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밖으로 나오던 날
신광자
조선조 제11대 중종의 계비 문정 왕후가 잠든 태릉 푸른 동산 안에<G>라는 조용한 경양식집이 있다.
결혼기념일인 오늘 이곳에서 우리 부부의 은혼식을 갖는다. 결혼식 끝난 후 폐백 드릴 때 딱 한번 입어본 전통 혼례복을 입고 빨간 장미꽃잎을 오려서 양 볼과 이마에 곤지도 찍었다.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두 번째 입어 본 혼례복, 봄바람에 날리는 원삼 자락의 감촉이 얼마나 싱그럽고 감미로운지……. 하객들도 나의 치장한 모습이 문정 왕후 후신 같다고 덕담을 아끼지 않으며 나보다 더 설렌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예지원을 가기도 하고 가례의례 문집을 뒤적이면서 야단법석을 떨더니 초례청을 제법 그럴싸하게 꾸며 놓았다. 초례청 중앙에 놓여 있는 교배상 위에 풍요를 기원하는 다섯 개의 함지박에는 오곡이 소담스럽게 담겨 있고, 그 앞에는 나무 기러기 한 쌍이 청실홍실을 칭칭 휘감고 있는데 아마도 아이들이 우리에게 더욱더 다정하게 살아가라는 익살스러운 주문인 듯싶다. 교배 상 양쪽에는 송죽 화병에 싱싱한 동백꽃과 소나무, 대나무가 한데 어울려 한 아름 꽂혀 있는데 화사함을 더해준다.
남편에게는 23년 동안 꾸준히 지속되어 온 소중하고 가슴 따뜻한 모임이 있다. 친구들 아홉 쌍으로 되어있고 광주 무등산의 정기를 받고 배워 온 인술을 베푸는 모임이라고 <시등회>라 불리며 각 회원들 은혼식 행사를 치러 주기로 되어 있다.
늦게 결혼한 우리가 오늘 막차로 은혼식을 올린 셈이며 시등회원 전 가족들이 하객들로 초대 된다.
먼저 아들과 큰딸이 은혼식 촛불을 밝혔고 회원 중 제일 연장자인 사회자가 근엄한 목소리로 신랑 출~ 이때 밀양머슴 아리랑 ‘날 좀 보소’가 막내딸 친구들의 합창으로 흥겹게 흘러 나왔다. 남편은 사모관대 관복묵화로 예장을 갖추었지만 어설픈 몸매와 자세로 초립동이 흉내를 내면서 입장을 하는 것이 아닌가. 부창부수라고 나도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남편은 신랑 신부 맞절을 할 때마다 벗겨지는 사모관대를 황급히 주워 쓰곤 해서 모두들 폭소를 자아냈다.
축하 연주에 이어 ‘두 손을 맞잡고’가 혼성 합창으로 홀 안에 울러 퍼졌다. 험한 산 위험한 파도에도 두 손을 맞잡고 행복을 누리며 살리라, 너와 함께. 순간 가슴 뭉클해지면서 희극 마당이었던 초례청이 갑자기 숙연해지고 지난 일들이 선명히 떠올라 감회가 새롭다.
결혼 후 새로운 인간관계로 동화 될 때까지 수많은 갈등과 인내의 반복, 맨 주먹으로 상경하여 경제적 기반을 닦을 때까지 그 피나는 내핍생활, 심지어 된장국에 멸치만 많이 들어가도 다음 끼니를 걱정하며 아껴야 했고, 한 푼 두 푼 늘어나는 재미에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 5년 후 스무 평정도 되는 건물에 세를 얻어 개인 병원을 차렸는데 그나마 5평은 내실을 꾸몄다. 병원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형 간판을 내걸고 개업하던 날, 아침 일찍 30대 중간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병원 문을 밀치고 황급히 들어섰다, 첫 환자를 맞은 나는 너무나 흥분하여 ‘어서 오십시오’라고 인사를 한 후 때마침 취사 중에 들고 있던 행주로 코피를 닦아 주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몹시 난처해하며 자꾸만 내실로 들어가라는 눈치를 보냈지만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가버리면 어쩌나 조바심에 환자 동정만 살피고 있었으니 내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우리가 개업하던 때만 해도 중랑교가 미개발지였고 천변에는 판자촌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는 심한 수해까지 입어 천변에서 흘러나온 악취와 모기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번화해진 중랑교와 동부간선 도로를 가끔 지나노라면 ‘옛 시인의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이런 악 조건을 견디며 십여 년이 넘게 연중무휴로 병원 물을 열고 보니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은 잡혔으나 하나둘씩 늘어나는 병원 식속들은 나에게 큰 부담으로 남았다. 내 유일한 일상은 세끼 밥 준비로 허덕이는 것이었다. 언제 내 식구들만 오붓하게 밥 한번 먹어 보았으면, 나 혼자 느긋하게 점심 한번 먹어보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었다. 내 인생의 꿈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일상에서 탈출할 용기도 없었지만 삶을 깊이 사유해 볼만한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만약 그때의 젊음을 되돌려 준다고 해도 현재를 선택할 것이다.
조개가 진주로 될 때까지는 많은 고통과 시련으로 아픔을 참아야 된다고 하여 은혼식을 진주혼식이라고도 한다. 세 살 된 조개를 5개월 동안 허약 체질로 만든 후 생식소의 벽을 가르고 진주 핵을 집어넣는다. 이때부터 진주조개의 첫 아픔이 시작되며 경영자의 애정과 정성에 따라 품질 좋은 빛깔로 결정된다고 한다.
내 인생의 경영자는 바로 나다. 주어진 삶의 여건에 미래 지향적 사고를 갖고 따뜻한 애정과 정성스러운 노력을 하게 되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아름다운 빛깔로 얼굴에 우러날 것이다. 이 역량에 따라 우리들의 삶은 모양과 빛깔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이때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내안의 내가 벌떡 일어나 충동을 일으킨다. 어린아이로만 보았던 아이들을 보아라. 부모를 위하여 정성껏 꾸며 놓은 초례청, 하객을 응접하는 세련된 자세, 그리고 흥겹게 이끌어 가는 여흥 솜씨……. 이만하면 늠름하게 성장했지 않느냐. 이제부터는 울 밖으로 나가 네 꿈을 펼쳐라. 사뭇 심장의 고동소리가 주체할 수 없다.
그래 맞다. 하찮은 풀잎에도 이름이 나고 나름대로 쓰임이 있지 않는가. 25년 동안 내 이름은 아이들 이름 속에 묻혀지고 남편 그늘에 가리었다.
이 순간부터 내 이름과 함께 울 밖으로 나아가자. 아이들도 엄마가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원할 것 이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3월의 훈풍과 생기를 품고 있는 나무들이 울 밖으로 나온 나를 두 손을 벌리고 맞이한다. 내 인생의 캠퍼스에 원하는 그림을 그려가며 이름을 밝혀 보리라, 아름답게 타오르는 노을빛으로…….
고수 머슴애
신광자
출근길에 나서면서 “나 오늘 저녁 약속 있어” 하는 짤막한 남편의 말 한마디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까?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모두가 거절이다. ‘아서라. 차분하게 그림이나 그리자’ 캔버스를 펼쳤지만, 이 세상에 혼자만 남았다는 고독감과 아련히 피어오르는 봄기운에 젖어 마을을 봄동산으로 달아났다. 이때 이심전심이었는지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극 <품바> 초대권이 있으니 같이 관람하자는 것이 아니가? 피천득 선생님 시 <비개고>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햇볕에 물살이 / 잉어같이 뛴다 / 날 들었다 부르는 소리 멀리 멀리 메아리친다.
금방 하늘 높이 뛰어 오를 것 같은 잉어가 된 기분이다.
약속 장소는 대학로였다. 오렌지색 재킷에 검정 스커트를 입고 연노랑 머플러로 화사하게 멋을 부린 나는 처음으로 향수도 뿌려 보았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이 제법 매혹적인 여인으로 비치었다. 친구 역시 진주색 바바리에 연 자주색 머플러를 길게 늘어뜨려 아주 세련된 멋쟁이로 나타났다. 우리는 서로를 가장 멋진 여인이라고 추켜세우며 모처럼의 만남이 즐거운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한 소극장.
여러 해 째 공연을 계속 해 오고 있다는 명성에 비해 관람석은 빈자리가 많았다. 썰렁했던 분위기는 품바와 고수의 천부적인 끼와 열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되어 무대에 빨려들고 말았다. 바보처럼 어눌한 대사와 표정, 그리고 신들린 듯한 율동. 모든 상황이 어렸을 때 보았던 품바들이 틀림없었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대문을 미치고 들어선 그들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누더기에 검은 조끼, 찌그러진 모자와 깡통, 땟국물이 줄줄 흐른 얼굴들, 완전히 공포 분위기를 자아낸 후 장타령이 시작된다.
“얼 시구 시구 들어간. 절 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기름 동이나 마셨는지 미끈미끈 잘 한다. 냉수 동이나 마셨는지 시원 시원 잘 한다. 공포는 잠시뿐. 구성지고 흥겨운 가락에 쌀이든 보리든 퍼주지 않고는 못 배겼다.
품바들은 위계질서와 규율이 엄격했단다. 절대 도둑질은 금물이고, 반드시 노력의 대가로만 생활했다. 품바타령은 품바들이 동냥질이나 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민초들이 기득권층으로부터 천시와 학대를 받아 쌓였던 울분과 서러움을 표출한 한풀이 엇다.
품바와 고수의 분장 대비일까? 예쁘장한 얼굴, 단정하게 입은 검정 두루마기의 하얀 동정이 귀티를 더 해주는 고수머슴애에게 나는 자꾸만 시선이 갔다. 맑고 고운 목소리로 재치 있게 대사를 받아 넘기기도 하고, 그때 그때 어울리는 추임새와 ㅓ표정으로 품바를 돋보이게 하면서, 관객들의 흥미를 더욱 북돋워 주었다. 북으로 장단을 맞추며 땀에 뒤범벅이 된 고수의 모습은 품바 역을 살려내는 조연이면서 무대의 주연이었다.
무대 위의 공연은 계속되고 있다.
품바의 공연도 훌륭했지만 나의 눈은 고수의 멋진 모습에 고정되고 말았다. 어쩌면 저렇게 귀티와 열정이 넘칠 수 있는지. 별로 외모에는 흔들리지 않던 나였지만 고수 머슴애만은 예외였다. 얼마 전 친척 중 한사람이 상대의 미모에 홀려 결혼을 한다기에 그런 경솔한 선택이 어디 있느냐고 야단을 쳤었는데……. 우리들은 내면의 충실이 으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순간적으로 외모에 빠져드는 어쩔 수 없는 ‘인간’ 인가보다.
“우리 이런 기분으로 집에 그냥 갈수 없지 않니?”
친구에게 말했다. 허구한 날 가족들만 기다렸는데, 오늘밤은 온가족이 나를 초조하게 기다리게 해보자.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찬 호프집에 슬슬 눈치를 살피며 들어섰다. 술 좋아하는 남편과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호프 잔에 쏟아 붓고 매력이 넘친 고수 머슴애를 술잔에 띄우면서 말도 많아졌고 웃음도 헤퍼졌다. 혜화역에서 마지막 지하철을 탔는데 삶에 대한 잡념과 생긋생긋 웃고 있는 고수 머슴애의 환영이 겹치면서 그만 두 구간을 더 가고 말았다.
대중교통이 끊어진 것을 보니 아마도 자정이 넘은 모양이다. 어차피 늦어 보려고 작정했으니 걸어가자. 행인들의 종종걸음과는 달리 집 없는 나그네처럼 천천히 걸었다. 가끔 불어오는 꽃샘바람이 상쾌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가로등 불빛이 은은한 깊은 밤에 난생 처음 늦은 귀가도 신나고, 내안에 또 하나의 끼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여 우습기도 했다. 또한 불안 초초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상상하니 참으로 고소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1시 25분.
분명 가족 중 누구한명-(분명히 남편이겠지)―이라도 집 앞에서 서성 거릴 줄 알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불긴한 생각에 허겁지겁 대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섰다.
“아니 이럴 수가!”
남편은 아직 귀가하지도 않았고, 아이들은 제각기 달콤한 꿈속에 빠져 있었다. 오로지 방마다 켜놓은 형광등 불빛만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뿐 이었다. 내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다. 달려드는 배신감으로 허탈했지만, 내 손길이 없어도 각자의 길을 충분히 갈 수 있게 성장한 아이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이상하게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 동안 나는 주연이 못된 것에 항상 불만과 열등감으로 자학한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오늘밤 고수 머슴애를 통해서 깨달았다. 주연과 조연의 차이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연을 살려내는 조연도 주연이 아니던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정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면 그것이 주연인 것을.
그날 밤 땀으로 뒤범벅이된 고수 머슴애의 환상적인 모습이 아롱거리면서 온 몸에 놀랍도록 새로운 생기가 돋아난 것은 무슨 이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