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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들의 신앙
빌 3장 4~12절
한국의 부자들은 대부분이 대기업의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자수성가로 2015년도에 한국의 10대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넥슨 코리아의 김정주 회장입니다.
이 분은 한국의 인터넷 게임 산업에 뛰어 들어
한국의 10대 부자의 대열에 들어선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운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자신은 순전히 운이었다고 한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한국의 게임 산업에 뛰어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기술이 더 뛰어나고, 노력도 더 많이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노력한 사람은 잘 안되고, 그들처럼 노력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더 잘된 것을 보면 순전히 운이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의 삶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봅니다.
우리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있지만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지만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간 바람에
한 걸음부터 시작한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몸이 아픈 사람은 건강한 사람보다 더 오래 살 수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기 위해 좋은 것 먹고, 헬스도 다닙니다.
그런데 병약한 사람이 더 오래 살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뇌성마비로 태어난 사람이 더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뇌성마비로 태어난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들을 보면,
합리적인 것도 있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것도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욥기와 잠언과 전도서는 지혜문학입니다.
이 지혜 문학은 인간의 삶에는 합리적인 것도 있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있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합리적이다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잠언입니다.
잠언의 말씀은 우리가 정직하고 진실하고 성실하면 잘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와 전도서는 전혀 다릅니다.
욥기 같은 경우에는 왜 욥과 같은 의인이 고난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의 3친구들이 욥의 고난에 대한 설명을 수 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고난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완전히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것을 뛰어 넘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같은 경우에는 ‘인간의 삶이 헛되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가난 자로 태어나서 왕이 되어도
언젠가 물러날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헛되고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시기에 그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서 인생의 헛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은 합리적인 것을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는 합리적인 것과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함께 섞여져 있는데
잠언과 욥기와 전도서는 이 두 가지의 대답을 다 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참된 지혜는 무엇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잠언과 욥기와 전도서가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참된 지혜는 인간이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난 같은 것도 다 설명할 수 없고,
우리의 인생사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 합리적일 때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지혜이고
인간의 삶이 합리적이지 못할 때도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참된 지혜가 되신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하나님은 비합리적인 것 가운데서도 질서를 세우시고, 복을 주시며,
은혜를 주시고, 온전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비합리적인 삶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비합리적인 상황이 많이 있었지 않습니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속에 던져졌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면 그들은 불에 타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100세에도 자식을 낳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합리적인 것보다 더 큰 은혜와 역사로 이끌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참된 지혜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지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학자입니다.
학자 중에 최고의 학자를 가리켜서 석학이라고 합니다.
학문의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을 가리켜서 석학이라고 합니다.
석학이 최고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어떻게 보게 될까요?
과연 그들은 잠언과 욥기와 전도서에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런 부분을 가지고 ‘석학들의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최고의 석학을 뽑으라고 하면 바울을 뽑고 싶습니다.
바울은 학문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붙잡혀 있을 때에
유다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 총독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아는 것이 많고 대화에 막힘이 없고 논리적이었는지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26:24) 라고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얼마나 학문의 깊이가 있었는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학문인 희랍 철학에도 완전히 능통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이 자신의 지식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모든 지식을 배설물 정도로 여긴다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아멘
여기 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이전에 모든 지식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만을 아는 지식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9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참된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이전에 고민했고 연구했던 모든 지식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지식인들은 머리로는 되는데
마음으로는 안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은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그런 사람입니다.
410년에 로마제국이 멸망해 갈 때에
당대 최고의 석학이라고 한다면 어거스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남달리 교육의 열을 쏟아서
당대 최고의 성공한 교수라고 할 수 있는 수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진리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 해 줄 수 있는 것이 마니교라고 생각하고
9년동안 마니교에 몸담아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거스틴이 고민하는 것을 아무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니교의 최고의 지도자인 파우스투스를 만났지만
그의 고민을 속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도 보아야 하지만
문자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방법으로도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으면서 그의 지성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참된 종교는 기독교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다 이해가 되었는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집 정원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아이들이 집 주변에서 놀면서 ‘집어라 읽어라’ 라는
노랫 소리를 듣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펴서 읽었는데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하는
로마서 13장 12~13절을 읽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여기서 회심을 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 왔다가 히포에서 주교가 됩니다.
그는 사상적으로 유럽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에 로마 희랍 인도 문명이 몰락해 가고 있었고
기독교 문명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때 가장 큰 충돌은 로마 희랍 인도 문명의 다신교 사상입니다.
이런 다신교 사상을 유일신 신앙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그러니 어거스틴이 당대 최고의 석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을 뽑으라 하면 조선시대의 정약용을 뽑을 수 있습니다.
정약용은 어려서부터 대단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정승 이서구가 포천 영평에서 한양 대궐로 가는 길에
한 소년이 말에 책을 한 보따리 지우고 북한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열흘 후에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소년이 또 그 책을 지우고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승 이서구가 그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그 책이 무엇이냐”
그러자 그 소년이 하는 이야기가
“이 책을 다 읽고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서구가 어떻게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느냐 물었습니다.
그 소년이 “다 읽었을 뿐만 아니라 다 외우기까지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펴놓고 물어 보았더니 다 외웠더라는 것입니다.
그 소년이 바로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의 천재 다산 정약용이었습니다.
정약용은 대단한 석학입니다.
서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면 동양에는 정약용이가 있다 할 정도입니다.
정약용은 성리학자, 철학자, 서학자, 역학자, 역사학자, 역학자, 문학가,
한문학자, 문예비평가, 지리학자, 정치가, 경제학자, 행정학자, 법학자,
건축가, 토목학자, 발명가, 과학자, 의사, 국문학자 등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지 않은 부분이 없었습니다.
이런 대단한 석학이 정약용이었는데, 그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의 조선사회는 성리학이 크게 발전을 했습니다.
성리학은 하늘(天)이 이(理)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인간의 마음이 직통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이 하늘이고, 하늘이 곧 인간의 마음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무신론에 많이 빠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에 그 유명한 이율곡이나 퇴계 이황은 사단칠정 논쟁을 통해서
이런 성리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늘이 곧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정약용이었습니다.
정약용은 하늘이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죄를 짓기 좋은 마음이라 하늘이 될 수 없고
하늘은 바로 상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제가 바로 누구이냐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점을 치고 제사를 드리는 상제가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상제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약용은 머리로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어거스틴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약용의 뒤를 잇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학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이어령 박사입니다.
이어령 박사는 해박한 지식과 사고의 깊이까지 갖추고 있어서
어떤 주제를 주더라도 다섯 걸음이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합니다.
첫 걸음에 주제를 정하고, 다음 걸음에 소재를 선택하고
그리고 한 걸음씩 떨 떼마다 서론과 본론과 결론을 머릿속에 그려낸다고 합니다.
이어령 박사는 당연히 기독교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다 알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를 문화의 한 현상으로 보고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독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딸의 아픔과 고난 때문이었습니다.
딸이 암으로 고생을 하고, 실명 위기에 놓여 있을 때에
그의 지성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믿음으로 그 고난을 이겨나가고 있었고
심지어 치료가 되고 회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이어령 박사는 딸이 믿는 하나님을 자신도 믿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받을 때에 그렇게 눈물이 흘렸습니다.
지성의 무거운 짐이 내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지성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서재를 꽃밭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체실이라 한 것입니다.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배설물로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을 관을 열어 놓은 시체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의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부활의 주님을 믿을 수 없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부활의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책들을 부활시키는 마음으로 재독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어령 박사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시체실과 같은 서재를 생명이 살아나는 서재로 거듭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말씀을 결론 맺겠습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세상에서 살기도 하지만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어떤 세상 속에서 살든지 간에
잠언 욥기 전도서가 말씀하여 주신 대로
우리의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어느 시대를 가든지 지성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최고의 지성을 가진 사람을 석학이라고 했습니다.
석학들 중에 일부는 그들의 지식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참된 진리를 찾고자 했던 어거스틴은 결국 마니교를 버리고 기독교에서 참된 종교를 만났습니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성리학이 크게 발전했을 때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정약용은
하늘은 인간의 마음이 아니고, 상제 곧 기독교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종교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만 보고자 했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 이어령 박사도
부활의 주님 믿고 지성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다 알아도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어거스틴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회심을 했고
이어령 박사는 딸의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주어야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회심하기 전에 속상한 것은
자신보다 지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을 보고
너무나 부러워했었다고 합니다.
왜 나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왜 자신은 믿지를 못하는지 그것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만큼 지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지성은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을 대표하는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어령 박사는 여전히 자신은
문지방 위에 서 있는 죄인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분문에서 바울이 자신의 지성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얻고자 살기로 결심한 것처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참된 지혜로 여기고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