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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2
우리 성씨의 본향이 가장 많은 고을은 어디일까? 경주,안동,전주, 한양,창녕... 놀랍게도 가장 많은 고을이 성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나역시 성주문화원에서 발간한 성주향리승람을 접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었다.
경산 김씨, 성주 김씨, 성주(성산)도씨, 성주(성산)배씨, 성주 석씨, 성주(성산)여씨, 가리,경산,광평,벽진,성산,성주 이씨. 성주(성산)전씨, 파릉(성산)초씨,성주 황씨...
벽진면은 벽진 이씨의 본향으로 벽진초교 옆 소나무 숲에는 시조인 벽진장군의 사적비가 있으며 근래에 조성한 벽진이씨의 탄생과 시조에 관련된 일련의 전각이 벽진초교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시조는 이총언이며 본관 및 시조의 유래를 벽진 이씨 홈에서 가져 온다.
" 벽진은 경상북도 성주군의 통일신라때 행정구역명이다. 신라때 본피현이라 하다가 757년에 신안현으로 개칭하였고, 통일신라때 벽진으로 개칭하였다. 그후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895년 성주군 벽진면으로 남아있다. 시조 이총언은 신라말에 벽진군 태수를 지내고 왕건을 도와 고려 창업에 훈공을 세워 삼중대광으로 벽진장군에 올랐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이총언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벽진으로 삼게 되었다"
또한 벽진면에는 성산 여씨들에게 세가지 보물이 면소재지에 있다. 그 하나가 여희림 선생을 배향하는 운양서원, 월회당과 측백나무이다. 운양서원은 대원군 서원 철폐령 때 철폐되어 운양서원으로 이어오다가 해방후 서원으로 복구 되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가운데 마루 3칸의 기둥은 두리기둥이며, 나머지는 방형이다. 월회당은 1919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파리장서를 써서 송준필,김창숙,여상윤 선생 등이 독립만세를 부른 본거지이다. 문이 닫힌 담 넘어로 기웃거려본들...
문화재청 자료를 옮겨온다, "월회당(月會堂)은 조선 중종11년(中宗, 1516年)에 원정 여희림(園亭 呂希臨, 1481~1553)이 향토제자들에게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강론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강회소(講會所)로 창건한 건물인데, 이후 현종 5년(顯宗, 1664年)에 여희림의 현손(玄孫)인 여효증(呂孝曾)이 현위치로 옮겨 중건(重建)하였다.
측백나무 관리자 이름이 울 중학교 음악 선생님과 이름이 같다. 물론 그선생님도 이곳 분이시다. 중학교 동창놈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이니 다음에 확인 해봐야겠다.(현장 답사 시에는 깜빡 했다)
전국 참외의 주산지답게 들녘에는 내년 참외 농사가 벌써 시작되어 비닐하우스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진다. 다음에는 이곳에 거주하시는 옛님의 **님과, 월항면에 사시는 0000 00님을 꼭 뵙고 싶다. 만나주실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