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를 만나면
광무를 만나면 어쩐지 그와 모란시장 5일장에 한번 가보고 싶다. 그에게선 사람 냄새가 난다. 그는 아직 반질반질 약아빠진 도시 사람 아니다. 그의 언어는 '씨바'로 시작된다. 그건 60년 전 진주 옥봉동 시장에서 자주 듣던 말이다. 막 하는 쌍스러운 말 같지만, 악의 없고 누구 눈치 보지 않는 순수한 진주 말씨이다. 나는 그 말씨에서 고향맛을 느낀다.
광무는 모란 시장 임시 천막집 석쇠판에 지글지글 구워낸 생선구이처럼 구수하다. 5천 원짜리 막국수 먹을 때 마시는 대접 막걸리 같이 시원하다. 4천 원짜리 파전이나 감자 부침개 같이 따끈따끈하다. 무럭무럭 김 나는 순대나, 팥 한 숟갈 넣고 구운 붕어빵 같이 뜨겁다. 봄날 산채 중에 유별나게 입맛 땡기는 엄나무와 가죽나무 순, 더덕처럼 특이한 향기가 있다. 광무는 한마디로 지긴다. 나는 그를 어물전 다라이 안에서 펄떡펄떡 뛰는 잉어나 월척 붕어처럼 힘이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 그는 고3 때 맨 뒷 줄에 앉은 덩치였고, 지금 건강도 좋다.
그는 시골 할매가 모란시장에 종이 박스에 담아온 강아지처럼 귀엽기도 하다.
한번은 그와 영월 5일장에 간 적 있다. 아마 그녀는 영월서 잘 나가는 부잣집 마님이었을 것이다. 광무가 보더니, 즉석요리 구경하라면서, 마치 제가 훈련소 시범조교나 되는 것처럼, 닦아가서 말 부치다가 그만 개무시당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 있다. 고게 어찌나 고소하던지, 서울 서대문 포럼 이사장에게 전화로 브리핑하여 같이 놀린 적 있다.
한 번은 종대와 셋이 남해 노량 횟집에 간 적 있다. 3인분 회 주문했는데 회가 좀 빈약했다. 그러자 '회가 뭐 이리 시시하니?' 광무가 호통 쳤고, 경상도 여자도 거칠어 둘이 붙었다. 물주인 내가 보긴 이러다 돈만 아깝게 생겼다. 그래 여자를 불러 살살 눈치 봐가며 말 붙이고, 그러다 어느새 잔을 서로 채워주게 되었다. 이를 본 광무가 가관이다. 저도 끼더니, 어느새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한다. 그래 '이 잡 연놈아! 금방 싸우다가 이기 무신 짓이고?' 거사가 웃으면서 크게 호통 친 적 있다.
광무는 원래 옥종 부잣집 아들이다. 학창 시절 진주 고급 하숙집에 하숙했다. 입대 후 103보 인사계 근무 때는 미스 춘천 출신 아가씨한테 재벌 아들 행세했다. 명동서 제일 으리으리한 양장점 데려가 눈 딱 감고 양장 두 벌 맞추라고 했단다. 이하 생략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가 그와 소양강 밑에서 막국수 먹으면서 들은 이야긴데, 103보 인사계 수입 고려하면 100% 풍은 아닌 것 같다.
광무는 자기 말로 '전국구'다. 전국 유명 밥집 잘 안다. 용문과 하진부 두 산채비빔밥집은 그가 소개한 집이다. 용문은 이장군 부인이, 하진부는 오경택 부인이 나에게 그런 좋은 집 소개했다고 감탄한 집이다. 음식점 가보면 광무가 미식가인걸 알게 된다. 또 천하잡놈인 것도 알게 된다. 한번은 시외버스로 내려가는데, 광무가 운전석 뒤에서 한참 운전수와 잡담을 했다. 그리고 휴게소에 내리자 나를 기사식당에 끌고 갔다. 광무 때문에 거사는 생전 처음 잡놈처럼 뻔뻔하게 기사식당 공짜 식사를 맛보았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어쨌던 생기 발랄한 광무 만나면 항상 엔도르핀이 솟는다. 나는 얼마 전에 수서역 뒷골목에서 파전과 동동주 파는 작은 목로 주점 하나 봐 둔 곳 있다. 두어 평 되는 좁은 그 집 마담은 손을 잡으면 매애 매애 가냘픈 소리 내며 발버둥 치는 흑염소 새끼 같은 목청이다. 거기는 둘이 아무리 먹어도 5만 원 초과할 일 없다. 동기 중에 잘난 친구 많지만, 나는 고향 맛 나는 광무를 거기 초대하고 싶다. 60년 전 이야기 하다가, '청춘을 돌려달라' 젖가락 장단도 치면서 한 곡조 뽑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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