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최용현(수필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군복을 입은 예비역 군인이 고등학교에서 교련을 가르치던 시절에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 학생의 거친 우정과 사랑을 다룬 116분 분량의 액션멜로물이다. ‘말죽거리’는 말에게 죽을 먹이는 거리라는 뜻으로, 서울 양재역 사거리의 옛날 명칭이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남쪽지방으로 내려가거나, 남쪽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올 때 거쳐 가는 곳이다.
1978년 봄, 말죽거리에 있는 정문고 2학년에 전학 온 소심한 성격의 현수(권상우 扮)는 같은 반 우식(이정진 扮)과 친하게 지낸다. 이소룡의 열렬한 추종자라는 공통점 때문에 금방 친해진 것이다. 우식은 정문고의 싸움 짱을 놓고 선도부장 종훈(이종혁 扮)과 대립하고 있었다. 현수는 우식을 따라 반 친구들과 함께 가발을 쓰고 고고장에 들락거렸고,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어느 날, 현수와 우식, 햄버그(박효준 扮)는 하교 길 버스 안에서 이웃 은명여고 3학년 은주(한가인 扮)가 정문고 선배들에게 희롱당하면서 가방을 뺏기는 것을 보게 된다. 우식이 그 선배를 발길로 걷어차면서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버스가 정차하자, 세 친구는 은주를 데리고 골목길로 도망친다. 다음날, 현수와 우식은 3학년 선배 반에 불려가서 거의 초주검이 되도록 얻어터진다.
현수와 우식은 둘 다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은주를 좋아하는데, 은주는 거칠고 남자다운 우식과 사귀게 된다. 은주와 같은 버스를 타는 현수는 우식을 부러워하면서 괴로움을 삼킨다.
얼마 후, 우식이 현수에게 ‘은주와 헤어졌으니 좋아하면 니가 가져라.’고 말해 복도에서 둘이 대판 싸우기도 한다. 현수는 은주와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보트를 타고 기타를 치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처음으로 입맞춤도 하고….
한편, 3성장군의 아들인 같은 반 성춘은 찍새(김인권 扮)와 짤짤이를 하다가 돈을 잃자 교련교관을 찾아가 고자질을 하는데, 그 때문에 교관에게 불려가 혼이 난 찍새는 볼펜으로 성춘의 머리를 찍어버린다. 동료급우에게 업혀가는 성춘을 따라가던 담임은 마주친 교장한테서 ‘애들을 어떻게 가르쳐서 이 모양이냐!’는 꾸중을 듣고 뺨까지 맞는다. 성춘은 교장의 등에 업혀간다. 그때가 군사정권시절임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 전에, 수업시간에 야한 잡지를 보다가 들킨 우식이 햄버그가 가져왔다고 실토하자, 선생한테 호되게 얻어맞은 햄버그는 선도부장 종훈 편에 붙는다. 며칠 후, 점심시간에 햄버그는 염산을 들고 와서 우식에게 뿌리다가 빗나가자 송곳으로 우식의 허벅지를 찌른다. 우식이 지혈을 하는 사이 햄버그가 종훈을 데려온다. 종훈이 우식에게 맞장을 뜨자고 한다.
우식이 다음에 하자고 하자 종훈은 식모아들(우식의 어머니는 식모 역할을 주로 하는, 전원일기에서 쌍봉댁으로 나오는 탤런트 이숙이다)이라며 우식을 모욕하는데, 결국 둘은 옥상에 올라간다. 종훈은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우식을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 참패한 우식은 바로 학교를 떠난다. 우식이 은주와 함께 가출했다는 소문이 돌자, 친구도 잃고 사랑도 잃은 현수는 대학에 진학하려는 의욕마저 잃고 만다.
우식이 없는 정문고교는 종훈의 세상이었다. 종훈이 우식의 단짝 친구였던 현수를 갈구는 바람에, 실의에 빠져있던 현수는 드디어 할 일을 찾았다며 종훈을 응징할 결심을 한다. 매일 체력단련을 하고 이소룡이 쓰던 쌍절곤을 사서 익히고 틈틈이 절권도도 수련한다. 드디어 준비를 끝낸 현수는 교실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종훈에게 도전장을 낸다.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올라와!”
함께 계단으로 올라가던 현수는 언젠가 우식이 ‘애들 싸움은 먼저 때리는 놈이 이긴다.’고 말하던 것을 기억해내고 옥상 입구에서 쌍절곤을 꺼내 종훈의 뒤통수를 갈긴다. 그리고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주먹세례와 발차기로 종훈을 옥상바닥에 뉘고, 그의 똘마니 7명마저 주먹과 쌍절곤으로 때려눕힌다. 그리고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 하고 일갈하고 학교를 나간다.
그날 저녁 병원, 종훈과 그의 똘마니들이 침상에 누워있고 그 옆에 서 있던 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현수의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1년 후, 고졸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학원에 다니던 현수는 은주가 재수 학원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는데, 그날 저녁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현수와 은주는 서로 의례적인 안부만 묻고 헤어진다. 이소룡의 시대가 가고 성룡의 시대가 온 것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정문고는 상문고, 은명여고는 은광여고를 패러디한 것인데, 둘 다 강남의 8학군에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의 각본까지 쓴 유하 감독은 1978년에 상문고를 다녔기 때문에 그 시절의 미장센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현수와 은주의 풋풋한 로맨스는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 해준다.
주연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은 단연 돋보인다. 특히 격투장면들은 놀라울 정도로 리얼하다. 또 선도부장 이종혁과 햄버그 박효준, 찍새 김인권 등 조연들도 뚜렷한 캐릭터를 보여주며 열연한다. 그 외에 왕년의 유명 레슬러 천규덕의 아들이면서 태권도장의 관장으로 나오는 현수의 아버지 천호진, 애마부인 3편의 여주인공 출신으로 현수를 유혹하는 떡볶이집 아줌마 김부선, 선도부장의 똘마니로 나오는 조진웅 등도 제몫을 다한다.
이 영화는 0ST인 ‘One Summer Night’과 ‘Feelings’가 군데군데 깔리면서 애잔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또 현수가 부르는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현수와 은주가 펼쳐가는 로맨스의 결말을 미리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첫댓글 오래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 한번 더보고 싶네요.
저도 여러번 봤는데, 이 글을 쓰려고 다시 영화를 신청해서 꼼꼼하게 봤어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잘 보고갑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