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각지대
고미화
며칠 전 머리를 손질하려고 들렀던 헤어숍에서 잠시 놀란 적이 있다. 거울에 비치는 미용사의 노련한 손놀림을 무심히 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정면에 보이는 거울 속의 피사체는 내가 분명한데, 다리와 신발은 다른 사람이었다. 혹 착시 현상인가? 하고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원인을 발견하고는 잠시 실소를 했다.
내 시계를 교란시킨 주범은 바로 유리벽에 걸린 거울이었다. 헤어숍 실내 중앙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었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의자가 마주 보게 놓여 있는데, 의자 앞에는 거울이 하나씩 덧대어 걸려 있었다. 천장 가까이 높이 걸린 거울은 사람의 무릎 정도까지만 내려왔다. 그래서 의자에 앉으면 거울의 면적만큼은 한쪽의 사물만 보이고, 거울이 없는 공간은 반대편이 보이는 구조였다.
형편없는 내 관찰력을 새삼 느꼈다. 이렇게 실체를 마주하고도 온전히 볼 수가 없는데,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사각지대는 얼마나 많을까? 보이는 것 너머의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 마음의 사각지대 면적은 또 어느 정도인지.
언젠가 초등학교 친구들 네 명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생활 터전이 각각 달라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연둣빛 추억의 끈이 일 년에 한두 번의 여행으로 이어주고 있다. 유년 시절 지기들과의 여정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된다.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기억 속에서 서로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있다.
채석강 근처의 숙소에 여장을 풀고 황금빛 노을을 따라 등대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우리는 밤이 이슥하도록 추억의 뜰을 거닐었다. 여인들의 여흥은 유쾌하게 수다스러웠고, 초가을 말간 달빛은 홀로 고요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친구가 마련해준 근사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커피 한잔을 들고 발코니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친구 K가 다른 친구를 향해 큰 소리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찬물을 끼얹은 듯한 어색한 순간 잠시의 적막을 깨고 항변하듯 K는 말을 이어갔다. 붉어진 그의 얼굴은 자못 심각해 보였다. 화살을 받은 J는 미안해하면서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참 어이없게도 긴장감이 감도는 그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에게서 어린 시절 모습이 설핏 배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작은 일에도 잘 토라지곤 했던, 지난 시절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만 같아 정겨워 보이기만 했다. 서로 자신의 주장에 열을 올리던 두 친구는 급기야 나에게까지 하소연을 하면서 자신을 옹호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두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의 갈등은 출발하면서부터 비롯되었던 듯했다. 미처 해소되지 못한 채 가라앉았던 앙금이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떠올라 불거진 것 같았다. 강화도에 사는 K가 서울에 있는 J를 태우고 동행했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가 복잡한 여의도 한복판이라 서로 고생을 좀 한 모양이었다. 운전을 하는 K와 하지 않은 J가 서로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각과 판단이 일치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마침내 딸아이의 오피스텔이 여의도 근방이라, 자주 다니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소송인들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두 친구의 주장이 모두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어 잠시 난감했다. 반가운 해후를 앞두고 설렘이 앞섰을 그 시간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식탁에 놓고 친구들과 마주 앉았다.
“이 커피잔 말이야. 이쪽에서는 내가 앉아 있는 쪽만 보이는데, 그쪽에서도 반쪽만 보이지 않니? 지금 우리 상황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 날 언제쯤 두 친구의 화해가 이루어졌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우리의 즐거운 여정은 계속되었고, 친구들의 우정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자기가 사는 지역의 특산물로 정을 나누며 기약했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남편과 어떤 사안을 두고 논쟁을 벌이다 뒤로 물러섰다. 가치관이 비슷한 우리 부부는 생각과 판단이 유사할 때가 많다. 그런데도 서로 다른 성향 때문에 대립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관점에서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서로의 사각지대를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주로 남편이 양보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때가 많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만족감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이어졌던 경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시대에 익숙해진 거리두기, 때로는 자신과의 거리두기도 필요할 때가 있다. 가까이서 보이지 않던 것이 한 걸음 물러나 마음밭에 여유를 들여놓으면 마음의 시계視界도 넓어진다. ‘나’라는 중심에서 벗어나 적당한 거리에 서면 조금 더 여유롭게 삶을 관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적당한 거리 어디쯤에는 마음의 사각지대를 비춰 줄 거울을 찾을 수도 있다. 내 아둔함에 놓쳐버릴지도 모를 사각지대를 밝히는 거울이 필요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개시개비皆是皆非'등 떠오르는 몇 개의 낱말들을 되새겨 본다. 내 의식의 사각지대를 비춰주기를 기대하면서.
첫댓글 고미화선생님이 친구들에게 한
“이 커피잔 말이야. 이쪽에서는 내가 앉아 있는 쪽만 보이는데, 그쪽에서도 반쪽만 보이지 않니? 지금 우리 상황도 마찬가지 아닐까?”
의미있는 이 말이 압권입니다.
자기가 보이는 것만 보고 서로의 사각지대를 간과하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채석강에서 옛친구들과 동심을 보고 왔군요. 읽다가 깨웃음 지었답니다~~상상하니 재밌잖아요~~후훗
역시 어디에서나 냉철한 판단과 유한 잣대로 완숙한 분위기를 이끌어 가실 수 있는 고선생님의 내공~~누가 따라가겠습니까. ㅎㅎ
깨웃움...
유쾌한 시선으로 봐 주시니 제 마음도 밝아지네요.
고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편한대로 보고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려는 성향이 있지요. 마음에도 사각지대가 있다는 의미가 와 닿습니다.
글이 편안하게 줄줄 읽혀서 좋았습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배고 너그러운 고선생님의 겸손이 보이는 글입니다.
요즘 어려운 시기이다보니 삶이 팍팍하여 점점 이기적이고 옹졸해지는 것 같습니다.
너그러움으로 세상을 대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다보니 몇해전 친구들과 여행갔을때 두 친구가 맞섰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고선생님처럼 못지게 한마디해줄껄...
그냥 들어주기만 했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