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입니다.
추수를 감사하는 차례를 지냅니다.
죽은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와도 연관됩니다.
창조 신화는 창조물, 신들, 조상들의 이름을 길게 나열합니다.
"사모아, 하와이, 일본의 창조 신화에는 신들, 우주적 힘, 혹은 조상들의 이름이 끝없이 나열되는 족보(genealogies)가 등장합니다.
사모아와 하와이 신화를 보면, 탕갈로아(Tangaloa) 신이 바위를 쪼개어 수많은 신과 자연물을 낳습니다. 깊은 밤과 심연 속에서 벌레, 조개, 해초 등 수많은 세대가 태어납니다. 이 길고 거룩한 세대의 목록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인간이 창조됩니다.
일본 신화에서는, 『일본서기/고사기』에 하늘과 땅이 분리된 후, '하늘의 중앙의 주(Mid-Sky-Master)'를 비롯한 수 많은 신(Kami)이 세대를 거듭하며 탄생합니다. 이자나기(He-Who-Invites)와 이자나미(She-Who-Invites)에 이르러 일본의 여러 섬과 자연물들이 태어나고, 마침내 최초의 지상의 천황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하강의 족보가 이어집니다."*
성서에도 족보가 길게 나열된 곳이 여럿 있습니다.
처음은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족보이고, 아브라함과 야곱의 열두 아들의 자손들, 다윗의 족보에 이르면 몇 페이지에 걸쳐 끝없이 나열됩니다. 이는 아담에서 결국 예수까지 이어집니다.
어느 민족이든 조상들의 계보를 왜 이렇게 정성껏 기억하고 전승하는 것일까요?
창조신화나 성서의 이 무수한 이름의 나열은 지루해 보이지만 분명한 정신적 의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모호함(all-embracing vagueness)에서 시작하여 점차 특정 가문의 조상, 특정한 섬이나 나무와 같이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단위(definite units)로 응축(condensing)됩니다. 즉, 보이지 않는 무한한 신성에서 시작하여 구체적이고 다원적인 인간의 역사와 의식적 현실로 내려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융(Jung)이 강조했듯, 성숙한 인류의 문명과 의식은 과거 인류의 경험인 역사적 뿌리와 단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원시 부족들이 길고 긴 조상과 신들의 족보를 암기하며 춤을 추는 것은, 일시적이고 나약한 자아(Ego)가 인생의 중대한 결정(결혼, 전쟁 등)을 내릴 때 조상들의 영적 에너지를 끌어모아 용기와 확신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의례입니다. 이 뿌리가 잘려나간 원시 부족이나 현대인은 새로운 사상이나 망상에 쉽게 휩쓸리고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신화 속 족보들은 이러한 생물학적, 심리학적 유전의 법칙과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원시인들의 직관적 통찰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길게 나열된 선조 계보의 사슬과, 1,2,3.4.....의 수의 사슬(chains)들은 광활하고 혼돈스러운 무의식의 에너지가 점진적으로 구체적인 현실의 질서로 응축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동시에 나약한 인간의 자아(Ego)가 광기의 분열(Schizophrenia)을 막고 무의식의 '절대적 지식'과 연결되기 위해 반드시 붙잡아야만 하는 심리적, 역사적 연속성의 밧줄을 의미합니다." *
죽은 조상의 제사가 무슨 필요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신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조상의 긴 이름에 의지하는 것도 매우 유용한 방법입니다.
(* 폰 프란츠, 창조 신화 Creation Myths, 11장 Cha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