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센프란시스코에 가기 위해
새벽 책꼿이에서 단편 소설집 한권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오후에 공항에 도착해 센드위치로 간단한 식사를 해결하고
비행기에 올라 책을 뽑아 들었다
"석양을 등지고 그림자를 밟았다"란 제목의 단편이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로 시작되는
그녀의 소설이었다
언제 어디서든지 쉽게 그녀의 글과 만난다
잠시 글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센프란시스코 상공이었다
잔뜩 낀 안개 사이로
베이브릿지가 보이고
금문교가 보인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고
밤안개가 가득한 공항을 빠져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비행기 티켙과 패케지로 호텔을 예약했는데
센프란시스코 다운타운과는 먼곳으로 택시가 달린다
중국인듯한 운전사에게 물었다
어디쯤 가느냐고
그러니
센프란시스코 남쪽으로 간다고 했다
급히 예약하느라 호텔을 확인 안한것이
실수를 한것이었다
사실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하는것이 능숙하지 못해
실수를...
택시가 고속도로에서 내린다
도시 이름이 "레드우드 시티"
커다란 낡은 호텔 앞에 내려준다
센프란시스코 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했더니
택시로 45분 걸린단다
다음날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컨벤션에 갈려면
여유가 없었다
호텔 방에 들어가니
신발을 벋을수가 없을 정도로 더럽다
그나마 침대 시트는 하얗게 빨아서 덮어 놨는데
눕기가 겁났다
하얀 시트 밑에 핏자국이라도 있을꺼 같고
베개 밑에 쓰다버린 쭈그러진 라텍스 조각이라도 나올꺼 같은 방에서
간신히 눈을 붙혔다
자다가 깜작 놀라 눈을 뜨면
유리창 목 매달고 죽은 젊은 여인이 보이는듯 하고
침대 밑으로 커다란 쥐새끼가
피 묻은 팬티스타킹을 물고 지나댕기는것 같고
어지러운 밤이었다
이른 새벽 호텔을 나서니
안개가 가득하다
길건너 편의점에 가서 커피 한잔을 사면서 묻는다
"센프란시스코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지"
중국인듯한 젊은 남자가
"택시를 타고 가면 되지"
그때 손님으로 들어온 멕시칸여자가 묻는다
"센프란시스코 어딜 가려구요"
"다운 타운에 있는 컨벤션센타요"
"아 그럼 세 블락 남쪽으로 가면 기차역이 있는데 거기서 기차를 타면 쉽게 갈수 있어요"
호텔을 이틀 예약을 했는데 그냥 첵아웃을 해버렸다
그리고 레드우드 시티에서 기차를 탔다

"바깥 날씨는 밝고 고요했다
거실의 녹두색 양탄자 위에 투영된
레이스 커튼의 꽃무늬가 자체의 명암처럼 미동도 안했다.
멀리 은빛으로 번들대는 강을 향해 경사가 급한 동네가
한눈에 들어오는 거실이었다."
그녀의 글 속에는 동네가 자주 등장한다
그것도 경사가 급한 동네
고요하고 편안한 동네
센프란시스코도 경사가 급한 동네가 많은 도시이다
몇년전 센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즘에
한국의 비구님 스님의 탱화 전시회를 보기 위해 갔엇다
그 뮤즘에는 이종문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SAN FRACISCO LEE JONG MOON ASIAN ART MUSEUM

곱게 생긴 비구님 스님이 전시회를 하시는 스님이시고
왼쪽에 스님이 경남 함양군 용추계곡에 용추사의 주지스님
오른쪽에 젊은 스님은 보조로 따라 오신분이다
왜 지나간 이 시간이 편안하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요즘 가끔 지리산 산자락 용추사 계곡 밑에
조그만 움막이라도 하나 지어서
온돌 따뜻하게 뎁혀 놓고
따뜻하게 사랑해줄 여인이나 있다면
가버릴까 생각해 본다
그녀의 글에는 편안한 주변에 그림들이 자주 등장한다
좁은 골목길
가파란 언덕길
다닥 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
기억이 가물 가물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
할아버지 옷자락에서 나던 바람 냄새
아주 오래 된 농담
...
조용히
그리 씨끄럽거나 화려하지 않게
언제나 옆에 있었던 그녀
오늘 우연히 책꼿이를 보니
그녀의 책이 제일 많았다
올해는 그리 따뜻하지 않았는데
따뜻한 곳으로
그녀가 떠났다
첫댓글 박완서작가님에 대한 글인가 보네요.참 글 맛있게 잘 쓰십니다.언제 한번 대화하고 싶네요.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