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意識과 法(dhamma)의 관계 [1]
①法(dhamma)은 心意識과 <분리 독립되어 홀로 설 수 없다>. 말하자면 ‘法(dhamma)’이라고 지칭되는 것은 .... 항상 ... <心意識을 전제로 ‘法(dhamma)’이라고 지칭되는 것>이다.
②예를 들어, <‘名色(nāma-rūpa)’이라고 부르는 ‘法(dhamma)’>은 .... 그 것이 <‘法(dhamma)’인 한, 心意識과 분리 독립되어 홀로 설 수 없고>, 그 法(dhamma)의 ‘相(nimitta, ☜vitakka와 관련)과 細相(anubyañjana, ☜vicāra와 관련)’이 ‘名色(nāma-rūpa)’이라고 부를만하다는 것이지 ........
<名色(nāma-rūpa)이라는 法(dhamma)이 ‘있다(有)거나 없다(無)’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名色(nāma-rūpa)이라는 法(dhamma)이 ‘生起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名色(nāma-rūpa)이라는 法(dhamma)이 ‘있다(有)거나 없다(無)’는 말>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한 점을 .... 강조하기 위하여 .... 불교에서는 <유심(唯心, =오로지 마음)이나 유식(唯識, =오로지 識)>이라고 하거나, 禪家에서는 <마음이 부처다. 아니다.>라는 ‘語行(=vitakka와 vicāra)’이 開口卽着(입 벌려 말하면 곧 ‘집착’)임을 지적합니다.
이는 ... 기본적으로 .... 心意識도 ‘法(dhamma)’임을 지적하는 말이며, 나아가 .... 우주(=시공간)가 ‘法界(☜三界로 분류할 수 있는 dhātu)’임을 지적하는 말이다.
③‘心意識과 法(dhamma)의 관계‘를 ........ ’아위자‘는 .... ’영어로 set관계‘라고 지껄이는데 .... 사실은 불교고유의 용어가 있습니다. ’쌍요자나(결박, saññojana, saṁyojana)‘라는 용어입니다.
다만 ........ 불교계에서는 ... ‘쌍요자나’라는 용어가 ..... 겨우 .... <‘쌍요자나의 集(samudaya)과 滅(nirodha)’이 거론 된다>는 ... 수준의 이해에 머물고 있어서 ‘용어를 사용하기가’ 난감합니다. 불교에서 ... 오하분결과 오상분결의 <열 가지 ‘set’를 거론하는 연유>는 다음의 연유 때문입니다.
“Yesaṃ kesañci bhavasaṁyojanaṁ appahīnaṃ, sabbe te sadukkhā sa-upaghātā sa-upāyāsā sapariḷāhā micchāpaṭipannā ti” na evam āha. “Bhavasaṁyojane kho appahīne, bhavo appahīno hotī'ti” iti vadaṃ dhammam eva deseti.[MN. vol.3, pp.232~233]
“有의 결박(bhava-saṁyojana)을 버리지(pahiṇa, 보내는, 파견하는) 못한 자는 누구나 苦를 수반하고, 상처를 수반하고, 불안을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하는 것으로 邪道에 들어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有의 결박(bhava-saṁyojana)을 버리지 못함이 有(bhava, 존재)를 버리지 못한 것이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法을 드러내는 것이다(dhammam eva deseti)’.
④ 위 ‘③번 글’에서 인용된 경문은 ..... <‘心意識과 法(dhamma)의 관계‘에서 ‘쌍요자나의 集(samudaya)과 滅(nirodha)’>을 거론하는 것이 <‘有(bhava, 존재)’라고 부르는 ‘法을 드러내는 것이다(dhammam eva deseti)’>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즉, <‘有(bhava, 존재)’라고 부르는 ‘法(dhamma)’>에 대한 法眼(dhammacakkhu)이 ....... <有의 결박(bhava-saṁyojana)[ ☜ ‘心←(욕탐)→有(bhava, 존재)’의 구조]을 ‘버리느냐? 못 버리느냐?’>에 달린 문제 ........ 라는 지적의 경문이다.
<心←(욕탐)→有(bhava, 존재)>라는 도식의 구조에서 .....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점들이 있다.
첫댓글
위 ‘본 글’을 쓰는 이유는 ......... <界(dhātu), 處(āyatana), 연기>라는 ‘法(dhamma)을 관찰하는 3가지 방식’에 대하여 ..... 설명하기 위함이다.
‘法(dhamma)을 관찰하는 3가지 방식’[=3觀]은 본래는 ‘7처 3관’이다.
‘7처 3관’은 ....... ‘오온이나 오취온’을 대상(ārammaṇa)으로 예시된다.
그래서 ‘色蘊이나 色取蘊’에 대한 ‘7처 3관’을 요약해 본다.
@아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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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色이란, ①四大와 四大造色(cattāro ca mahābhūtā catunnaṃca mahābhūtānam upādāya rūpaṃ), ②食集是色集(āhārasamudayā rūpasamudayo), ③食滅是色滅(āhāranirodhā rūpanirodho), ④八正道(ariyo aṭṭhaṅgiko maggo)가 色滅道(rūpanirodhagāminī paṭipadā), ⑤色을 緣한 樂(sukha)과 喜(somanassa)가 色에 대한 맛(rūpassa assāda), ⑥色이 ‘無常․苦․變易法’ 임이 ‘色에 있어서의 근심(rūpassa ādīnava, 환란)’, ⑦色에 대한 欲貪(chandarāga)을 제어하여 끊는 것이 ‘色에서의 出離(rūpassa nissaraṇa)’이다.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일곱 가지 경우에 총명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어떻게 ‘세 가지 방식으로 觀(tividhūpaparikkha)’하는가? … 界(dhātu)로 관찰하고(upaparikkhati, 조사하다, ~을 확인하다), 處(āyatana)로
@아위자
관찰하고, 緣起(paṭiccasamuppāda)로 관찰하는 것이다.[SN. vol.3. pp.6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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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자
숫자는 차례로 .... <①智, ②集, ③滅, ④道, ⑤味, ⑥患, ⑦離>의 ‘일곱 가지 경우’를 ... 요약하여 언급한 것이다. 나아가 ‘色(rūpa)이라는 法(dhamma)’을 <ⓐ色界, ⓑ色處, ⓒ色을 緣已生(paṭiccasamuppannā)>으로 관찰하는 것이 ‘세 가지 방식으로 觀(tividhūpaparikkha)[=3觀]’이다.
@아위자
그런데 ........ <‘ⓑ色處’라는 아야따나(āyatana)>는 <‘육입(六入)’이라는 法(dhamma)>에 최초에 언급되는데...... 놀랍게도 ‘단수형’으로 언급된다. 선가(禪家)의 <‘무봉탑(無縫塔)’이라는 화두>가 ‘육입(六入)’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가(儒家)에서는 심의식(心意識)을 ‘거울’에 비유하는데 반하여, 선가(禪家)에서는 法(dhamma)을 ‘거울’에 비유한다. <심의식(心意識)도 ‘法(dhamma)’이므로> 결국엔 ‘동일한 비유’일 수 있지만 ..... 불교에서는 ....... <쌍요자나, 계(界), 처(處), 緣已生(paṭiccasamuppannā)>이 모두 ... <心←(욕탐)→有(bhava, 존재)>라는 도식의 구조에서 <마지막 것만 ‘법(法)’이라고 호칭>한다.
@아위자
다음의 경문을 도식화 해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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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眼(~意)에 대한 欲貪(chandarāga)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色(~法)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眼識(~意識)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眼觸(~意觸)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眼觸生受(~意觸生受)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色想(~法相)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色思(~法思)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色愛(~法愛)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地界(~識界)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色(․受․想․行․識)에 대한 欲貪은 心에 수반되는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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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자
<心←(욕탐)→眼(~意)>
<心←(욕탐)→色(~法)>
.........와 같이 ........ 도식화 활 수 있다.
@아위자
위와 같이 ........ 도식화 활 수 있다... 는 말은 ........
@아위자
심의식은 <계(界), 처(處), 緣已生(paṭiccasamuppannā)의 法>에 쌍요자나 .........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위자
우리가 흔히 .....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공식(E=mc²)>이라고 부르는 ...... 이 공식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질량이라고 부르던 것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 <공식>에서 '시공간'이 상호 호환적인 것을 읽어낸다. 인류의 과학문명은 ... 그렇게 해서 발전하는 것이다,
@아위자
‘色(rūpa)’을 ‘色界(rūpa-dhātu)나 色處(rūpa-āyatana)’라고 <부처님께서 호칭하실 때>에는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지칭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
@아위자
<苦海인 三界에서 ‘열반으로 안내자’인 부처님>을 .... 초딩으로 보지 않는 한, 부처님께서 사용허시는 용어인 <‘色(rūpa)’과 ‘色法(rūpa-dhamma)’이라는 표현>이 ‘차이가 있는 표현’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色(rūpa)’과 ‘色處(rūpa-āyatana)’라는 지칭>은 ‘차이가 있는 지칭’이다.
예를 들어, 거울[☜法]에 <탑(塔)>이 비치면 ‘그 비친 것’이 ‘무봉탑(無縫塔)’이라고 부르는 ‘탑(塔)’이다. 그와 같이 ....... <色處(rūpa-āyatana)>라는 호칭은 ... 심의식이라고 부르는 法(dhamma, ☜‘거울’)의 <인식의 대상(ārammaṇa, ☜‘비쳐 진‘)>이 된 <法(dhamma)>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