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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660년, 서쪽 바라보고 합장한 채 입적한 수초(守初) 선사
현종 1년(1660년)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 佛書普及社, 1978.
(국립박물관 디지털자료).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新久館, 1918. 권1
활안 한정섭 · 해월 오청환, 『한국고승전』(下 조선편),
불교정신문화원, 2014.
취미翠微 수초 선사는 자가 태혼太昏이고 성은 성成씨로 우리나라의 명신 성삼문의 방계 자손이다. 만력 경인년(선조 23, 1590) 6월 3일에 경성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경헌 장로敬軒長老에게 맡겨 머리를 깎았다.
두류산에 들어가 부휴浮休 선사를 찾아뵈었다. 부휴 선사가 하루는 제자 벽암에게 일렀다.
“훗날 크게 도를 깨달을 자는 틀림없이 이 사미일 것이니, 너희들은 반드시 잘 보호해야 한다.”
경자년(현종 1, 1660) 6월 을유일에 세수하고 목욕한 다음 옷을 갈아입고 종을 울리고 스님들에게 결별하는 말을 하였다.
“나는 이제 쉬려 한다.”
그리고 3일 뒤 정해일, 결가부좌하고 서쪽을 바라보고 합장한 채 입적하였다(結趺向西 合掌而浙). 세수는 79세요, 법랍은 60년 남짓이었다. 사리 2매를 오봉산 조계에 모셨다.
卍 보정의 꼬리말
『海東佛祖源流』에 나오는 아주 짧은 기록이지만 극락 간 사실을 아주 정확하게 기록한 좋은 본보기다.
7. 1662년, 3년 염불하고 연꽃나라(蓮花) 간 명조대사
현종 3년(1662년)
있는 곳 :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 하행동 안심사
강원도 회양군 장양면 장연리 표훈사(表訓寺)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新久館, 1918. 권1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新久館, 1918.
조선국朝鮮國 가선대부 국일도대선사 부종수교 복국우세 비지쌍운 의승도대장 등계 嘉善大夫 國一都大禪師 扶宗樹敎 福國祐世 悲智雙運 義僧都大將 登階를 하사받은 허백당 대사 비문과 머리말(幷序)
원임 대광보국숭록대부原任 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 춘추관 홍문관 예문관 관상감사 세자사議政府 領議政 兼 領經筵 春秋館 弘文館 藝文館 觀象監事 世子師 이경석李景奭이 글을 짓고,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행지중추부사 겸 판의금부사 예문관제학行知中樞府事 兼 判義禁府事 藝文館提學 오준吳竣이 글을 쓰고, 숭헌대부崇憲大夫 낭선군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郞善君 兼 五衛都摠府 都摠管 우俁는 이 전액篆額을 썼다.
예전에 내가 임금의 은혜를 입어 금강산에 휴가를 갔을 때 처음으로 허백당虛白堂이 선림禪林의 종사가 된 것을 알았는데, 송월당 응상應祥 스님 법통을 이었다 하였다. 몇 년 뒤 하교를 받고 급히 영서 땅으로 내려갈 때 허백이 보개산寶蓋山에서 찾아와 밤새도록 함께 차가운 등잔의 심지를 잘라내며 이야기했으나 내가 아직 우군右軍 띠를 풀지 못하였으므로 은봉銀峯의 석장錫杖(고승 은봉이 석장을 타고 날아다녔다는 고사)을 타고 먼저 떠나갔다. 또 몇 년 뒤 내가 남쪽에서 서쪽으로 왔을 때 대사가 서울에 와서 우리 집을 찾았는데 번화한 도심에는 발길도 하지 않고 나를 찾아와서 묘향산에 새로 지은 암자의 기문記文을 부탁하였지만, 오랫동안 손을 대지 못하여 승낙하고도 해 주지 못해 미안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멀리서 마음으로만 왔다 갔다 했다.
작년 말 그의 제자 삼인三印과 설해雪海 등이 천릿길을 달려와서 스승이 입적하였다고 말하고 그의 행장을 내놓고 비문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 “슬프다! 생전에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죽은 다음에 어찌 차마 비명을 짓지 않겠는가?”하고는 그 행장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대사의 속명俗名은 계국繼國, 법명은 명조明照, 성은 이씨이고, 홍주 사람이고, 허백虛白은 집 이름이다. 아버지 통정대부 춘문春文은 강동에서 살았고 어머니 신평 한씨 新平韓氏는 훈련원 주부主簿 승무承武의 따님이다. 이상한 꿈을 꾸고 임신하여 만력 계사년(1593년) 11월 초 9일에 (대사를) 낳았는데 골상이 매우 기이하며 귀가 크고 얼굴 아랫부분이 두터웠다. 어려서부터 냄새나는 남새(葷菜)를 먹지 않고 놀 때도 예불을 하였으며 책을 읽으면 한 번에 몇 줄씩 읽었다.
겨우 7, 8세에 이미 출가할 뜻이 있어 십삼 세에 양육사養育師(나이가 어려 출가하기 전에 돌보아 주는 승려)인 보영普英 스님을 좇아 묘향산으로 가서 사명 대사를 모시고 800명이 넘는 승려와 무리를 지어 지내니 마음이 매우 기뻐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이때 사명 대사가 조정의 명을 받아서 서울로 가니 현빈당玄賓堂 인영 스님을 좇아 16가지 바깥 경계(六塵)를 끊어 버리고 선종과 교종을 모두 탐구하고 연구하였는데 완허당玩虛堂에게서는 교리敎理, 송월당松月堂에게서는 선리禪理를 배웠다. 얼마 뒤 두류산頭流山에 가서 무염당無染堂에게 의심스러운 것을 질문하고 묘향산으로 돌아왔다.
병인년(1626, 인조 4년) 봄에 관서 도백道伯이 (조정에) 아뢰어 팔도의승도대장八道義僧都大將으로 임명되어 승군 4,000명 남짓을 거느리고 (관군과) 협력하여 안주安州를 지켰다. 흉악한 청나라 군대가 사방에 가득하니 큰스님들도 할 수 없었고, 국토 산하는 큰 변고가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성휘閔聖徽 공이 북관(함경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대사를 모시니 의승義僧을 거느리고 충성심으로 곡식을 모아 군량을 도왔다. 이 사실이 보고되자 조정에서는 가상하게 여기고 가선대부 국일도대선사 부종수교 복국우세 비지쌍운 의승도대장 등계嘉善大夫 國一都大禪師 扶宗樹敎 福國祐世 悲智雙運 義僧都大將 登階 첩지를 내렸다. 대사의 지혜는 더욱 빛나고 자비로운 배로 중생을 구제하니 명성과 업적이 높아져서 민간과 불교계에서 모두 존경하였다.
국가 정세가 안정되자 고요한 산속에서 수도하고자 표주박을 치고 고리 6개 달린 지팡이를 짚고 물 건너 산 넘어 동쪽으로는 봉래산蓬萊山에서 남쪽으로는 방장산(지리산)에 오르고 심지어는 바다의 섬까지 절과 선방을 두루 찾아보았다. 불법의 참된 묘리妙理를 크게 확충하시니 제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수백 명에 이르러 소나무 숲길이 막힐 정도였다.
서쪽 구월산九月山에 이르러 패엽사貝葉寺에 머물렀는데 명성을 듣고 쫓아오는 사람들이 전과 다름없었다. 묘향산 보현사 여러 스님이 대사를 맞이하여 모시고 돌아가 스승으로 섬겼다. 옛 사고史庫 터에 불영대佛影臺를 세워서 벽 보고 수도하는 장소로 삼았다.
몸은 도량(祇樹: 祇樹給孤獨園)에 의지하고 입으로는 연꽃(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舌欲蓮花) 수행을 3년간 이어 갔다.
하루는 가까운 여러 암자를 한가로이 거닐며 다른 스님과 샘 · 우물 등을 구경하다가 홀로 먼저 돌아가면서 “나 이제 가야겠다.”라고 하니 듣는 사람들은 절로 돌아간다고 여겼지만, 대사의 뜻은 장차 입적할 것을 안 것이다. 아픈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붓을 잡고 (임종) 게를 쓰니 다음과 같다.
劫盡燒三界 (겁진소삼계) 겁이 다하면 삼계도 타 버리지만
靈心萬古明 (영심만고명) 신령한 마음은 만고에 빛난다.
泥牛耕月色 (니우경월색) 진흙으로 비진 소가 달빛을 갈고
木馬掣風光 (목마체풍광) 나무로 깎은 말이 풍광을 끌어당긴다.
이날 저녁 눈을 감고 앉아서 한가롭고 느긋하게 가셨으니, 곧 신축년(1661년) 9월 8일, 나이는 69세, 법랍 57이다. 여러 제자가 그리워하며 슬픔을 머금고 맑고 지극한 정성으로 한 달이 지난 뒤 깨끗한 곳에서 화장火葬 하였는데 상서로운 구름이 자욱이 덮였고, 겹겹의 뱅뱅 도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갑자기 공중에서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사리舍利 6알이 떨어지니 보현사 서쪽 기슭에 함께 석종石鐘을 만들어서 모셨다. 또 금강산, 보개산, 구월산 및 해남의 대흥사에 나누어 가지고 가서 모셨는데, 그 일을 관리한 사람은 의흠義欽을 비롯한 십여 명이었으니 그 스승을 위한 정성이 참으로 갸륵하다고 하겠다.
그 문도의 말이 “위로 거슬러 올라가 (붇다인) 능인能仁으로부터 임제臨濟에 이르기까지 무려 70대가 넘는다고 한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근래의 석옥石屋 → 태고 太古 → 환암幻庵 등은 모두 잘 드러나 있어 찬찬히 살펴 볼 수 있고, 부용婦容 → 청허淸虛 → 사명四溟 → 송월松月도 모든 사람 눈과 귀에 익히 남아 있다. 대사는 송월이 의발衣鉢(법통)을 전하자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받으니 일곱 대중(七衆)의 명망이 더욱 높아져 귀의하는 마음이 한층 간절하였다. 비문 글(銘)은 이렇다.
休哉慧心 (휴재혜심) 빛나라! 슬기로운 마음,
夙自丱兮 (숙자관혜) 두 가닥 머리 어릴 적부터,
在醜逈拔 (재추형발) 더러운 곳 우뚝 뛰어나니
莫之與齊 (막지여제) 더불어 견줄 이 없도다.
早啓明鐍 (조계명휼) 일찍이 진리 자물통 열고자
得師師之 (득사사지) 스승을 얻어 섬기고,
遍叅覺苑 (편참각원) 두루 절을 찾아다니며
法雲日垂 (법운일수) 날마다 법 구름 전해 받았네.
香嶽梵住 (향악범주) 묘향산 절에 머물며
甁錫淹蹤 (병석엄종) 물병 지팡이로 돌아다니니,
淸江之上 (청강지상) 말은 강물 위에
유흘기용 (유흘기용) 성벽처럼 우뚝하구나.
承命協守 (승명협수) 왕이 나라 지키라 명하니
義何敢辭 (의하감사) 어찌 바른 일 어기겠는가,
金湯失險 (금탕실험) 견고한 성을 잃어버리니
雲鳥不枝 (운조부지) 구름 속 새도 앉을 가지 없구나.
再登將壇 (재등장단) 다시 장수 단에 올라
重建牙旗 (중건아기) 거듭 대장군 깃발 세우고
精虔效勞 (정건효로) 정성으로 힘써 일하니
優以峻秩 (우이준질) 높은 공훈자로 우대하였네.
震蕩甫定 (진탕보정) 노략질이 비로소 끝나고
휴피선불 (휴피선불) 왕이 삼전도에서 항복하지
隻履翩翩 (척이편편) 한 짝 짚신 신고 바람결 따라
浮遊四方 (부유사방) 사방으로 떠돌아다녔네.
歸來故壑 (귀래고학) 옛날 골짜기로 돌아와
嗒然新堂 (탁연신당) 모든 것 잊고 새집 앉아
六時蓮漏 (육시연루) 하루가 내내 끝날 때까지
三乘細繹 (삼승세역) 삼승을 찬찬히 풀어냈다.
疑條盡釋 (의조전석) 의심나는 가닥 다 풀고
惑網洞開 (혹망동개) 걸림 없이 환하게 열렸네.
日夕示寂 (일석시적) 어느 저녁 떠날 것 알리고
跏趺坐結 (가부좌결) 가부좌하고 삶을 마쳤다.
大弟群號 (대제군호) 많은 제자들 함께 울고
松泉共咽 (송천공열) 나무와 샘도 함께 목메어라.
寶珠斯得 (보주사득) 이에 보석 구슬(사리) 얻으니
輝暎瑩澈 (휘영형철) 밝게 빛나 물속에 비친 것 같으니
시팔제이 (시팔제이) 여덟에서 둘 뺀 여섯이요
재오가일 (재오가일) 다섯에다 하나 더한 여섯이라
于以奉之 (우이봉지) 이를 받들어 모시자
寶塔之中 (보탑지중) 보배로운 탑 속에다
寶賢之西 (보현지서) 보현사普賢寺 서쪽이요,
安心之東 (안심지동) 안심사安心寺 동쪽이라.
豈獨此專 (기독차전) 어찌 이곳에만 모시겠는가!
亦將分藏 (역장분장) 그래서 나누어 (6곳에) 모시니
浮雲攸衛 (부운유위) 뜬구름이 지켜 주고
明月含光 (명월함광) 밝은 달이 비추어 주어
千秋不泯 (천추불민)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고
有彼妙香 (유피묘향) 저 묘향산에 있으라.
임인(1662, 현종 3년) 5월 일 세움
【뒷면 줄임】
卍 보정의 꼬리말
허백당虛白堂 명조明照(1593~1661) 스님은 조선 중기 정묘호란 전후 승병장으로도 크게 활약한 고승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허백당은 13세에 사명 유정惟政(1544~1610) 밑에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았고 송월 응상松月應祥의 법통을 이었다. 정묘호란(1627, 인조 5)과 병자호란(1636~1637년, 인조 14~15) 때 의승대장으로 공을 세운 마지막 인물이다. 그러나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고 전쟁이 끝나자 표주박 차고 6개 고리 달린 지팡이 짚고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 구월산, 묘향산을 두루 다니면서 수행하고 제자들을 길렀다.
난세를 겪은 스님은 말년에 3년간 정토수행을 하였다는 대목이 행장에 나온다. ”몸은 도량(祇樹: 祇樹給孤獨園)에 의지하고 입으로는 연꽃(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舌欲蓮花) 수행을 3년간 이어 갔다“고 해서 참선한 스님이지만 입(舌)으로는 염불하여 연꽃나라(蓮花)에 태어나기를 바랐다(欲). 그리고 마지막 화장火葬할 때 ‘상서로운 구름이 자욱이 덮였고, 겹겹의 뱅뱅 도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라고 해서 극락에 간 증험이 나타났다.
▣ 연천군 심원사 터 부도 무리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 342-1)
2022년 6월 6일 옛 삼원사 터에 남아 있는 부도를 찾아가 ⓭번이 허백당虛白堂 부도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안내판에는 ‘모르는 부도’라고 했지만 ⓭번 부도는 이름 쓰인 곳이 뒤로 돌아가 있어 언뜻 판별하기가 어려웠으나 한자로 ‘허백당’ 세 글자가 뚜렷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부도浮屠는 ⓮ 취운당대사비翠雲堂大師碑, 취운당 대사비 옆에 있는 ⓯ 불명의 부도, ⓰ 제월당대사비霽月堂大師碑, ⓱ 박씨공덕비朴氏功德碑, 불명 석종형 부도, 소요당逍遙堂 부도, 팔각받침과 구형 탑신의 불명 부도, 장고형 중대석이 있는 불명 부도, ❿ 연월당蓮月堂 부도, 허백당虛白堂 부도, 총음당부도, ❷ 풍담당楓潭堂 부도, ❸ 청하당靑霞堂 부도, ❹ 호연당浩然堂 부도, ❺ 청심당淸心堂 부도 등 모두 15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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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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