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장
엄니의 통곡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아홉이었다.
그 가운데 맏아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형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늘 한 번쯤 그 형의 모습을 그려 보곤 했다.
만약 그 형이 살아 있었다면 우리 집의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어머니의 삶도 조금은 덜 고단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묻지 못했다.
“형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어찌하여 그리 일찍 떠나셨습니까.”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가슴을 다시 헤집는 질문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도 그 슬픔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되는 깊은 우물 같은 것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듯하다.
내게는 또 한 명의 형이 있었다.
나보다 네 살 위였던 그 형은 어릴 적부터 몸이 불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소아마비였을 것이다.
그 병은 형의 팔다리를 묶어 두었고, 형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형 곁에서 작은 손이 되어 주곤 했다.
물을 떠다 주기도 하고, 몸을 돌려 주기도 하며, 때로는 형 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형은 말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은 늘 깊고 고요했다.
마치 세상의 소리를 멀리서 듣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새벽이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집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다.
어머니의 통곡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울음소리에 이끌려 함께 울기 시작했다.
어린 가슴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잠시 후 옆집에 살던 당숙이 달려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머니는 흐느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떠났습니다…”
그제야 알았다.
형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지금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나는 아마도 호흡 근육이 마비되어 숨을 쉬지 못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때 어린 나에게는 그런 이유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형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만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 형은 아버지께서 특히 아끼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형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마음이 컸다.
대포 같은 기개가 있었지.
살아 있었으면 큰 인물이 되었을 거야.”
그 말씀 속에는 자랑과 아쉬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라 어머니의 울음이었다.
나는 평생 그렇게 서러운 울음을 다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몸에서 생명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절규였다.
형은 동네 어귀의 산에 묻혔다.
어릴 적 나는 큰형을 따라 몇 번 그 산에 올라가 형의 무덤에 인사를 드리곤 했다.
그때 큰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묘 앞에 서서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큰형의 마음에도 슬픔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들 앞에서는 그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다.
형으로서의 책임과 동생들을 향한 마음이 그를 그렇게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형이 묻힌 산에는 수풀이 무성해졌고 사람들의 발길도 점점 뜸해졌다.
이제는 정확히 어느 곳에 형이 잠들어 있는지조차 짐작만 할 뿐이다.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그 산을 바라보며 형을 떠올린다.
조금 더 따뜻한 곳에 묻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조용히 해 본다.
아마 그때 큰형도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묘지를 고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덮어 버린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풀처럼 자라 마음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뉴욕에 살고 있는 지금도 가끔 형이 꿈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얼굴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형을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이 먼저 젖어 온다.
특히 그날 새벽,
어머니의 통곡은 아직도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다.
아마 지금 형은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몸의 마비도 없이,
아픔도 없이,
어머니 품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나는 형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형, 살아 있을 때 내가 더 잘 돌보지 못해 미안해.”
그러면 형은 아마도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아 줄 것이다.
“괜찮다. 울지 마라.”
그 한마디면,
어머니의 통곡으로 시작된 내 마음의 긴 슬픔도
비로소 조용히 눈을 감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