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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평론집 [박태진의 시, 그 반성의 시학]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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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진의 시, 그 반성의 시학]
조영미 평론집 / 시와산문사(2011.09.25)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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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머리에 / 6
제1장 박태진 시 연구의 필요성
1. 문제제기 및 연구의 필요성 15
2. 연구방법 28
제2장 박태진의 생애와 문학관
1. 시인의 생애 37
1) 성장과정과 문학관 형성기 39
2) 서구체험과 ‘새로운 시’의 모색기 48
2. 문학관 및 문학적 영향관계 57
1) 모더니즘 시관 58
2) 전통론과 현대시의 난해성 70
3) 문학적 영향 관계 79
제3장 박태진 시세계의 전개와 특성
1. 현실중시와 시의 언어 93
1) 삼중언어(다중언어) 환경 97
2) 이국정서(exoticism)의 함축과 시적 확대 104
3) 시의 언어와 리듬 113
2. 반성의 시학 121
1) 일상의 이미지 125
2) ‘새로운 시’와 ‘오늘의 시’ 134
3) 새로운 시의 비전 146
3. 이야기시의 지향 156
1) 역사와 개인의 서사 158
2) 시의 형식 변화 167
제4장 박태진 시의 형상화 방법과 특징
1. 대상과의 소통방법 174
1) 어조의 세 가지 양상 176
2) 화자의 독백과 대화체 184
3) 화자의 사변적 요설체 193
2. 영화적인 요소와 시적 이미지 203
1) ‘창’으로 바라보는 화자 205
2) 화자와 대상의 거리 212
3) 보는 화자와 보이는 공간 220
3. 상징적 이미지 227
1) 유년의 회상과 삶의 이야기 228
2) 흘러가는 것의 의미부여:강물 236
3) 과거와 현재의 공간:길 242
4. 시공간 의식의 상징성 249
1) 역사적 시간과 내적 공간:과거지향 251
2) 현실적 시간과 외적 공간:미래지향 260
제5장 결론 269
참고문헌 / 274
박태진 연보 / 282
찾아보기 /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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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공간 : 길
조영미
‘길’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인생과정으로 비유되며, 사회가 발전해 가는 데 지향하는 방향 혹은 목적 등을 일컫는다. 파스는 시인이란 말言〕의 길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1) 즉, ‘길’을 가는 사람이 시인이며, 그가 서 있는 자리가 길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길’의 의미는 세상과의 관계맺음 다시 말해, 시인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장소임에 다름 아니다. 이 길은 시작과 끝이 있는 동적인 공간으로, 볼노프에 의하면 “생의 공간적인 이중운동”2)이 일어나는 곳이다. 인간의 삶이란 공간적인 방위성에서 보면, 그가 태어난 땅을 하나의 원점으로 하여 떠남과 돌아옴의 이중적인 운동으로 귀결된다. 이때 고향은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감성을 기르는 최초의 경험이 비장된 세계로, 상상력과 기억의 보고인 동시에 생의 목표 설정과 가능성을 향한 출발점이다. 또한 고향은 향수의 대상이면서 귀환의 마지막 종점으로 떠남과 돌아옴을 가능하게 해준다. 여기에서 이러한 것들을 매개해주는 것이 ‘길’이다.
박태진 시에 보이는 ‘길’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시작만 있는 길로 화자의 암담한 현실상황을 가리키는데 이 ‘길’은 화자의 과거 회상에 의한 것으로, 역사적인 사건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화자가 젊은 시절 체험한 전쟁은 ‘길’의 공간으로 상징된다. 또 다른 하나는 인생의 의미로 나타나는 ‘길’이다. 이때의 ‘길’은 화자에게 삶의 의미와 새로운 시를 쓰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타난다. 이들 ‘길’의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접목된 것으로, 화자는 내일의 지향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소녀의 로라스케잇이 꿈을 굴리는/ 허기야 뉘의 시름이든 굳이 굳은/ 이 소로小路를/ 우유차가 병을 울리고 지나면/ 젖빛 구름이 그리운 한때// 쓸쓸히 닫힌 교구敎區 교회당/ 희끄므레 솟은 탑을/ 어지러히 치켜보는 갈색 눈/ 많은 죽음이 이어 지나갈 이 앞에서/ 나는 가랑비에 젖는다// 반드시 기쁘지 않은 평생은/ 창가에 그리고/ 꽃잎은 피고 지고/ 불면의 간밤이 배인/ 가을 아침// 정변政變을 안 태국泰國 청년은 말이 없고/ 검은 강아지를 안은 여인이 지나가고/ 길모퉁이를 돌아/ 하루는 오고/ 낯서른 감정이 돌아오고// 손아귀에 차지않는 마음은/ -포석鋪石의 수효처럼 아둔한데/ -어데서 그치기는 할 것인데/ 깨어진 포석 위에 서서/ 내 눈길은 싸늘한 바람결을 간다
-「크란리 가아든즈로」일부3)
위의 시제에 보이듯, 화자는 지금 낯선 거리에 있다. 이 거리는 “젖빛 구름이 그리운 한때”로 화자는 마음이 어지러운 상황에 있다. 이 어지러움은 “많은 죽음이 이어 지나갈 이 앞에” 화자가 “가랑비에 젖”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길모퉁이”로 “낯서른 감정이 돌아오”는 것을 보며, “내 눈길은 싸늘한 바람결을 간다”고 한다. 여기에서 ‘죽음, 불면, 정변, 검은 강아지, 깨어진 포석’ 등의 시어가 화자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화자가 바라보는 것들이다. 화자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소녀와 태국청년, 검은 강아지를 안은 여인을 보지만, 이들은 사물화된다. 이와는 다르게 “우유차=젖빛 구름이 그리운 한때”, “교구 교회당=어지러히 치켜보는 갈색눈”, “길모퉁이=낯서른 감정”, “깨어진 포석=내 눈길”로 화자의 정서가 반영되고 있다. 이렇게 인물과 사물의 역전된 의미부여는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이 인물이 아닌 거리의 풍경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은 과거 어떤 사건의 연상작용에 의한다. 그렇다면 화자가 떠올리는 과거의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원길/ 유모차가 하이얀 그림자를 이끄는 곳에 낙엽이 졌다/ 한결같이 걸음은 밟아도/ 가시지 않는 빛債이냐/ 오늘은 이도異都의 직선차도直線車道를 건느며/ 나의 자세를 의심해 보았는데// 꽃이 진 오솔길 저쪽을/ 앙상히 고인 연못 그리고/ 물과 바람처럼 흘러버린 나/ 낙엽 아래 깃든 낮과 밤/ 안개여 일어 오라/ 나와 연못은 안개에 쌓여/ 어떤 계절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 종이배/ 손가락새에 새어나간 피난 보따리 같은 것/ 안개에 젖어/ 그립게 주름져 가는 얼굴들이며/ 그리고 기대는 언제나/ 전야前夜와 아침, 오늘도/ 나는 무엇인가 잊어버리는데// 나무가 잎을 말끔히 떨은/ 공원 길에서 나는/ 방금 차도를 건네준 연금年金살이 노파의 징온徵溫을/ 다시금 손안에 느껴본다/ 안개를 마신다/ 나의 징온徵溫을 의식하여야 할 날을 생각하여/ 안개를 마신다
- 「공원길」전문4)
화자가 공원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유모차가 사라지는 모습이다. 이 모습에서 화자는 “나의 자세를 의심해 보”고, “어떤 계절을 생각”한다. 2연의 계절이 가리키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 종이배”로, 이를 구체화하면 “피난 보따리”와 “주름져 가는 얼굴들”이다. 화자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잊어버”린 것이다. 화자는 그것을 찾기 위해 “안개를 마신다”고 한다. 여기에서 4연의 “‘노파’의 징온徵溫”5)은 화자가 사람의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크란리 가아든즈로」의 화자가 떠올리는 과거연상은 피난보따리가 의미하는바, 한국전쟁을 가리킨다. 이에 따라 화자는 이국의 거리 풍경에서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 시에 보이는 ‘길’은 화자의 현재와 과거를 매개하며, 화자의 암담한 현실을 강조한다. 이는 “안개를 마신다”는 행위에서도 알 수 있듯, 화자에게 과거의 기억은 불확실한 미래로 치환되고 “의식하여야 할 날”을 생각하게 한다.
시골길은 조용해서 좋고/ 도시의 길은 변화하는 것이 좋다/ 이 길은 다름 아닌 내가 사는/ 또 내 매일의 생각이 걷는 길/ 이 길을/ 떠나 나는 없으리라/ 자리에 누어서도 거길 걷고/ 내가 생각하듯이 길은 가고/ 멎고 달리고 또 바람처럼 어디 갔다/ 나타나고 없어지기도/ 먼지가 활자를 이루며 날라가기도/ 흩날리는 낙엽들이 더 어울리며/ 이 길이 고층건물들의 욕심에 시달리다/ 가장 두렵기는 경기불황의 뉴스보도/ 나는 이 길을 솔직해서 좋아한다/ 군밤장수의 옥수수팔이의 길모퉁/ 고독이 하나의 사치처럼 잊혀진/ 시간은 언제나 냉혹한 지혜였다/ 길은 무계절無季節의 계절 나라는 문화성文化性 한마당/ 동시童時의 자전거 길이 그처럼 개화한/ 이 길을 나는 옛으로 역행할 꺼냐/ 나는 이 길을 이대로 좋아한다/
-「나는 이 길을 좋아한다」전문6)
위의 시는 박태진의 후기 시로 화자가 바라보는 길의 의미가 달라졌음을 보인다. 여기에서 화자는 시골길과 도시의 길을 대비하며 길이 좋은 이유를 말한다. 화자에게 이 길은 “내가 사는” 공간이며, “이 길을 떠나 나는 없”는 곳이다. 따라서 박태진 시의 후기 화자에게 ‘길’은 자신의 인생 길로 나타난다.
위의 시처럼 박태진 시의 화자가 바라보는 ‘길’에서 과거의 공간이 사라지면, 화자는 이 공간에 새로운 ‘길’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 ‘길’은 화자의 인생길로 상징되고, 화자는 어떻게 새로운 ‘시’를 쓸 것인가 고민한다. 그러므로 후기 시에 나타나는 ‘길’은 시의 모티브가 되는 공간이며, 화자는 삶의 의미를 일상의 ‘길’에서 찾는다.
①나이가 드는 것은 아무도 못말리고/ 젊어서는 몰랐지만/ 나이 드는 멋도/ 우리가 배워야 하는 미덕의 하나/ 미처 몰랐다고 그는 얼굴의 주름을 부비며/ 얼굴에 소문없이 돋아난/ 검버섯을 부비며// 나이 드는 것/ 인간됨을 배운다는 것/ 홀로 앉아서 홀로 걸으며/ 당신은 아직도 꽃에 미쳤고/ 당신은 아직도 산에 미쳤고// 좋을 대로 좋아하시는 대로/ 나는 길거리의 사람들이나 바라보고
-「나이가 드는 것은」전문7)
② 오늘도 걸어 나가는 길거리/ 누가 물을 말쑥하게 뿌린 여기/ 새삼스럽기는 발걸음 가볍고/ 땀을 내던 긴 여름 이제 갔고/ 바람이 겨드랑에 살랑대는 폼이/ 이 길목을 가을이 온다// (…중략…) // 세월은 간다 옛것을 몰아 가며/ 나는 여기 남아 가슴과 손바닥을 친다/ 시는 새로워야 한다 울리는 리듬이며/ 이미지들 나는 새로운 발견을 해야지
-「시는 새로워야 한다」일부8)
①과 ②에 보이는 것처럼, 박태진의 후기 시에 나타나는 ‘길’은 새로운 시를 찾는 공간이며, 세월이 가는 것을 느끼는 공간이다. ①의 시에서 주목할 것은 3연과 4연의 대응이다. 이 시의 화자는 “당신은 아직도 꽃에 미쳤고” “산에 미쳤”다고 말한다. 이 대응은 궁극적으로 박태진 시의 화자가 강조하는 시의 새로움에 대한 주장이다. 옛 서정에 반하는 시를 쓰자고 주장해왔던 박태진 시의 화자에게 “꽃”과 “산”에 미쳐있는 시는 새로운 시가 아니므로 그들을 향해 “좋을 대로 좋아하시는 대로”라며 야유의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②에 보이는 “새로운 발견을” 위해, 화자는 “오늘도” “길거리”로 향하게 된다.
②의 화자는 “잘도 변하”는 길거리에서 “낡은 것을 가려내고” 자 한다. 또한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 “햄버거집을 찾”거나 “젊은 이들 던지는 말들의 침을 닦기도”한다. ②의 화자에게 “시는 새로워야 한다”. 이것은 “울리는 리듬이며/이미지들”로 길거리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①과 ②의 시를 토대로 할 때, 박태진 시의 화자가 ‘길’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감각이다. 즉,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시의 리듬으로 살리고자 한다. 시의 화자는 ‘길’을 향해 걸어가고, 길에서 만나는 대상을 시의 리듬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행위는 화자에게 일상의 체험이며, 박태진이 찾고자 했던 ‘새로운 시’에 다름 아니다.
박태진은 끊임없이 일상의 체험을 강조한다. 이것은 ‘길’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일상의 체험을 시적 진실로 형상화하는 것은 시인의 진실된 체험을 통해서였다. 그가 주장했던 일상의 체험 속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의 화자가 있고, 그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화자가 있다. 따라서 박태진 시의 후기에 나타나는 ‘길’의 이미지는 ‘인생=시’의 진실을 찾는 과정이다.
이렇게 보면, 박태진 시의 상징적인 이미지는 ‘눈’에서 파생한 ‘강물’과 ‘길’의 이야기이다. ‘눈’의 상징적 공간인 유년은 ‘강물’과 ‘길’이 결합해 화자의 고향을 상징하고, 이들은 각각 시간의 흐름과 삶의 의미로 나타난다. 이들 이미지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박태진 시의 상징적 이미지가 화자의 비극적 인식을 토대로 한다는 점이다. 화자의 고향 상실감은 화자가 삶의 진실을 찾는 근원적인 이유이다. 그러므로 박태진 시의 화자는 일상의 체험을 강조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시적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 조영미의『박태진의 시, 그 반성의 시학』「제4장 박태진 시의 형상화 방법과 특징」의 ≪상징적 이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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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내면서
광화문 네거리가 내 삶의 일부가 된 지 횟수로 23년째다. 근방의 변화를 눈감고도 알 수 있는 곳. 수많은 인연을 이곳에서 만났고 그들 중 대부분을 아직까지 만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교보빌딩 현수막 앞에서 넋을 놓고 말았다. 그 어마어마한 일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왔기 때문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참으로 서글프게 딱, 들어맞는다.
시인 박태진을 광화문에서 처음 만났다. 일흔이 넘은 원로시인 앞에 이제 갓 등단한 20대 초반의 풋내 나는 문학도. 처음에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아니 솔직히 말해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마른 몸에 키가 큰 그러나 눈빛만은 형형했던 노시인. 그는 문학, 특히 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탁했던 눈빛이 맑아지고, 영·미·불 시단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기 바빴다. 그런 시인을 보면서 도대체 시가 무엇이기에 등 굽은 노시인의 허리를 저리 꼿꼿하게 세우는 걸까, 고민했다. 좋은 시 한 편 써보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한 대학원공부가 ‘박태진 시 연구’라는 박사학위논문으로 이어질 무렵, 시인 박태진은 2006년 1월 1일 83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난했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시인 중 하나였다. 일제식민지시대에 태어나 모국어를 일본어로 배웠으며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난 처참한 반쪽짜리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렸던 시인이다. 1948년 <연합신문>에 시 「신개지에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나 주재원으로 파견된 영국 런던에서의 체류로 본격적인 활동은 1960년대 초반부터이다. 그러나 그는 김수영과 서신교류를 하며 틈틈히 국내에도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고, 서구의 문학 흐름을 김수영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가 주재원으로 파견되기 이전 다시 말해, 그의 문학은 1930년대 모던이즘 시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졌고, 이후 새로운 시에 대한 열망은 1950년대 <후반기> 동인으로 알려진 이들과의 조밀한 관계를 형성·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는 늘 새로운 시에 목말라했고 서구의 시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오늘의 시’를 반성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시는 오늘을 반성하는 데서 시작해 ‘비전의 시’로 나아가는 시적 특성을 보인다.
한평생을 시의 언저리에서 우리 시의 새로움을 갈망했던 시인 박태진. 그가 한국시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거칠게나마 <후반기> 동인의 연장선에 있다. 알다시피 1950년대의 모더니즘 시는 <후반기> 동인과 관련된 몇몇 시인에게 치중되어 있다. 그러나 전후의 시단은 그들 몇몇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혹은 연구되지 못한 수많은 개별시인에 의해 당대의 문학은 다양한 측면에서 다각적인 논의를 불러 일으켰던바 좀 더 촘촘한 문학적 지형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일례가 전후에 활동했던 수많은 개별시인의 폭넓은 연구일 것이고 이를 토대로 1950년대 이후의 우리의 시사가 새로운 지평 안에서 이해·수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은 그러한 의도에서 연구된 것이고, 논문을 쓰고 나서야 한 사람이 내 안으로 들어와 어마어마한 일(?)을 경험케 했음을 알게 되었다. 계획대로였다면 이 책은 박태진 전집의 마지막 권에 포함되어 출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위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박태진 전집 출판이 차일피일 미뤄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먼저 출판되는 이유는 박태진이 어떠한 시인인가 더 나아가 그의 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등을 먼저 세상에 알려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본 연구 내용이 박태진의 시세계를 완벽하게 규명하기에는 미흡할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박태진의 이중언어사용과 관련해 당대의 문학적 평가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논문의 내용을 수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이 욕심은 박태진을 비롯한 당대의 개별시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보다 실증적인 연구로 나아갈 수 있다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알고도 이 책을 출판하는데 있어 많은 양해를 바란다.
조만간 박태진 전집이 순차적이든 또는 전 권이든 출판되기를 희망한다. 박태진 전집은 그의 시세계를 알리는 것에도 의의가 있겠지만 우리 시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귀한 시인이 있었음을 알리는데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늘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의 비전을 모색하는 시인의 창작태도 및 시정신은 오늘을 사는 시인에게도 큰 울림이 되리라 믿고 있다. 이에 부합하여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물심양면 도와주신 이충이 · 차영헌 · 주병오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박태진 시인을 먼저 보내고 많은 시간 그리움에 사시는 김혜원 사모님께 이 한 권의 책이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사랑하는 부모님께 고개 숙여 감사인사 드린다. 학위논문을 끝낸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부족한 딸을 큰 사랑으로 안아주신 두 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든든한 가족이 있어 언제나 힘이 된다. 그리고 공부하는데 있어 많은 의지가 되어 준 김수영, 이주미 님께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11년 9월
광화문 네 거리에서
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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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그는 지난했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시인 중 하나였다. 일제식민지시대에 태어나 모국어를 일본어로 배웠으며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난 처참한 반쪽짜리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렸던 시인이다. 1948년 <연합신문>에 시「신개지에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나 주재원으로 파견된 영국 런던에서의 체류로 본격적인 활동은 1960년대 초반부터이다. 그러나 그는 김수영과 서신교류를 하며 틈틈히 국내에도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고, 서구의 문학 흐름을 김수영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가 주재원으로 파견되기 이전 다시 말해, 그의 문학은 1930년대 모던이즘 시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졌고, 이후 새로운 시에 대한 열망은 1950년대 <후반기> 동인으로 알려진 이들과의 조밀한 관계를 형성 ·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는 늘 새로운 시에 목말라했고 서구의 시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오늘의 시’를 반성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시는 오늘을 반성하는 데서 시작해 ‘비전의 시’로 나아가는 시적 특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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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영 미∥
∙ 서울 연희동에서 출생
∙ 동덕여자대학교 석∙박사과정 졸업
∙ 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 현재 계간『시와산문』편집 주간
∙ 논문으로「박정만 시의 죽음 이미지 연구」「다이얼동인『현대의 온도』연구」「시와 신화」등이 있으며,
∙ 시집『선명한 금』『사람 사람아』『물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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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은중, 「새 천년에 되돌아보는 옥타비오 파스의 시학」, 『중남미 연구』, 제18-2집, 1999. 165쪽. 151~174쪽 참고.
2) 이재선, 「길의 문학적 상징체계」, 『한국문학 주제론』, 서강대학교 출판부, 1989. 178~179쪽 참고
3) 박태진, 『변모』, 문선각, 1962, 13~14쪽
4) 박태진, 위의 책 17~18쪽.
5) ‘徵溫’또한 한자가 조합된 말이다. 이는 따뜻함을 불러들인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시의 흐름으로 보아 “노파의 徵溫”이 “손안에 느껴본다”와 대응하기 때문이다.
6) 박태진, 『나의 신작시. 9998』, 영하, 1998. 52쪽.
7) 박태진, 『내일은 오고』, 영하, 2000. 52쪽.
8) 박태진, 위의 책, 80~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