실재론적인 철학을 정초했다. 여기에 비해서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그 반대로 나의 사고는 나의 존재이다 즉 I think therefore I am. 라고 하여 근대 철학 그리고 관념론적 철학의 방향을 잡았다. 서양을 철학의 방향을 대표하는 두 철학자는 모두 존재와 사고를 그 축으로 삼았다.
우선 존재와 사고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서양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을 완성시킨 사람이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이다. 존재는 유일하다, 존재는 불변적이다 는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공리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존재와 사유는 동일하다 는 원리도 역시 포함된다. 그리하여 그는 존재를 파악하는 도구와 방법은 감각이 아니라 이성이다, 혹은 사유다 라고 하는 서양 사상의 기초를 놓았다. 즉 존재와 사유를 통해서 존재론과 인식론을 동시에 성립시킨 철학자이다. 파르메니데스의 기초를 가공하여 발전시킨 사람들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런 삼각 관계를 밝히는 것이 본 강의의 목적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요지는 존재와 사유는 동일하다는 명제이다.
이런 파르메니데스의 원칙에 의거하여 고대 철학과 중세 철학이 이루어 졌다. 여기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수아레스, 둔스 스코투스 등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서구의 형이상학을 꿰뚫고 지나간다. 사유, 지성, 이성 등은 존재를 파악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존재가 인식에 앞선다!
그 반대로 데카르트의 원칙 즉 나는 사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즉 cogito ergo sum 원리는 사고에서 존재가 도출된다. 이는 다시 말하면 나의 사고에서 나의 존재가 증명된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서 칸트, 피히테, 헤겔 등의 독일 관념론 철학이 흘러간다. 이 과정은 물론 대단히 복잡하다. 그러나 그 기본 원리는 동일하다. 사유, 지성, 관념, 개념이 감각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인식이 존재보다 앞선다!
이 유튜브에서는 주로 전자 즉 파르메니데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계열만 다룬다. 데카르트부터 헤겔까지의 철학 방향은 다른 곳에서 다룬다.
형이상학은 그간 부당한 공격을 많이 받아왔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I. Kant)가 형이상학을 독단적인 이론으로 낙인을 찍은 후부터 이 학문은 비과학적이고 초월적인 대상을 이러쿵 저러쿵 서술한다고 간주되어왔다. 형이상학은 이른바 신(神), 영혼(靈魂) 그리고 자유(自由)에 대한 자의적(恣意的)인 믿음을 표출한다는 비판이었다. 이런 비판은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2500년 역사를 가진 서양 철학과 또 형이상학을 살펴보면 이런 류(類)의 주장이 일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신(神), 영혼 그리고 자유 등의 주제가 형이상학의 모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들은 형이상학의 일부 주제에 불과하다. 이들은 소위 특수 형이상학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형이상학의 응용학문이다. 진정한 형이상학은 「일반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Ontology)라고 한다. 일반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문장, 즉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그리고 이런 학문은 지금도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형이상학의 고유한 주제는 이처럼 신(神)도 아니고 영혼(靈魂)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존재를 존재」로 -being qua being- 다루는 것이다.
또는 존재 일반을 다루는 학문이 형이상학 내지 존재론이다.
더 나아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는 파르메니데스의 공리(公理), 즉 「있음은 있다, 없음은 없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변화와 생성 그리고 비존재 혹은 무(無)를 논리적으로 부정한다. 파르메니데스는 무(無)를 부정한다. 그러나 그런 만큼 무(無)에 대한 많은 고찰을 보여준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그가 그토록 부정한 무(無) 혹은 비존재(non-being)가 그 다음부터 철학의 심오한 주제의 하나로 그 격상된다.
서양철학 2500년 역사의 큰 이정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논리학』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그런 과정에서 무(無) 혹은 비존재(non-being)의 문제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또한 본 연구의 중심적인 과제이다.
파르네니데스의 사상은 철학사적으로 대단히 중대하다. 그의 업적을 밝히는 것이 본 저서의 목적기기도 하지만 미리 간략히 말한다면 크게 다음의 4가지 이다: ①프로타고라스로 대변되는 소피스트들의 궤변론의 논거를 제공했다. ②다원론자들의 궁극적인 실재(reality) 즉 원자, 원소 등의 개념 형성에 기여했다. ③플라톤의 형상이론에 큰 기여를 했다. ④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도 파르메니데스가 종종 등장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파르메니데스와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서 그의 사상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존재 개념을 통하여 진리론을 정초하고 비존재 개념을 통하여 가능태, 현실태 등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정초한다.
그러나 『형이상학』의 전제가 되는 것이 『소피스트』이다. 지금까지는 『소피스트』를 플라톤의 저서로 보았기 때문에 존재와 비존재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가 학문적인 거인 파르메네데스의 존재-일원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체하여 내 놓은 결과가 『형이상학』의 성립이다.
다시 말해서 『형이상학』의 준비 혹은 형이상학과 대등한 아니 어떤 경우는 형이상학을 능가하는 것이 『소피스트』이다.
특히 존재(being)와 비존재(nonbeing) 그리고 존재(being)와 일자(one) 등의 상호관계에 대한 엄청난 분석이 『소피스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그간 플라톤의 저작으로 알려진 『소피스트』 대화편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돌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존재를 다시 존재로 끌어 올리는 일은 또한 굉장히 힘든 길이었다. 왜냐하면 「비존재가 있다」 혹은 「무(無)가 있다」는 언어적 표현은 자기 모순을 ㅡself-contradictionㅡ 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유로 파르메니데스는 비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아직도 실은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형이상학의 위대한 주제는 바로 존재, 무(無) 그리고 생성(生成)이다. 이런 개념들에 대해서 사고하는 것이 형이상학의 본령(本領)이다.
이런 지평에서 출발하여 다시 변화, 생성, 소멸하는 현상계와의 관련성을 추구하는 것이 또한 형이상학의 할 일이다. 그런 가운데 위에서 말한 특수 형이상학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건 것들이 현실에서 아무리 중요하긴 해도 형이상학의 지평에서 볼 때는 하나의 파생학문 내지는 응용학문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지식들은 공격을 당할 요소가 많이 있다. 아마도 칸트의 말처럼 과학적 철학으로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들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파르메니데스에서 비로소 시작하는 존재론 혹은 일반-형이상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엄청난 사유의 노력을 통해서 비로소 그 완성된 모습이 나타난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란 저서이다. 「존재를 존재로서 탐구한다」 즉 어떤 특수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 일반에 대한 과학적 진술의 체계인 것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이런 형이상학은 바로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하면서 비로소 그 모습이 파악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ㅡ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성립』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일원론은 위에서 말한 바 프로타고라스로 대변되는 소피스트들의 궤변론의 논거를 제공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존재 혹은 무(無)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① 분리(分離) ② 다수(多數) 란 것이다. 즉 비존재란 문자 그대로 비존재, 없음이 아니라 「분리와 다수」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없다」는 것은 진짜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어떤 장소에 없다」는 것이다. 또 「무엇이 아니다」 라고 할 때 이는 무엇이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지시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수는 없다」 라고 할 때 이는 「철수가 집에 없다」 혹은 「철수가 학교에 없다」라는 상황에서 말하는 것이다. 철수와 학교 라는 두 개의 존재가 결합이 안 될 때 우리는 없다 라고 한다. 또 「하늘이 푸르지 않다」라고 할 때 이는 단순히 푸르지 않다와 더불어 실은 그와 다른 색깔임을 의미한다. 즉 하늘이 푸른 색이 아니라 그 밖의 수많은 다른 색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를 후대에는 무한판단이라고 한다.
비존재(nonbeing)는 또한 부정(negation)과 연결된다. 즉 「아닐 비(非)」는 부정을 말한다. 이를 통해서 비존재 혹은 부정이 존재의 속성이 될 수 있다. 이른 비존재를 결성(privation) 이라고 한다. 비존재가 –어떤 의미에서- 존재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것이 이제는 존재(실체)의 한 속성으로 전락한다. 여기서 비로소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큰 특징인 현상계의 변화와 운동을 폭넓게 인정하게 된다. 가능태와 현실태의 사상이 이런 부정과 비존재의 인정과 맞물린다. 결론적으로 비존재와 부정의 인정이 형이상학과 논리학의 초석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헤겔이 말한 바와 같이 「세계 역사의 무시무시한 노동」 –die ungeheure Arbeit der Weltgeschichte) 을 통해서 이루어 진 길이다.
형이상학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존재를 존재」로 다루는 학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형이상학은 존재(存在)의 대립자 즉 무(無) 혹은 비존재(非存在) 문제를 함께 탐구한다. 그리고 존재에서 무로의 이행(移行) 즉 생성(生成)이 있다. 그런 면에서 형이상학은 존재, 무, 생성에 대한 학문이다. 근대에 와서 헤겔의 철학 시스템이 이런 사정을 잘 반영한다.
그러나 존재와 무에 대해서 서술한다고 해서 그런 시도가 다 형이상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과학 혹은 학문에 대한 기초가 필요하다. 즉 지식론 혹은 인식론이 우선적으로 규명이 되어야 한다. 이런 시도를 처음으로 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특히 그의 비교적 초기의 저서 『테아이테토스』와 『에우튀데모스』에서 이런 일이 수행되고 있다.
이런 플라톤의 학문을 더 발전시킨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후자가 쓴 『소피스트』 편에서 지식의 문제가 더 탐구된다. 『소피스트』 편에서 중요한 도약적인 발전은 비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 그의 스승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즉 그는 「무는 없다, 그것은 인식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을 답습한다. 그런 이유로 플라톤은 그가 시도한 인식론을 완성하지 못하고 난제(難題) aporia로 남겨 두었다. 그 이유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일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테아이테토스』에 나타난 새장의 비유를 보면 플라톤은 오류를 착각으로 본다. 즉 A를 B로 보는 것이 오류의 원인이라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한 때 A를 알고 있던 사람이 무슨 이유로 그것을 알지 못하고 B라고 아는 경우이다. 즉 소크라테스를 심미아스라고 인식하는 경우이다. 다시 말하면 착각 현상은 실은 무지(無知)로 환원된다. 여기서 말하는 무지는 원천적인 무지가 아니라 한 때 안 것을 다른 때에 모르는 것이다. 이를 작중의 소크라테스는 “보는 사람이 맹인이 되어 보지 못한다” 고 표현한다. 사실 이런 경우는 일상 생활에서 종종 경험하는 현상이다. 또 더 나아가서 무지(無知)란 것이 우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즉 영혼 속에도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면에서 플라톤의 인식론은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문제를 더 깊이 고찰하지 않고 바로 이데아론으로 비약한다. 스승이 다 풀지 못하고 버려둔 무지와 거짓말 혹은 오류의 문제를 다시 꺼집어 내어 발전시킨 것이 결국 소피스트 편 즉 「비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형이상학의 발전사라는 측면에서 필자는 『국가』보다 『테아이테토스』를 더욱 중요하게 본다.
뒤에서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플라톤이 『테아이테토스』를 쓴 목적은 다시 유행하던 소피스트들의 궤변 즉 「거짓말은 없다」,
「오류란 없다」 혹은 「무슨 말이든 다 진리이다」는 사상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일원론이 중요한 이유는 위의 모든 논변들이 거의 다 그의 사상 즉 「있는 것은 있다, 없는 것은 없다」, 또 「있는 것은 알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없는 것은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소피스트들 역시 이를 이용하여 그들의 상대주의 논변을 펼쳐 나갔다. 즉 「없는 것은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이용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다 진리이다, 거짓이 없다」, 「무슨 주장이든 다 참이다」 등으로 비약시킨다.
이 책을 만든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필자의 독일 유학 시절 (1990~1999) 배태되었다.
즉 필자가 독일 체류기간 중에 쾰른 대학교의 뒤징 (K. Düsing) 교수의 세미나 중에 느낀 문제점들을 귀국 후 다시 연구하여 출판하게 된 것이다. 뒤징 교수는 잘 알려진 헤겔 연구의 대가이나 석•박사과정 수업(오버 세미나)에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 교재를 종종 강의했다. 그의 세미나는 플라톤 대화편 『파르메니데스』 강의에서 이 교재가 플라톤이 썼다면 모순이 있다 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 때 필자는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썼을 지도 모른다」 는 말을 하여 많은 교수로부터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 필자는 그 때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들은 필자의 기존 저서 「논리의 탄생」에서 이미 한번 다룬바 있다.
그 후 이를 토대로 이를 유튜브 철학 강의 ㅡ철학의 항해ㅡ를 하였고 유튜브 원고를 바탕으로 이 책을 편집하게 되었다. 『철학의 항해』는 그리스 철학 외에 중국 철학, 근대 철학 등도 폭넓게 다루고 있으나 그 중 고대 그리스 철학만 따로 떼어서 이 책 즉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출판하게 되었다.
테마는 크게 다음과 같다.
플라톤이 초기의 단언적이지 않은 (not categorical) 소크라테스적인 대화편에서 단언적인 (categorical) 중기의 대작 『국가』를 구상할수 있었던 것은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에서 기인한다. 좀 더 상세히 말하면 플라톤은 『국가』 편에서 만물 유전, 생성, 변화를 주장하는 헬라클리투스와 존재의 불변성을 주장하는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을 종합할 수 있다고 보았고 더 나아가서 이를 토대로 참된 존재인 이데아에 대한 지식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간 철학이 현상계(現象界)라고 무시했던 변화와 생성을 긍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소피스트적인 경험주의, 감각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 등을 극복하고 절대적인 지식을 확신했다. 그런 이론적인 지식의 토대위에서 플라톤은 도덕, 정치, 국가 철학을 수립했다.
2. 흔히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으로 알려진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트』, 『테아이테토스』 그리고 『정치가』 등 4편의 대화편은 모두 플라톤이 쓴 것이 아니다. 그 중 『테아이테토스』만이 플라톤이 썼다. 그리고 그것도 후기가 아니라 『국가』 이전에, 바로 그 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리고 나머지 3작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 봐야 한다. 이 대화편들은 플라톤 철학과 그 사상이 다르다. 특히 『파르메니데스』은 플라톤의 랜드마크인 이데아설을 완전히 반박, 부정한다. 특히 “제 3인간 논변” (the third man argument)이나 “범포의 비유” (analogy of sail) 등을 통해서 플라톤의 고유한 사상인 이데아설을 완전히 초토화된다.
여기에 대한 종래의 학설은 플라톤이 스스로 종래의 자신의 학설 을 반성 내지 비판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다고 할 경우라도 그 논증이 불합리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예전의 생각을 반성하고 비판하는데 불합리한 이유를 근거로 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 나아가서 『소피스트』, 『정치가』 그리고 『파르메니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들과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 이 점을 밝히는 것이 필자(안재오)가 이 책을 집필한 의도이다.
위의 3 대화편들의 주인공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플라톤은 보통 자신의 사상을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서 서술한다. 『소피스트』와 『정치가』는 엘레아에서 온 손님이 주인공이며 『파르메니데스』는 엘레아 학파의 원조인 「파르메니데스」가 직접 나서서 소크라테스를 비판한다.
「젊은」 소크라테스는 「늙은」 파르메니데스에 의해서 조롱당하고, 맥을 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열렬(熱烈)한 제자 플라톤에게는 결코 일어 날 수 없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가장 중요한 범주인 실체와 속성 (substance & attribute)를 통해서 이데아와 (형상) 개체의 모순이 지양된다. 이제부터 플라톤의 이데아는 보편 개념 혹은 사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속성으로 규정된다. 이것은 철학 뿐만 아니라 서양 과학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들은 필자의 저서 『논리의 탄생』에서도 연구한 바가 있다.
3. 비존재의 인정(認定)이 『형이상학』과 『논리학』의 가능근거이다.
위의 1, 2의 발전사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위에서 말한 『형이상학』과 『논리학』의 성립의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비존재(nonbeing)의 인정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파르메니데스의 일원적 존재론 즉 「존재는 있고 비존재는 없다」의 철학적 의미는 지대하다. 이 덕분에 자연철학은 사라지고 영원한 존재, 불변적인 존재를 철학의 근본 요소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 점은 위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의미를 우선 실체(sustance)로 파악함으로써 불변적, 자립적 존재를 설정했다. 그런 다음 그는 실체와 속성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서 생성과 변화를 설명한다. 여기서도 비존재 개념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이 『형이상학』의 골격을 이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존재와 비존재를 긍정과 부정 그리고 결합과 분리로 각각 파악하고 이를 문장의 각종 형식과 연결을 시킨다. 여기서는 실체와 속성 대신 주어(명사)와 술어(동사) 등의 관계를 다룬다. 그 후 전체와 부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문장의 성격을 규정한다. 즉 명사의 전체성과 부분성 그리고 긍정과 부정을 연결하여 정언적 문장의 논리를 형성한다. 여기서 반대(contrary) 와 모순(contradictory) 대당이라는 논리적인 체계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정언적 문장의 논리 위에서 이제는 문장과 문장의 논리적 연결 곧 삼단논법의 체계가 구축이 된다.
이 모든 과정에는 독일에서 필자가 연구한 발전사(發展史 ㅡ Entwicklungsgeschichte)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에 필자의 두 스승이신 쾰른 대학의 뒤징 (K. Düsing) 교수와 부퍼탈 대학의 바움 (Manfred Baum)에 대해서 다시금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철학하는 것을 도와주신 여러 은사님들에게 특히 감사를 표한다. 한국 외국어 대학에서 철학을 부전공으로 할 때 이제는 고인이 되신 장욱 선생님, 강성위 선생님 그리고 손봉호 선생님 이기상 선생님 등이 사랑으로 지도해 주셨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 고(故) 이상철 선생님, 이태수 선생님, 소광희 선생님, 한전숙 선생님, 백종현 선생님 들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2022.07.31. 서울 군자동에서 안재오
아래의 목차는 저서 :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책의 페이지 수입니다.
# 유튜브 시간표
1. 파르메니데스 : 있는 것과 없는 것
(1) 존재의 의미를 처음으로 밝힌 철학
(2) 자연철학 비판 : 존재와 생성의 대립
(3) 본체계(本體界)와 현상계(現象界)의 2원론
(4)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 문제
2. 플라톤의 대화 “변명 (Apology)” 분석
(1) 오래된 고발자들
(2) 최근의 고발자들
3.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 :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트 그리고 플라톤, 플라톤의 철학적인 출발
(1) 플라톤 저작에 대한 발전사적 탐구
(2) 생성과 존재의 싸움 ㅡ만물유전과 부동적인 존재의 싸움ㅡ
(3) 지각-지식 이론의 반박
(4) 판단-지식 이론과 정신의 기능
(5) 판단-지식 이론의 문제점 : 오류 가능성
(6) 밀납의 비유
(7) 플라톤의 대화 『에우튀데모스』에 나오는 학습의 문제 78쪽
(7)-1 학습의 역설
(7)-2 : 거짓말은 없다.
(8) 새장의 비유
(9) 추론-지식 이론
4. 플라톤의 『국가』 : 철인(哲人) 왕 과 형상 이론
(1) 『국가』 ㅡ 플라톤 철학의 독립선언
(2) 국가의 3계급설과 영혼의 3분설
(3) 철학자 왕
(4) 형상이론(이데아설)
(5) 의견 (doxa) ㅡ 현상계의 부분적 긍정
(6) 선분의 비유 : 의견(doxa)의 영역의 세분화 및 학문이론
5. 흔들리는 형상이론 :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 분석
(1) 영혼의 불멸ㅡImmortality of Soulㅡ과
영육이원론 (靈肉二元論)
(2) 형상이론의 보편화
(3) 참여이론, 형상-원인론(형상인)
(4) 대(大)와 소(小)의 역설
6. 이데아설의 부정과 『파르메니데스』 대화
(1) 제 3인간 논변
(2) 날과 돛의 비유 analogy of day and sail
(3) 주인과 노예의 비유 – 이데아들의 상호의존 문제
(4) 『파르메니데스』 2부 : 「하나」의 문제
(4)-1 : 하나와 자기의 논제
A. 「하나」는 자기와 다르지 않다
B. 「하나」는 타자와 다르지 않다
C. 「하나」는 자기와 같지 않다
(4)-2 「하나와 존재」의 논제
7. 『소피스트』 편 분석
(1) 파르메니데스 명제에 대한 소극적인 비판
(2) 일자 존재에 대한 비판
(3)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나타난 존재와
하나의 문제
(4) 거인(巨人)족과 신들의 싸움
(5) 변증법의 탄생 ㅡ범주들 간의 운동ㅡ
(6) 비존재 문제에 대한 문법적, 논리적인 접근
(7) 모방 예술이론
8. 『정치가』 - 현실 국가 이론
(1) 정치과학의 탄생
(2) 정치 제도 및 형태 분석
9.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비존재의 문제
2. 파르메니데스 : 있는 것과 없는 것
(1) 존재의 의미를 처음으로 밝힌 철학
서양 철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에서
“존재를 존재로 ㅡbeing qua beingㅡ 다루는 학문이 있다” 라고 했다. 이를 제 1철학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존재를 존재로 다룬다는 말은 우선 탐구의 대상이 어떤 특정한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 일반” 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서양 철학을 존재의 철학으로 만드는데 최초로 그리고 가장 많이 기여한 사람이 B.C. 6세기 그리스에서 난 철학자 피르메니데스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서양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철학적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앞에 있는 누구도 “존재 자체” (being itself) 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자연 철학”(nature philosophy)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연의 원리를 탐구했다. 그러나 자연물이나 현상도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에 앞서 존재 즉 있음 자체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구름이나 산이나 사람 등의 공통점은 그들이 있다, 혹은 존재 한다는 것이다. 즉 자연은 존재의 일부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이처럼 존재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그는 존재의 철학의 창시자, 즉 존재론(ontology)의 창시자이다.
그는 동시에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밝혔다. 존재한다는 것은 사유, 즉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유와 존재는 동일하다”. 라고 했고 더 나아가서 “존재는 사유(思惟)가능하고 언표(言表) 가능하다” 라고 했다.
사실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엄청난 사실이다. 사유와 생각은 이성의 기능이다. 파르메니데스와 더불어 이성 기능이 진리 인식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사유는 인간의 본질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천명하여 근대 철학을 개척했지만 인간의 사유 능력, 이성 능력을 철학과 과학의 기초로 만든 이는 파르메니데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라고 선언하여 서양 철학의 방향을 설정했다. 그러나 이를 위한 길을 예비한 사람은 파르메니데스이다. 하여간 피르메니데스는 존재와 사유 혹은 이성을 결합하여 철학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살피기 전에 이와 대조되는 주장을 하는, 즉 영원한 존재를 부정하는 회의주의, 상대주의 사상을 먼저 보자.
예를 들어 위대한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는 자신의 허무주의적 주장을 "트리레마(삼도논법)으"로 정립했다.
i.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ii. 존재한다고 해도 알 수 없다.
iii. 알 수 있다고 해도 전달할 수 없다.
존재, 지식, 소통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입장은 고르기아스의 그것과 정반대이다. 파르메니데스는 고르기아스와 정반대로, "비존재, 즉 존재하지 않는 것, (nonbeing, nothing)"은 불가능하다“ 라고 했다. 그는 비존재(nothing, the thing which is not)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있다" 또는 "무엇인가 있다" 또는 "어떤 것이 있다" 라는 문장만이 의미가 있다. 그 반면 “무엇이 없다” 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존재에 부정(negation)은 없기 때문이다. 존재는 오직 긍정이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으나 “무엇이 없다” 라는 일상적 표현은 두 사물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나에게 돈이 없다 는 말은 나와 돈이 연결이 안 된다는 말이다. 나도 있고 돈도 ㅡ엄청나게 많이, 어디엔가ㅡ 존재하나 문제는 그것이 내 통장에는 없다 는 말이다. 이처럼 “~이 없다” 혹은 무(無) 혹은 공(空) 같은 말은 모두 일상적인 언어를 표현한다. 하나의 편의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철학이나 종교 혹은 사상 등에서 이런 개념들을 실체화시키면 안된다. 이런 것이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무(無)는 없다” 혹은 “없는 것은 없다” 라는 말의 뜻이다.
역사적으로 고르기아스가 파르메니데스 보다는 후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파르메네데스가 고르기아스를 반박하기 위하여 존재의 철학을 만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고르기아스가 파르메니데스를 풍자, 비판하기 위하여 삼도논법을 창안한 것으로 보인다.
“없는 것은 없다“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역설을 ”출석한다”는 개념으로 한번 더 풀어 본다.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결석은 없다” 라고 한다. 이는 우리 상식과 안 맞는 것 같다. 결석하는 사람들, 예를 등면 학교에 안 오는 애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적 사고에 의하면 학교에 결석한 애들은 어딘가 다른 데 출석해 있다는 것이다. 즉 PC방이나 집이나 어디엔가 있다는 것이다.
혹은 “영구 없다” 라는 코메디 대사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이는 바보 영구가 「자신이 여기 없다」 라고 하여 웃기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이런 표현을 자주 한다. 없다는 말은 무엇이 어떤 장소에 없다는 말이다. 진짜 없는 것은 없다.
즉 없다는 어떤 것이 어떤 장소와 결합이 안 된다는 말이다. 위의 사례 즉 결석과 같은 개념이다.
따라서 결석이란 표현은 하나의 편의적인 표현으로서 학생과 교실이 연결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존재에는 부정이 없다는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이고 또 영원한 진리이다.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부정의 의미를 “분리”라고 밝혔다.
(2) 자연철학 비판 : 존재와 생성의 대립
파르메니데스 사상의 핵심은 존재나 '있는 것'은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있다. 그 반면 비존재나 "없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존재나 "없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러나 일상 언어에서 우리는 없음 혹은 무(無)에 대해서 언급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없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라고 한다. 즉 “영구 없다” 라는 말은 잘못이다.
일상 언어에서 “없다”는 것은 위에서도 한번 언급한 것처럼 실은 “분리”를 말한다. 혹은 소멸, 멸망 같은 말도 마찬가지이다.
물리학의 질량 보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말하는 것처럼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단 우리 눈에 안보이게 될 뿐이다. 따라서 없음 혹은 무(無)란 것도 실은 연결이 안 되는 것에 불과하다. 두 사물의 연결이 끊어질 때 우리는 흔히 무(無)라는 개념을 쓴다. 허무(虛無)도 같은 말이다. 가령 죽음 같은 현상도 소멸이나 멸망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의 분리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생성 역시 두 개 이상의 사물들의 결합으로 보아야 한다.
철학사적으로 볼 때도 동일한 논리가 성립한다. 뒤에서 다시 언급할 것처럼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그대로 전제하고 그 원리와 원인을 찾으려 한 자연철학 대신 다원론자들은 (pluralists) 원자나 원소 등의 영원하고 불변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이들의 결합과 분리를 가지고 생성과 소멸의 원인을 규명한 것이다.
이제부터 파르메니데스의 저술 “자연에 대하여”를 제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 글은 6보격의 운율로 이루어진 시(詩)이다. 그 구성은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서론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진리의 여신의 인도를 받아서 밝은 진리의 신전에 도착한다는 내용이고 2부는 진리(aletheia), 3부는 억견 (doxa)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파르메니데스의 유명한 명제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2. 좋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어떤 탐구의 방식이 유일하게 사유되는지를 말하겠다. 당신이 듣는 말을 잘 새겨 두시오.
첫 번째 길은 : “있음은 있음이며”, “있지 않음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신의 길이다, 왜냐하면 이는 진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다른 길은 : 있지 않음이 있다는 것이며 있지 않는 것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 길은, 내가 당신에게 말하지만, 탐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있지 않음을 인식할 수도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3. 왜냐하면 사유와 존재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위의 예문들 즉 “출•결석”과 “영구 없다”에서 미리 언급한 것처럼
파르메니데스의 핵심은 바로 “그것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있지 않다” 것은 불가능하다 이다. 단 “~이 있다” 라고 할 때 그 무엇은 특정되지 않고 있다.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 영구같은 구체적인 사람일수도 있고 “사랑” 같은 개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생각될 수 있고 말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식의 내용을 말한다.
“있음은 있고 없음은 없다” 는 파르메네데스의 명제가 가지는 중요성은 엄청나게 큰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철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은 자연철학 이라고 한다. 자연철학은 자연과 그 변화의 원리를 찾는 철학이다. 대표적인 철학자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이다. 이들은 자연의 다양성과 생성, 변화를 인정하고 ㅡ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ㅡ 이들의 원리와 원인을 추구했다.
철학의 시조이자 자연철학인 탈레스는 “만물의 원인(근본)은 물” 이라고 했다. 물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나왔다는 것이다.
또한 밀레토스 학파 (=자연철학) 를 계승한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자의 개념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인데 그는 물이 아니라 ㅡ탈레스ㅡ 무한자 (to apeiron)에서 삼라만상이 펼쳐져 나온다고 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동료인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근본적인 물질로 삼았는데 공기가 희박하게 되면 불이 되고 농축이 되면 바람이 되고 다시 구름이 되고 물, 불, 흙 순으로 변한다. 즉 아낙시메네스의 원리는 농축(condensation)과 희박 (rarefaction) 이다.
위의 사례들 중 아낙시메네스의 공기에 대해서 살펴보자. 공기가 물로 변한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었다. 즉 “공기 → 물” 이다. 공기는 사라지고 대신 물이 생성된다. 눈에 보이는 이 현상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힘든 면이 있다. 즉 공기는 어디가고 물이 나왔는가 하는 문제이다. 즉 공기는 소멸하고 물은 생성된 것이다.
현대 과학도 이런 현상을 소멸과 생성이 아니라 물 분자의 운동과 분자간의 간격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이 과학에 반영된 결과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자연과학의 수준이 극히 미미하여 원자, 분자 등으로 물질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있음은 있을 뿐 없는 것으로 될 수 없다」 라고 갈파한 것이다. 자연 과학도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입증한다. 즉 공기가 사라지고 물이 생성된 것이 아니라 물이 기화함으로서 분자간의 거리가 멀어진 것일 뿐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영원하다, 변화가 없다 는 사상은 일상 경험이나 자연 현상과 다른 것처럼 보이나 이 철학 때문에 철학과 과학이 발전한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개념이 원자나 분자 개념으로 옷을 입은 것이다.
물질의 변화와 생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고대인들은 무(無)라는 개념을 발명했다. 무(無) 개념은 그 자체가 성립하기 불가능한 모순적 개념이다. “무(無)가 있다” 는 표현은 자기 모순을 범한다. 그래서 그들은 “무(無)가 요청된다” 라고 말했다.
필자의 번역에서 이는 “있지 않음이 있다는 것이며 있지 않는 것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라고 했다.
“무(無)의 요청” 개념을 일상적인 사실을 통해서 한번 살펴보자. 예를 들어 사람은 출생한다. 즉 무(無)에서 생성된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그 원인은 분명 있다. 남녀의 번식 행위가 그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한 아이는 태어난다. 또 인간은 죽는다. 사라진다. 「무(無)로 돌아간다」라고 한다. 인간은 무(無)에서 나와 다시 무(無)로 가는 것이다. 이런 탄생과 사망 혹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부득불 무(無)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게 바로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무(無)의 요청” 사상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이를 부정, 비판한다. 아무리 필요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무(無) 개념은 자기 모순이다” 라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있지 않음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그는 있음은 있다. 왜냐하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멸망하지 않는다. (• • •) 어떻게 존재자가 멸망하며, 어떻게 그것이 생성하겠느냐? 라고 한다.
6. 꼭 필요한 것은, 단지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또 사유하는 것이다.
(• • •)
8. 그런데 단 하나의 이정표가 남는다. 즉 있음은 있다. 왜냐하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멸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구성에 있어서 완전하고 부동적이고 끝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 전체로서, 일자로서, 결합시키는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 •)
어떻게 존재자가 멸망하며, 어떻게 그것이 생성하겠느냐? 왜냐하면 그것이 생성했다면 그것은 있지 않고, 마찬가지로 그것이 미래에 있게 된다고 해도 (현재에는) 있지않다. 따라서 생성은 소멸되고 소멸은 실종되어 버렸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명제의 문제는 현실 세계 즉 생성과 변화의 세계를 부정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다” 는 철학으로 말미암아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붕괴된다. 왜냐하면 자연철학은 변화와 생성, 소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원인을 밝히려 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변화와 생성 자체가 잘못이다」라고 한다, 설령 그런 것이 눈에 보이는 자명한 사실이기는 하나, 어쨌든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오류라는 것이다.
이런 철학에 의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변화 역시 오류이다. 현실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정말 대단하고 담대한 주장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파르메니데스를 전후로 해서 크게 양상이 바뀐다. 그 후 부터는 “존재하는 것은 불변적이고 영원하다” 라는 전제하에서 철학적 사유를 펼쳐가게 되었다. 예를 들어 흔히 다원론자라고 하는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그리고 데모크리투스의 철학이 그렇고 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를 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
우리는 전통적인 견해에 따라 다원론자들을 만물은 유전한다고 본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과, 실재는 유일불변이라고 본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조정하려고 한 사람들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우리가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거시적인 복합적인 사물에는 부단한 변화의 성질이 있다고 보았고, 이 거시적인 사물들을 구성하고 있다고 여긴 미시적인 원소의 하나 하나에는 불변의 통일성이 있다고 보았다. 즉 변화하는 사물들은 변하지 않는 부분들로 되어 있으며, 사물에 있어서 일어나는 변화는 동일한 항구적•불가분적인 궁극적인 원소들의 재배분 (再配分)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이 세계를 다원론적으로 보았고, 그 각 원소들은 불가분(不可分)적인 일자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계에서는 더 이상 변화의 원리를 추구하는 자연철학은 성립할 수 없었고 불변적이고 통일적 실체를 통해서 삼라만상을 설명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나 데모크리투스의 원자(atom) 등이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에 해당한다. 또한 플라톤의 이데아 역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에 해당하는 것이다.
(3) 본체계(本體界)와 현상계(現象界)의 2원론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의 세계는 하나이고 영원하다 그리고 사유의 대상이다” 라고 하는 반면 눈에 보이는 세계, 자연과 인간의 세계는 거짓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생성과 소멸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위에서 누누이 설명한 것처럼 생성과 소멸은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생각에 철저한 파르메니데스는 이 경우 과감하게 “눈에 보이는 세계는 환상이다!” 라고 선포한다.
그의 주장을 따라가면 일상 세계의 모든 것을 부정된다. 예를 들어 사람의 탄생이나 죽음 등도 부정해야 한다. 이런 생성 소멸의 세계를 현상계(現象界)라고 한다. 현상계는 환상이나 망상으로 간주된다. 특히 자연이 문제가 된다. 자연은 알다시피 운동, 변화한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는 사상은 자연을 부정한다. 이런 일반적인 상식을 파르메니데스는 억견(臆見, doxa) 라고 불렀다. 진리의 반대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무리 확고할 지라도 이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사상 일부는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불교의 일체개공(一切皆空) 사상과도 유사하다.
혹은 색즉시공(色卽是空) 사상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혹은 인생은 일장춘몽이다. 혹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는 파르메니데스는 감각과 사유의 세계를 분리하고 전자만을 그렇게 본 것이다. 후자 즉 사유와 이성의 세계는 불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 이를 후대에는 본체계(本體界)라고 불렀다. 존재의 진리는 본체계에 속한다. 그 반면 감각으로 느끼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을 현상 혹은 현상계(現象界) 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 주의할 점은 파르메니데스가 그의 존재 개념을 의미론적으로 볼 뿐 아니라 실체적 혹은 물질적으로도 보았다는 점이다. 즉 위의 파르메니데스 단편 중 다음의 구절이 있다.
출처도 없이, 중지도 없이 엄청난 속박의 한계선상에서 그것은 부동하고 불변적으로 놓여 있다; 왜냐하면 생성과 소멸은 멀리 추방당했고, 진실한 확신은 이들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 • •)
그러나 마지막 경계선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측면으로부터 완성되고, 중심으로부터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둥근 공 모양의 물체와 비슷하다.
[파르메니데스의 “자연에 대하여”]
여기서 보면 파르메니데스의 존재가 하나의 물질적인 것으로 표상되고 있다. 물질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구성이 있고 형태가 있고 수(數)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둥근 공처럼 생겼다. 이는 앞에서 말한 존재의 개념과 다르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를 유물론자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스템 내의 일관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가 물질적인 속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수학적 공간을 말한다.
최초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 철학자는 그러나 전통적인 존재자, 즉 공간적 물질적 존재자의 표상을 완전히 버리지를 못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간적 존재는 자연적 공간이 아니라 기하학적 공간을 주로 가리킨다. 자연적 공간이란 물질적 세계를 말하고 이는 변화한다. 물질이나 물체 등은 감각을 통해서 인식되는 만큼 순수 존재가 될 수 없다.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파르메니데스 역시 순수 연장 개념은 불변적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공간적으로도 간주한다. 그래서 위의 인용문처럼 있음의 존재에는 “그 구성에 있어서 완전하고 부동적이고 끝이 없다” 라는 사상이 귀속된다. 더 나아가서 있음의 존재는 둥근 공 모양의 물체같이 그려지고 있다.
공간적, 기하학적 형태의 존재자는 다른 한편 부동적이다.
그리고 “존재는 부동(不動)적이다” 라는 사상에서는 운동 현상을 부정하는 엘레아 학파의 사상이 발전되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철학 혹은 자연과학을 성립시켰다. 이런 면에서 운동과 변화를 부정하는 파르메니데스 학파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큰 골칫거리 였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비존재도 있다」는 명제를 성립시켜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 과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아리스테텔레스에 의하면 긍정이나 부정은 존재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나 언어 등 주관적인 차원에서 발생한다. 두 가지 존재의 결합을 긍정이라고 하고 둘의 분리를 부정이라고 한다. 즉 파르메니데스가 비판했던 비존재(非存在) 혹은 “무엇이 아닌 것” what is not (=that which is not) 은 말할 수도 없고 사고할 수도 없다. 그러나 두 사물의 연결과 분리는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명제론 (De Interpretatione) 에서 긍정과 부정에 대해서 말한다. 즉 긍정과 부정은 두 종류의 주장이나 문장을 말한다. 그는 결합과 분리의 관점에서 긍정과 부정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백인이다” 라는 긍정문은 소크라테스와 백인을 결합시키는 반면, “소크라테스가 백인이 아니다” 라는 부정문은 소크라테스와 백인을 분리시킨다.
(4)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 문제
여기서 우리는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한 존재ㅡ사유의 동일성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은 신비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은 단순한 문제, 즉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식의 가능성 문제이다.
즉 존재 혹은 있음은 감각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보통의 상식과 어긋난다. 보통은 존재 = 감각 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흔히 “있다는 것은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일상의 대부분은 이런 사실이 지배한다. 즉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이라고
보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보인다”와 “있다”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안 보인다” 는 것이 그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라는 말도 있다.
피르메니데스의 사상은 경험적 진리가 아니라 이성의 진리를 강조한다. 경험적 진리는 그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오전 9시다” 같은 지식 혹은 정보가 있다고 하자. 이 말이 지금은 맞지만 곧 틀려진다. 이런 지식 혹은 정보는 그 시비(是非) 즉 옳고 그름이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달리 말해 감성적 영역에서는 지식 즉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지식 혹은 영원한 지식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경험적 진리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극히 시간적이며 우연적이다.
그러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 이다” 이런 지식은 감성적 지식이 아니다. 이게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존재의 의미이다.
즉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존재이다.
“있음은 있다”는 존재의 진리는 사유가능하고 언표가능하다.
이러한 근거로 파르메니데스는 지식의 가능성을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으로 설정할 수 있었다. 존재는 생각되는 것이다.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이 곧 지식이다. 모든 이론적인 지식이 이렇다. 물론 이론 지체도 변할 수는 있지만 이론적 지식의 속성은 보편타당하고 불변적인 지식이라는 것이다.
진리란 사물과 인식의 일치를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간단한 수학 사례 2+2 = 4를 이해할 때, 존재와 사고의 동일성이 생기는 것이다. 즉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은 곧 우리의 이해, 인식, 지식을 의미한다. 모든 교육과 학습 과정이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을 목표로 한다. 혹은 객관과 주관의 동일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 명제에 대해 첨부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보편적 인식의 영역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성적인 영역에는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경험적인 지식에 있어서는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니 순간적으로 존재와 사유가 일치하나 곧 불일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지금은 오전 9시다” 같은 지식 혹은 정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명제의 진리성은 곧 사라진다. 이런 지식의 형태를 헤겔은 “감각적 확신” (sensuous certainty)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은 보편적인 영역에 남아 있다. 이 주장은 파르메니데스가 존재만이 생각하고 말하고 배울 수 있다고 말한 것에서 알수있다. 인간의 지식은 보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사고와 언어 소통 역시 보편적인 영역에서만 유효하다.
3. 플라톤의 대화 “변명 (Apology)” 분석
2020년 9월 30일 KBS 2방송 추석 예능 방송은 한국의 트로트 가수 나훈아 특집이 있었다.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란 이름이 붙은 이 방송은 시청율 29% 라는 어마마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대중 가요에 이렇게 철학자를 대놓고 인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한국의 가수 나훈아는 이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그는 소크리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 Know thyself를 가사로 만들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그리스 델피 의 아폴로 신전의 앞마당 <the pronaos> 돌판에 조각된 명문(銘文)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여러 번 인용했기에 흔히 소크라테스가 처음 한 말인 줄 알고 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보증은 황폐를 가져온다” (Surety brings ruin). 또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하라”(nothing to excess) 구절과 함께 쓰여져 있었다. 신전에 올라 갈 때는 반드시 공물(供物)을 가지고 가라 그리고 공물(供物)은 분수에 알맞게 가져가라 는 뜻으로 쓴 듯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역시 이 말을 “절제하라, 분수를 넘지 말라”의 뜻으로 사용한다. 혹은 “자신의 무지를 알라” 등 뜻으로 썼다.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y)”은 플라톤의 저서이다. 이는 실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청년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킨다”와
"신에 대한 불경죄(impiety)"의 죄목으로 고발되고, 재판 판결을 앞둔, 피고인의 최종 진술에 해당한다.
세상에는 거짓이 진리로 주장되고 거짓이 법정에서도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소크라테스 재판이 그런 경우이다. 당시 그리스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민주주의를 시행한 나라였다. 따라서 소크라테스 재판은 민주주의 하에서 사법제도, 재판 제도가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바로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이 그의 스승의 무고(無辜)함에 대해서 쓴 “변명” (Apology) 이다.
소크라테스 재판은 따라서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에 현대의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재판 이아기에 들어가기 전 당시의 사회 풍조를 잠깐 살펴 보자. 당시 그리스는 탐욕과 거짓이 판쳤고 권모술수로 정적(政敵)을 죽이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숱한 정치인들이 자살로 죽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죄를 짓고 나쁜 짓을 해도 변론만 잘하면 무죄가 되고 또 반대로 소크라테스처럼 평생 선한 생활을 하고 젊은 이들을 선하게 인도해도 중상 비방을 받고 결국 죽임을 당하는 사회가 바로 B.C. 4~5의 그리스 민주주의 사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플라톤은 당시의 민주주의에 대해 큰 문제를 느꼈고 그의 대작(大作) 『국가』 에서는 철학자 왕을 내세웠다.
이런 상태에서 궤변론자(sophists)라고 불린 사람들이 나와 덕(=탁월함, 능력)을 “가르친다” 혹은 “판다” 라고 활동을 했다.
예를 들어 큰 빚을 진 사람이 교묘한 술수와 논변을 통해서 빚을 갚지 않는 것이 능력이 되는 사회가 바로 B.C. 5세기의 아테네 사회였다.
또 그런 능력이 숭배되었고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그런 능력을 배우게 하려고 고액의 수업료를 물면서 소피스트들을 찾고 있었다. 어떤 소피스트는 그가 가난한 지역에서도 사교육을 통해 빨리 부를 모은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소피스트들은 당시 교육자 혹은 학원 강사였다.
이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눈에 가시와 같았다. 자신들의 영업을 방해하는 자였다. 그밖에 정치인, 시인, 장인들에게도 그는 있으면 안 되는 자였다. 뒤에서도 언급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당대 최고의 현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을 입증하기 위하여 당시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만나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자 했고 그런 과정에서 지도자들을 모두 묵사발을 만든다. 이는 실로 엄청난 도전 ㅡ기득권층에 대한ㅡ 이었다.
지식의 판매업자인 궤변론자(소피스트)들의 사기와 속임수를 폭로하고 또 사회 지도층을 모욕한 소크라테스는 공공의 적이 되어 독배를 마시게 되었다. 대중들 역시 소크라테스에 반감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았던 소크라테스가 어떤 교육을 ㅡ 산파술, 소크라테스적 논박 등ㅡ 통해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부모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불순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재판의 고발자 내지 검사들은 두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 패거리의 고발자들
(1) 오래된 고발자들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사람들은 두 종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즉 오래 전부터 그를 비판하고 고발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당시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있는데 그는 소크라테스가 “현인(賢人)인체하면서 하늘에 있는 것을 살피고 땅속에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하여, 옳지 못한 이론을 올바른 도리인 것처럼 들려주려고 한다” 라고 비난을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자연철학자가 아니다” 혹은 “나는 물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고소인들을 반박 하였다. 당시의 자연철학은 예를 들면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한 탈레스를 들 수 있다. 자연철학자 “아낙사고라스”가 “변명” 대화에 나온다. 당시 이들은 무신론자로서 인식되었다. 아낙사고라스는 이 책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한자” (to apeiron) 개념을 통해서 자연의 변화를 설명한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였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관심은 자연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주로 인간의 행동과 그 기준이 되는 정의 혹은 덕(德) 개념이었다. 그리고 국가 공동체의 올바른 가치관을 탐구하는 일이었다. 그는 재물보다는 의(義)를 위하여 살라고 가르쳤다.
그 다음 대중들이 분노한 까닭은 “소크라테스가 지혜롭다” 는 명성이었다. 즉 대중들은 그가 똑똑한 체 한다고 시기를 했다. 여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변병이 바로 "무지의 지" 혹은 “소크라테스적인 지혜(Socratic wisdom)” 였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라고 표현된다. I know only one thing-that I know nothing.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에서 그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이를 즉시 인정하지 않고 왜 다른 당시의 똑똑한 사람들을 놔두고 자신이 가장 현명한 자인지를 알기 위하여 당시의 현명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지혜를 물어 본다.
그런데 문제는 기성세대의 정치인, 시인 그리고 장인(도예가) 등을 만나서 그들의 탁월성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들은 설명을 못한다. 예를 들어 멋진 시를 쓴 시인에게 시의 뜻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썼다는 것이 나타난다.
그런데 하나 덧붙이고 싶은 사실은 이 모든 소크라테스의 탐구 활동이 실은 신의 뜻, 즉 젊어서 들은 신탁(神託)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철두철미 종교인 이었다. 항상 신의 소리, 즉 내면에서 들리는 다이몬의 소리를 순종하여 작은 일도 행했다. 이런 사람을 무신론자(無神論者)로 고발한 멜레토스의 행동은 정말 가증(可憎)스럽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군주정을 선호(選好)했는데 여기에는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준 충격이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유명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가졌다고 하는 덕(德) 혹은 탁월성에 대해서 캐물어보면 그들은 결국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한다. 이를 소크라테스적 논박(Socratic elenchus) 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서 당시의 유명 정치인들이나 장인들(craftsman) 혹은 소피스트들은 유식한 것처럼 떠들어내나 실은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의 개념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이를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의 각광을 받았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에 열광하여 그 주변에 많이 모였다. 또 이런 소크라테스적 논박 (Socratic elenchus) 기술을 흉내낸 청년들은 그들의 부모들의 주장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미움을 받아 사형을 받아야 했다.
(2) 최근의 고발자들
아리스토파네스로 대변되는 민중적인 증오심과 더불어 소크라테스에게 또 두려운 것은 현재 그를 고소한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 세사람이 나온다. 즉 <멜레토스>와 <아뉘토스> 그리고 <뤼콘> 이라는 사람들이었다. 멜레토스는 작가, 시인들을 대표하고 아뉘토스는 장인들과 정치가를 대표하고 뤼콘은 변론가들을 대변한다. 그런데 멜레토스는 독자적인 고발인 혹은 검사가 아니라 부유한 명망가인 아뉘토스의 도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소크라테스의 법정 상대방은 주로 멜레토스이다. 이들의 고소 이유가 위에서 말한 청년들의 도덕적 타락과 불경죄였다.
원고측의 법정 대리인인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신을 믿지 않는다” 혹은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 그 결과 죄를 범했다 라고 유죄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개인적으로 다이몬이란 신(神)을 믿고 복종한 철저한 종교인이었다. 그리고 다이몬은 이상한 이방신이 아니라 당시 아테네가 인정한 신이었다. 따라서 멜레토스와 원고측은 고소에 논리적으로 완전히 실패한다.
또 소크라테스는 신의 명령으로 전쟁터에서 갔고 거기서 적들이 쳐들어 와서 위험할 때에도 끝까지 남아 진지를 지켰다. 그는 또 평소에도 “신의 명령에 따라 나 자신과 남들을 보살피면서 살았다.” 라고 한다.
그러나 500명의 배심원들은 원고 승소의 판결을 내린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질투와 중상 때문이었다.
이상은 주로 플라톤의 “변명“에 의지한 소크라테스측의 변론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좋은 제도이기는 하지만 악용(惡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의 히틀러도 민주주의를 이용하여 나치의 독재 지배를 달성했다.
그런데 당시의 지식인들과 소크라테스의 차이점은 전자는 덕(德)의 본질이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한 것이요, 후자는 모르면서 모른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 즉 “소크라테스가 당시 가장 현명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따라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 "분명히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지혜롭지 못하다. 그 사람과 나는 선(善)이나 미(美)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데도, 그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줄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대수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그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젊은이들은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워서가 아니라 그와 교제하는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 여러 가지 훌륭한 것을 출산하는 것일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청년들은 기성 세대의 거짓이 폭로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비판적인 논점을 개발하고 창의적인 생각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를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midwifery)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사건이 그가 억울하게 독배를 마시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는 다시 말하면 당시 기득권층들이 볼 때는 청년들에게 불순한 이념을 선동하여 이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켰다” 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멜레토스의 고발은 어떤 증거나 증인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재판장에는 플라톤을 비롯한 제자들이 가득 모였고 그들은 스승의 억울한 심판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보석금을 내고 사형을 유예하든지 혹은 외국으로 피하라고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평소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가와 국법에 복종했다.
그의 철학과 지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죽음마저도 초월하는
도덕과 정의에 대한 열정은 플라톤을 비롯한 많은 후대인들의 귀감이 되었고 진정한 서양철학을 시작하는 모퉁이돌이 되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재판에서 보이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역사상 최고의 정치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결함이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 하의 재판제도, 사법제도 역시 오염(汚染)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적 논박” (Socratic Elenchus)과 “산파술”(midwifery) 등은 모두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은 구시대적인 관습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스스로의 독창적인 사유를 펼쳐나갈 수 있었다.
그런 결과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플라톤 학파 외에도 ①메가라 학파, ②엘리스-에레트리스 학파, ③키니코스 학파 그리고 ④키레네 학파라는 총 5대 학파를 형성하는 기틀이 되었다.
4.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 :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트 그리고 플라톤 : 플라톤의 철학적인 출발
(1) 플라톤 저작에 대한 발전사적 탐구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는 “테아이테토스”라고 불리는 부상당한 군인의 이야기이다. 테아이테토스는 원래 수학자였다. 그는 무리수(無理數)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코린트 전쟁이 일어나자 참전했으나 전쟁에서 부상당하여 귀국한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친구들이 테아이테토스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데 그 내용은 어린 시절의 테아이테토스가 소크라테스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은 기록이다.
<테아이테토스>에는 에우클레이토스와 테르프시론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친구이자 제자 두 사람이 나온다. 테아이테토스가 어린 시절 소크라테스와 이야기를 했는데 이를 에우클레이토스가 기록으로 남겼고 그 책을 친구 테르프시론에게 읽어 주는 구조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그 발생 연대상 초기, 중기 그리고 후기 대화편으로 구분한다. 초기 대화편으로는 <변명>, <크리톤>, <라케스>, <뤼시스> 등이 있고 중기 대화편으로는 <테아이테토스>, <메논>, <국가>, <파이돈> 등이 있고 후기 대화편으로는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트>, <정치가>, <법률>등이 있다.
보통은 <테아이테토스> 대화편을 후기 대화편에 포함시킨다. 그런 근거는 대표적인 후기 대화편 <소피스트>가 줄거리 상으로 <테아이테토스>의 바로 다음날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추리인데 뒤에서 그 근거를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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