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구의 시조바라기 - 1 이우걸 시인의 '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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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이우걸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위 시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유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
크레용(크레파스)이나 색분필로 팽이에 달팽이모양 원을 그려 한 겨울날 얼음판 위에서 유카 잎을 쭉쭉 찢어 팽이채를 만들어 팽이를 감아 내리치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혹한 매질을 가해야만 끈질긴 생명을 유지 할 수 있고, 유카 푸른 멍이 그의 피부와 뼈속까지 파고드는 아픔을 달래며 무릎을 펴야만 하는 게 팽이의 일생이다.
시조를 쓰는 시인이라면 적어도 함축적이면서도 이미지 전달을 위해 가혹한 매질을 가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민족 시가인 정형의 율격이고 무지개빛 사랑이다.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깊은 울림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직선의 통로일것이다.
독자여! 이우걸 시인의 ‘팽이’라는 시조를 감상하고, 뼈속 깊이까지 새겨보라. 이 얼마나 짧은 단수 시조 속에서 무한 우주의 신비를 담으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크레용이나 색분필로 그려낸 팽이가 오색 무지개를 그리고 접시꽃을 피우는 환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이것은 어찌보면 우리가 사는 인생사와 같다. 무수한 고통을 딛고 일어선 사람에겐 무한 감동의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참고로 이우걸 시인의 다른 작품들도 감상하다 보면 슬픔이 묻어 나온다. 그의 시조 ‘비’에서 보면 ‘나는 그의 이름을 새라고 적지 않는다 별이라고 적지 않는다’ 라든지 ‘비누’에선 자산동 언덕길에 놓인 고된 노동자의 물컹한 삶이, ‘저녁이미지’에서는 노을 진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은유로 마감하면서 주기도문을 외우는 노모의 간절한 떨림을 독자에겐 오늘보다 더 희망적인 내일을 위해 쓸쓸하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우걸 시인은 경남 창녕에서 출생하여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 등단, 그 후 시, 시조, 평론을 집필해 왔으며 시집으로 「지금은 누군가와서」, 「빈 배에 앉아」, 「저녁이미지」, 「사전을 뒤적이며」, 「맹인」,「아, 마산이여」,「나는 아직도 안녕이라 말할 수 없다」,「네 사람의 얼굴」,「지상의 밤」,「그대 보내려고 강가에 나온 날은」 등 10권의 시집이 있고, 「현대시조의 쟁점」, 「우수의 지평」, 「젊은 시조문학 개성읽기」 등 3권의 평론집이 있다.
그 동안 마산문인협회 회장, 경남문인협회회장, 경남시조문학회 회장,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의장, 창원대, 창신대 문창과에 출강했으며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신문, 국제신문, 부산일보, 경남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문예지 '서정과 현실' 발행인이며 경남문학관 관장으로 봉직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