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를 만나 주신 부활의 예수님
요 20:24~31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특별히 도마라고 하는 제자에게 나타나 행하신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이 있지만 특징과 기질들이 각기 다릅니다. 도마는 디도모라고 불리웠다고 하였는데, 디두모라는 이름은 쌍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도마는 쌍둥이였던 것입니다.
도마는 기질이 독특합니다. 그의 기질은 한편은 헌신적이지만 음울하고 비관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도 예수님이 유대 베다니 동네로 바로 가지 않으시고 미루셨습니다. 그러다가 나사로가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후에 제자들에게 유대에 다시 가자고 하시자 제자들은 펄쩍 뛰면서 말렸습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그래도 예수님은 일할 기회니까 지금 가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르시기를,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기를,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고 하였습니다. 이 때 다른 제자들과 달리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살펴보면, 도마에게 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는 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가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비관주의가 도마의 기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관적인 동시에 회피적인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자기를 희생하여 헌신하는 점이 도마의 성격이었습니다.
또 도마에게는 의심많은 기질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내가 그의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고 하였습니다. 일주일 전, 첫번째 부활절 당일에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 요한과 여인들의 증언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증언 그리고 밤중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방문 사건에 대하여 도마가 후에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살아나셨고 자기들이 직접 보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이런 이야기를 다 들었어도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도마는 자기가 직접 손과 옆구리에 직접 넣어보지 않으면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그가 한 말에 “믿지 아니하겠노라”는 말은 원문에 보면 “절대로 안 믿겠다”는 뜻입니다. 자기 조건에 맞지 않으면 절대 안 믿겠다는 말이니, 그는 참 의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도마는 전에도 자기가 납득이 안되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기질입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날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도 아느니라”
이 때 제자들 중에 오직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을 여러번 말씀하였건만, 도마는 아직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때 친히 유명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대로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체가 곧 길이요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그를 믿는 것이 하나님께로 가는 오직 유일하고 완전한 길입니다. 이 의심이 많고 그래서 그 의문을 반드시 물어보고 납득되지 않으면 안되는 도마, 확인하고 질문하는 도마 덕분에 우리는 이 유명한 말씀을 답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도마는 확신하기 전에는 많이 의심하고 질문하지만 일단 확신하면 완전히 몰입하고 몰두하여 자기를 내던지는 기질인 것입니다. 후에 도마가 확신한 후에는 엄청난 신앙 고백과 흔들림없는 헌신의 길을 갔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도마는 이 기질 때문에 도마는 손해를 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들 교제를 나누며 모이고 서로 격려하는데, 오직 도마는 그 자리에 모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일만 생각하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좀 들었지만 방황하고 모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기간에 그는 낙심하고 절망하고 의심하며 지냈던 것입니다. 손해를 많이 본 것입니다.
성도가 모이는 예배와 교제의 자리에 모이지 않은 것은 손해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앙 문제를 가지고 깊이 연구하는 것도 유익한 점도 있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더 유익합니다. 자기만 제일 똑똑하고 무엇인가 더 잘 안다고 하는 도마같은 기질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손해가 많습니다. 교회가 단점도 많고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똑하고 더 영적인 한 개인보다 더 영적이고 더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히브리서 10:24,25 말씀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가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라는 말씀대로 우리는 자주 모여야 할 것입니다.
도마가 이렇듯 믿지 않겠다는 옹고집 불신의 경향을 아신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혼 좀 나봐라, 고생해봐라’ 하고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주일에 예수님이 찾아와서 도마에게 친히 믿음을 주십니다. 첫 번째 주일과 거의 똑같은 장소와 시간에 똑같이 제자들을 방문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특별히 도마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향하여 그가 요구한 믿음의 조건을 그대로 다 채워주십니다.
“네 손 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를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더 의심 많고 더 까다로운 믿음의 기준을 요구하셨으나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사 그에게 다 맞춰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도마의 불신앙, 잘못된 기질 들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의 키 높이를 맞추어 격려해주고 확신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신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사랑 가득한 권면을 듣자 도마는 이렇게 놀랍게 응답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의 이 고백은 매우 놀라운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주님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은 유대인으로서 매우 놀라운 고백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첫 구절에서 나온 다음 말씀을 도마가 완전한 고백 형태로 말한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 1:1)
의심 많은 도마가 이렇게 놀라운 고백의 단계에 이른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만큼,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할 만큼 도마는 큰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는 참 믿기 어려운 기질의 사람이었지만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난 후에 그는 완전한 확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도마는 이 확신에 걸맞게 후일에 파르티아와 인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당당하게 순교했다고 전해져 옵니다. 예수님의 격려와 그의 낮아지신 사랑이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이르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 채 그들의 증언인 복음서들과 사도들의 증거들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지금 우리도 보지 못하고 그의 부활이 분명한 사실임을 믿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흩어진 나그네 생활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그렇습니다. 보고 믿었든지, 보지 않고 믿었든지 상관없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열한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기뻤던 것처럼 기뻐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고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보고 믿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도마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남의 사건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도마는 모이지 않아서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거든 모이기를 힘씁시다. 성도와 교제를 늘 기뻐합시다. 의문이 생길지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한 채 계속 있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와 손가락을 직접 넣어보고 만져보기까지 해서라도 주님을 만납시다. 주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기보다 믿는 자가 되기를 지금도 갈망하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의심많고 비관적인 도마까지도 그렇게 찾아와주신 주님께서 그런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확신과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도마처럼 헌신하는 자로 변화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주여, 도마의 까다로운 믿음의 조건을 그대로 다 충족시키기까지 낮아지시고 사랑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부활 신앙의 일꾼으로 헌신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