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품속 같은 내 고향
우리 마을은 한라산 정기를 받은 듬브갯이다. 애칭은 관전 밭이다. 지금은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이다. 한라산을 주산으로 연이은 山脈(산맥)은 아름다운 한라산 자락을 따라 쭉 뻗어 내려와 바굼지오름은 좌청룡, 추재동산은 우청룡이면서, 장수영은 백호가 바람을 감싸 안고, 그 전면으로 12번 국도가 동서로 가로지르고, 국도를 지나면 듬브갯 바다가 황홀하게 펼처진다. 그래서 인심 좋고 물 좋고 소박한 어촌 흉내를 내면서 전형적인 전원 마을, 명당을 자처하는 택지로 좋은 마을이다. 필자의 집은 꽤 넓은 마당에 안채와 뒤채가 떡 버티고 있다. 집 주위에는 화단이있어 필자가 좋아하는 육화, 용설란, 금전화, 봉숭아, 분꽃, 코스모스 등 계절따라 꽃 피워서, 그런지 필자는 감성이 풍부해서, 文人(문인)이란 명함을 얻었는지 모른다. 어떻든 과거보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내 유년기에는 귀일 소주 공장 굴뚝이 마을을 지키는 天下大將軍(천하대장군) 모양 우뚝 솟아 있어 위용을 자랑했다. 또한, 막걸리 공장, 박하 공장, 양돈장이 있어 돼지를 일본으로 수출했었다. 그때 보일러에서 불을 때는 석탄 광물을 처음 보았다. 검은 돌덩이가 불이 지피어진다는 게 신기했다. 공장의 사장은 고석찬 씨였다. 미남형에 인품이 중후하고 고매한 분이었던 것 같다. 그분의 자제는 필자의 고교 선배였으며, 영어를 잘해서 성장기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의 남동생과 여동생은 있는 집 애라 예쁘고 멋스러워 보였다. 공장은 모두 물을 필요했다. 듬브갯 물은 청정하고 맛이 좋았다. 지금의 삼다수보다 좋은 바닷가 용천수였다. 물이 좋아서 그런지 귀일 소주는 제주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마을 식수로, 빨래터로, 여름철 멱감는 목욕탕으로 사용했다. 마을 사람들은 어린 양처럼 온순하고 순박해, 밤과 낮으로 열심히 밭농사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었다. 공장에 종사하는 일꾼은 어림잡아 20여 명이었다. 한두 분이 우리집에 세 들어 살기도 했다. 갯은 언제 누가 선착장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용암의 맨틀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갯은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지형에 자연석으로 50여 미터을 아름답게 축성되어있다. 그곳엔 풍선 한 척과 자리태우 한 척뿐이었다. 풍선의 돛대가 한가히 바닷물결에 춤을 추고, 자리 태우는 원형 그물을 걸쳐있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봄이면 유채꽃과 어우어낸 풍광은 잊을려야 잊을 수 없는 듬브갯였다. 내 유년에 자리돔과 생선으로 단백질을 보충하였다. 돼지 고기는 명절이나 제삿날에만 맛볼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보편적 가치를 지닌 고향이 있다. 필자의 지워지지 않은 촌스러운 고향의 갯내음과 색깔이 아늑하고 평화스러운 곳이다. 엉기 정기 설킨 밭 담과 올레길 돌담 그리고 초가지붕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온 동내를 감쌓인 목가적 풍경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련하다. 그리고 그 시절 등잔불에 공부하다 보면 콘잔등이 노리스림하고 코를 풀면 콧물에 검은색이 뒤섞여 나오기도 했다. 유년기에 놀이는 자치기, 죄기 차기, 고이 놀이, 땅따먹기 등 을 했다. 지금은 애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갖고 오락 깨임을 즐긴다. 그런지 지금 애들은 정서가 어른처럼 팍팍하고 말과 행동이 어른 위에서 놀고 있어 가끔은 쓸쓸해진다. 내 유년기만 고향이었을 뿐 대학과 직장은 객지 생활을 했지만 9.9할이 고향이다. 그래도 그게 삶에 전부인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옛 추억을 잊지 못해, 12번 국도에서 올래길로 들어서면 누군가 반겨 줄 것 같다. 옛 고려의 충신 길재의 시문에 "산천은 이 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생략)"했지만, 지금은 산천도 인걸도 찾아볼 수 없으나, 예전에 막걸리 공장이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듬브갯을 지키고 있다. 두성두성 갯가를 거닐다 보면 모진 소금 바람에 봄에는 찔레꽃이 피고, 여름에는 순비기꽃이 피고, 가을엔 코스모스향기에 죽마고우를 보는 것 같아, 찌든 가난을 꿰매고 살았던 세월이 입가에 미소가 노을처럼 번진다. 필자에게 행운을 준다면 도시생활을 접어두고, 연어가 1만 KM를 헤엄쳐 태어난 고향으로 회귀하듯, 어머니 품속 같은 듬브갯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재미있고 명량하게 살고 싶어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