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해병대전우회가 두렵지 않은가?
나는 해병대전우회가 두렵다. 지금은 많이 준 것 같지만 예전에 지역에서 컨테이너박스에 빨간 글씨로 쓴 해병대전우회 사무실이 많았던 같다. 해병대전우회 사무실을 보면 해방 이후 남한 사회의 극우테러와 국가폭력의 앞잡이였던 서북청년단을 연상하곤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게 남자들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입대를 할 때 해병대를 자청한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군대라면 남자답게 해병대를 간다는 식이다. 해병대는 한국남성의 소위 수컷으로의 남성다움을 극단적 낭만으로 이상화 해 유혹하는 것 같다. 유사 이래 국가는 영악하게 수컷 남성성을 군대라는 폭력기계의 부속으로 컨트롤하며 사용하고 있다. 나는 언제든지 폭력기계로 둔갑할 수 있는 의리, 애국심, 소속감이 무섭다. 각이 무섭다.
며칠 사이 잼버리에 가려 잘 노출되고 있지 않지만 박정훈 대령사태는 파렴치한 윤석열 정부가 가진 국가권력의 작동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상부의 적합하지 않은 지휘에 따라 내성천 수색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채수근 상병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국방부장관이 결재한 보고서를 경찰청에 이첩하자, 국방부검찰단은 이것을 회수하고 박정훈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로 지목했다. 사단장과 여단장의 혐의 내용을 뺄 것을 주문하던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압력과 종용은 대통령실의 지시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외압을 무릅쓰고 박정훈 대령은 애초 국방부장관의 인가대로 실행했다. 순식간에 잡단항명수괴로 몰린 박정훈대령은 국방부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하고 공정한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국민에게 요청하고 있다.
물론 주류언론은 세계잼버리 폐막을 찬양하고 박정훈 대령의 사건을 덮는 것 같다. 권력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박정훈 대령은 이제 사건의 조사자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전형적인 권력의 비리와 월권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드라마 <D.P.2>의 내용과 구조적으로 같은 상황이다. 진실을 요구하고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은폐하려는 국가 권력의 대결. 윤석열대통령의 검찰시절 외압에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어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의 소위 조직에 대한 충성이 국가가 아닌 자신을 중심에 둔 검찰권력에 대한 충성이었음을 국민의 절반이 이미 알지만 과연 윤대통령이 어찌할 지는 뻔한 상황이다. 그의 일관된 정책은 무능에 의해 반복된 실정을 적 탓하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해병대전우회가 무섭다. 이런 때 광화문광장에서 각 잡힌 해병대 빨간모자를 쓰고 박정훈 대령의 조사결과 대로 집행하게 하라고 데모를 한다면,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해병대의 군인정신이 러시아 수병반란처럼 정의를 위한 의리임을 만천하에 알리고, 나의 편견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정훈 대령 사건이 또 다른 드레퓌스 사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