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燕)
계절의 여왕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니 그야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초록주단을 펼쳐 놓은 듯 온 천지가 녹음방초다. 여기저기 사막처럼 얼룩지던 검은 묵정밭도 싸잡아 연초록 물감이 철철 넘쳐흐르고, 처음 보는 기화요초들이 싱그럽게 다가서며, 아니 지팡이까지 물이 올라 생명이 꿈틀대는 듯한 하(夏)계절이다.
인간의 손안에 핸드폰이 주를 이루면서, 공간은 온통 핸드폰의 주파수로 넘쳐나고, 그것이 순수한 날짐승의 소통 신호에 공해가 아닐 수 없다니 놀랄 일이다. 최근 꿀벌 개체수가 감소하는 원인을 주의깊게 들은 적이 있다. 논밭에 살충제로 인한 감소와 기후 탓도 있겠지만, 핸드폰의 범람으로 더듬이가 혼란을 일으켜 먹이를 구하기 어렵다는 설도 설득력이 높다. 만물이 생명을 유지하고 저마다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그 장본인은 바로 인간인 셈이다.
어제였다.
대추나무 여린 잎이 간밤에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아침 햇살에 윤기가 뚝뚝 흐른다. 우연히 대농을 짓는 후배를 만나 요즘 농가 천태만상을 듣던 중, 특히 제비(燕)에 관한 신비함이 귓전에 오래 남는다.
-삼월 삼일 저 제비야/ 너 어디갔다 돌아왔노/ 강남 화류천에 춘경(春景)이/ 무한 좋건마는 /그래도 주인을 차마 못 잊어 왔소.
어느 무명인의 제비예찬 노래다. 오랫동안 인간과 동고동락한 제비는 다른 새보다 익조(益鳥)로 널리 알려져 왔다. 어느 지방에선 수수 새라고도 하며, 절대빈곤 시절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제비는 식용으로 금하였다. 사람이 땀 흘려 가꾼 곡식을 먹지 않고 날 곤충을 잡아먹으며 다른 새들보다 비행 능력과 사냥 능력이 뛰어나 날렵한 사물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제비-. 뿐만 아니다. 감각과 신경이 예민해 총명하고, 지(知) 정(情) 의(意)를 지닌 영물이라고 조상들은 오랜 세월 보호새로 아껴왔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마 밑에다 집을 짓고 함께 동거하니, 그 집 내력을 죄다 알고 한 가족이 되어 눈만 뜨면 지지배배하며 조잘거린다. 삼월 삼짇날 어김없이 옛집을 찾아와 살다가 구월 9일이 되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는 나그네 새이기도 하다.
어제 후배가 전한 제비의 신비한 정보란 무엇일까?
지난해에 대문 앞 2층 처마에 제비가 집을 짓자, 후배는 옷을 휘두르고 싸리빗자루로 마구 쫒았더니 다음날부터 어디론가 단번에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못할 짓들이 일년내내 께름칙한 가시로 마음에 걸려 되새김 하던 차에, 올해는 어떠했던가!
계절은 바뀌고 역시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허락이라도 받아내려는 듯, 손에 닿을 듯 주인 머리 위를 선회하자 손짓을 하며 반갑게 응수를 했더니 아뿔싸! 아주 짧은 시간, 점심을 먹고 와보니 제비 부부가 어느새 둥지를 틀고 마치 이사를 마친 듯이 내려다보더라는 것이었다. 신기했다. 날짐승이지만 어이 주인의 마음을 단번에 읽는단 말인가!
동식물에 혼백이 있다는 토템사상은 옛이야기지만, 농촌에는 관습으로 자연속에서 힘을 주고 있다. 오래 된 고목을 자르지 않고 위하고, 해묵은 동물은 해꼬장하므로 살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식처럼 암암리에 통하고 있다. 물론 제비는 흥부와 놀부의 박씨 사건으로 보은의 날짐승임은 모르는 이 없으리라.
전래 동화-. 한국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심지어 비행기로 20시간이나 걸려 닿는 지구 저편 과테말라 5학년 초등 국어 교과서 64p-67p에도 실려 있다니, 세계적으로도 BTS처럼 떨치는 고전문학이 아닐 수 없다. 영험한 동물, 착한 사람에게 보은을 하는 제비-. 사방으로 기웃대지만 최근 제비를 좀처럼 찾기도 쉽지 않다. 예전 모내기하는 날 써레질로 논을 삶을 때 고공 무용이라도 하듯 제비들이 낙하해 진흙과 지푸라기를 물고 갔는데 이젠 보기 힘들다. 지금은 모판도 공동생산하고 하천은 시멘트로 농수로를 만들고 트랙터가 단번에 갈고 심으니 ㅎ
얼마 전 고양시에서 공공택지 조성사업으로 해묵은 옛집을 철거할 때였다. 대거 발견된 제비집과 알들을 소중히 여겨, 부화 후 3주까지 중장비들이 손을 놓고 택지조성을 미뤘다는 환경단체의 보고는 참으로 아름다운 생명 존중사상이 아닐 수 없다.
띄엄띄엄 제비들이 귀하다. 물을 차고 날아오르는 물찬 제비, 당신은 제비처럼, 또 제비호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등 대중가사에 얼마나 아름다운 말들로 제비를 예찬했던가! 유월이다.
지금은 제비 알을 탐할 구렁이도 본지 오래지만, 이번 주말에는 김유정 마을에 터를 잡은 누님을 찾아보리라. 청결 때문에 해마다 제비집 헐며 난리를 치시던데, 후배 제비 이야기를 신중히 전하며 영험한 제비이야기를 전해주어야 겠다. 단호히 일갈하리라.
노년에 자형이 곁을 떠나 혼자 거하니 문밖 눈쓸기며 청소 조차 버거워하신 누님은 익조 제비조차 귀찮아하신다. 훗날 흥부는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張) 씨 시조가 되었다지만, 혹 제비가 누님 평생 지병을 씻은 듯이 고쳐줄 영험한 날짐승임을 누가 알리-. 편한 마음속에 엔돌핀이 쏘옥 싹튼단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