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 대룡시장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의 대표명소
실향민 정착으로 60년대 시장모습 그대로
대룡리는 면사무소, 파출소, 시장 등이 위치한 교동도의 대표적인 마을이다. 대룡시장은 6·25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온 주민들이 한강하구가 분단선이 되고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의 모습을 재현한 골목시장이다.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를 대표하는 곳이다. 지금은 시장을 만든 실향민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의 규모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2014년 7월 교동대교의 개통과 함께 60년대의 영화세트장 같은 대룡시장의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늘면서 다시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대룡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교동이발관이 눈에 들어온다. KBS ‘1박2일’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 이발관을 운영하던 분은 지광식 할아버지인데 2022년 가을에 83세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가족이 교동술빵, 잔치국수 등을 판매하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할아버지는 13살 때 가족 들과 함께 교동도로 피난 왔다. 27살 때 처음 이발관에서 일하기 시작, 2022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일을 계속하셨다. 원래 교동이발관은 황해도 출신 이발사 2명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는 손님이 많아서 별도로 사람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할아버지는 3년 동안 이발사 보조 노릇을 하면서 이발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필자는 2017년 3월에 지광식 할아버지로부터 직접 이발을 한 적도 있는데, 당시 이발관 벽에서는 1965년 7월 10일에 취득한 지광식 할아버지의 이용사면허증도 걸려 있었다.
대룡시장골목은 영락없는 60년대 풍경이다. 좁은 골목에는 연지곤지식품점, 중앙신발, 청춘부라보, 통일주막 등 예스럽고 정겨운 간판들이 보이고, KBS ‘1박2일’, MBC드라마 ‘전설의 마녀’ 촬영지인 ‘거북당’ 건물도 만난다.
거북당 2층 ‘제일다방’ 역시 MBC아침드라마 ‘좋은 사람’ 촬영지이다. 전쟁폭격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던 최노인이 언젠가 가족과 지낼 요량으로 정성들여 건축한 건물로서, 당시 물자가 부족했던 섬지역에선 역작으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골목 벽에는 다양한 벽화들이 많다. 전에는 ‘일시에 쥐를잡자’, ‘1975년은 세계여성의 해-둘만 낳아 잘 기르자’등의 포스터와 함께, ‘리승만, 박정희, 윤보선, 김영삼 등 선거벽보’ 등이 붙어 있었고, ‘뻥튀기는 장면’ 등 추억의 벽화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벽화도 많이 바뀌었다.
교동초등학교 담벽에 특히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 이외에도 대륭시장 골목에서는 이제는 우리나라 농어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제 제비집도 볼 수 있다. 연백군 실향민들은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들이 고향 연백군의 공기와 흙냄새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고 집집마다 제비집을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다. 매년 3월-10월에 찾아오는 제비들을 위해 둥지에 가까이 접근하지않도록 주의문구도 보인다.
주민에게 실제 제비집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커피콩이발소’라는 카페 바로 아랫집이라고 알려준다. 장뇌산삼 파는 집 낮은 처마에 실제 제비가 보인다. 제비 본 지가 언제였던가? 어릴 적 시골고향집 처마에 매년 강남 갔던 제비가 와서 직접 흙을 붙여 집을 만들고 새끼도 낳고 살다가 가을이 되면 떠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반갑다.
제비집 구경 후 커피콩이발소 집에서 잠시 쉬면서 쌍화차를 주문했다. 상호가 재미있다. ‘커피콩이발소’라니..., 젊은 주인여자에게 물어보니 커피콩 원두를 머리이발하듯 깎아서 커피를 만들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여본 거라고 한다. 역시 젊은 부부의 아이디어라서인지 재치가 있고 기발하다. 쌍화차에 노란 계란이 들어 있다. 옛날식 다방에서 도라지위스키 한 잔에 계란을 넣은 쌍화차를 마셨던 추억이 떠오른다.
교동도 여행 및 트레킹은 두 코스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다을새길’로 월선포-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정상-석천당-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코스로 총 16km, 약 6시간 소요되며, 중간에 화개산을 오르지않고 평지만 걷거나 자가용으로 돌 수 있는 약간 짧은 코스도 있다. 또 하나의 코스는 ‘머르메’코스로, 대룡리-난정저수지-수정산-금정굴-애기봉-죽산포-머르메-양갑리마을회관-미곡종합처리장-대룡리 코스로 17.2km, 약 6시간 걸린다. 이들 코스는 강화도 전체 둘레길인 ‘강화나들길’의 일부(9코스 및 10코스)이다.
이중 필자는 화개사 정상 등산과 대륭시장 등을 시작으로 교동도의 경관과 역사적 흔적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다을새길’을 걸어봤다. ‘다을새’란 교동의 옛지명으로 대운도(戴雲島 : 구름에 뜬 섬) 또는 달을신(達乙新 : 하늘에 닿을 새)이라 하였으며 다을새는 달을신의 소리음이다.
‘다을새길’ 출발지점인 월선포는 2014년 이전만 해도 배로 강화도를 왕래하는 선착장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교동대교가 놓여짐에 따라 이제는 선착장 흔적 만 보일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월선포에서 몇분 만 가면 교동교회 건물이 보이고 우측 길로 교동면 상용리라고 쓰여진 낮은 장승 두 개가 눈에 띈다. 이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면 숲 속에 폐교회도 만난다.
교동도 지역에는 일찍이 1899년 복음이 들어와 사랑방 형태의 교회가 있었고, 1900년에 교회가 생겼는데 권신일이라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권신일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 중에 상용리에 살던 박성대와 박형남 부자에 의하여 교동교회가 세워졌다.
이 폐교회가 (구)교동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그게 아니다. (구)교동교회는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 한글 점자 훈맹정음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 생가터 바로 옆에 따로 있다.
폐교회를 지나 20분 쯤 강화나들길 표시를 따라 마을길을 가다 우측 숲길로 접어들면 곧 여러개의 벤취가 있는 안양사지(安養寺址) 터에 이른다. 안양사지는 화개사와 함께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될 정도로 그 연혁이 있으나 현재는 터 만 남아 있다. 사역 전체의 규모는 동서 21m, 남북 17m로 사찰지는 동쪽을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안양사지에서 숲길로 20분 정도 더 가면 교동향교에 이른다. 이곳 향교는 국내 최초의 수묘로서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유학자 안향(安珦)이 원나라에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이곳에 모셨다고 전해온다. 향교 안에는 공자의 신주와 우리나라 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좌우에 선현들을 제사지내는 동·서우를 두었고, 유생들이 배움을 익히고 닦는 명륜당과 서재, 제수용품을 보관하는 제기고 등이 있다. 교동향교 정면으로는 멀지않은 거리에 바다도 내려다보인다.
다음코스는 화개사. 월선포에서 교동향교까지는 3.8km, 향교에서 화개사는 0.8km 거리. 화개사는 목은 이색이 머물렀던 사찰로 유명하며, 절 입구에는 수령 210년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화개사 앞 삼거리에서 좌측은 교동면 사무소 및 대룡시장 가는 길로 1.5km, 직진하면 화개산 정상 오르는 길로 정상까지 1.5km 거리이다. 등산을 하지않고 짧은 코스를 택하고자 할 경우에는 이곳에서 좌측길을 따라가면 된다.
‘다을새길’의 나머지 코스인 남산포-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 코스는 교동읍성 이외에는 대부분 교동평야, 해안길 및
제방길이다. 교동도는 섬이지만 섬같지않게 평야가 넓다. 교동쌀은 맛좋기로 유명하며, 주민들은 1인당 벼 재배면적이 전국 최고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교동읍성은 읍내리 577 일원에 위치한 성으로, 조선 인조 7년(1629) 교동에 경기수영(京畿水營)을 설치할 때 돌로 쌓은 읍성이다. 둘레 430m, 높이 6m 규모로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 하였다.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남문은 1921년 폭풍우로 무너져 현재 홍예문 만 남아 있다. (글,사진/임윤식)
*교동도 가는 방법은...
전에는 강화도 창후리에서 군부대의 검문검색 후 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으나 2014년 7월 교동대교 개통으로 강화도와 연결됨으로써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민통선 지역이라 아직도 군부대의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신분증 만 지참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교동도를 갈려면 자가용의 경우 강화도를 거쳐 48번 국도 인화리에서 교동대교를 건너가고, 대중교통의 경우에는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월선포행 18번 군내버스를 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