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타협이 통하는 사회가 되려면
이 세상에 본인하고 생각이 똑같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얼핏 보기에는 생각이 비슷해보일지라도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점점 생각의 차이가 느껴질 것이다.
심지어 매일 함께 집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조차도 서로 생각이 달라서 말다툼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부부끼리 또는 형제자매들끼리 말이다.
가족임에도 이렇게 생각이 다른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하고야 얼마나 생각이 다르겠는가?
그러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크고 작은 실랑이들이 매일 끊이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말다툼으로 또 때로는 거친 싸움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이것이 커지다보면 국가 간 분쟁이나 전쟁으로까지 치닫는 경우도 생긴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듯이 이들이 처해있는 자신의 환경 또한 다 다르다.
만약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생각과 자신이 처한 환경이 모두 동일하다면 아마 대화가 술술 풀릴 것이다.
일단 대화가 되면 타협은 자연스레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사회나 세상은 이런 말하고는 거리가 아주 멀다.
왜 이리도 대화와 타협이 힘들고 어려운 것일까?우리 인간은 어떠한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든다.
그러다 대화가 잘 풀리지 않으면 말다툼이 생기고 이것이 발전하다보면 결국 원하지 않는 싸움으로 치닫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사회에서의 대화는 싸움을 막는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만큼 대화는 서로가 의사소통으로서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전해들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동안 언론매체를 통해 거의 매일 접하다시피 하는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들의 거친 말싸움, 그리고 회사 측과 노동자 측의 대립으로 인한 파업들을 보면 결국 서로간의 대화가 원활히 되지 않음에 그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 대해 두 사람이나 두 집단이 서로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와 싸움이라는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된다.
여기서 알아야 될 점은 ‘대화’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가능하고 싸움은 사람과 짐승 또는 짐승과 짐승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인성을 갖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 인성이 덜 된 단순히 겉모습만 사람의 행세를 하는 자는 그저 ‘짐승’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대화의 가장 큰 장점은 설령 처음에 자신과 상대방의 생각차이가 많이 난다할지라도 차츰 대화를 계속해 나가다보면 점점 그 생각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한 가지 전제조건이 뒤따라야 한다.
대화의 주체인 자신과 상대방 모두 ‘짐승’이 아닌 ‘인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양당사자가 올바른 인성을 갖춘 사람들일 때 비로소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리해두고 나면 그동안 여야 국회의원들이 대화를 통해 서로 타협할 생각은 않고 서로 거친 말싸움을 왜 해왔는지 단 번에 이해가 갈 것이다.
바로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인간이 갖추고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짐승이라 보면 된다.
짐승은 대화보다는 항상 싸움을 선호한다.
그러니 이들이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정치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순히 그들의 외모만 보고서 그들 또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착각을 했기에 그들에게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정치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정치를 보려거든 우선 그들에게 바른 인성을 심어주어 겉모습만이 아닌 내면의 모습도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에게 매월 1회, 4시간씩 인성교육을 실시해서 짐승의 모습이 아닌 참된 인간의 모습을 임기 내내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열 번 싸울 거 한두 번으로 줄이고 자신들의 이익보다 먼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