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리모델링 가이드
‘계륵(鷄肋)’이란 말이 있습니다. 닭의 갈비뼈로 먹을 건 별로 없지만 버리기엔 또 아까운 부위입니다. 재테크에도 계륵은 있습니다. 크게 남는 투자처는 아닌데 무시하자니 영 찜찜한 경우입니다. 보험이 대표적입니다. 당장 돈은 안되지만 멀리하기엔 앞날이 걱정스럽습니다. 실제로 보험은 천의 얼굴을 지녔습니다. 특히 최근처럼 먹고살기 힘들 때 보험 딜레마는 한층 가중됩니다. 가령 ‘사망리스크’를 위해선 보험이 필수지만, 그것보다 불황여파에 따른 당장의 ‘생존리스크’가 더 가혹합니다. 최근 보험해약률이 급상승한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사실 미래위험에 대비하는 보험료보다 오늘 저녁 찬거리를 마련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이 경우 보험은 사치일 뿐입니다.
흔히 보험전문가들은 본인의 재정상황에 어울리는 ‘맞춤형 보험’을 권합니다. 몸에 맞는 걸 골라야 보험 본연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서 입니다. 게다가 한 번 부으면 20~30년간 납입해야 하는 장기상품이 적잖아 선택은 그만큼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도면밀한 준비없는 보험가입은 눈뜨고 공돈 날리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보험가입은 재테크의 절대원칙입니다. 보험은 금융상품×주식×부동산처럼 포트폴리오 배분전략의 큰 축 중 하나입니다. 보험없는 재테크는 ‘앙코 빠진 찐빵’입니다. 많지 않더라도 일정 부분을 반드시 보험에 배려해야 합니다. 특히 어려울 때 닥치는 사고×불행은 더 가혹합니다. 보험은 이럴 때 힘을 발휘하는 법입니다. 결국 보험이 재테크의 디딤돌이냐, 걸림돌이냐는 전적으로 가입자의 마인드와 전략수립에 달렸습니다.
사실 재테크의 출발은 보험에서 비롯돼야 합니다. 보험전문가인 서병남 인스밸리 사장은 “사고로 경제활동이 멈춰지면 치료(장례)비는커녕 가족생계도 불가능해진다”면서 “이 경우 아무리 재테크로 돈을 벌어놓았어도 순식간에 잔고가 바닥난다”고 말합니다. 암이라도 걸리면 기둥뿌리 다 뽑아먹고 죽는다는 얘기도 낭설이 아닙니다. 따라서 불확실한 미래보장 차원에서 보험가입은 최우선 선택입니다. 서 사장은 “든든한 위험관리의 토대 위에 주식×예금 등 다른 재테크 상품에 가입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현명하다”고 평가합니다. 흔히 적정보험료 수준으로 수입의 5~10%를 꼽지만, 이는 최소한의 위험보장일 때 그렇습니다. 연금 등 노후대책까지 고려한다면 총수입의 30%는 돼야 한다는 게 서 사장의 경험입니다. 노후설계에 보험을 적극 활용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최근 가입자들이 궁금해 하는 보험이슈는 단연 중도해지를 비롯한 ‘리모델링’입니다. 평균 한두가지 보험에 가입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는 꽤 일반적인 의문×테마입니다. 우선 보험을 해약할 경우를 봅시다. 대개 보험해약은 무조건 손해라는 인식이 강한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보장기간이 짧은 보장성보험은 1순위 해약대상입니다. 서 사장은 “질병 발생확률이 낮은 20~30대가 암×건강보험에 가입하면서 보장기간을 10년으로 했다면 이는 별로 소용이 없다”면서 “특별히 발생확률이 높지 않다면 정리하는 게 좋다”고 권합니다. 교육×저축보험처럼 수익률이 낮으면서 보장 생존자금이 적어도 없애는 게 유리합니다. 서 사장은 “보험상품은 가입시기와 회사별로 보험료가 다르다”면서 “예정이율 등이 낮게 적용돼 보험료가 비싼 경우도 해지할 것”을 덧붙입니다. 반면 종신보험(확정금리형)이나 연금보험은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고금리(예정이율) 보험은 가급적 들고 가는 게 효과적입니다.
중복보장도 정리대상입니다. 단 중복보장을 정리할 때 무조건 해약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가령 다른 보장은 적절한데 특정보장만 중복됐다면 그것만 손보면 됩니다. 만약 중복보장이 특약사항이라면 특약만 조정하는 식입니다. 반대로 주보험이 중복됐다면 보장금액을 줄이는 감액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이중으로 납부하기보다 적절한 수준에서 재조합하라는 뜻입니다. 서 사장은 “보장조건을 조정할 때 가급적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들어야 한다”고 밝힙니다. 보험 ‘갈아타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막강진용의 신상품 앞에서 과거 가입보험에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면 갈아타기도 괜찮습니다. 비슷한 내용인데 보험료가 비싼 상품에 가입했었다면 새 상품에 올라타는 게 유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구관이 명관입니다. 가령 요즘 암보험은 신상품 가입 때 90일이 지나야 보장받는 등 제한이 따릅니다.
보험 리모델링은 본인의 재정상황에 맞게 설계돼야 합니다. 재정흐름을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현재의 보유자금과 앞날의 필요자금을 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장과 저축을 적절히 혼합해 위험관리와 노후설계를 빈틈없이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리모델링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30세 주부가 20년 만기의 암보험에 가입했다면 보장기간은 50세가 끝입니다. 그런데 암 발병률은 고령일수록 더 높아집니다. 정작 필요한 때 보장을 못받는다는 얘기입니다. 이럴 때 80세까지 보장받는 새로운 보험에 가입하는 게 좋습니다. 갈아타기×신규 가입 여부는 본인상황에 달렸습니다. 또 대부분 가입자들은 보험료가 저렴하면서 재해사고 때 고액을 보장받는 상해보험에 가입해 있습니다. 상해보험은 교통사고 때 3~4억원을 보장하는 등 적정보험금을 초과하기도 합니다. 반면 질병사망 때는 그만큼 보장금액이 낮습니다. 이 때 당연히 재해사망은 줄이고 질병사망 보험금은 늘려야 합니다. 서 사장은 “모든 위험에 골고루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합니다.
보험 리모델링이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알아봅니다.
A씨는 두 자녀와 전업주부 아내를 38세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그의 급여는 세후 월 350만원(연 4,200만원) 정도입니다. 지출은 생활비 200만원 외에 대부분 저축을 합니다. 50만원씩 넣던 적금은 다음달이 만기이고, 주택청약저축에 27만원, 교원공제회에 15만원씩 불입하고 있습니다.
보험에 들어가는 돈은 월 58만원 정도입니다. 본인보험으로는 보장성 보험 5만원, 암보험 5만원, 연금보험 15만원, 종신보험 15만원이며 배우자 건강보험 6만5,000원, 두 자녀 보장보험으로 3만5,000원씩 7만원이 들어갑니다. A씨의 보험을 재설계해 봅시다.
보험가입과 재설계에는 몇 가지 기본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보장의 우선순위입니다. 가족 가운데 누구부터 어떤 사고부터 보장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보장대상의 순위는 아무래도 주된 수입원인 가장이 우선이며, 다음으로 배우자, 자녀가 순서가 돼야 합니다. 또 보장우선 순위는 일반사망-재해사망-암/질병보장-수술-입원 순으로 짜는 게 바람직합니다. A씨의 경우 가장인 본인 보험이 가장 많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입니다.
둘째, 보장금액도 중요합니다. A씨의 경우 가장(본인)에 대한 일반사망 보험금이 8,000만원으로 돼 있는데, 이 정도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일반사망 보험금은 가장 연봉의 4~5배가 적당합니다. 따라서 연 4,0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 A씨는 대략 1억6,000만~2억원 정도의 보장이 되도록 보험을 재설계해야 합니다.
셋째, 보장기간입니다. A씨가 가입한 보험은 60세 이전에 보장기간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추세인 만큼 80세 이후까지 보장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보험을 한 곳에만 집중하거나, 고액을 노리는 보험은 실제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재정상황과 현실을 잘 파악해 가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많이 한다면 재해사망 보험금 쪽 비중을 높여야 합니다.
A씨의 경우 교직원이므로 62세 이후엔 퇴직금을 수령할 것이고, 교직원 연금과 교원공제회를 통해 해결될 것인 만큼 노후준비는 어느 정도 돼 있다고 보여 집니다. 따라서 현재 가입한 보험 중 개인연금은 해약하고 보장기간과 금액이 적은 암보험도 해약하는 쪽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일반사망 및 재해사망 보험금을 2배 이상 증액하도록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암, 성인병 등에 대한 보장이 더욱 필요해지기 대문에 이 부분을 강화하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보장금액이 증가되도록 리모델링하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납입보험료의 적정성입니다. 보장성 보험료 수준은 월급 대비 8~15% 정도가 가장 적당합니다. 물론 가계지출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신보험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면 보장대상은 같되 보장기간이 정해져 있는 정기보험으로 갈아타는 식입니다. 다만 정기보험으로 바꾸더라도 보장기간은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시점이어야 합니다.
다섯째, 보험의 가입목적과 이익의 문제입니다. 통상 보험가입을 얻을 수 잇는 가장 큰 이익은 한 가정의 리스크를 줄이고 노후준비를 하는 데 있습니다. A씨의 경우 보장을 충분히 준비하고, 나아가 자녀교육 결혼자금 등 목적의 자금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둬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A씨의 경우 개인연금과 암보험 등 2건의 보험해약 환급금 2,000만원을 상호저축은행의 복리식 세금우대 정기예금에 가족명의로 분산예치하기를 권합니다. 은행보다 연 1~2%의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비상시 예비자금으로 쓰기에도 적당합니다.
90년대 종신보험이 히트를 쳤다면 최근에는 변액유니버셜보험이 세간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각 보험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반드시 가입해야 할 필수보험이란 인식까지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변액유니버셜보험은 변액보험의 투자기능이 유니버셜의 자유입출금 기능과 절묘하게 결합된 경우입니다. 보장과 저축기능이 다 갖춰졌기 대문입니다. 보험료 중 사업비×사망보장비만 빼고 나머지를 펀드로 구성해 투자하는 상품입니다. 납입금액은 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낼 수 있고, 필요시 일부 금액을 인출할 수도 있습니다. 보장×투자의 양수겸장인 셈입니다. 하지만 뭐든 그렇듯 여기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투자실적이 악화되면 해약환급금이 마이너스(원금 대비)가 날 수 있어서 입니다. 실적배당상품으로 구제방법은 없습니다. 예금자보호에서도 제외됩니다. 미래수익에 대한 리스크보장이 없어 비교적 위험도가 높다는 뜻입니다.
보험은 세대별로 전략이 달라집니다. 다른 재테크수단이 고객성향×투자규모에 따라 포트폴리오가 달라진다면, 보험은 연령대가 절대변수로 작용합니다. 20대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종신보험보다 정기보험이 1순위입니다. 그 다음 종신보험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활동이 많은 연령대로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상해보험 가입도 고려할 만합니다. 3040세대라면 종신보험 가입으로 가장 사망시를 보장해야 합니다. 종신보험을 둘러싼 논란이 없지 않지만 여전히 이만한 종합보장상품은 없다는 게 대세입니다. 서사장은 “배우자라면 질병 등에 대한 생존치료를 중간 보장하는 건강보험에 가입하되 보장기간을 가급적 길게 가져갈 것”을 권합니다. 50대 이후는 보험료가 비싸 부담스럽지만 꼭 필요한 보험에는 가입하는 게 좋습니다. 장기간병×장제비 보험이 그렇습니다. 연금보험은 전세대를 관통합니다. 납입기간이 길고 불입액이 많을수록 나중에 받는 연금액도 많아집니다. 때문에 가능한 빨리 준비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결정적이지 않지만 성(性)별로 보험테크도 다소 다릅니다. 가족생계를 떠맡은 가장이라면 종신보험 등을 통해 본인 부재시 가족안위를 챙기는 전략이 현실적입니다. 반면 아내를 비롯한 나머지 구성원은 연령×상황에 따라 건강×상해보험을 가려 가입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건강보험 가입 때는 성별에 따라 자주 발병하는 질병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서 사장은 “유방암이나 비뇨기계질환 등 남녀에 따라 발생하는 질병 차이가 확연하다”면서 “여기에 맞춰 보장범위×금액을 정하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보장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있긴 하지만 CI(Critical Illness×치명적 질병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성별 보험테크의 한 전략입니다. 보험금 지급여부와 민원 발생건수 등을 보면 이 논란에서 조금은 비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