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제목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본문 누가복음 2:36-39
오늘 말씀은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라고 되어있지만, 젊은이를 위한 말씀도 됨을 기억해 두셨으면 합니다. 안나는 인간적으로는 불쌍한 여인입니다. 결혼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요? 84년이란 긴 세월 동안 홀로 살아오는 중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나는 행복했고 삶은 아름다웠습니다. 안나의 아름다움은 경건한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안나의 삶을 아름답게 장식해 준 경건함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나의 아름다움은 성전에 머묾에 있다
안나의 아름다움은 일평생 성전을 떠나지 않음에 있습니다. 시편 84:2절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라고 한 시인의 마음과 같았습니다. 84년간 성전을 떠나지 않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품에 사는 것을 행복으로 삼았다는 증거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전에서 머물면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보지 못하고 죽었다 해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유대인의 결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오는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 있는 아이가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즉각 알아보았습니다. 안나는 얼마나 놀라고 감격했을지 상상이 됩니까? 안나는 기다리고 사모하던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성전에 머무른 84년 생애가 찬란하게 빛이 났습니다. 이것이 안나의 아름다움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여러 이유 중 날마다 성전 모이기에 힘쓴 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본디 한국교회도 모이기를 잘하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이웃교회 부흥회까지 참여하여 은혜를 받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충청도와 경기도에 사는 성도가 평양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 양식을 짊어지고 걸어갔다는 아름다운 기록이 있습니다. 엑스플로 74, 80 복음화 성회에 100만 명의 성도가 여의도 광장에서 모여 찬양과 기도와 예배를 드렸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예배당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일주에 한 번 한 시간을 내어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신자가 예배당을 멀리하면 신앙생활의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경고하고 있듯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됩니다. 모이는 일을 게을리하면 자신의 신앙만 아니라, 다른 지체들까지 힘을 잃게 하고 교회 전체가 약해지고 맙니다.
유럽 교회가 모이는 일을 게을리하다가 노인들 몇 명만 남아서 예배하는 교회들로 전락하였습니다. 한국교회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음은 그만큼 신앙이 약해졌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듦은 세상과 더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학생이 결석이 빈번하면 좋은 학생이 아닙니다. 수업 시간 교실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오락실에 머물고 있다면 나쁜 학생입니다. 부모들이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요? 담임 선생님께 큰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학생은 교실에 있어야 하고, 도서관에 머물고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예배당에 머물러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성도들은 예배의 날엔 예배당에 있음이 당연합니다. 주일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는데, 교회당에 있지 않고 집이나 논밭이나 관광지에 머물러 있다면 수업 시간 교실에서 도망 나온 학생들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신자들이 교회 가는 시간 엉뚱한 곳에 있으면 문제 있는 교인으로 여길 것입니다. 교회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까지 무시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성전에 머물러 있어야 어울립니다. 성도는 성전에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예배당에 머물기 좋아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나의 아름다움은 기도함에 있다
37절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안나는 성전에 머물며 금식하며 주야로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기도하는 안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질곡에 빠져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안나의 모습이 얼마나 경건하고 아름답습니까? 해 질 무렵 서쪽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듯이 기도하는 안나 할머니의 노년이 그러했습니다.
안나는 홀로 살아도 슬퍼할 틈이 없었습니다. 쓸쓸함을 기도 생활로 승화하였습니다. 남편 없는 아픔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기도의 자유를 누리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기도 생활이 안나의 삶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습니다. 안나는 젊을 때만 아니라 84세에도 기도에 힘썼고 남은 삶도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세상은 외모로 아름다움을 평가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젊고 예뻐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기도로 생애를 채워가는 것입니다. 어머니, 할머니의 기도하는 모습만으로도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자녀들과 손자들의 기억 속에 10원짜리 화투치는 모습만 남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노년의 때에 기도하는 모습처럼 고상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기도는 내게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값진 유산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은행의 통장처럼 저축이 되고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습니다. 기도 생활의 흔적은 자녀들에게서 선한 열매를 맺게 할 것이고, 주님 나라에서 찬란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나이 드신 노인들과 홀로 사신 분들이 많습니다. 살아오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한숨만 쉬고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기도하므로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기도가 여러분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기도가 자손에게 복이 되고 교회에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교회를 아름답게 해줍니다.
노인은 새벽잠이 적기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할 수 있는 최적기입니다. 노인의 강점은 출근할 일도 없으니 기도하기에 정말 좋은 시절입니다. 성전에 머물며 늘 기도하는 안나와 같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노년은 힘으로 하는 일을 할 수 없지만 기도에 힘을 쓴다면 일해서 얻은 이익보다 더 많고 클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노인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하면 더 좋습니다. 그동안 온갖 일도 해보았고,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로 남은 생애를 경영해 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다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는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합니다. 기도하므로 인생을 가꾸고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나의 아름다움은 전도함에 있다
안나는 자신이 만났던 예수님을 예루살렘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습니다. 38절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곧 아기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이시며 예루살렘을 구원할 자로 증거 하였습니다. 몇몇 사람에게만 전함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로 증거 하므로 안나의 생애가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났습니다.
비록 안나의 외모는 이가 빠지고, 주름살이 패인 모습이었지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입술이 아름다웠습니다. 안나는 예수님 전하는데 남은 힘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안나는 자신을 지금까지 살려 두신 것은 예수님을 증거 하라는 뜻으로 여겼습니다. 두 눈으로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았고, 두 팔로 아기 예수를 품에 안았으며, 두 발은 전도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이 안나의 아름다움입니다.
안나는 늙은 사람도 전도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노년의 삶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만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이유는 예수님 전하라는 뜻으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시71:18에서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인은 주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 곧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모든 후손에게 전하고 싶은 열망이 충만했습니다.
우리 역시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 전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전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예수님 전할 때 인생이 아름다워집니다. 다른 사람의 생애까지 아름답게 해줍니다. 전도하므로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안나의 노년은 아름다웠습니다. 일생 성전에 머무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함이 짐이 아니라 특권으로 여기고 누렸습니다. 아기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는 것이 삶의 이유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과부의 고달픈 환경을 경건과 아름다운 믿음으로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노년을 보내고 싶습니까? 부디 노년의 삶이 경건하고 즐거웠으면 합니다.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백배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안나처럼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