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김 성 한
자취를 감췄던 박쥐가 한달만에 부산 거리에 나타났다. 보석과 금반지와 돈뭉치와 마카오 양복과 또한 호언장답과 사바사바가 말쑥한 신사 숙녀들과 더불어 물결처럼 파도치는 광복동거리 상점 앞에 그의 자태가 나타나자 점원들은 눈짓 입짓 하면서 수근거리기 시작하였다.
“박쥐다 박쥐.”
“흥, 또 무슨 바람이 붙었나부지.”
“쉬― 쉬.”
곤색 마카오 양복에 파나마를 넌지시 제껴 쓴 그는 바른손의 개화장에 맞춰 왼쪽 다리를 절름거리고 절름거림과 동시에 머리를 좌 혹은 우로 핑핑 돌린다.
쇼윈도에 진열된 값진 물건들을 한번 주욱 둘러보고 나서 허리를 앞으로 꾸부리더니 손가락으로 콧구멍 옆대기를 번갈아 눌러 시퍼런 콧물을 내뽑고 나서는 입을 닦으면서 가게에 들어갔다.
“요새 어때, 수지 맞는가?”
권하지도 않는 의자에 천천히 앉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주인은 아래위로 한번 훑어볼 뿐 아무 대답도 없었다.
“얘, 저기 가서 양담배 하나 사와!”
천원짜리 두 장을 책상 위에 내던지면서 십오륙세 된 점원에게 소리를 질렀다.
“담배 사오란 말이야!”
어리둥절해 서 있는 점원에게 다시 소리를 지르자 점원은 알아차리고 입술을 한번 삐죽하고는 돌아서면서 중얼거렸다.
“피一다.”
박쥐는 중풍이라 손발을 떨면서 지팡이를 거꾸로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요 못된 놈의 자식.”
말과 동시에 어린 점원의 뒷통수를 내리갈겼다.
점원은 맞은 데를 썩썩 비비면서 비명을 올리다가 돌아섰다.
“왜 때려, 왜?”
지팡이 허리를 거머쥔 박쥐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쏘아보면서 외쳤다.
“요것이 그래 어른을 몰라 보구설랑.”
지팡이가 또다시 그를 때릴 태세를 갖추자 점원은 얼른 물러섰다.
“네 애비 친구두 몰라 응? 이래 뵈두 너 같은 손주가 수두룩허다. 네까짓 게 뭐냐? 내 아들 중에는 헌병대장무 있구 경찰서장두 있어! 뭐야!”
“그래 어떻단 말이야, 푸라이.”
박쥐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지팡이를 들고 쫓아나설 태세를 갖추자 점원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침을 뱉었다.
자리에 돌아온 박쥐는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주인 책상에 몸을 기대고 간곡한 부탁을 시작하였다.
“이 사람, 십오만 원만 잠깐 빌리세.”
“건 또 왜?”
주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장부를 뒤척거리면서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였다.
“미국 시계허구 반지야, 우리 집에 지금 양키가 와 있어. 십오만 원이면 살 텐데 싯가루 백만 원은 문제없어.”
주인은 기지개를 켜면서 회전의자에 드러눕다시피 몸을 기대었다.
“그래?”
박쥐는 몸을 씨룩거리면서 일어나 주인 옆에 바짝 다가서서 귀에다 입을 대고 속삭였다.
“양키허구는 절친헌 새야, 남는 건 뻔허거든. 잠깐 새에 팔십오만 원일세, 둘이서 반분허지.”
주인은 딱 잡아떼었다.
“한푼두 없어!”
박쥐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더욱 간절히 달라붙었다.
“그럴 수 있나? 한강수는 마를지언정 자네 주머니에 돈이 마르다니, 염려말게,
한 시간 이내에 꼭 가져올 테니.”
주인은 눈을 감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물었다.
“자네 요먼저 빛깔만 뵈구 가져온다던 십반 원은 어찌 됐지? 한 달 지나두 가타 부타 말이 없으니.”
“아…… 아―아 그것 말인가? 마누라더러 갖다 느리라구 했더니만, 거 참.”
“자네, 부인 없다더니.”
“저어 부인 비슷헌 게 하나 생겼어. 하여튼 건 곧 갚아줄 테니 지금 얘기 알았지?”
“알구 모르구 있나? 돈은 한푼두 없다니까.”
“그러지 말게, 나허구 그럴 처진가? 의리루 생각허드라두.”
“의리?”
“염려말구 내게, 빛깔만 뵈구 가져올 테니.”
“또 빛깔인가? 하여간 십반 원은 달란 말두 안할 테니까 제발 우리 집엔 다시는 오지 말게.”
“이 사람 그렇게까지 말할 거야 있는가? 돈은 돈이구 사람은 사람이지.”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 줄 알아?”
주인은 볼멘소리를 했다.
“아―따 내가 누굴 속일 사람인가?”
주인은 일어서서 잠자코 박쥐의 등을 빌어 문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문밖에 밀려나온 박쥐는 기가 막혔다.
―친구의 의리두 모르는 놈들, 의리를 모르는 것두 사람이야, 김승이지. 망할 놈들 어디 두구 보자.
투덜거리고 자팡이를 휘두리며 돌아서기는 했으나 들어가 보았자 어차피 감당해 낼 재주가 있을 리 없었다. 이웃에 사는 곰보와 애꾸의 억센 주먹을 빌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곰보허구 애꾸만 오면 너 따위 부스레기는 어림두 없어, 사람을 몰라봐두
분수가 있지. 두고 보자.
박쥐는 언제나 충동과 현상에 움직이고 항상 물색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상점에서 쫓겨나온 그는 분풀이를 톡톡이 하리라 맹세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에서는 물색하는 충동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 가모 하나 없나.
두리번거리면서 부일관(釜一館) 앞에 이르자 그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하나 걸렸다. 대? 중? 소? …… 줄잡아두 중은 되지, 구워서 삶아 보자.
일본에서 돈냥 모아 가지고 사변 직전에 돌아왔다는 중학 동창이다. 십여 년만에 처음이었다.
온 낯이 웃음이 되어 가지고 다가가서 지팡이를 한쪽 팔에 걸고 두 손으로 친구의 손을 힘껏 거머쥐고 오륙차나 상하로 흔들어 각근한 친애의 정을 표시하였다.
“아, 이거 김군 몇 해만인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의 손목을 잡은 채 부일관 이층 조용한 다다미방으로 인도하였다.
활기있게 웃통을 벗어제끼고 뽀이를 붙러서 술과 안주를 청하는 것이었다.
“얘, 그으 술은 마산 술, 제일 좋은 걸루 말이다. 옛다 양담배두 하나.”
천원짜리 두 장을 내던진다.
술잔이 오고 가는 사이에 취기가 돌기 시작하자 옛날에 별로 말이 없던 친구가 이따금 심문조로 한마디찍 물으면 박쥐는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고 구구절절이 자기의 눈부신 활동상황을 가미하여 자신의 위대함을 유감없이 피력하였다.
“요새 뭘 허느냐구? 이 사람 말말게. 허는 일은 없어두 그야말루 동분서줄세. 저번 내각개조 때는 정말이지 사흘밤을 꼬박 뜬눈으루 새웠네……”
“그럼 자네 정계에두 무슨 관계가 있나?”
“뭐 그저, 모모한 친구들이 가만 있을라니까 못살게 굴어서 헐수 할수 없이 일을 보는 척 허지. 표면에 나서는 건 선천적으루 질색이라 뒤에서 거들어줄 뿐이야.”
“자네두 그럼 한몫 보겠네.”
“그게 무슨 말인가? 내딴에는 친구의 의리,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견마지역을 해보는 걸세.”
“여전허군, 원기왕성헌데.”
“엊그지께두 배짱이 틀려서 모장관허구 책상을 치며 싸우다가 그만 뒤집어엎구 나와버렸더니 당장 그날 밤에 쫓아와서 손이야 발이야 빌길래 웃는 낯에 침을 뱉겠나? 나두 그만 웃구 말았지.”
취기가 머리에까지 돌았는지 친구도 박쥐와 장단이 맞았다.
“이 사람 그만한 빽이 있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잖나?”
“허긴 그래, 그자들두 내 말이라면 괄세는 못허거든.”
“그렇겠지!”
“자넨 해외에 오래 있어서 우리 집 내용을 잘 모르겠지만 큰아들은 헌병대장이구 작은놈은 경찰서장이라나. 내 눈에는 변변치 못해두 잘덜 허구 있는 모양이야.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허거든.”
친구는 감탄하였다.
“자네 주위는 정말 금성 철벽일세…… 요새 우리 사회에서는 빽이 문제야. 그만한 길만 있으면 뭘 허건 땅 짚구 헤엄치기 아닌가?”
“정직하다는 말과 못났다는 말은 동의 (同義語)세. 정직의 열매가 무언가? 가난이 아닌가?”
“자네 말이 옳아, 그런 의미에서 한잔……”
김군은 박쥐에게 한잔 올렸다. 그도 매우 기분이 좋은 포양이다. 팔을 걷어올리면서 기염을 토하였다.
“오늘은 기마에다. 내가 톡톡히 한잔 낼 테니…… 여보 색씨 없오? 색씨.”
술이 얼마간 들어가자 김군은 곤드레만드레 녹초가 되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박쥐는 두 눈이 말뚱말뚱해서 일으키느라고 법석댔다.
미닫이가 쓱 열리자 배가 불쑥 나온 사나이가 런닝샤쓰 바람으로 들어섰다. 두 층이 진 턱 위에서는 노기를 띤 입술이 약간 떨고 있었다. 그도 옆방에서 마셨는지 마담이 뒤에 따라 붙었다.
박쥐는 고양이를 만난 쥐새끼 모양으로 겁에 질려 옷을 줏어입기 시작했다.
“박쥐, 잘 만났다. 요 알뿌로커야. 꼭 한달 열흘반이로구나.”
박쥐는 두 손을 내저었다.
“복상 이거 왜 이래, 손님두 계신데.”
뚱보는 소리소리 질렀다.
“복상이 다 뭐야. 금방 들통이 날 거짓말두 식은 죽 먹기지 너는. 요놈에 박쥐 새끼 같으니라구.”
주먹으로 한대 후려갈기니 박쥐는 맥없이 쓰러져 버둥거렸다. 복상은 버둥거 리 놈을 이번에는 발길로 걷어찼다.
“네 아들 헌병대장은 도대체 어딨어? 에? 허궁중천에 있단 말이냐? 없는 아들두 입으루 만들어 내구 벼슬까지 맘대루 시켜?”
또 한대 찼다.
“너 같은 인간의 명함을 들구 죽자 사자 의정부까지 찾아간 내가 어리석지. 이 불여우 같은 자직아!”
복상은 박쥐를 한번 흘겨보고 나가버렸다.
복상이 나가자 박쥐는 얼른 일어서 옷을 줏어입고 절름거리면서 나갔다.
이윽고 박쥐는 곰보와 애꾸를 앞세우고 나타났다. 그러나 복상은 이미 가버린 뒤였다.
“어디 갔어? 어디. 더러운 자식, 꽁무닐 뺐구나. 있기만 했으면 뼉다군 다 부숴졌지!”
박쥐의 기염은 대단했다.
애꾸와 곰보는 불평이었다.
“어서 가자, 싱검기는.”
“막걸린 얼마나 낼 테야? 벌써 출출허다.”
계산해 달라는 젊은 친구를 밀치고 어깨를 재면서 세 사람은 나가버렸다.
“저기 있잖아? 저 사람한테 달래!”
그때까지도 김군은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러나 복상 때문에 모처럼 잡았던 가모를 구워삶지 못한 박쥐는 심사가 편치 못했다. 쓸만한 가모였는데. 허지만 가모 김군, 잊지 말게. 또 만날 날이 있을 테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