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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연변문학 제5기 발표
그녀는 배가 고팠다
1
<<미려야, 어딜 가니?>>
<<어?>>
채먹지 못한 짝태오리들을 한줌 들고 동료들의 뒤를 쫓아가는데 귀에 익은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오빠?! >>
미려는 눈이 동그래졌다. 병색이 짙은 오빠가 부옇게 흐려진 눈으로 미려를 바라보고있었다.
<<어…요즘 이 마을에 있는 친구집에 묵고있는중이여서…>>
오빠는 나쁜 일을 하다 들킨 애처럼 말을 더듬고있었다.
<<그랬구나. 나두 오늘 우리 직장에서 여기 소풍오는 바람에. 근데 오빠, 이렇게 나돌아다님 안되잖어? 그러다…>>
미려는 급기야 튀여나올려는 뒤말을 흐려버리고말았다.
<<그럼 몸조심하고, 며칠 있다가 얼른 돌아가. 나 갈게.>>
미려는 돌따서서 걸음을 옮기다 말고 다시 오빠뒤를 쫓아갔다. 오늘따라 힘없어보이는 오빠가 마음에 걸렸던거다.
(저러면 안되는데. 저러다가…)
<<오빠, 거기 전화번호 얼마야?>>
<<전화번호? 응, 6500747. 전화도 안할거면서 묻긴? 오지도 않을거면서.>>
쇠잔한 오빠의 목소리엔 서운함이 깔려있었다.
<<드르릉~ 드르릉~>>
빈 가마속을 긁는듯한 소리가 울렸다. 미려는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은 호주머니에 들어있지 않았다. 빽속에도 없었다.
어디 갔지?
<<드르릉~>>
눈을 번쩍 떴다. 핸드폰이 번쩍번쩍하며 진동음에 부르르 몸을 떨고있었다. 얼핏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벽시계는 부엉이눈처럼 파랗게 빛을 뿌리며 내려다보고있었다.
밤 열시.
미려는 전화번호도 확인하지 않은채 핸드폰을 확 꺼버렸다.
보나마나 남편의 전화였을것이였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남편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집전화에 전화를 하다가 미려가 일어나기 싫어하는 티를 보였더니 미려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기 시작한게 언제 일이던가. 전화가 온댔자 누구랑 술마셨소, 몇차째요 하는 내용들인지라 기다려지지도 않지만 남편은 무슨 의무를 리행하기라도 하듯이 꼬박꼬박 행선지를 고해바치군 했다. 남편의 저녁코스를 채근해야 할 사람은 미려인데 오히려 남편이 주동적으로 극성스레 고해바친다는것때문에 미려는 이미 심드렁해지다 못해 시끄러워지기까지 하고있었다. 그만큼 미려의 남편에 대한 태도는 무관심 그 자체였고, 하긴 남편이 있는 밤이라고 미려에겐 달라질것이 없었다. 좁지 않은 공간에 숨쉬는 실체가 하나 더 있을뿐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티비에 눈을 박고 있고 미려는 미려대로 컴퓨터와 싱갱이질하였다.
언젠가부터 미려와 남편의 사이에는 할 말이 어디론가 쏙 빠져달아나고있었다. 신변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흥도 들어줄 재미도 없어졌고 필요한 말을 빼고는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서로가 입에 자물쇠를 잠가버렸다. 워낙부터 성격이나 애호가 같은 점을 찾아볼수 없으리만치 제각각인 미려와 남편이였던 까닭인지도 몰랐다. 연애시절에는 서로가 남달랐던 까닭에 끌리였던 리유가 이제는 공감대를 잃어버린 리유로 되여버린다는게 어찌보면 슬픈 일인듯도 하였다. 그런대로 간혹 가다 외식도 시켜주고 친구들모임에 동참도 시켜주지만 그런 장소에서 미려는 늘 자유스럽지 못했고 그런 날일수록 위려의 위는 더 쌀쌀해나기만 했었다. 이제 남편은 걸핏하면 밤늦게 귀가하기 시작했고 미려는 혼자 있는 밤에 익숙하여지고있었다. 컴퓨터앞에 앉아서 노닥거린다거나 더블침대에서 맘껏 태질을 하며 자는것이 미려한테는 남편의 반찬투정을 받아내며 꼬부장한 마음으로 남편뒤치닥거리하기보다 더 편한 일이였다. 오늘도 한참이나 사이트들을 이리저리 뒤지고 다니다가 잠자리에 든 미려였다.
(오늘은 또 몇시에 올려고 저 난리야?)
미려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잠이 폭 배인 이불속으로 기여들었다.
헌데 계속 잠을 잘려고 눈을 감아도 잠기가 어느새 달아났는지 정신만 말똥하다. 오히려 눈까지 올롱해졌다.
갑자기 배가 고파났다. 몸 어느 한구석인가 허전해났다. 그래서 꿈속에서까지 짝태오리들을 쥐고 허둥댔던가?
그제서야 다시 방금 꾸었던 꿈에 생각이 미쳤다. 꿈이라고 믿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근데 그건 또 머지? 6500747?)
아무 생각도 없이 팍하고 머리속에 수자가 떠올랐다. 꿈에 오빠가 알려주던 전화번호. 자려고 하는 미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기억은 어느새 한달전에로 줄달음쳐갔다.
한달전, 그때를 생각만 해도 미려는 오싹 몸떨림을 느낀다. 너무 추웠던 겨울이였으니까.
한달전의 어느날, 그날은 웬지 하늘에서 거위털같은 눈이 사뿐사뿐 내리고 있었다. 소시적부터 눈을 좋아했던 미려는 일을 보다말고 창가에 붙어버렸다. 눈내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만은 모든 번민이 다 잊혀져 즐거운 기분이다. 바로 그때 호주머니에 찌른 핸드폰에서 <<드르릉 ~>>하고 진동음이 울렸다. 미려는 창밖의 시선을 거두지도 않은채 핸드폰뚜껑을 열었다.
<<누구세요?>>그냥 간단하고 차분하게 받는 전화.
헌데 전화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미려의 얼굴이 갑작스레 창백해져가고있었다. 무서우리만치 창밖의 눈의 색갈을 닮아가고있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에서 무슨 소리가 튀여나올듯 말듯하더니 결국 아무 소리도 나오지 못한채 핸드폰을 쥔 손에 의해 가려지고말았다. 몸체가 비틀하더니 겨우 창턱을 짚고 다시 지탱하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창밖 눈내리는 모습을 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와는 전혀 다른 암담하고 절망어린, 슬픔이 꽉 찬 그런 빛에 가리여져있었다. 그러기를 얼마, 미려는 갑자기 몸을 돌려 천방지축 사무실문을 나섰다.
미려는 무작정 걸었다. 귀에서는 아직까지도 엄마의 울음섞인 말소리가 울리고있었다.
<<네 오빠가 갔어, 흑흑~ 오늘 새벽에… 그냥…네 이름을 부르다가 …눈을 감더라…흑흑>>
하늘에서는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미려의 심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 세상 한귀퉁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져가고있는지, 어떠한 만남과 이별이 이루어지고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눈은 하염없이 내려 쌓이기만 하고있었다.
그날 미려는 그렇게 눈속을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언제 어디에서 멈춰섰는지, 어떻게 남편 봉수에게 전화를 하고 남편에게 몸을 싣다싶이 하면서 집에 돌아와 울다가는 자고 자다가는 다시 울면서 그 밤을 보냈는지도 몰랐다. 멋도 모르는 두살잡이 아들애를 어떻게 밀어냈는지도, 앙앙 울어대는 아들애를 어떻게 외면하고있었던지도 전혀 기억이 없은채 신들린 사람처럼 그 밤을 보냈다. 그날 밤, 밤은 길기도 했다. 태여나서 처음으로 지새워보는 긴긴 밤이였다.
(오빤 지금 멀하고 있을가? 날 내려다보기나 할가?)
까아만 어둠속에서 미려의 머리속은 어느새 흐리마리해가고있었다. 오빠의 얼굴, 전화번호 그리고 눈 ,또 그 무엇이 마구 뒤섞여서 란무하고있었다.
2
(6500747? 누구 전화번호일가? 오빠가 왜 이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아까부터 미려는 내내 한가지 생각에만 골몰하고있었다. 볼펜뒤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냥 꿈이였다고 떨쳐버리려 해도 도무지 생각대로 되주질 않았다. 펼쳐놓은 다이어리에는 어느새 6500747 이 어지럽게 씌여져있었다.
밤마다 수없이 많은 꿈들을 꾸면서도 아침에 일어날때는 아무것도 기억못하는 미려였다. 그때문인지 아침에 일어나서도 항상 피곤하고 졸리기만 한 미려였다. 그러는 미려를 두고 누군가 신경쇠약이라고 그랬다. 신경쇠약증은 두가지 증세로 표현되는데 하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잡꿈을 꾸며 잠을 너무 많이 자는거라는것이다. 미려일 경우 후자라는거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미려는 그런가보다고 여기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억 안나는 꿈을 굳이 회억할려고 하지 않았다. 혹 가다 종일 안생각나던 꿈이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 생각나는 경우가 있긴 했어도 늘 앞뒤가 안맞는 허드레꿈뿐이였었다. 그래서 당연히 미려에겐 몽조란것이 통하지가 않았다. 이렇게 꿈에 대한 기억이 미비한 미려가 꿈에서 오빠와의 만남을 ,오빠가 말해준 전화번호를 그렇게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게 미려 스스로 생각해도 불가사의했다.
(혹시 밤중에 깬거여서 그렇나?)
미려는 머리를 홰홰 내저었다. 아무리 생각해야 이상하기만 했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번호판을 꾹꾹 눌렀다. 신호발송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멈칫했다.
(뭐라고 말해? 누굴 찾아야 하는건데.)
미려는 다시 핸드폰뚜껑을 닫고 말았다. 굳이 전화번호를 확인할려고 하는 자신이 부질없어보였다.
창밖은 어느새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뚜~뚜~>>
전화발송신호음만 멋적게 들려오고있었다. 미려는 집요하게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신호가 열번쯤 울렸고 미려가 막 핸드폰을 끄려하는 때였다.
<<누구세요? 하아~>>
낯선 목소리였다.
<<네?!>>
<<누구시냐구요?>>
어정쩡해진 미려가 반응을 보이기도전에 전화 저편에서 약간 무거운 목소리가 짜증스레 전해오고있었다.
낯선 남자였다. 미려는 얼른 핸드폰뚜껑을 닫아버렸다.
다음, 전화번호확인을 하던 미려의 눈이 커지고있었다.
(이럴수가?)
핸드폰에 말똥하니 찍힌 전화번호는 남편것이 아니였다.
미려는 버쩍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홱 꺽어보니 옆자리가 비여있었다. 생일집이 있어서 저녁 때우고 들어온다던 남편…그래서 남편한테로 했던것일가? 헌데 전화는 엉뚱한데로 발송이 되여버린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바보같이 내가 왜 남편한테 전화를 했지? 내가…)
미려는 이불을 제끼고 일어나앉았다. 아무래도 잠이 올것 같지 않았다.
랭장고에서 빵을 꺼내 입이 터지게 떼여먹었다. 언젠가부터 밤이면 늘 배고픔에 시달렸던 미려다. 위가 쌀쌀해나며 배고픔을 느낄 때마다 선잠에서 깨여난 미려는 먼가를 꾸역꾸역 위속에 밀어넣는데 열중했다. 그래야 다시 편안히 잠들수 있었으니까.
빵을 한가득 떼여먹던 미려의 눈앞에는 얼핏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려가 밤중에 일어나서 먹을것을 먹을 때마다 신경이 예민한 남편은 잠에서 깨여 부스럭거리는 미려를 못마땅한 눈길로 째려보군 했었다.
<<먼 여자가 맨날 배고파서 저 모양이지? 소문이라도 나면 남편이 굶기는줄 알겠다.>>
남편이 없는 이 순간도 미려는 등뒤에 꽂혀지는 그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빵의 마지막 부스레기까지 목구멍으로 넘겨버린 미려는 컴퓨터를 켰다.
미려의 손이 익숙하게 자판기를 두드렸다.
연변채팅방사이트가 모니터에 확 떠올랐다. <<30대인연만들기>>방에 <<가을향기>>-미려가 가볍게 들어섰다. 한참후 채팅방대화창에는 이런 글들이 떠올랐다.
와인의 향기: 어디시죠?
가을향기: 세상뒤골목입니다. 댁은요?
와인의 향기: 아~ 전 앞골목입니다. 뉘시죠?
가을향기: 길가는 여자입니다. 댁은요?
와인의 향가: 반갑습니다. 길가다 서있는 남자인데 길가는 여자 없나 살피고있었거든요.
가을향기: 그러세요? 마침 길가에 남자가 서있길래 멈춰서서 보니 별로이던데요? 댁인가봐요.
와인의 향기: ㅋㅋㅋ 아뇨. 건 앞서가던 사람이죠. 전 지금 막 오는 길이거든요. 님이 아직 안보이는데요.
가을향기: 아~ 그럼 저기 오시는 분인가봐요. 멀리서 보면 근사한데 가까이에서 보면 어떠실는지…
와인의 향기: 가까이에서 봐도 멋있어요.
가을향기: ㅎㅎㅎ
와인의 향기:근데 우리 인연이 있나봐요. 길가는 여자하고 길가다 서있는 남자, 가을향기와 와인의 향기 서로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요?
가을향기:글쎄요. 근데 길가는 여자하고 길가다 서있는 남자 너무 많아서 탈이죠.
와인의 향기:ㅋㅋㅋ
……
방금전의 불쾌감을 잊은채 미려는 대화속에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모니터화면에 나타나는 글줄을 마주하고 앉아서 미려가 배실배실 웃고 있었다……
3
하늘이 침침하니 낮게 드리워있었다. 그러더니 점심때가 되기전부터 눈을 푸실푸실 날리기 시작했다.
미려의 책상우에는 문서들이 갈곳을 모른채 이리저리 널부러져있다. 언제나 깔끔하기로 소문난 미려가 그 앞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다. 하지만 눈길속에 말할수 없는 애수가 깊게 깔려있었다.
눈!
눈때문에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던것이다. 눈때문에 무작정 울음이 터질것만 같았다.
한달전까지만도 좋았던 눈이 이제는 싫었다. 미웠다. 모든것이 눈탓이기라도 하듯 미려는 눈내리는 창가에서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와아~ 눈 내리네. 오늘이 평안의 밤이지? >>
사무실 꼬맹이가 눈을 털며 들어선다.
그래 맞어, 크리스마스전날- 평안의 밤!
미려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탁탁 털어댔다.
하필이면 평안의 밤이 오늘이야?
컴이 켜졌다.
채팅방 사이트가 떴다.
<<30대인연찾기>>방에 들어갔다.
없었다.
<<코리아대화>>방에 들어갔다 .
없었다.
미려는 누군가를 집요하게 찾아헤맸고 그 누군가는 어디 공기속에 증발되기라도 한듯 종적이 없었다.
어스름이 내리깔리고 가로등이 하나 둘 눈을 밝히기 시작한 밤.
티비는 저혼자의 연주에 열을 올리고있고 발치에 나뒹구는 빈 맥주깡통.
미려는 바락바락 짝태를 찢었다. 한오리씩 입에 쑤셔넣었다. 아작아작 씹어댔다. 짝태하고 무슨 원쑤를 지기라고 한듯이 악을 쓰고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이 놈의 짝태! 니 놈이 값이 얼만데 늘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그랬다. 미려는 짝태때문에 비참해지는 자신을 억지로 추스리고 있었다. 이제 먹어본지도 1년은 거의 된 짝태다. 그날 이후로 미려는 짝태를 입에 대지 않았었다.
그날따라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늦게까지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한 미려는 아빠트단지모퉁이를 돌아서다말고 깜짝 놀랐다. 어둠속으로부터 웬 그림자가 불쑥 튀여나왔던것이다.
<<동생이지?!>>
<<?!>>
투박하게 튕겨나오는 중국말에 미려는 어정쩡해지고 말았다.
동생이라니? 누가 누구 동생이란 말인가?하지만 속으로 잠간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마음을 진정하며 희끄무레한 어둠속에서 상대방을 살펴보던 미려의 속이 철렁했다. 다름 아닌 한 아빠트단지에 있는 택시운전수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미려를 일별한채 택시운전수는 미려의 오빠가 낮에 가짜돈으로 택시비를 물고 거스름돈 95원을 받아간 일을 격한 어조로 빠르게 뱉어냈다. 늘 드나드는 오빠라 미려와 한가족임을 눈으로 익히 알고있었던 택시운전수는 저녁무렵부터 내내 미려를 지키고서있었던것이다.
100원짜리를 꺼내 운전수에게 넘겨주고 거듭 사과를 하면서 미려는 입을 앙다물었다. 더는 참을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빠. 서른도 이제 중턱을 넘어섰는데 딱히 하는 일도 없이 부모님 농사일도 돕지 않고 허구한날 시내에 있는 미려의 집에 붙박혀서는 어중이떠중이들과 섭쓸리는 꼴이 이제는 눈에 거슬리다 못해 꼴사나왔던것이다. 남보다 못하지도 않은데 왜 장가를 못가는지 몰랐다. 장가라도 가면 상황이 좀 달아질수도 있을텐데… 쩍하면 매부앞으로 용돈을 달라고 손을 쑥 내미는 오빠가 안스러웠던 감정이 인젠 미움으로 돌아선지도 이슥하다. 아무리 친정오빠라지만 남편이며 시댁눈치가 안보일리가 없었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따끔하게 축객령을 내리려던 참이였다.
오빠가 들어선것은 밤 아홉시쯤이였다. 술냄새를 확 풍기며 들어서는 오빠의 손에는 짝태오리가 가득 들려져있었다.
<<미려야, 너 이거 좋아하지? 이거 먹어.>>
쑥 내미는 오빠의 손을 미려는 매몰차게 쳐던졌다.
<<그거 얼마짜린줄 알아? 백원짜리야. 날더러 백원짜리 짝태오릴 고맙게 먹으라구?>>
말과 함께 미려는 택시운전기사한테서 넘겨받은 백원짜리 가짜돈을 쪼박쪼박 찢어 오빠얼굴에 확 뿌렸다.
<<?!…… 너?>>
흠칫하는 오빠앞으로 이미 준비해놓은 려행용가방을 던졌다.
<<오빠, 제발 가줘! 내 집에서 나가란 말이야! 나 이제 오빠 꼴 더는 못봐, 오빠가 계속 이렇게 나오면 나 리혼할수밖에 없어!>>
그날 밤으로 오빠는 미려의 집을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나간 오빠는 1년도 채 안되여 불치의 병을 선고받았고 결국 얼마전에는 세상을 달리하고말았던것이다. 비록 그 모든것이 다 미려의 탓은 아니였지만 오빠의 가슴에 쾅쾅 못을 박아버린 그 일때문에 미려는 늘 체증을 앓고있었던것이다. 그러다가 그것이 마치 짝태의 탓이기라도 하듯 짝태를 거부해나서기 시작했다. 짝태가 보일 때마다 오빠를 쫓아버린 그 장면이 재생되였던 탓인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꿈에 오빠가 보일 때면 미려는 늘 짝태오리를 거머쥐고 허둥대고있었다.
그런 짝태를 오늘은 왜 사들고 왔던지 미려로서도 알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오빠에 대한 죄스러움을 찢어내기라도 하듯이 바락바락 짝태를 찢어내는 미려다.
카~악~
맥주가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게 몇개째던가? 기억이 안난다.
--야, 너 머하고 있어?
--보면 몰라? 맥주마시고 있잖어.
난데없는 목소리에 게두덜거리며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빠?!
갑자기 벽속으로부터 오빠가 환영처럼 걸어나오고있었던것이다.
--그래 나다. 그런데 왜 그렇게 깜짝 놀라고 그러니?
오빠의 목소리에는 윤기가 흐르고있었다.
--오빠 언제 왔어? 못봤었는데. 첩약은 다 먹었어?
--후훗~ 얘가? 내가 무슨 약탕관이냐? 이 몸에 첩약은 무슨 첩약이니? 근데 왜 전활 안하니?
--무슨 전화?!
--우리 선비님이 무슨 기억이 이러노? 나 생각나면 6500747에 전화하라 그랬잖어?
--아~ 맞다! 그래 전화하라 그랬지. 미안해요, 오빠! 내가 깜박했어.
쳐들린 입귀로 웃음을 흘리고있는 미려의 눈이 개개 풀어지고있었다.
--오빠? 오빠야?
--네? 누구 찾아요?
--아참, 미려라니까! 나야, 나! 김미려! 오빠 동생이야!
-- 미려?
--이제야 아는구나. 오빠, 오늘 평안의 밤이지?
--전화 잘못……
--오늘말이야, 오빠, 남들은 오늘이 평안의 밤이라 그러는데 난 왜 하나도 안편하지? 내가 지금 아파! 마음이 아파, 마음이 아프다구!
--저기요, 전화……
--오빠, 내가 지금 술마셔! 오빠 금방 봤지? 내가 술마시는거! 오빠, 미안해! 전화두 못하구… 이렇게 있어서 미안해! 내 속마음이 그런게 아닌데 왜 오빠만 보면 그렇게 나쁜 말만 골라 하고 나쁜 짓만 했는지 몰라.흐흑,흐흑~ 오빠, 정말 미안해!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가슴이 아파! 오빤 날 용서하지마. 두고두고 미워해!응? 흐흑~
미려는 핸드폰을 든채 오열을 쏟고있었다.
첫댓글 오래간만에 선생님의 좋은글을 보네요.앞으로 좋은글 많이 기대합니다
즐감하고 하회를 보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