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징용 한인 2세 윤상철씨의 '눈물의 호소'
윤상철씨(65)는 영하 20도 안팎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러시아 사할린에서 살고 있다. 윤씨가 동토의 땅에서 살게 된 것은 부친의 강제징용 때문이다.
윤씨의 부친은 경북 경산군(현 경산시)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인 1925년 17세 때 사할린 탄광으로 강제 징용됐다. 윤씨 부친의 한국 이름은 윤재원, 일본식 이름은 히라노마(‘윤가’라는 뜻), 러시아식 이름은 윤미하일이었다. 한국 출신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은 이런 식으로 세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윤씨는 “일본이 전쟁(2차세계대전)에서 질 것 같으니까 ‘다 한인 때문이다’라는 소문이 돌았고, ‘한인들이 스파이로 정보를 빼넘긴다’는 핑계를 대고는 한인 마을을 말살시키기도 했다고 들었다”며 “아버지도 죽을 뻔한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고 말했다.
윤씨의 부친은 1991년 한국적십자사의 주선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윤씨는 3년 뒤인 1994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부친의 얼굴을 잠시 볼 수 있었지만 이듬해 부친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친은 “동생들을 데리고 (한국에서) 뿌리를 박고 살아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윤씨는 그러나 7년째 유언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영주귀국 대상자가 1945년 8월15일 이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최근 사할린한인노인협회장을 맡은 뒤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위 기사는 경향신문 기자가 인터뷰해 경향신문(2월7일 12면)에 게재한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