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m급 연봉 속에서도 독야청청한 봉우리 브라이트호른 고개 ~ 남서릉 ~ 정상 ~ 서측면 루트
간간히 얼음 드러난 서측면으로 하산
초입부의 오목한 설사면은 경사가 세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측면에 접어들자 경사도가 최소한 50도 이상은 되었다. 아이젠을 신은 발걸음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자칫 잘못해 한 발이라도 헛디뎠다간 300~400m는 추락이었다. 앞서 내려가는 후배의 모습을 보니 필자보다 안정감이 있다. 물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걸로 보아 녀석 또한 자신의 발걸음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차츰 설사면이 가팔라지고 간혹 몇몇 구간은 단단한 얼음이라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저 아래에 한쪽으로 툭 튀어나온 바위지대만 없어도 마음이 놓이겠지만 혹 슬립이라도 하면 분명 추락의 가속도에 뼈도 못 추릴 것이라 생각하니 할 수 없었다. 한두 강빙 구간에선 프런팅포인트 자세를 취하며 하산했다. 위험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상책일 터.
▲ 4,000m 지점의 절벽 모서리에 세워진 아기 안은 성모 마리아상.
이윽고 튀어나온 바위구간을 지나 남서릉 아래쪽으로 길게 설사면을 횡단했다. 설사면의 경사가 한결 완만해져 마음이 놓였다. 곧이어 남서릉으로 오르는 설사면과 만나 빙하의 편평한 사면에 닿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한 고비를 다 넘긴 후의 기쁨이 넘쳐났다.
이제 베라 빙하를 건너 브라이트호른 고개의 캠프로 돌아가는 길만 남았다. 배낭을 벗어 이마의 땀을 훔치고 빙하 트레킹 복장으로 고쳐 입었다. 후배 또한 배낭을 벗고 헬멧을 벗었다. 바로 그 때였다. 배낭 옆 설사면에 놓은 후배가 헬멧이 미끄러져 내렸다. 슬슬 흘러내리는 헬멧을 향해 후배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헬멧을 따라 뛰어가던 후배가 곧 잡을 것 같았지만 가속도를 받은 헬멧은 끝내 후배의 발걸음보다 빨랐다. 50m 이상 헬멧을 뒤쫓던 후배는 계속해서 따라갈 낌새였다.
한데, 저만치 아래에 크레바스와 세락지대가 있었다. 아마 후배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필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녀석은 미련이 남았던지 계속해서 달리는 것을 필자가 평소에는 입에 담아보지 않던 욕지거리를 해대며 그를 제지시켰다. 헬멧 하나로 위험을 자초할 순 없었다. 끝까지 헬멧을 따라가고픈 유혹은 등반 중의 어떠한 위험보다 컸다.
헬멧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우리는 빙하를 가로질렀다. 기온이 높아진 빙하 위의 눈길은 질퍽이기 시작했다. 1시간 후 브라이트호른 고개로 이어진 오르막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체력을 다해 걸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마침 저만치 앞서 걷는 이가 있었다. 천천히 걷는 그의 걸음걸이가 왠지 낯익다. 가만히 보니 남동건 선배였다. 곧이어 그를 따라잡았다.
“아니, 형! 이제 가시는 겁니까?” “아, X헐!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약을 잘못 먹었어. 근육이완제를 먹었거든.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문어마냥 흐물거리는 것 같아.” “이런! 쥐약 드셨군요. 그래도 이만해 다행입니다.”
쥐나지 말라고 먹었다는 쥐약 사건에 얽힌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우리는 캠프에 남아 철수 준비를 하고 있던 임덕용 선배와 합류했다. 곧이어 5일간 머문 캠프를 철수해 7개의 4,000m급 봉우리를 오른 추억을 간직하고서 체르마트로 하산했다.
▲ 정상에서 프랑스인 마농씨 부부와 함께 한 후배. 뒤로 체르마트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등반정보
1864년 8월 1일에 J. 자코트 일행이 초등한 폴룩스는 알프스에서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고 등반도 쉬운 4,000m급 봉우리다. 등반난이도 또한 PD+급이라 알파인 등반 초중급자들도 무난히 오를 만하다. 일반적인 루트는 우리가 오른 남서릉(PD+/III급)이며, 우리가 하산한 서면도 종종 이용된다.
서면 루트는 정상으로 향하는 지름길이긴 하지만 여름철에는 얼음이 드러나기에 가파른 구간에서는 아이스하켄의 확보가 필요하다. 물론 여름철 성수기에 남서릉에 사람들이 붐빌 때는 종종 이용할 만하다. 평균 경사는 약 50도.
잠자리는 우리처럼 브라이트호른 고개의 눈밭에 캠핑해도 되며 로치아네라 아래의 비박산장(Rossi e Volante Bivouac Hut·3,750m·비상전화 없음)을 이용해도 된다. 12명이 묵을 수 있는 이 비박산장에는 침상과 담요밖에 없으니 취사도구는 따로 준비해야 하며, 여름성수기엔 붐빌 가능성이 있어 일찍 도착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