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검성은 황하 하류에 있었다.
고조선 수도 왕검성이 어디에 있었는지 밝힌다.
후한시대 학자인 왕부의 <잠부론>을 통하여 왕검성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현 강단사학계가 얼마나 사료를 왜곡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 <산해경>과 <회남자>의 기록을 통하여 왕검성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만성현에 있었음을 밝힌다.
왕검성은 태행산맥의 머리에 해당하는 천하명산 백석산을 진산으로 삼고, 앞에는 대륙을 가로질러 온 황하 하류가 유유히 흐르며, 발해가 넓게 펼쳐진 명승지에 자리하였다. 고조선이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대이상으로 대륙을 경영하던 중심지였다.
https://youtu.be/4xXOcKVTQWM?si=kC7K5wOCU1upTDhj
첫댓글 ♥1) 잠부론에서 하북성 고안현 방성일대가 한성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근거가 명확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 같고요.
♥2) 제시한 고대황하와 해안선 지도는 바이두 백과의 고대 황하 흐름 및 해안선 내용과 다르기에 제시한 자료를 믿고 신뢰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수경주에 성수조에 보면, 왕숙이 말하기를 "지금 탁군 방성현에 한후성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 대다수 학자들이 한성을 방성현으로 봅니다. 혹시 다르게 보는 학설이 있으면 제시해주시면 좋겠네요.
...성수는 또 동남쪽으로 한성 동쪽을 지난다. <시경> 「한혁장」에 이르기를 “저 커다란 한성은 연나라 백성들이 쌓았네. 왕께서 한후에게 추와 맥을 주시니 북쪽 나라를 모두 맡았네.”라고 하였다. 정현은 말하기를 “주나라가 한후를 봉하니 한성에 거하여 후백이 되었다. 험이의 핍박으로 점점 동쪽으로 이동하였다.”고 하였다. 왕숙은 말하기를 “지금 탁군 방성현에 한후성이 있다. 세상에서는 한호성이라 이르는데 옳지 않다.”고 하였다...(중략)...성수는 또 동남쪽으로 흘러 거마하로 들어가므로 바다에는 이르지 못한다(...聖水又東南逕韓城東, 詩韓奕章曰:溥彼韓城, 燕師所完, 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鄭玄曰:周封韓侯, 居韓城為侯伯, 言為獫夷所逼, 稍稍東遷也. 王肅曰:今涿郡方城縣有韓侯城, 世謂之寒號城, 非也...(中略)...又東南流注于巨馬河而不達于海也). <수경주> 권12, 성수
@사람이 하늘이다 .
한나라 시대의 탁군이 하북성 보정시 지역일까요?
한서지리지 탁군의 하천이 하수(한나라 시대의 황하)로 들어 갑니다
따라서 보정시 지역은 한나라 시대의 탁군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
백번양보해서
한나라 시대의 탁군이 보정시 지역이고. 탁군 방성현에 한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위만조선의 왕험성은 한나라 시대의 낙랑군에 있었기 때문에(사마천 사기 조선열전 내용)
탁군 방성현에는 왕험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구리 사료는 제시하지 않고 주장만 있네요~~
@사람이 하늘이다 한서지리지 탁군의 하천이 하수(고대황하)로 들어가는 내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서지리 유주 탁군 --> https://blog.naver.com/10sunmusa/222014612205
@수구리 제시한 사이트 확인해보니 탁군일대가 현 하북성 보정시 일대가 맞네요. 단지 탁군의 하천이 황하로 들어간다는 한 구절만 가지고 얘기하시는데, 당시 황하가 천진방면으로 흘렀으므로 탁군의 하천이 천진일대에서 당연히 황하와 만나지요.
당시 보정시 일대는 밀물 때는 바닷물이 보정시 일대까지 밀려와서 바다가 되고, 또 썰물 때는 바닷물이 천진 일대까지 밀려나서 보정시 일대는 수많은 강물이 합류하여 흘러서 천진일대에서 황하와 만나는 그런 상황입니다.
인천의 조수 간만의 차가 10미터에 이릅니다. 보정시 일대의 조수 간만의 차가 수 미터에 이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닷물이 보정시 까지 밀려왔다가 천진시 일대까지 빠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고대 황하 하류는 바다인지 강물인지 구분이 안되서, 그래서 하河로도 불리고 해海로도 불렸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아니지요
한서지리지의 하수인 한나라 시대의 황하는 천천시까지 흐르지 않고요
★★★창주시에서 발해만으로 들어간다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아래 제시한 지도에서 한나라 시대의 황하는 C)
따라서 보정시 지역의 하천은 창주시 지역으로 흐르지 않기에
한서지리지의 탁군은 보정시 지역이 될 수 없습니다
바이두 백과의 고대 황하 흐름 및 해안선 확인 바랍니다
https://baike.baidu.com/pic/%E9%BB%84%E6%B2%B3%E6%95%85%E9%81%93/62019949/1/8d5494eef01f3a292df5d717df70ab315c6035a8d697?fr=lemma&fromModule=lemma_top-image&ct=single#aid=1&pic=8d5494eef01f3a292df5d717df70ab315c6035a8d697
제시한 자료에 기원전 206년 이전의 해안선은 나오지 않네요. 그리고 바이두 백과 기록이 더 정확하다는 근거도 없고요.
@사람이 하늘이다 .
범례에 「전 206년 해안선」 표시가 있습니다(천진시 지역이 해안선 임)/ 다시확인해 보세요...
출처도 불명확한 지도와 ,임의적으로 지도를 만들어 주장하는 것 보다도
중국대륙의 고대해안선과 고대황하 흐름은 바이두백과를 인용해야 중국인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한반도 해안선의 경우에 한국의 자료가 더 신뢰 받는 것처럼)..
그리고 보정시 지역이 고대 해안선이 되려면 지금보다 해수면이 10M 정도 높아야 하기에
보정시 지역은 고대 해안선이 될 수가 없습니다
(빙하기 이후에 해수면이 점진적으로 높아졌지, 낮아진 적은 거의 없습니다)
@수구리 1. 보정시 지역이 해안선이 되려면 지금보다 해수면이 10M 정도 높아야 한다???
보정시 지역은 본래 바다였는데, 황하를 비롯한 수많은 강물의 토사 퇴적으로 보정시 일대가 육지로 변한 것입니다.
지금도 황하 하류는 토사의 퇴적으로 육지가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2. 중국대륙의 고대해안선과 고대 황하 흐름이 바이두 백과를 인용해야 중국인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다???
제3자인 외국 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밝힌 해안선과 동북공정에 근거한 바이두 백과 중 어느것이 역사적 진실에 가까
울까요? 중국은 절대로 외국의 과학자들이 밝힌 해안선을 인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이 비정한
많은 지명들이 바다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역사조작이 들통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것이 역사적 진실인지가 중요하지 중국인들에게 설득력이 있느냐가 기준이 될 수 없지요.
@사람이 하늘이다 .
■1) 글쎄요 유튜버 동영상에 제시한 고대황하 흐름과 해안선의 출처는 어디이며 누가 주장한 것인가요?
(영어로 되어 있다고 외국과학자가 밝혔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2) 고조선이 중국대륙에 있었다면 역사전쟁을 누구와 해야하나요 중국 역사학자들과 해야합니다
따라서 영어로된 출처 불분명한 자료가 아니라 중국의 바이두 백과 내용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중국 역사학자들을 설득할 수 있고 역사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수구리 https://cafe.daum.net/mago-net/2gaa/49 참조바랍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황하 및 해안선 변천도 : Tristram R Kidder(워싱턴대 교수) & Yijie Zhuang(런던대학 연구원)의 공동논문『Archaeology of the Anthropocene in the Yellow River region, China, 8000-2000 cal. BP, The Holocene』참조.
@사람이 하늘이다 백번 양보해도 해당지도에 보면
하나라 시대 고대 황하흐름은 1번( BC 2278년 ~ BC 602, 위지도의 B)으로
형수시 안평현 지역과 하간시 지역으로 흐른다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하간시에서 보정시 백석산 까지의 직선거리가 대략 200KM★★★이니
하나라 시대의 고대황하에서 백석산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상서나 사마천사기 오제본기에서 갈석산을 우측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가는
갈석산이 보정시 백석산으로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그리고 제시하신 해당 카페(마고의 노래) 내용을 확인하면
보정시 지역이 해안선이었다는 지도는 영문판 지도 뿐이고
★★★다른 지도들은★★★ 천진시 지역이 고대 해안선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수구리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 전국시대 황하 흐름을 참조바랍니다. 전국시대에도 황하 하류의 한 갈래는 보정시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고대 황하는 하류에서 아홉 갈래로 나누어져 흘렀기 때문에 구하라고도 했으며, 하류에서는 황하와 바다가 뒤섞여서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도 안되기 때문에, 그래서 하河로도 불리고 해海로도 불렸습니다. 보정시 까지 바닷물과 황하가 뒤섞여서 황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되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서경>에서 배를타고 발해만 연안을 돌아 황하로 들어 설 무렵에 오른쪽에 갈석산이 보였다고 한 것이고요~~
@수구리 담기양의 만든 지도를 믿으신다고요??
담기양은 동북공정을 진행한 핵심인력입니다
담기양의 주장을 믿는 것은 우리 고대사를 말살하는 중국 주장을 믿는 것이 되겠지요
그리고 담기양의 지도에서
보정시 지역에 갈석산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내용은 믿지 않으면서
천진시로 흘러가는 춘추전국시대 하수를 한나라 시대의 하수라고 주장하시는 것 같은데...
이렇게 동일한 자료중에서 본인에게 유리한 내용만 이용해도 되는지 의문입니다
(보정시 지역에 고대 해안선이 없었다는 불리한 내용을 무시하고..)
제시한 담기양의 지도에서 하수(고대 황하)가 3개 표시되어 있는데
1) 제일 위쪽의 하수 (보정시 근처)는 황제 시대(BC 2278이전)의 하수이고
2) 중간의 하수(천진시 남부에서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하수)는 춘추전국시대 하수이며
2) 제일 아래쪽 하수(창주시에서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하수)는 한나라 시대의 하수를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탁군 위치 관련해서 지금 토론하는 것은 제시한 지도에서 창주시로 흐르는 하수
즉 한나라 시대의 하수 즉 한서지리지의 하수인 창주시로 흐르는 하수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
■상서의 하(河, 춘추전국 시대 황하)를 사마천이 사기에서 해(海, 큰 강이나 호수)로 바꾸었습니다
(☞ 『尙書』: 島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河. --> 『史記 夏本紀』 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海.)
춘추전국 시대 황하인 하河가 물길이 바뀌어 덕주시 방향으로 흘렸으니
한나라 시대에는 춘추전국 시대 황하는 더이상 황하인 하河가 아니었기에
사마천이 춘추전국 시대 하수를 해(海, 큰 강)로 바꾼 것입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해일작하(海一作河)라 헀으니 해海자는 한편으로 하河를 가르킴니다
따라서 해일작하를 알아야 중국 고대사서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황하를 한나라 학자들은 요수(遼水)라 했습니다
(염철론 험고와 한비자 유도편을 교차 검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 『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
연나라 소왕(소양왕, BC 312 - 279)이 하수를 경계를 삼아 계薊를 나라의 도성으로 삼았다
탁(涿)과 방성(方城)을 습격하고, 제(齊)나라를 멸할 정도로 해치고, 중산(中山)을 평정하였다
※주) 연소왕이 공자시절에 제나라가 침입하여 연나라를 초토화 시켰으니
제나라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하수를 도성(나라) 계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원문] 燕(昭)襄王以河爲境, 以薊爲國, 襲涿, 方城, 殘齊, 平中山.
☞ 『 염철론(鹽鐵論) 「험고(險固)」 』
연(燕)나라( 도성 계薊)는 갈석산에 의해 막히고, 사곡(사하)에 의해 끊겼으며, 요수(遼水)에 의해 둘러싸였다.
※ 주) 연나라 남쪽은 조나라(한단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산서성 중부 장치시(중산국)로 가는 계곡인 사하(沙河)가 발원하는 사곡(沙谷)으로
지금의 형태시의 사곡(沙谷)이 험고의 사곡(邪谷)이다.
[원문] 燕 塞碣石, 絶邪谷, 繞援遼.
@사람이 하늘이다 그리고 제시한 담기양 지도에서 보정시 지역에서 발해만 부근까지의 장성은
북역수와 중역수 사이의 장단경 단군조선(지도에서 연하도로 표현되어 있는)을 보호하기 위해
번조선인 중산국이 전국시대에 쌓은 장성으로 보입니다
『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3.조세가(趙世家)』 :성후 6년(기원전 369년), 중산국이 장성(長城)을 쌓았다.
(원문)趙成侯 六年 : 中山筑長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