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즈음에 창덕궁 후원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인터넷으로 50명 제한이라 미리 해야 합니다.)
3월 하순이면 나뭇잎도 봄을 머금을 거라는 생각에.
직접 찾아보니 아직 일렀습니다.
그래도 명불허전입니다.
후원은 창덕궁 해설사와 동행만 가능합니다.
창덕궁 해설사가 전체 몇명인지는 모르겠는데
오늘도 이 분의 해설을 듣습니다.
(이 분 해설 처음 듣고 반성했습니다. 아~~ 차분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겠구나..)
부용당
두 다리 연못에 넣고.
천원지방의 못..
애련지의 정자 또한 두 발 못에 넣었습니다.
숙종이 이름 붙인 못과 정자랍니다.
장희빈도 여기에 왔었겠지요..
동이는?
부용당 앞 주합루입니다.
취병 - 우리 조경기법이라고 하네요.
여기에서 막걸리 한잔 하고 싶습니다.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곳입니다.
중딩 두 친구들
장락문.
연경당의 출입문입니다.
도서관이 있고
도서관 햇빛 조절용 창문입니다.
숲속에 들어 있는 집.
정문 돈화문 앞.
밥먹으러 가는 길에 잠깐.
종묘 앞이 내내 문화재조사중이라는 안내판 걸고 막혀있었는데
드디어 확 트였습니다.
시야는 확 트였는데
일요일 시간제 관람이라 50분정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덕분에 비원슈퍼 쇼핑시간도 갖고...
이름에 비해 소박한 출입문입니다.
따로 현판 글씨도 없구요.
종묘도 해설사와 동반해야 합니다.
길.
지금이야 이렇게 맘대로 올라서서 웃어도 되지만.
엄숙과 단정함을 요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건물 아래 단 자체가 우리 아이들 키높이 입니다.
왜 이 건물이 필요했을까요?
이런 제사는 왜?
나오는 길.
현재의 민주사회 잣대로 왕조국가 조선을 재단하면 희화화 될 일들이 많습니다.
그 시대는 그시대에 맞는 원리가 있었습니다.
종묘와 종묘제례는 조선을 유지한 기본 틀입니다.
사농공상이 있고
신분제가 있었으며
유교원리를 숭상한 나라.
저 멀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치고받고 힘쎈 놈이 모든 걸 차지하는 시대에 공자가 말한 가르침까지 이어져야
종묘사직을 지키려고 했던 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얘기와 함께 종묘를 보아야
왜 여기가 세계유산이고
왜 우린 새벽 6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는지
그 수고값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창덕궁, 그리고 후원.
더불어 종묘여행.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