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열여덟번째 강의 : 비전(Initiation)
비전은 영어로 initiation인데, 단어의 뜻은 입문, 착수, 전수를 의미합니다
. 구도자는 비전을 통해 영적 세계에 대한 더 높은 차원의 이해에 도달하고
자기 세계에 대한 더 큰 지배력을 얻게 됩니다.
더 높은 비전을 통과할수록 구도자는 더 큰 권능(power)을 얻게 됩니다.
비전 과정에서 구도자는 시험을 받습니다.
그 시험에 통과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시야가 열리고 새로운 능력이 주어집니다.
비전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단계를 지납니다.
예수의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은
우리들 모두가 거쳐가야 할 중요한 비전들을 보여줍니다.
12살에 성전의 사제들과 성서에 대해 토론함
, 요단 강가에서의 세례,
광야에서의 유혹,
산상에서의 변모, 십자가형, 부활, 승천. 이런 사건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모든 영혼은
예수가 거쳤던 비전들을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거치게 됩니다
. 예수의 생애는 그런 비전을 맞이하게 될 모든 영혼들의 귀감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친 달란트의 비유는
비전이란 것이 어떠한 것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춰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여기서 달란트는 탤런트 즉 각자의 재능이나 능력을 말합니다.
주인은 영/스승/그리스도입니다. 일꾼은 우리의 영혼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인/신/영으로부터 달란트(
시간과 에너지, 자의식, 창조력등)를 맡아서 쓰고 있습니다.
맡겨진 능력을 잘 활용하면
더 큰 일(더 큰 이해, 더 큰 창조력, 더 많은 에너지)을 맡게 됩니다.
점점 더 잘 쓸수록 더 점점 더 큰 일을 맡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자신만 돌보면 되지만,
어떤 사람은 공동체 전체를 돌보게 되고,
대사들은 지구 전체의 인류를 돌보고,
어떤 존재는 태양계, 더 나아가 은하계, 우주 전체의 생명들을 보살핍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그들이 거친 비전의 차이에 따른 것입니다.
모든 이는 비전을 통해 생명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습니다.
무익한 종이 머물게 되는 바깥의 어둠은 비전을 통과하지 못한 자가
전과 다름없는 또는 전보다 못한 상태에서 머물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에 들지 못한 자들이
바깥 어둠 속에서 울고 이를 갈게 된다는 말을 여러 번 합니다.
그것은 지옥에 보내지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현재 처한 상황이 바로 바깥 어둠입니다.
이 세상이 바로 바깥 어둠이며,
그 속에서 겪는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우리는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반드시 시험을 받습니다.
모든 체험은 신의 의지에 대한 복종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 퍼센트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하늘이 주는 시험들을 통과한다고 합니다.
시험에 실패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그런 시험을 받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생명 목적같은 것에 대한 무지입니다.
대사들의 가르침과 훈련은 사람들을
그런 시험에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시험을 받게 될까요?
모든 사람은 부처이고 신이라고 하는데,
신이 왜 시험을 받아야 할까요?
우리가 아직은 신이나 부처가 아니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부처이고 신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그 말씀을 충만히 표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아직 그 말씀을
온전히 담을 그릇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시험 당하는 것은 우리가 신의 자녀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튼튼한 그릇이 되었는지의 여부입니다
. 시험은 비전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비전은 능력부여입니다.
따라서 그릇이 아직 못되었다함은 이런 겁니다.
만일 분노를 다스릴 수 없는 자에게
모든 만물을 지은 말씀의 모든 능력이 주어진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아 이의 손에 핵폭탄을 안겨 준 꼴일 것입니다.
사소한 분노로 인해 수백만의 사람의 목숨을 날려버렸다면
그에게는 차라리 그런 능력이 없는게 더 복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안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핸디캡들은 사실은
우리 영혼 스스로가 내적으로 선택한 것들입니다.
예수는 '내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이 주어졌도다' 라고 선언했습니다
. 신은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게 예수에게
주었던 것처럼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당장이라도 주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그 모든 걸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첫댓글 대사학 종료 합니다..
시험 당하는 것은 우리가 신의 자녀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튼튼한 그릇이 되었는지의 여부입니다
시험은 비전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그동안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했어요... 데이지꽃님 ~~많이 상승하셔서 고맙읍니다..
지난번에 너무 피곤하여 그냥 넘어 갔어요..하시는 일 일 취월장하시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