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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제주도 살이
a, '바닷가 노래'의 시작
미국에서 귀국한 뒤, 초반의 약간 어수선함을 제외하고 이전처럼 쪼들리는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인야는, 나름대로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었다.
여전히 이어간 '자전거 여행'과, 그해(2009년) 연말 제주도에 갈 일이 생기면서... 인야 인생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할 수 있는 1년 정도의 '제주도 살이'도 시작된다.
12월 초, 인야는 홈페이지에 이런 소식을 올렸다.
제주도에 갑니다.
귤 농사 지으러 떠났던(올해 초) 친구가 하나 있는데, 얼마 전에 전화를 걸어와... 오라고 해서요.
'옛다, 잘 됐다!' 하면서, 휭- 한 번 갔다 오려구요.
가게 되면, 일정 기간(? 확실치 않음) 머물 것 같은데요, 거기도 인터넷이 되는 것 같으니... 사이사이에 까페에 보고를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아, 작별 인사를 드리진 않겠습니다.
근데, 제가 어딘가 가려고하면 꼭... 날씨가 이러네요.
내일, 제일 춥다는 아침에(그것도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해서... 미리 안내해 드립니다.
12 . 5 22 : 30
인야가 제주도에 오게 된 이유는 사실 세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작은 벽화 건'이었고, 인야는 그 사연을 까페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지난번 군산에 내려갔을 때, 나는 한 친구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습니다.
"인야, 비행기값 줄테니까... 제주도에 한 번 왔다 가라!"
나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하면서도, 뭔가 신선하고 또 재미있기도 해서... 큰 소리로 웃고 말았는데요,
제주도 그 친구가 농사를 짓는 마을 친구(새롭게 사귄 제주도 토박이 친구) 중에, 귤 수매를 하는 창고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상품판매를 위한 홍보용으로 자기 창고 벽면에 '귤 그림'을 그려넣고 싶어 한다는데, 자신은 할 수가 없으니까... 날더러 내려와서 그 일을 해 줄 수는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무슨 그런 일을 나에게 부탁하나?' 했었습니다.
어차피 정식 벽화는 아닌, 날림(?)일 수 있는... 굳이 작품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쉬운 그림일 텐데, 나 같은 직업적인 화가가 나서서 그런 일을 한다는 게 썩 내키진 않았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알량한(?) 화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내려왔다 가라'는 말에 나는 이미, 제주도에 가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답니다.
그렇잖아도 '자전거로 태백 산맥 넘기' 과정에서 왼쪽 다리에 문제가 생겨, 가을 내내 아파트에 처박혀 지낸 후유증이랄까? 그런 답답증이 남아있던 데다, 이 친구가 제주도로 귤 농사를 지으러 간다고 올 초에 연락이 왔을 때부터도,
'언제 한 번은 꼭 가 보리라......'고 벼르고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아예 이 짬에... 가 보자.' 는 쪽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벽화 공사비가 얼마건 크게 상관 없이, 친구의 요청이 있으니... 쉽고 가볍게 응해주자는 마음이었지요.
(다른 때라면, 즉시 거부했을 일인데... 제주도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현장에 와 보니... 서울에서 상상했던 것 보단 훨씬 작은 규모의 벽이었고, 또 평면 하나도 아닌 둘로 쪼개진 상태라... 벽면의 조건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존의 페인트 색깔도 바래 뿌연 상태라, 적어도 밑칠은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작업할 마음이 싹 가시드라구요.
그렇지만 그 상태로 못 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었겠습니까?
내 친구가 제주도에 내려와 정착을 하는 중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동네 친구들이었는데, 내가 모른척 할 수가 없겠드라구요.
하는 수 없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고, 그 벽면 그대로를 이용하기로 했고... 가능하면 크고 단순하게 그려서, 눈에 띄게 했고... 사실적인 그림에 약간의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 단순화시킨 이미지를 그려 넣었지요.
그 집에서는 '친 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기에, 귤잎 한 두개는... 벌레가 파 먹은 형상으로 포인트를 주기도 했구요. (그 아이디어는 환영을 받았지요.)
그 집에서 생산하는 귤 중 대표적인 '밀감'과 '한라봉', 두 가지만을 벽면에 형상화시켰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이 우습게 봤던 일도 결코 쉽지만은 않더라구요.
남의 걸 베낄 수는 없으니까 나름대로는 이래저래 구상도 해야만 했고, 귤 밭에 가서 일일이 사진을 찍고 그걸 가지고 재구성해보고 연구도 해 보고... 꽤나 노력과 정성을 들이기도 했답니다.
근데, 그 일을 끝내고 났더니... 허리통증이 생겨서, 일을 끝낸 이틀이 지난 지금도 고전중일 정도로요.
근데요, 단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그 집에 귤을 사러 오는 사람들의 호응이 참 좋다네요.
그래서 그 주인 내외가 싱글벙글이라는데...
단, 그 작업을 한 작가(나)만... 이래저래 아쉬운 마음이구요......
12 . 9
다음 날,
인야는 이번 제주행의 두 번째 이유였던 '사람 찾기'라는 이야기를 이어 올렸다.
제가 여기 제주도에 온 이유 중의 하나에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군대시절 때 제 졸병인데요.
전 육군 하사(분대장)로 군대 생활을 해서, 찾는 사람은 당시의 제 분대원 중의 하나였답니다.
그는 바로 여기 제주도 출신으로, 애(?)가 빠릿빠릿해서... 분대장인 저를 도와주기까지 할 정도로 군대생활도 잘했던 모범용사였거든요. 그와는 군대 생활 이후에도 계속 연락이 됐었고, 또 두세 번 만나기까지 하는 등... 기억에서 떠날 수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고, 또 제가 외국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더이상 연락할 방법도 없어져서, 여기까지 온 건데요. 최근 '내 군대 일기(문서)'를 디지틀화 하던 2006 년(저는, 군대생활 3 년 가까이의 기록을 컴퓨터 작업으로 완성시켜놓았거든요.), 참고 자료로 군대시절 당시의 '병역 수첩'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거기엔 당연히 옛 분대원들의 신상정보도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서, 그 참에...
'언젠가는 이놈을, 꼭, 찾아봐야겠구나.' 작심을 했던 일이기도 했답니다.
그러던 중, 평생을 군대 보안 계통에서 근무하던 한 친구에게, 살짝...
"내, 옛 군대 동료 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두 달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더니... 결국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실망이 컸습니다.
그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찾아야겠다는 의욕이 강하게 생기드라구요.
그러다가 이번에 제주도에 오게 김에,
'내가 직접 그를 찾아나서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 병역수첩에 있던 인적사항을 적어왔지요.
그리고 이번에 귤 농사지으러 온 친구와 그가 여기 와서 사귄 제주도 토박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그 얘길 했더니... 다들,
"굳이 번거롭게 현지 관청에 찾아갈 것까지 없이, 간편하게 114에 전화로 물어보세요." 라고 하더라구요. 제주도는 바닥이 좁아서, 그렇게 해도 찾을 수 있을 거라면서요.
그래서 오늘, 비도 꾸질꾸질 오는데... 친구가 밖에 나갔다 오는 길에 작정을 한 듯, '족발'과 막걸리를 사왔기에... 뜻하지 않게 낮술을 마시다가, 문득 그 얘길하게 됐고... 쇠뿔도 단김에 빼자며, 114에 전화를 걸어보았던 겁니다.
그랬더니 전화 안내양이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K 큰 형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바로 옛 주소 그 집에 아직까지 K의 큰 형님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일이 너무도 쉽게 풀어지는 기분이드라구요.
잔뜩 흥분된 상태로 저는 그 집에 전화를 걸었고, 형수님으로 뵈는 여자 분이 받더니... 제 사정얘기를 듣더니, K의 큰 형님과 통화할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저는 옛날 군대시절 K의 분대장이었던 사람이고 인사를 한 뒤, K 생각이 나서 이렇게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잠시 멈칫하는 기색이더니, 그는 지금 화물을 육지에 실어나르는 트럭의 기사 일을 하고 있다는데... 조금 기다리라면서,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드라구요.
'야, 이제 됐다!! 왜 이리 일이 잘 풀리는 거야?'
저는 흥분한 나머지 몸이 떨리기까지 했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도 않드라구요.
그런 뒤, 바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엥?
받질 않는 겁니다.
그러니, 하는 수 있습니까? 이제는 문자를 넣었지요.
'00아, 나 옛날 군대시절 니 분대장이었던 이 인야다. 지금 잠깐 제주도에 와 있고, 니 생각 나서 이렇게 연락한 거야. 그냥 한번 만나고 싶다. 연락 줘...'
그러자 곧, 전화가 왔습니다.
"예... 나, K 00란 사람인데요." (어쭈! 그는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야, 00아. 나, 알겠어?"
"... 예, 알지요..."
"그래, 반갑다... 어디야?"
"......"
"나, 무슨 일이 있어서 지금 제주도에 와 있는데... 니 생각이 나서 이렇게 찾아나선거야."
"근데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어요?"(그의 목소리는 다소 냉랭했습니다.)
"응... 내 옛날 병역수첩에 분대원들 인적사항이 적혀 있는데... 거기에 니네 본적지, '하례리'도 나와 있고, 그걸 토대로 114에 전활 걸어서... 니네 큰형님 번호를 알아낸 다음, 니 형님이 번호를 줘서, 이렇게 너하고 연결된 거야..."
그제서야 그도,
"히히히히......" 웃던데, (지 본색(?)을 드러내던 겁니다.) 그건 바로 옛날 그의 모습(웃음)이었습니다.
"아무튼, 너 어딨어?"
"여긴 서울인데요..."
"엥? 정작 서울에 있어야 할 나는 제주도에 와 있고, 제주도에 있어야 할 너는 서울에 있다고? 그럼, 제주도엔 안 와?"
"낼 모레 가요. 근데 형은 언제 돌아가요?" (그는 바로 나에게 '형'이란 호칭을 쓰더군요.)
"나, 너 올 때까지 제주도에 있을 거야..."
"근데, 나 한테 그림 하나 준다고 했잖아요?"
"뭐야?.. 하하하하...... 아직도 그림 타령이구나. 잊지 않고 있었어?" (그는 그림을 좋아해서, 군대시절 내내 틈만 나면 나에게 그림을 달라고 졸라대곤 했답니다.)
"잊긴 왜 잊어요?" 하고 짜증스럽게 대답하던 그, "그럼 이번에 내가 아예 서울 형(나) 집에 가서 그림을 싣고 제주도로 돌아가야 하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여기 있는데, 어떻게?"
"형수 있을 거 아냐?"
"뭐야? 하 하 하 하.... 아니, 없어.. 난, 아직도 혼자 살아."
"그래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사연은 무슨 사연?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 뭐..."
"우히히히히......" (그는 여전히 예전의 개구장이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얘긴 나중에 만나서 하기로 하고... 근데, 넌 어디 살아?"
"조천읍요..."
"거기, 제주 시 옆에?"
"예..."
"그래? 아무튼 모레 돌아와서... 일 다 본 뒤, 만나... 우리 만나서, 오랜만에 술 한 잔 거하게(?) 해야지?.."
"그렇지요.. 인생 별 거 있습니까? 우리네 짧은 인생, 재밌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 ^^" (뭐야? 이렇게 겨우 내가 지를 찾아냈는데, 오히려 지쪽에서 '인생' 운운이야?)
나는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쉬운 걸... 여태까지 그저 애만 태우고...... 그러게, 생각만 하기 보단 실행에 옮겨야 해......'
12 . 15
그리고 며칠 뒤, 인야는 옛날 군대 사진 두 장을 까페에 올렸다.
그저 사진에 대한 설명만 간단하게 적은 식이었다.
우리 분대원 사진.
제일 왼쪽 서 있는 사람이 접니다.
육군 하사, 이 하사(당시엔 안경을 안 꼈었지요.) 그리고 제 쫄병 K. 젤 오른 쪽.
아래 사진은 겨울인가 봅니다. 제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이고, 그 쫄병 K는 어느덧 일병 고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근데 웃기는 건, 우리 부대 구호가 '통뼈가 되자!' 였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중대장님이 그렇게 정했을 텐데, 어째, 좀......
12 . 17
제주도에 갔던 마지막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애매하고도 예민한 문제였다.
그 결과가 어느 정도 현실화될 때까지 인야는, 그 얘기를 바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가... 확실해진 상태에서야, 아래와 같이 알렸다.
사실, 올해 초 제가 미국에 가기 전부터... 저는 살(?) 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동해안에, 그리고 또 제가 가서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어떤 곳이라도 좋다는 생각이었답니다.
그런데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더라구요.
그 건, 여기 제주도에 오면서도 저에겐 어쩌면 가장 절실했던 문제이기도 했답니다.
집을 찾아서......
제주도에서 살 집을 찾아, 오늘은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우도'에 가봤습니다.
이번에 제주도에 오면서, 예전의 생각 하나를 수정한 게 있는데요...
옛날 제 꿈인 '제주도 살기'는, 무작정 제주도에서 사는 것이었는데요,
이번에 제주도에 와서 보니, 제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은 무성한 삼나무 숲에 파묻혀... 바다가 어디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런 곳에선 살라고 해도 못 살 것 같았고...
어떻게든 제주도에서 살 바엔, 무조건 바닷가여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니까, 살기론 조그만 섬이(예를 들어 '마라도' 같은 곳처럼 한 눈에 그 전경이 잡히는 곳이) 좋을 것 같더라구요.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선지, 집 밖으로 나오면... 곧 시원하게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함께 살고 싶어지드라는 겁니다.
그런데 제 친구의 여기 토박이 친구들은,
"왜 친구가 있는 이 곳에서 살지 않고, 섬에 왔으면서 또 새끼(?) 섬으로 들어가려 하느냐?"며,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려 들드라구요. 게다가 두 곳(우도와 마라도)이 요즘엔 다 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저처럼 특별한 경우로 집을 찾는 사람을 반길 리가 없다는 겁니다. 집세도 엄청 비쌀 거라면서요.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집을 찾아 '우도'까지 가 보았던 건데, 겨우 한 집과 연결되어 가 보니... 집은 썰렁하고 방도 음침한 게, 습기에 벽지도 너덜너덜한 상태여서... 정나미가 뚝 떨어지드라구요.
그런 걸 내가 다 수리하면서 살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게 빤했습니다.
그래서 바닷가 펜션을 알아보기도 했는데, 최소한 한 달에 50 만 원 정도는 줘야 한다고 하니... 그것도 그리 만만치가 않드라구요.
그러자니, 큰 맘 먹고 왔던 제주도에서, 가장 중요했던 목적이 자꾸만 표류해가는 모양새라... 흥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집도 많고 좋은 곳도 많은데, 정작 내가 살 곳은 없다니......'
부푼 꿈을 안고 갔던 '우도'행도, 결국은 시들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 와중에 제가 제주도에 왔던 또 다른 이유, 즉, '옛 군대시절 졸병 찾기'의 주인공 K를 만납니다.
둘이 껴안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전화 통화로 약속이 됐고, 방금 배에서 내렸던 그는... 일단 택시를 타고 식당 겸 화물트럭 기사 사무실로 가자고 하던데... 그에겐 아직 화물을 내려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택시를 탔는데, 우리는 할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선 내가 어떻게 그를 찾았는지 다시 한 번 설명하고, 그 역시 나를 찾았다는 얘기도 했는데, 지가 제대하고 얼마 뒤에 우리 누님 집에 찾아갔더니, 내가 외국에 나갔다고 해서... 날 찾는 걸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점심을 먹으면서 소주 한 잔을 했는데,
나는 그에게 이번에 제주도에 오게 된 목적 세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첫 번째 벽화문제는 마무리는 했는데, 어째 이상한 방향으로 돼가는 것 같고... 너를 찾는 일은 이렇게 성공했고, 이제 마지막으로 집 찾는 일만 남았는데......" 하는데,
그는 다소 놀라는 기색이었습니다.
"야, 너도 알잖아? 군대있을 때도 내가 너에게, 나중에 제주도에 가서 살 거라고 노래를 불렀던 말을..." 하면서, "엊그저께는 집을 찾아보러 내가 직접 ‘우도’에 갔는데, 거기도 마땅한 게 없드라... 아차, 너 혹시 ‘마라도’에 아는 사람 있어?" 하고 묻자,
"왜요?"
"거기 집 좀 알아보게..."
"없는데요..."
"내가 내일이나 모레 쯤 마라도에도 한 번 가 볼 생각인데...... 허기야, 사람들이 그러는데, 마라도는 더 힘들 거라고들 하더라. 그래서 내가 실망이야. 이렇게 제주도까지 와서, 집을 직접 찾아보는데도 마땅한 게 없어서......"
나는 다소 실망에 섞인 푸념을 그에게 토로했는데,
그가 넌짓이,
"그럼, 나를 만남으로 해서... 두 가지는 해결 됐네요..."
그가 비죽이 웃으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튼 두고 보면 알아요. 그럼, 자... 나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우리 집으로 갑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니네 식구들 있잖아? 가기 싫은데...... 그러지 말고, 우리... 그냥 술이나 한 잔 하자!" 하고 내가 사정조로 말을 했는데,
"에이, 술은 이따 하고, 어서 갑시다. 빨리요!"
"야, 그리고... 니네 집에 가게 되면, 뭔가 사가야 하잖아... 빈손으로 어떻게 가?"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지금 아무도 없으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글쎄,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 걱정 마세요."
트럭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의 차로 바꿔 탔습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제주시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지금까지 여자 세 명을 만나는 등의... 그는 퍽 질곡이 깊은(?) 삶을 살아왔드라구요.
그만큼 아픈 상처도 많았을 터고, 또 얘기도 많은 듯 했습니다.
'허기야 그러겠지... 너도 그만큼의 얘기를 갖고 살아왔겠지...... 누구나 우리 나이쯤 되면, 별별 얘기들을 다 갖고 살아가는 거니까......'
나는 그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어쩌면 내 역할은 그를 이해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 앞으로 기회가 되면 차곡차곡 들어보리라......'
그러는 사이 '조천'의 한 바닷가 동네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조그만 집 앞에 섰는데,
"여기가 우리 집예요."
"?....."
그러고 보니, 바로 바닷가 옆인데다 마당도 깨끗하고... 전체적으로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는 깔끔한 모양새더군요. 더구나 바닷가여서, 나는 내심 놀라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런 데서 살았단 말야? 좋은 곳 아냐?"
난 그저 어디 마을 한 가운데의 하늘과 옆 이웃집들 지붕만 보이는 조금은 음침한 곳으로(그의 얼굴이 검어서 그랬을까요?) 짐작했었는데...
그러면서 그가 방문을 열던데,
엥?
'무슨 방이 이렇게 깨끗해?'
정말, 마치 손님을 맞기 위해 여자가 집에서 미리미리 준비해 놓은 방처럼 정리도 잘 된데다, 들어가면서 보니... 나도 갖고 있지 않는 커다란 평면 TV에 온풍기 에어컨 등 가전 제품도 모두 갖춰놓고 살고 있었고, 널찍한 방은 따스하기까지 한 것 아닙니까?
게다가 지 혼자 산다는데 난 화분도 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기까지 해서... 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아니, 깜짝 놀라고 말았답니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런데 그의 얘기에 따르면 지금은 이 집에서 지 혼자 산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방이 깨끗하고 완벽하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 허기야 그는 원래 군대있을 때도 보면 깔끔하긴 했는데, 이 정도까지 일 줄이야......'
"어째... 방이 맘에 들어요?"
"응?.. 들다마다... 깔끔하고 너무도 정돈이 잘 돼 있어...... (근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겠냐?) 근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가요?"
"너 혼자 산다는 방이 이렇게 깨끗해?"
"그럼요..."
그의 말로는 일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이거나 두 번 꼴로 집에 들어온다는데, 그렇다면 거의 집을 비워놓고 사는 모양인데... 분명, 그 전날 전화에,
"우리 집에서 편히 쉬어요." 했었는데, 다시...
"형님, 원하는 대로... 머무는 동안 편히 쉬기만 하면 돼요..."
"?... 응?..."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를 만날 생각을 했으며, 만난 것 까지는 좋은데(그것만도 너무나 감사하고 좋아서, 믿지도 않는 하늘에 감사라도 드리고 싶을 만큼 감동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지금 내가 제주도에서 살려고 집을 찾고 있는 상황에... 이런 집에서 머물러도 된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지? 이거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거야? 그렇다면 누가?'
이상했습니다. 아니, 이상하다 못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수수께끼?'
그날 밤, 제주시로 나와 술 안주로 ‘족발’을 사가지고 집에 가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나는 그 자리서 다시 한 번 그의 정확한(?) 의향을 물었고,
그는 내가 원하는 만큼 여기서 지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내가 그저 공짜로 살 수는 없다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다그쳤더니(?),
그럼 난방비라도 내며 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거야 집을 거의 나 혼자 쓰게 될 것 같은데, 난방비를 내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이 집의 그 밖의 모든 편의시설은 다 내 집처럼 사용할 텐데... 그래서 잡다한 비용 등도 내가 지불하기로 아예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게 구두로 계약(?)을 맺기까지 했는데......
아,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했습니다. 오늘 나에게 벌어진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이게 현실인가?.. 나에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훌륭하다. 비록 내가 원하는 완벽한 조건의 집은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부족함이 없다. 아니, 설사 조금 부족하다 해도 불만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가? 얘(K)는, 누구(무엇이)길래? 나에게 이렇게 적시적소에 내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고 있는가. 그러려고 K는 날 기다리기라도 했었단 말인가...... 마치 호박이 넝쿨째로 내 앞에 굴러 떨어진 기분이다.'
그러니, 마치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살도록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 미스테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기도 했답니다.
어쨌거나, 그를 만나면서... 내가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제주도에서 살아보는.. 꿈'이 실현되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뒤에 얘기를 들은 내 지인들 왈,
"1 타 3 피네?.." 하기도 했답니다.
그 며칠 동안 일은 척척 진행 돼, 육지로 물건을 실어 왔던 그의 차에 내 그림 도구와 약간의 기본적인 먹을 거리까지를 실어 보냈고... 이제 몇 가지 뒷정리를 하게 되는대로, 저는 바로 제주도로 갈 예정입니다.
2009 . 12 . 23 . 12 : 20
사흘 뒤, 인야는 제주도에 도착해 다시 글을 올렸다.
아, 사흘이나 걸려서 제주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비행기 값도 절약할 겸(성탄절이라 표 구하기도 어려워서 그랬는데, 결국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답니다.) 호기심도 작동하여, '화물트럭기사'를 따라 출발을 했기 때문에.. 일감에 따라 '화물터미널 숙소'에서 대기도 해 보았고, 밤길 고속도로를 달려보았고, 여관에 들러 하룻밤을 자기도 하고, 날씨(심한 안개) 때문에 일을 못해 한 나절을 안개가 개기만을 기다려도 보았고, 트럭에 짐을 싣는 것도 도와줬고, 배에 타고 잠을 자기도 하면서...
머나먼 제주도에 3일 만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사이에 크리스마스가 다 갔더라구요.
(허기야 난 크리스마스는 별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 아무런 느낌도 없었지만요.)
다시 도착한 제주도는 잔뜩 찌뿌린 상태로 바람도 거세, 낮인지 밤인지 분간하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집 쥔장은 일이 있어 휭- 나가버렸고, 내 집 같은 빈 집에서 난... 멍- 하게 앉아 있었지요.
밖에선 무심한 바람소리만 줄기차게 들려오더군요.
아, 이 '바람의 섬' 제주에서... 나는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인야는 평생의 꿈이던 '제주도에서 살아보기'가 실현되는데, '바닷가 노래'라는 제목으로 새 창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그 생활을 연재하게 된다.
이 시기의 생활은 인야의 또 다른 소설 ''화가와 화물트럭 기사''에 자세히 다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