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갤러리
여수 율촌면에 있는 애양원을 지나 미로처럼 좁은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외딴섬처럼 마을 하나가 있다.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도성마을에는 사회와 이웃에게 거부당해 스스로 가두고 살아 낸 슬픈 아우성이 있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가축 분뇨 냄새가 코끝을 타고 옷에까지 분칠한다. 몸에 해로운 오랜 슬레이트 지붕과 가축을 키우고 버려진 낡은 건물에는 그동안 세월의 흔적이 새겨있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주로 양계와 양돈에 의지했단다. 이들에게 닭, 돼지 농장은 자식이 태어나면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 유능한 사람으로 세상에 나서게 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희망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주고자 개관한 곳이 ‘에그 갤러리’다.
마을에 걸려온 전화를 한센인들에게 연결해주는 일을 하던 곳인 공간을 공연과 전시를 위한 에그갤러리로 변신 시킨 것은 1년 전이었다. 그때까지 이곳은 도성마을과 함께 바깥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투명공간이었다. 거기서 공연하는 음악회, 그림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치유와 화해, 소통, 공감, 변화에 눈을 뜨게 했다. 에그갤러리 관장이신 박성태 작가님이 10년 전, 도성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 우리 안에 한센인 ‘100년 만에 외출’이라는 주제로사진 전시회를 열면서 이들의 불편한 진실과 숨겨진 억압과 고뇌와 외침을 표정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은 그 마을의 역사를 말한다. ‘100년 만에 외출’ 사진 전시회는 도심 속 외로운 섬 도성 마을 사람들에게는 당당히 자신을 표현하도록 용기를 주고 사회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민낯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이 계기로 에그갤러리는 사회적 관심과 의식을 일깨워손을 내밀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는 브릿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낯선 사진작가에게 처음 얼굴을 내밀 때 그들의 심정과 표정이 어땠을까. 그들이 사진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낯설고 두려웠을까. 그들에게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 진솔하게 담아낸 사진작가가 백년 만에 온 손님이리라,
갤러리 담장에 큰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담장 너머 감나무와 천리향 나무가 마중을 나와 나를 반기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나뭇잎 사이로 하얀 좁쌀처럼 생긴 작은 꽃잎에서 풍기는 천리향이 은은하게 콧속에 스민다. 화려하게 피다가 진 꽃무릇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톡 건드리면 터질 듯 붉은 감이 손짓한다.
전시회를 열면서 마을 사람들이 농사지은 땅콩, 녹두, 깨, 대추, 계란 등 특산물 시장을 열어 전시회 오가는 이들을 훈훈하게 했다. 방문객을 위한 계란 나눔도 풍성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나라 천재 조각가였으나 요절한 류 인의 아내 이인혜 작가의 ‘빗간이 사람들’이다. 여수 횡간도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담아 사실 기법으로 섬세하게 그린 작품들이라 소개되어 있다, 단층 건물벽에 붙은 안내표지를 따라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70여 점 작품 속에서 다양한 얼굴이 빛을 받아 웃고 있다. 이 중에는 한지에 표정을 그린 독특한 큰 작품이 몇 점 있었다. 작가가 빗간이 사람들에 대한 세세한 사연을 주고받는 적이 없는데 크게 담은 인물작품들은 평소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했다.
작가는 어르신들 표정 속에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아버지 남편을 안타까워하며 삶의 애잔한 그리움을 담아냈을까. 굵게 파인 주름에서 서글픔과 외로운 그늘을 보았을까. 굳게 닫은 입 주변에서 느끼는 고요는 사느라 숨 가쁘고, 살아 내느라 고달팠던, 그러나 묵묵히 견뎌 낸 속내를 표출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르신들의 고뇌와 눈물을 닦아 주는 작가의 예술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가족은 작품에서 만난 아버지 얼굴이 낯설다고 했다. 당신의 아버지 눈빛이 아니란다. 당신의 아버지가 슬픔이 가득 찬 눈으로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생전에 아버지의 숨겨놓은 눈을 모르고 지내서겠지. 나도 어느 작품 앞에서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아버지 눈에는 아픔과 고단함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갤러리 안은 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없다. 나는 이미 빗간이 사람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안아주고 있었다. 에그갤러리 안에서, 세월에 그을려 얼굴빛이 빛나지 않아도 오고 가는 가족과 지인들의 위로와 온기로 어른들의 기운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어디 가나 주목받지 못한 인생이 있다. 반듯한 이름 석자 쓰지 못해도, 얼굴이 잘 생기지 못해도, 업적이 빛나지 않아도 에그갤러리에는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러 주는 세대 공감이 있다. 에그갤러리는 도성마을 사람들의 외로운 섬 이야기와 횡간도 빗간이 사람들의 외로운 섬을 잇대는 사랑의 다리이다. 이 다리는 생명, 희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고 안아주는 도성마을 사람들의 용기를 실어 나르고 빗간이 사람들과 애환을 나누며 숨 쉬고 숨을 잇대는 보금자리다.
작품 곁에 기대어 멍하니 나를 본다.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건 내 안을 들여다보기 위함이고, 내 안에 침잠하는 것은 바깥세상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에그갤러리는 나, 너, 그리고 우리를 안아 서로 울고 서로 우는 치유와 화해의 공간이다. 작품 감상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니 정오 해가 밥 때를 알린다. 어느새 내 옷에 퀴퀴한 냄새가 사라지고 사람 사는 향기로 젖어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