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소개] 수필 《송악선녀》(김혜영)
산좋고 물맑은 우리 나라엔 하늘의 선녀들이 내렸었다는 명승지들이 많다.
금강산의 구룡폭포며 묘향산의 비선폭포...
내가 사는 고향의 송악산은 소나무 울창하고 클락새 노래하는 선경이지만 여기에는 선녀들에 대한 전설은 전해지지 않고있다. 그렇지만 나는 송악산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있다고 온 세상에 자랑하고싶다. 하늘은 높고 들판에 오곡이 물결치는 풍요한 가을날 나는 송악산에 자리잡은 휴양소에 휴양가는 행운이 차례졌다.
려행가방을 들고 송악산 폭포골을 지나 휴양소입구에 들어서는데 골안에 푸른 잎새를 활짝 펼치고 배추밭,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밭, 팔뚝만 한 가지가 주렁주렁 달리는 가지밭, 더우기 놀란것은 도라지밭도 펼쳐져있는것이였다.
(아, 여기 휴양소에 농사에 밝은 실농군이 있는가보군.)
이런 생각을 하며 언덕길을 오르는 나의 귀전에 후두둑후두둑 하는 소리가 들려와 갑자기 우박이라도 내리는가 했더니 실바람에 반들거리는 밤송이들이며 대추들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류다른 가을풍경에 홀려 두리번거리는 나의 눈길에는 가지마다 휘여지게 달린 감들이며 사과, 배들이 안겨왔다. (이 휴양소엔 과일나무를 잘 가꾸는 원예사도 있는가?)
나의 이 생각을 깨치며 어느 숲속에선가 매- 염소가 뽑아내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어 합창이라도 하는듯 염소의 영각소리가 골안을 꽉 채운다. 그 소리에 숲속의 나무잎이 흔들리는듯 하다. 염소떼도 휴양소목장에서 기르는것이라 한다. (염소가 100마리도 넘는다니 그 수고인들 얼마나 크랴.)
합각지붕의 휴양소대문이 어서 오라 부르는것 같아 나는 발걸음을 다그쳤다. 그러느라니 가파로운 언덕길이여서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고 숨은 턱에 닿는듯 했다. 지팡막대라도 골라잡고싶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이 울려나왔다. (아서라, 휴양소일군들이 매일 오르내리는 이 길에 휴양권을 가슴에 품고 지팽이를 들다니...)
나는 우선 더운 땀을 식히고싶어 세면장부터 찾았다. 벼랑바위로 흐르는 맑은 물을 끌어들인 목욕탕의 외벽을 둥글둥글한 돌로 쌓았는데 산골의 정서가 그대로 안겨왔다. 그옆에 솔냄새 풍기는 한증칸까지 있었다. 나는 그만에야 눈이 휘둥그래졌다.(이 외진 산중에 이런 훌륭한 목욕탕이 있다니. 이 휴양소엔 건설일군들도 있는가봐.)
휴양생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은 미남자형의 문화지도원이였다. 이렇게 휴양소를 잘 꾸린걸 보니 재능있는 목수며 건설일군들이 많은 모양이라는 나의 첫인사에 그는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휴양소엔 소장동지를 비롯하여 녀성들뿐입니다. 남자라는것은 저 하나뿐입니다.》
《아니?》 나의 놀라움은 컸다. 예상을 뒤집어놓았던것이다.
《이제 알게 되겠지만 우리 휴양소녀성들은 스무살안팎의 처녀들입니다.》
《그럼 저기 남새밭도 목욕탕도 염소우리도 다?》 빙그레 웃으며 들려주는 문화지도원의 말은 나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었다.
산비탈돌밭을 일구어 남새밭을 조성하다 손바닥에 물집이 지고 손끝에 피멍이 져 손풍금, 기타를 탈수 없어 눈물을 흘렸다는 처녀, 목욕탕과 염소우리를 건설할적엔 이 높은 언덕길로 등짐으로 물동량을 끌어올리느라 땀에 절고 어깨가 부풀어올라 처녀의 어머니가 찾아와서는 생억지를 쓰며 데리고 가겠다고 할 때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했다는 처녀, 몸매 고와 극장의 무용수로 오라는 소환장을 받고도 그냥 남았다는 처녀, 그 처녀들의 얼굴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보는데 오락실에서 손풍금소리와 함께 처녀들의 명랑한 노래소리가 들여온다.
...
온 나라 가정의 행복을 지켜 사랑의 요람 지켜 아버지는 아버지는 전선에 계신다
조용히 귀 기울이는 나에게 지도원은 오늘의 입소모임을 축하하여 휴양소처녀들이 공연준비를 한다는것이였다. 나는 어서 빨리 그들을 보고싶었다. 마음씨 곱고 일도 잘하며 노래도 잘 부르는 이 처녀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그들은 지난해에 평양의 아름다운 릉라도에 자리잡은 5.1경기장으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황홀한 아리랑공연에 인민의 유원지, 인민의 휴양소가 대화폭으로 펼쳐질줄 어찌 알았으랴.
뜻밖이였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일제히 일어나서 휴양소일군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에 손바닥이 터지게 박수를 치고 또 쳤다. 그리고 이런 인민의 휴양소를 높이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장군님의 은정에 눈물을 닦으며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우리 인민에게 세계적인 명승지를 마련해주시려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시고 인민의 문화휴식터가 일떠설 때마다 그리도 기뻐하시며 모든 시름을 다 잊으신듯 환히 웃으시던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
완공된 정방산유원지를 찾으신 그날에는 자신께서 온줄 알면 인민들이 마음놓고 휴식을 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조용히 산을 내리신 우리 어버이장군님.
인민의 행복, 인민의 웃음소리에서 가장 큰 기쁨을 찾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을 위하시는 마음 오죽 크셨으면 이번에 또 휴양소를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잘 꾸리고 공급체계를 정연히 세워줄데 대한 귀중한 말씀을 주시였겠는가.
그래서 처녀들은 이 땅, 이 하늘아래 제일 살기좋은 인민의 락원을 안겨주시려고 오늘도 선군길에 계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려 청춘의 삶과 보람을 여기 송악산에 묻어두고 사는것이 아닌가.
이들이 바로 정춘실동무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따라배워가는 선군시대 공로자들이 아닌가. 이 가을철이 지나 눈내리는 겨울이 오면 농민휴양이 시작된다. 그러니 처녀들은 사시절 여기 송악산에서 내리지 않는다.
아, 저들이 바로 송악산의 《선녀》들이다. 이 처녀들이 선군시대의 《선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 옛날 나무하러 간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높은 령마루에 그대로 굳어졌다는 어머니의 모습과도 같은 송악산, 가슴아픈 사연안고 솟아오른 송악산에 오늘은 이처럼 아름다운 휴양소가 일떠섰으니 사람들이여, 누구든지 여기에 와보시라. 그러면 보게 되리라, 알게 되리라, 선군시대의 《선녀》들, 여기 《송악선녀》들을.
나는 송악의 언덕길을 오르며 지팡막대를 찾지 않은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송악선녀》들에게 얼마나 죄가 되었으랴. 솔향기 가득 싣고서 송악의 마루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이 말이 울려나오는 나의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청년문학》 주체97(2008)년 제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