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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이 '황하의 물길은 반드시 동으로 흐른다'는 순자의 말을 빌어
하고 싶은 말이 '사람 본성은 착한 곳에서 나왔으니 결국 선한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 시절에 이런 말은 참으로 고지식 하다 할게다.
이곳에서 성선설 성악설을 따져 무엇하랴. 차라리 지금 세태를 놓고 대꾸를
해보라면 '물은 천지사방 어디로든 흐른다. 스스로 물길을 따르면
낮은 곳으로 흐를 것이고, 용오름 바람을 타면 하늘로 흐를 것이다'
그래서 어떤 물은 하늘에 놀고 어떤 물방울은 먼지를 껴안고 땅 바닥으로
스미기도 하잖은가?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목은이색과 학봉 김성일 萬折必東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기행 쪽이라면서요. 누구를 만나볼건가요?
종구 고려말 조선 초 목은 이색하고, 조선 선조 때 학봉 김성일이
함께 말한 ‘동으로 흐르는 물길’ 돌아볼까요? 그걸 ‘만절필동’
이라고도 했거든요.
희은 ‘동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말했다는 고려말 목은 이색과
조선 선조 때 학봉 김성일. 서로 시대는 2백년 넘게 떨어진
사이 아닌가요?
종구 그렇죠. 헌데 두 사람 다 남다른 신념과 소신을 가진 인물이죠.
그래서 ‘만절필동’이란 말을 즐겨 썼구요. 목은 이색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일어서는 격동기에 있었고, 학봉 김성일은
임진왜란 직전 일본을 다녀 왔던 인물이죠.
희은 그럼 ‘물은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는 말도 서로 같은
뜻으로 썼던걸까요?
종구 물은 천지사방 어디로든 흐를 수 있는거죠. 근데
중국 황하의 물을 기준으로 했던 말이거든요. 고대 학자
순자는 이런 말을 남겼거든요. 여기 보세요.
희은 순자 유좌편에 있는 구절이군요.
(낭송) “황하의 물이 만번 꺾이어도 반드시 동으로 흐르는 것은
굳은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其萬折也必東 似志]”
종구 황하의 물이 만번 억만번을 물굽이 쳐도 반드시
동해로 가는 의지를 보라는 겁니다. ‘만절필동’이 여기서 나왔죠
희은 우리 한강수는 서해로 흘러가니깐 ‘만절필서’라고 해야
맞겠군요. 안그런가요?
종구 한강을 놓구 말하면 ‘만절필서’가 맞는 말이죠. 중국 황하를
놓고 말하자니 만번을 굽이쳐도 반드시 동해로 간다.
목은 이색은 이 말을 빌어서 이런 구절을 남겼죠. 보세요.
희은(낭송) 바다에 들면 넓어서 끝이 없거니와 / 入海浩無際
산에 있으면 처음 발원지가 되는데 / 在山初發源
황하가 꼭 동으로 흐르는 뜻을 누가 알랴 / 誰知必東意
본성이 다행히 끝없이 보존됨일세 / 成性幸存存
종구 꼭 동쪽으로 가는 물길을 비유해서, 목은 이색은 사람에게
좋은 성품이 있고, 그 본성이 변치 않고 사람다움에로
가게 해주는 물길처럼 비유한 말이거든요.
희은 그럼 하루에도 수백번 변덕이 생기고 찰라간에 수천번
흔들리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 본성대로 가는거 아니냐?
종구 그게 동물이나 가축이랑 다른거라는 말이기도 하겠죠.
목은 이색은 사람에게 있는 그 좋은 본성이란 걸 믿어서
그게 요동쳐도 결국 동쪽으로 흐르는 물길로 봤던거구요.
여기 선조 때 학봉 김성일이 말한 ‘만절 필동’ 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지향하는 방향 비록 서로 달라도 / 所趨雖異方
그 이치는 같은 데서 나온 거라네 / 此理本一極
종구 사람 마음 씀씀이가 비록 그때 그때 다르더라도
사람성품으로 나온 건 똑 같은 이치에서 나왔더란 비유이죠.
희은 그러니 사람이라면 사람 마음으로 결국 동으로 흘러 살 일이다.
종구 동서남북 어디로 가더라도 그 나온 사람자리는 잊지 말자.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만절필동’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전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걸 이런데서 본다.
지금 세상에 다스림은 이런 스타일이 낫다. 아니다 자본주의 끝장을 보고
있지 않느냐? 미래를 위해 또 다른 시스템이 나와야 한다. 과연 자유 평등
공공의 행복을 아우를 또 다른 다스림 스타일이 뭔가?
어떤 시대건 쓸만한 말들이 고전에 있다. '천하가 즐거워 한 다음 즐기겠노라?
천하가 웃고 난 다음 웃겠노라. 높은 벼슬자리 있을 땐 백성을 걱정하고
벼슬을 버린 다음 지도자를 걱정하겠노라! 눈 속을 밑창 터진 신발로 걸어가며
다음 시대 인재를 걱정하노라!'
중국 사람들 말이 크다고 한다. 그래도 때때로 그 가운데 시대를 관통하는
일깨움이 있다. 실현될 수 없는 이향향일지라도 그 말들은 오늘도 종소리로
울려준다. 때가 어느때인 줄 아느냐? 누가 이때에 나와야 하는 줄 아느냐 물으며......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옛 선인들의 근심들’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기행 나설 차례죠?
종구 우리 옛 선인들이 일삼아 걱정했던 건 무엇일까?
잠시 돌아보고 갈까 합니다.
희은 선인들이 일 삼아 고민했던 거라면? 요즘 같으면
‘어떻하면 다이어트 잘 해서 건강도 살리고 몸매도 살려볼까?’
종구 옛 선인들께서 다이어트 소리 들으시면 바로 등을 돌리면서
(못마땅 큰기침) 어허 어허험험 어험.
희은 그럼 대체 옛 사람들은 그 많고 많은 걱정 근심 중에
이게 진짜 대장부가 걱정할 만한 일이다. 하나씩 꼽아 볼까요?
종구 먼저 동곽선생 근심을 아는가?
희은 동곽선생이 누군지도 모르죠. 그 분이 뭘 걱정했는데요?
종구 동곽선생은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인데요.
남을 추천하는 부서에 일을 보면서도 어찌나 가난했던지
한 겨울에 눈길을 가는데 짚신 바닥은 다 닳아서 사라졌고
신발등만 남아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동곽선생이
그 꼴로 걱정했던 건 무엇이었겠느냐?
희은 기인이거나 제 정신 아니네요. 어떻게 그 좋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짚신 바닥이 홀라당 닳아 빠진 채로 신발 등만
걸치고 겨울 눈길을 걸어 다녀요? 남 보라고 생쇼한건 아닌가?
종구 훗날 뜻있는 사람들은 신발바닥 닳아 빠져 눈길을 맨발로
걸어 오갔던 동곽선생이 근심했던 것은 그 밑창 없는
신발이 아니라. 나라살림살이였다는데 주목했거든요.
희은 아무리 청빈해도 그렇죠. 자기 몸은 우선 보호를 하구서
나라살림 걱정을 해도 해야지. 그때 사람들도 미쳤다했을껄요
종구 그럼요. 미쳤다고 했죠. 훗날말이죠. 좋은 벼슬살이 하면서
차마 눈뜨고 볼수 없이 가난한 사람을 동곽선생 같다고 했죠.
여기 이 사람의 고민 걱정은 또 무엇이었는지 이글을 보세요.
희은 중국 송나라 범중엄의 고민을 간추려 놨군요.
(낭송) 범중엄이 악양루기에 말하기를 ‘조정에 높이 올라서는 그
백성을 근심하고/ 강호로 나가 벼슬과 멀리 떨어졌을 때는/
그 지도자를 걱정하니/ 이는 나아가도 근심하고 물러서도
걱정하는 것이다/ 이 범중엄은 평생을 이런 걱정으로 살았군요
종구 옛 선비들 입에 자주 올랐던 인물이죠. 범중엄 또는 범희문
이라고도 했는데요. 높은 벼슬에 있을 땐 백성걱정이요.
벼슬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땐 지도자 주군을 걱정한다.
희은 그 범중엄이 즐거울 때는 그럼 언제였대요?
종구 ‘나는 천하가 즐거워 한 다음에 즐거워 할 것이다’
희은 아우, 요즘 그런 분 어디 계신가 찾아 보세요.
종구 세상보다 먼저 걱정하고, 세상이 즐거운 다음에 즐기겠노란
이런 분 만나 보셧남요. 보셨으면 이쪽으로 알려 주시구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옛사람 근심’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심청가에 돌아보면 고전으로 다시 풀어 볼 구절이 많기도 하다. 하긴 다른
판소리도 마찬가지다. 심청이가 태몽으로 내려와 하던 말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몇차례 되새겨 본 구절이다. 첫번째는 심청가 사설을 쓴
작가가 사대주의 관점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네 신화나 전설도
많은데, 꼭 하필 심청의 전생을 중국 신화 속에다 줄을 대야겠느냐?
지리산 여신 마고할멈 딸이라고 하면 그렇게도 촌스러웠을까? 아니
제주도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설문대 할망 딸이었다면 격이 떨어지는걸까?
두번째는 긍정적 해석이다. 신선의 딸이 지상에 내려왔다. 그렇다면 심청은
이 추악하면서 아름다운 지상과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은 신선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로서 의미가 있다는 측면이다.
세번째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태생을 밝힌 심청이가 아 동방을 선택해서
그것두 눈 먼 심학규네 집으로 오겠다는 것은 구원의 메시지다.
눈 뜨고 못 보는 봉사들, 눈 밝아도 못 보는 장님들, 눈이 있어도 깜깜한
시대 시대의 장님들을 구원코자 아 동방을 선택했다는 뜻이니
심청가가 이땅에 있음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심청가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이종구씨 오늘은 사설여행으로 나서볼까요?
종구 심청가 중에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그 장면 찾아 볼까요?
희은 그 사설은 심청가 앞 부분에 나오는 가사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심청이를 잉태하는 장면 쪽 같기두 하구요.
종구 맞습니다. 곽씨부인이 공을 들여서 심청을 잉태하는데
그 잉태하는 날 꿈에 선녀 같은 여인이 내려와서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반도진상 가는 길에 옥진비자
잠깐 만나 수어수작 하옵다가~~’ 여기서 심청을 짐작하게하죠.
희은 우린 심청이가 곽씨부인과 심봉사의 딸로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보니깐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이러면 심청이 족보가 흔들리는 거 아닌가요?
종구 전생으로 봐 주세요. 심청이가 전생엔 중국 곤륜산
신선이었던 서왕모 딸이었더란 겁니다.
희은 이왕이면 우리 태백산 신선의 딸이었노라 했으면
더나 뿌듯했을 거 아니냐 그거죠.
종구 그 심정 공감합니다. 아마도 심청가 사설을 지은
작자는 이왕이면 배경 그림도 멋지게 큼직하게 그리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심청이가 전생에 중국 곤륜산
신선인 서왕모 딸이었답니다요. 했을테구요.
희은 심청이 전생이 그렇게 세게 잡았으니깐 훗날 송천자
황후도 되고, 전국에서 모여든 맹인들 눈을 일제히 뜨게
하는 기적을 일으킨건가요. 서왕모 딸이라는 뒷 배경 덕인가?
종구 흥미로운 상상입니다. 자 심청이가 이땅에 올때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이 사설은 심청의 전생을 말해 준 대목이라하겠죠. .
희은 다분히 신선계와 인간계를 연결짓는 중간 매개체로
심청이를 설정한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는데요.
심청이 전생이 신선의 딸이었다.
종구 심청이 현실은, 앞 못 보는 사람 심봉사의 딸이었다
그렇게 보면 신선계와 인간계 사이에서 심청이가 했던
역할이 자못 비범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이해가 되기두하죠.
희은 그럼 심청이 정체가 원래 선녀의 딸이었다는 신선족보에
나중엔 공양미 삼백석으로 부처님 도움을 받았잖아요.
그럼 부처님쪽 영향도 받은 셈이구요.
종구 하지만, 심청이 잉태 장면에 나오는 그 한구절 ‘소녀는 서왕모
딸일러니~~’ 신선의 딸이었거나. 앞 못보는 심봉사 딸이었거나.
심청은 그 시절 그 땅에서 아버지 대신 동냥 다니면서
철저히 사람 심청이 역할에 충실했다는 그 대목을 잊지말자.
여 서왕모 딸이었지만 진정 앞 못 보는 심봉사의 딸로, 무수히 많은
맹인들 눈을 뜨게 했던 심청은 분명 이땅의 심청이 아니냐 그 말씀
‘고전기행 사설여행’ ‘서왕모와 심청’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씀씀이와 행실이 서로 같이 맑았더라.心迹雙淸
이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조상님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근데 그리도 흔한 '가화만사성' 같이 입에 오르내리지 못했을까?
우선 내가 좌우명으로 삼자니 부담이 백배다. 마음속에 일렁이는
강물과 행동하는 짓거리가 하루에도 몇십번씩 엇박자로 노는데
이딴 좌우명 걸어놓고 스트레스 받을 일 뭔가? 근데 이걸 또
걸어 놓지도 않고 일생을 그렇게 살았노라 하는 분들 만나면 바로
엎드리게 된다. 존경 뿐인가 '그대는 초인이셨구료. 범부중생이
경배합니다!' 다시 목은이다. 그가 남긴 시 구절 속에 빛나는 한구절
心迹雙淸月印江 마음과 행실이 서로 맑아 저 달이 강물에 도장을
찍은 것과 같더라. 월인천강이 아니다. 여기선 하나의 달과 하나의
강이 만나는 순간이다.
달이 구름에 가렸거나. 강물이 폭풍에 흔들리면 서로가 암흑이겠지만
나도 때때로 느낀다. 내 맘에 작은 소망이 하루 하루 무슨 일인가를
해 내면서 '저 달이 잔잔한 강물에 찍은 달 도장과 같은 날의 즐거움을'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권첩의 심적쌍청 心迹雙淸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한 인물과 그 어록을 돌아보신다구요?
종구 조선 선조 때 활약했던 권첩과 <심적쌍청> 생각해볼까요?
희은 선조 때 활약한 분이라면 우선 임진왜란을 어찌
넘겼을까 그런 생각부터 드는데요?
종구 왜적이 침략한 그 어려운 때 나라살림과 외교일선에도
나섰던 권첩이었는데요. 어느정도 인물인고 하면요.
나라의 건축일을 총괄하는 영선일을 볼 때 궁중에서 파견나온
자가 임금을 팔고 왕비를 팔고 설치거든요.
희은 그 정도 뒷 배경이면 상급자라고 해도 말 못하고
하자는대로 들어주고 그랬을걸요.
종구 그런데 권첩이 ‘저놈 잡아 들여라. 상의를 벗기고
매우 치거라. 내가 그만 할 때까지 치렷다.’
희은 궁중 뒷 배경을 가진 사람을 끌어내 매를 치게 했다니.
권첩이 그러고도 온전했나요?
종구 그러니 크게 출세를 못했던거죠.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온
모문룡이란 장수가 사신으로 나가는 권첩을 붙잡고
‘모문룡 공이 크다’ 한 구절만 넣어 달라. 그래도 목숨을 걸구
꿈쩍도 안했던 인물이기도 했죠.
희은 꽤나 소신있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했군요. 그래니 미움도
받았을테고, 출세도 못했겠지요.
종구 자기 사는 집이 여름이면 빗물이 새고, 겨울이면 통바람이
들어와 살 수 없는 지경인데도 그 장관급 지위인데도
나랏돈 한푼도 쓰지 않고 가난한 채로 견뎠던 권첩이었죠.
그가 자주 쳐다 본 구절이 바로 ‘심적쌍청’ 이었구요.
희은 권첩의 좌우명 ‘심적쌍청’ 이게 무슨 말인가요?
종구 일찍이 고려말 목은 이색은 ‘심적쌍청’이란 말을 빌어와
이런 구절을 남겼죠. (낭송) ‘심적쌍청 월인강’이라
‘마음과 몸의 자취가 서로 함께 푸르고 맑아
강에 비친 달과 같더라 ’ / 心迹雙淸月印江
희은 아, 마음 쓰는 거 하고, 몸으로 하는 행동이 둘 다
서로 맑고 깨끗하다는 말이군요. 안팍으로 속과 겉이 다
맑고 깨끗하게 살련다는 신념이기도 하군요.
종구 그 권첩이 말안장과 털방석도 낡아 빠진 걸, 그대로
쓰니깐 보다 못한 하인들이 한번 바꾸라고 하자. 했던 말이.
‘가난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부자된 걸 부끄러워 해야지’
희은 가난한 사람이 느닷없이 부자된 사연, 알구 보면 추악한
부정과 비리가 있더란거죠.
종구 그리고 다시 쳐다 봤다는 권첩의 ‘심적쌍청’ 마음과 몸자취
둘다 서로 맑고 깨끗하여라.
희은 이거 ‘좌우명’으로 삼겠다는 분, 네 한자리 하신 분이라면
소문내 드릴게요. 지금 알려 주세요옹.
종구 마음과 몸 자취가 쌍으로 맑고 깨끗할래라 ‘심적쌍청’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권첩. 기억했으면 하는 날입니다.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권첩의 심적쌍청’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다분히 마누라에게 점수를 얻고 싶은 의도가 있는 선택 아닌가 싶다.
예전에 부인들이 스스로를 낮춰 '백년소첩'이라 말하기도 했다는데
여기에 화답하는 남편의 글귀가 없다는게 아쉬워 들이대본 셈이다.
'백년소첩'에 '백년머슴'이 솔직한건 아닐까? 때때로 난 머슴이란 생각을 한다.
'백년소첩'에 '백년졸남'이 제일 미울게다. 백년 살아봐야 졸장부 남자 소리, 아프잖은가?
그럼 '백년소첩'에 뭘로 화답해야 부인들 맘이 풀릴까?
'백년강쇠'는 어떠한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물건값이나 하면서? 당장 궁색해진다.
그렇다면 '백년소첩'에 '백년 개그남'은 어떨까. 부인을 웃겨주는 남편이라면?
근데 밑천이 왕창 부족하다. 한달에 몇번이나 웃겨줬을까?
이제 남은 건 '백년소첩'에 '백년 마당쇠' 밖에 없는 성 싶다. 부르면 '예 마님'
달려라도 가주는. 옆에 나직한 백련산이라도 타야겠다. 종아리 힘 빠지면
'주둥이로만, 예 마님이냐?' 소리 나올것이니 말이다.
난 궁할 땐 자주 '예 마님!' 크게 외친다. 증인이 있으니 물어들 보시라.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방물가와 이별가 백년소첩 百年小妾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사설여행으로 떠나신다구요?
종구 춘향가하고. 경기12좌창 방물가에 서로 비슷하게 나오는
가사가 있거든요.
희은 그럼 한쪽이 표절을 했다는건가요?
종구 예전엔 자주 쓰는 말들은 서로 끌어다 쓰곤했죠.
일테면 유명한 시 구절을 자주 인용하듯이 말이죠.
여기 경기 12좌창 ‘방물가’에 나오는 가사 보세요.
희은(낭송) 금일 송군(送君) 임 가는데, 백년소첩(百年小妾) 나도 가오/
날 다려 날 다려 날 다려가오 한양낭군님 날 다려가오.
종구 춘향가 중에 이별가에 이런 구절이 나오죠.
(낭송) 금일송군 임 가신 곳 백년소첩 나도 가지. 도련님도 기가 막혀,
오냐 춘향아 우지 마라. 원수가 원수가 아니라
양반 행실이 원수로구나.
희은 그러고 보니 경기소리 ‘방물가’하고 판소리 춘향가 ‘이별가’
대목에 ‘금일송군 임 가는데 백년소첩 나도가오’ 이 구절이
비슷하게 인용되고 있군요.
종구 여기서 오늘 돌아보고 싶은 구절이 ‘백년소첩’이죠.
희은 대개는 사위가 어려운 손님이란 말로 ‘백년손님’이라구했었죠.
종구 ‘백년지객’이라고도 했구요. 예전에 부인들이 ‘백년소첩’이란
말을 썼거든요. 남편에게 자신을 낮춘 말이기도했구요.
희은 평생 어려운 손님이 사위다 해서 ‘백년손님’이라 했는데
‘백년소첩’은 그럼 무슨 뜻으로 쓴 건가요?
종구 ‘한 평생 오직 당신의 아내’란 말로 푸는 게 낫겠죠.
꼭 첩이다 처다 따지지 말구요.
희은 저는 반대입니다. 아니 그럼 백년소첩에 대해 남편들도
화답을 했어야지요. 왜 부인들만 ‘백년소첩’이라 낮춥니까.
‘백년소처’도 아니고 ‘소첩’이라니요.
종구 희은씨 울컥하신 심정 이해 합니다. 하긴 부인이 자신을 낮춰
‘백년소첩’이라 했으면 남편도 ‘백년머슴’ 소리는 못하더라도
‘백년신랑’ 소리라도 해야죠.
희은 그러니깐 경기 ‘방물가’나 춘향가 ‘이별가’에 나오는
그 ‘백년소첩’은 ‘백년신부’ 정도로 이해 했으면 좋겠어요.
종구 여기 잠시 조선 문신 서거정이 남긴 ‘서로 그리워하며 원망하다’
<상사원> 몇구절 돌아볼까요?
희은 (낭송) 그 젊은 때는/ 서로 날아도 날개 한쌍이 되자/ 나무라면
두 그루 한몸 연리목으로 살자더니/ 나이 들자 가을에 버린
여름 부채꼴 백년소첩 쓸쓸하외다/ 이내 맘은 반짝이는 거울
같것만/ 당신은 춘풍에 날리는 버들개지/저 초생달 다시 차서 밝아
지련만/ 님은 언제나 애타게 그리는 소첩생각해 달을 띄울꼬/
종구 <상사원>을 간추린 겁니다만, 예전엔 이처럼 부인이 자신을
낮춰 ‘소첩’이라 했던 말이 우리소리 가사에 ‘백년소첩’으로~~~
희은 ‘백년마당쇠’ 아니 ‘백년신랑, 백년신부’ 그럼 좋았을걸. 첩이라뇨
‘고전기행 사설여행’ ‘백년소첩’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풍류당에서 마눌님을 사부 삼아 남도창이며 판소리 배우면서 그걸 또
줄창 찍어다 유튜브에 올리는 걸 보면서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애고 저 팔불출. 마누라 한테 박박 기는구나!' 그리 봐도 무방하다.
난 마누라를 무대에 세울 생각이 애시당초 없었던 사람이다. 그때문에
무대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미안한 맘이 있을 수 밖에, 그런데 국악대중화
거창하게 내 걸고서 돈이나 따지며 영업하는 사람들 흉내낼 수도 없잖은가?
그래서 교육으로 나서보자. 그 교육영상을 그냥 세상에 다 보라고
유튜브에 떠억하니 올려 놓고 보니, 이도 역시 가관이다. 뭘 그리 잘한다고?
그럼 나는 바로 말해준다. '당신은 왜 구경만 하면서 흉만 보구 있느냐. 당신이 해봐라.
당신은 아직도 영업 중이냐?' 말이 옆길로 한참 샌다. 일단 풍류당 때문에
내가 평생 입도 뻥긋 안했던 '농부가' '육자배기'를 부르기 시작했다는거다.
새타령을 부르면서 왼갖 잡새가 다 나오는데 왜 독수리가 등장하지 않는걸까?
그래서 뒤적거려 봤다. 햇수로 삼년 전인가 싶다. 대단한 자리에 계신 분이
내게 '아무개 회장을 참국사 인터뷰 좀 해 달라' 두번이나 거절했다. 그때 했던
내 말이 '독수리가 뜨면 왼갖 잡새가 다 날아갑니다'
나는 잡새 중에 한 마리일 뿐이다. 세상이 다 알아 준다는 독수리가 뭐가 아쉬워
잡새 틈에 놀려구 하느냐? 내 소신은 지켜졌다. 그런데 돌아보면 내 자신도
소신을 가끔 꺾는다. 그 아무개 회장보다 더 알아주는 사람도 참국사 인터뷰를 한다.
내가 봤을 땐 독수리로 보이는게 아니라 파랑새로 보이기도 했고. 뭐 그런
착시현상도 있기 마련이지만. 암튼 '새타령'에 독수리가 나오면 분위기 깨지는
그런게 있다는 걸 잠시 돌아보고 싶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새타령과 독수리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지금 보구 있는 가사가 남도 새타령 가사 아닌가요?
종구 이젠 희은씨도 한눈에 척 알아 보는군요.
그럼 생각해 보세요. ‘남도 새타령’에 독수리가 등장할까요?
희은 ‘남도 새타령’에 이런 가사 있잖아요. ‘새가 날아든다/ 왼갖
잡새가 날아든다’ 이걸로 해결된거 아닌가요? 왼갖 잡새가
다 날아든다구 했잖아요. 그 속에 독수리가 빠졌겠어요?
종구 ‘남도 새타령’에 독수리는 없습니다. 해동청 보라매 수리는
있어도 ‘독수리’는 새타령에 없대니깐요.
희은 분명 <왼갖 잡새가 다 날아든다>구 했는데. 그럼 독수리는
잡새가 아닌가 보군요. 제왕새라 해줘야 하나요? 왜 빠졌죠?
종구 ‘남도 새타령’에 독수리를 뺀 이유를 먼저 중국 ‘후한서
예형열전’ 이 구절부터 보고 우리 조상님들 기록 돌아볼까요.
희은 중국 한나라 역사서인 ‘후한서 예형열전’이군요.
(낭송) 후한시대 공융이 예형이란 사람을 조정에 추천하면서 말하기를
‘사나운 새가 수백마리 있어도 한 마리 독수리 보다 못합니다’
종구 바로 그 구절 ‘지조 누백, 불여 일악’이라. 사나운 새들이
수백 마리래도 독수리 한 마리만 못하다.
(鷙鳥累百 不如一鶚 使衡立朝 必有可觀)
희은 아하, 느낌이 오네요. ‘남도 새타령’에 독수리가 뜨면
온갖 잡새가 다 도망가니깐 독수리를 뺀 거군요. 그죠.
종구 얼씨구, 그겁니다. 후한서에 나오는 그 말처럼 ‘사나운 새
수백마리가 독수리 한 마리를 당하겠느냐? ’ 이 구절을
시작으로 우리 조상님들도 독수리를 어떻게 말했는가 보세요.
희은 고려말 가정 이곡이 <조 재상을 찬탄하면서>쓴 시 구절이군요.
(낭송) 그대 용들이 겨루는 시험장에서 매번 장원하신 분 / 每魁場屋群龍鬪
월등한 재주는 저 하늘 종횡무진 한 마리 독수리였지/ 獨步才名一鶚橫
종구 나라에 최고의 지성인이었다는 걸 한 마리 독수리로 찬탄한
대목이죠. 여기 조선 중기 계곡 장유가 전원생활 하는
몽뢰에게 전한 편지 글 중 두어구절에 나오는 독수리 보세요.
희은(낭송) 독수리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는 밝은 이 시대에
그대를 어찌 나무꾼이나 어부로 늙게 놔 둘거 같소?
종구 (성독조 느리지 않게) ♬명시 중 일악이니/ 긍허 노초어릿가~~
(明時重一鶚 肯許老樵漁)
희은 오늘 ‘남도 새타령’에 왜 독수리가 들어가면 안되는지, 그리고
이 시대를 꿰 뚫어 보는 그 독수리는 어디에 떴는지 찾아보자
종구 한 마디에 열두가지를 생각하는 박희은씨. 맞습니다.
계곡 장유의 말처럼. ‘진정 이 시대의 독수리 같은 인재라면
나무꾼으로 어부로 늙어서야 되겠느냐? ’
희은 거기 혹시 ‘독수리 맞는데 나무꾼 어부로 사는 분 보셨으면
바로 알려 주세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남도새타령과 독수리’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도곡과 고양미주 羊羔美酒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기행으로 나서는 날이죠?
종구 도곡과 고양미주 이야기 돌아볼까요. 도곡은 송나라
한림학사였구요. 고양미주는 연한 양고기에 먹는 고급술이구요.
희은 그럼 송나라 한림학사 도곡이 연안 양고기 안주에 고급술을
마셨다는 그런 이야기가 되나요?
종구 거기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죠. 가난한 한림학사
도곡이 기녀를 데리고 지내는데, 그 기녀가 전에 살았던
집이 행세께나 하는 당태위란 사람이었거든요.
희은 삼각관계 이야기 같네요. 가난한 한림학사 도곡하고
잘 살던 당태위, 그 사이에 기녀가 있군요. 전에 당태위랑
살다 한림학사랑 살게 됐더란 거죠.
종구 그렇죠. 하루는 한림학사 도곡이 소복하게 쌓인 눈을
가져와 그릇에 넣고 자글 자글 끓이더니 차를 내서
기녀에게 건네 줬거든요.
희은 그도 어찌보면 멋스러울 것 같은 운치가 있네요.
소복하게 쌓인 눈을 가져다 차를 끓였다.
종구 가난한 한림학사가 기녀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학사 (뽐내며) 저 무뚝뚝하고 거친 당태위란 사람이 백설로 우려낸
차맛을 알까? 이런 눈 풍류를 알겠는가 말이다.
기녀 (젊잖게) 거칠고 무뚝뚝한 그 사람이 이런 풍류를 어찌 알겠습니까만
따뜻한 비단휘장 아래 앉아서 조금씩 술잔을 기울였다
연한 양고기를 먹으며 옆에서 기녀가 불러주는 나지막한
노래 들으며 고양주를 마실 뿐이랍니다.
학사 (무안해) 허허, 비단 휘장 아래서 연한 양고기 안주에
따끈한 고양주 잔 기울이며 나지막한 너의 노래를 들었더라.
기녀 그런 거친 사람이 어찌 이리 눈을 녹여 차를 마시는 풍류를
알겠습니까?
학사 허어. 내겐 비단휘장도 없고, 고량미주도 없잖느냐?
희은 그 기녀의 말이 묘한 분위기가 있네요. 가난한 한림학사 도곡이
눈을 녹여 차를 우려낸 풍류였는데. 당태위는 고양미주에
나지막한 청으로 노래하는 기녀를 옆에 두고 천천히 잔을
기우렸더라.
종구 비교란 어떻게 비교를 하거나 그 나름 잘나고 못난거
드러나게 돼 있잖아요. 그러니 한림학사 도곡이 눈으로 끓인차
자랑했다가 목이 옴쑥 들어갔겠지요.
희은 누군가 빼어난 예인에게 ‘백설로 차를 끓이겠수?
비단휘장 아래서 고양미주에 나지막히 노래 한곡조
하겠수?’ 아니 저한테는 묻지 마시고 다른분에게 물어본다면?
종구 조선의 시인들은 멋으로 치면 백설녹인 차 풍류가 좋지! 하면서
속으로 원하는 것은 ‘고양미주에 나지막한 청으로 노래하는
기녀 옆에서 천천히 마시는 술 한잔’을 부러워했더란겁니다.
여기 서거정이 국화핀날 달마중하며 남긴 시 한구절 보세요.
희은(낭송) 때로는 기녀에게 고운 노래 시켜놓구서/ 술한잔 홀로 마셔도
크게 취하기만 하겠나?
종구 차 한잔에 깊은 운치, 노래가 있는 술 한잔의 멋진 풍류
물론 둘 다 자유자재로 하는 팔자라면 더욱 좋겠죠?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도곡과 고양미주’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전기행 사설여행' 심청가 한구절로 돌아간 대목이다.
심청가의 '타루비'를 생각하게 된 건 이 무렵 '사병묘지에 잠든 채명신 장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였다. 내겐 일생에 벗어날 수 없는 두가지 화두가 있다.
하나는 '국악이고 다른 하나는 국방'이다. 국악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오래 썼지만
국방부 국군방송에서 국방에 관련된 사극도 2천5백여편이나 써 왔던 사람이다.
같은 나라국자에 한쪽은 우리것 문화예술이고 한쪽은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이다.
오늘도 이 시각 '국군방송' 주말 사극 '호국의 숨결' (앞으로 <여긴 내 자리>란
프로그램으로 개편된다) '유격대장 채명신'편을 써야 하는데, 이렇게 해설글을
쓰고있다. 내 일생에 벗어 날 수 없는 세가지. '고전과 국악과 국방' 어제
왼종일 채명신 장군의 유격대 '백골병단' 사료를 뒤적거리며 뜨거운 가슴
다둑이느라 글을 못 썼다. 그렇게들 이땅을 끌어 안고 죽어들 갔는데
삼십미터 절벽에 심청이 보다 장렬하게 논개 보다 처연하게들 목숨을 던져
살아 온 채명신 유격대 이야기 몇 줄 꺼내면 벌써 수구꼴통 소리부터 하는 세상이다.
이제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사명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국내 최초 게릴라전을 전개한 채명신과 강원도 인제 산골에서 마주친
인민군 중장 빨치산 총 사령관 길원팔이 주고 받는 말이 들려 온다.
'넌 누구네. 썩어빠진 이승만 괴뢰도당 군대 중에 이곳에 올 군대가 없다.'
글쟁이는 이렇듯 수다가 많다. 다시 타루비로 돌아가자.
이 시대 그 분의 비석을 부여잡고 흐르는 눈물 강물이라도 되게 할
그런 인물이 아직도 있다는 게 나를 다시금 글 쓰게 한다.
돌아가야겠다. 그 타루비 자리로.....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심청가 타루비와 절도사 신익념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 사설여행편인가요?
종구 먼저 심청가 타루비 대목 돌아볼까요? ‘타루비’를 아시나요?
희은 그건 판소리 좋아하는 분들 상식이잖아요.
심청이가 임당수에 빠진 다음 그 효성을 기리자고 세운
심청이 추모비, 그 앞에서 다들 눈물 뿌리고 울었다는 타루비.
종구 용케 아시네. 반가워요. 희은씨. ‘타루비’ 전통은 꽤 오래된
거거든요. 나라를 위해 일신을 바친 사람을 추모하면서 세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타루비>도 있고. 심청이처럼 효성이
지극한 사람 사연을 기록한 <타루비>도 있었죠.
희은 심청이가 떠난 다음 심봉사가 그 타루비 앞에서 심청이
그리워하며 눈물을 뿌렸으니, 타루비는 눈물샘 자극하는
눈물샘 비석이군요. 근데 오늘 왜 ‘타루비’인가요?
종구 우리 시대에 ‘타루비’ 세울 일이 또 생겼잖아요.
잊었습니까. <장군이 사병묘지에서 잠들었잖아요>
희은 아, 채명신 장군 말이죠. 심청가에서 채명신 장군으로??
그렇죠. 우리 시대에 또 하나의 ‘타루비’가 세워졌군요.
저는 마음 속에다 세웠거든요. 채장군님 ‘타루비’를요.
종구 우리들 마음에 세워 뒀으면 싶은 이 시대의 ‘타루비’
바로 장군이 사병 묘역에 잠든 일인데요. 조선 시대에도
타루비를 세워야 한다는 덕장이 가끔 등장하거든요.
여기 조선 숙종 때 문신이고 학자인 갈암 이현일이
절도사 신익념을 추모하는 글 보세요.
희은 (낭송) 굳세고 굳센 풍신에 용맹스럽고 너그러운 덕장/
북방을 지키며 곽령처럼 덕으로 베푼 인정이야/
서역의 반초 장군처럼 거침 없는 기상이었지 /
그 재능 다 펴지 못하고 고난도 많았으니/
속절없이 육도삼략을 품은들 누가 알아주랴 /
그대 떠나자 줄줄이 울며 사모하는 사람 많으니/
당신 다스렸던 이현땅에 응당 <타루비>로 기억되리라/
종구 갈암 이현일이 추모했던 절도사 신익념 장군.
신익념은 숙종 시대 함경북도 지역사령관인 병마절도사를
지낸 인물이었는데요. 변방을 지키면서 흉년으로 굶어죽는
백성들을 많이 살려낸 덕장이기도 했었죠.
희은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이현 고을에 타루비가 세워졌겠군요.
우리 역사 속에도 이렇게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추모의 비석이 꽤 있었다는 거잖아요.
종구 우리시대에도 마음 속에 ‘타루비’ 세우고 추모할
고 채명신 장군. 살아서는 조국에 바친 몸이었고
죽어서 병사 곁에 묻혔잖아요.
희은 눈물을 흘리며 추모할만한 이 시대의 <타루비>들이
더 늘어났으면 싶은데, 심청가 ‘타루비’ 대목만 들어야되나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타루비’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서거정이 거문고 명인 김전율에게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조선 전기 문신이고 학자인 서거정이
거문고 악사에게 준 노래를 만나볼까요?
희은 서거정이 거문고 악사에게 준 노래라면 당대 최고의
거문고 명인이었겠네요. 누구였죠?
종구 서거정은 모두 여섯임금을 모셨는데 육조판서를 고루 지내고
대제학만 23년간 했었죠. 그 서거정이 거문고 명인 김전율에게
건네 준 노래를 잠시 음미해 볼까 합니다.
희은 당대 최고 거문고 명인과 시인이 만나서 노래 한곡이
나온 거 아닌가요. 궁금하네요.
종구 5백년 훨씬 넘은 서거정의 거문고 악사를 찬탄한 노래 보실까요
희은(낭송) 거문고 소리 잘 알아 들은 백아와 종자기가 지음의 경지라/
마음속 소리까지 알아들은 그들이 간 뒤로 뉘있어 알아들을꼬?
이제 그대 거문고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 /
자세히 듣노라면 샘물 소리가 줄 위에서 나고 /
때때로 신령스런 바람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터저 나온다/
높은 산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아직 남아 있고 /
이별하던 학과 홀로 살던 고란 운치도 깊었어라 /
한곡조 아양곡을 그 누가 알아 들을꼬? /
거문고 소리마다 옛 사람과 친구마음 튕겨 나온다/
종구 서거정이 노래한 그 당시 거문고 명인 김전율 면모가
드러나 있죠. 연주자와 감상자가 일치하고 공감하는 경지
‘마음속 소리까지도 안다’는 지음을 말하며, 서거정이
거문고 명인 김전율을 마나본걸 행운이라고 여기며 듣고있죠.
희은 보니깐. 거문고에 샘물 소리도 흐른다 해놓구. 뒤에서는
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 소리가 남아 있더란 말도 했잖아요.
종구 거문고의 여운이 산골에 흘러 내리는 물 소리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더란 말이죠.
희은 그 다음에 거문고를 연주하는 손가락 사이에서 영뢰 소리도
울려 퍼지더라 했잖아요.
종구 거문고를 연주하는데 한손은 현을 눌러 운지를 하고
한손은 술대를 잡고 줄을 튕기고 있으니, 거문고가락이
신령스런 바람소리처럼 마구 튕겨 나오더란 것이죠.,
희은 그런데 이별하던 학과 홀로 울던 난새 소리도
들리는 거 같다는 말은요?
종구 도연명이 남긴 ‘의고’란 시에 나오는 거문고 가락 묘사한
구절들인데요. 윗줄에선 학이 이별하는 모습을 그린듯하고
아래 현에서는 외로운 난새가 울어대자. 거울을 비춰 줬더니
더욱 슬퍼하며 울다 죽었다는 그 모습처럼 들리더란겁니다.
희은 서거정 시대에 거문고 명인에게서 어떤 곡조가 울려 퍼졌는지
어렴풋 그림이 그러지는 노래 같습니다.
종구 이 시대 이런 곡조를 마음으로 알고, 같은 그림으로 그려가며
감상할 명인과 시인이 다시 거문고 노래를 남겼으면 싶습니다
희은 ‘고전의 샘터’ ‘서거정 거문고 노래’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맹금류
매,부엉이 수리 솔개,보래매 독수리,
이 중 독수리 가 가장 큰 왕 이지만 이 독수리는 사냥보다 시체 청소부 역할을 더 좋아 하지요
그래서 맹금류 대표로서 ,백리추호 보라매가 새 타령에 나온다고 생각 합니다
글구 새타령이 한 10시가간 정도의 긴 사설이라면 혹 많은 새가 다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 많은 새를 다 무대에 올릴수는 없쟌혀-?
설령 10시간 짜리 새타령이 있다 해도 독수리가 등장해서 분위기 깰 필요는 없겠죠.
여기 '새타령'에서는 한국적 정서나 새에 대한 전통적인 사연과 정감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편이
나을겁니다. 시체 청소부 역할도 새타령의 미학적 측면에서 보면 멋 없는 일이겠죠.
기러기 한마리에도 한나라 때 충신 소무의 역사가 깃들어 흐르고 있고. 붕새도 등장하는 거 보면
장자의 멋들어진 삼천리 날개짝 달린 환상의 새도 등장하는 멋이 있는데, 독수리가 등장할 만한
건덕지가 없다고 봤다는 점. 굳이 등장하려면 뭇새들을 호령하는 영걸처럼 멋지게 등장했으면 해서
선비들이 노래한 독수리와 준걸들을 인용했던겁니다.
새타령의 멋을 뒷 부분에서 찾아보는게 좋겠죠. 이딴 독수리가 들어와 놀 자리냐 한국정서에 독수리가 무슨 연분이 있다는거냐. 그런 말보다 새타령 뒤에 할미새로 가서 비둘기로 넘어가는 흐름을 보면 그 잘나고 힘세고 모양좋고 빠른 새들 많기도 하지만 할미새와 노인새를 통해 나이든 새도 날아보는 세상, 생태계로 보면 새끼 많이 낳고 도시의 골치덩어리인 비둘기지만 자식들 많은 모습처럼 구구구 정겹게 모여사는 비둘기 가족 같은 세상, 숫비둘기가 콩 하나 물어다 암비둘기에게 주면서 변함없는 애정을 표하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이래서 남도창 새타령은 맹금류가 판치는 새타령이어서는 안되고 할미새 노인새 비둘기들이
모여서 제 둥지에서 정겹게 사는 세상을 열망하고 있는 이야기가 멋지단 겁니다. 이런 판에 새들의 왕이란 독수리가 들어오면 멋만 없겠습니까. 이런걸 남도 판소리에선 이면을 모른다. 어간이 없다. 그러는거죠. 방송에선 시간관계상 이런 이야기들 할 짬이 없어 이곳에서 하는겁니다만, 바늘 끝을 놓치고 옷 소매를 붙들고 잘났네 못났네 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옷이 잘 빠졌는데 입은 사람이 못 돼먹어서 옷이고 바느질 한 사람도 무안하게 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래서 새타령에 흐름이 어떻게 멋지게 마무리 되는가를 놓치지 말고 노래하자. 그저 목소리 흉내나 내면서 새타령 백번 불러봐야 앵무새 흉내 밖에 더 있겠느냐냐 그런거구요
이 코너가 참 좋습니다.
고전과 판소리 사설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측면에서 뿐 아니라
마음을 수양하고 정신을 살찌우는 금과옥조의 선인들 말씀을
접할 수 있어 그렇습니다. 너무 아깝고 보배로워 남들에게도
마구 마구 전해주고 싶은 글들 입니다.
새타령에 나오는 새 중에서 창자(唱者)가 가장 부러워하고 샘을 내는 새는 뭐니뭐니 해도 '따오기'일것이다. '지가 무슨 개경문 술렁수라고..도골로만 다닌다'부러움 반 시샘 반..따오기를 보면 붉은 관대를 머리에 쓰고 도도하게 걷는다. 그리고 '빌어먹을 못난이 새'는 '할미새'다. 묵은 콩 한줌도 못팔아 먹는 가난한 새. 몰골이 굶어죽게 생겼으니 상상만 해도 피골이 상접하였으리라. 그리고 가장 멋있는 새는 뭐니뭐니해도 비둘기. 주홍같은 붉은 혀로 파란콩을 물고 - 찬란하고 훌륭한 색채대비를 상상해 보시라, 거기에 이쁜 암비둘기를 덥-석 안고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아가고 있으니...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이런 구절 구절에 솟아오른 멋과 흥을 새기면서 소리도 멋지게 하면
참 좋으련만 색채대비 다시 음미해 보니 색깔이 더욱 뚜렷하게 그려집니다.
우리도 이런 가사만치 멋진 소리할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따오기'가 건드렁 거리는
모습으로 자랑치면서 '새타령' 한번 뻐겨 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도 봉수님 땜에
새타령 몇번 더 따라 불러봅니다. 누군가 이렇게 선두에서 얻어 맞아가면서 도전하는
선두 주자가 있어야 덕을 보나 봅니다. 찬찬하게 새겨준 멋진 사설의 이면 이야기 새겨 둘게요.
보라사부님께서 부르시면 "예 마님!" 하고 외치시는 모습 종종 보여주신거 맞습니다! 선생님! 백련산도 타시고 북한산도 타시고 도봉산도 타세요! 선생님 다리에 힘빠지심 사부님께도 안좋지만 저희한테도 안좋습니다!
올해 봄 소리와 겨울 소리가 놀랍게 달라진 풍림님, 어디 산중에 들어가
독공이라도 하고 오셨남요? 풍류당에 기대되는 우리들의 광대 중 한분이 될 풍림님
전해오는 광대가의 조건을 고루 갖추셨죠. 인물 훤칠하지, 너름새 좋지. 성음 좋고,
현대적 광대의 뜻으로 추가한다면 풍림님의 따뜻한 인간미와 소리자랑 보다 소리를 공감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보기 좋습니다. 그런 바탕에서 풍류가 나와야 마르지 않는 소리샘이요
사계절 푸른 소리나무가 되겠지요. 어제 국악방송 송년음악회 마치고 그 무거운 떡 박스를 들구
결국 그런 사랑 땜에 우리 모두다 복떡을 나눠먹게 됐지요. 미래의 풍림님 소리도 그러하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