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열왕기하-06 예후 왕조의 죄악(열왕기하 13장 1-6절)
성경말씀은 열왕기하 13장 1절에서 6절까지 봉독합니다.
[열왕기하 13장]
1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이십 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칠 년을 치리하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저희의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6 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었더라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큰 회오리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므리 왕조가 계속해서 범죄하고 또 예언자를 엘리야, 엘리사 같은 굉장한 인물을 보냈지만 종시 뉘우치거나 바로 잡히지 않고, 온갖 이적 기적 기사를 본 후에도 바로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요즘 말로 하면 쿠데타와 같은 그런 일들을 일어나게 하셨는데,
놀랍게도 13장, 14장에 보면 오므리 왕조의 마지막 왕 여호람을 처단했던 예후와 그 아들 여호아하스, 그 다음에 요하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까지 계속 봐도 그 오므리 왕조와 뭐 비슷하게 별로 차이가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러 번 그 잘못된 것을 징벌 하시는데 그때마다 그 아람 왕과 그 군대를 일으켜 가지고 이스라엘을 징벌 하는 그런 이야기죠?
[열왕기하 13장]
1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이십 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칠 년을 치리하며
이 사람은 북 왕국의 19왕 중에서 11번째 왕입니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열왕기상하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잘 아시는 데로 이것은 금송아지 형상을 섬기는 일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고 또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셨고, 한 나라의 주권자가 되게 하시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서 오므리 왕조를 심판하시는 도구로 쓰임을 받은 그 예후 왕조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율법과 계명에 진의, 율법과 계명의 진실한 의미를 알지 못하면 별수 없이 이렇게 된다는 거야.
오늘 날도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온갖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또 그 은총으로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역시 성경 말씀에 진실된 그 의미를 그 진리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면 이런 저런 그 실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야. 심지어 목회자라 할지라도 말이야.
제가 그 에스라 하우스에서 말씀을 듣고 이렇게 저렇게 실토하는 분들을 보면 일반 성도들은 아멘하고 그냥 받아들이고 아. 우리가 잘못 믿었구나. 이렇게 빨리 되는데 목사님들은 그 옳은 것을 시인하면서도 그 큰 근심에 잠겨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이걸 어디서부터 여태까지 잘못해 오던 것을 어디서부터 고칠 것인가? 신학 전체가 잘못 됐다하는 것을 깨닫고는 많은 고민에 빠져 가지고 이게 옳기는 옳은데 내가 과연 저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근심에 빠져 있는 거예요.
그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어 가야 하는데 너무 오랜 세월을 잘못된 채 굳어져 오니까 이걸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할 것인가? 그 쉽지 않은 그 고민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벤하닷이라는 사람을 일으켜 가지고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데, 아람 왕 하사엘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기도 하고, 또 그 아들 벤하닷을 들어서 또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데 이 징벌을 받아도 별로 효과가 없다는 거야.
그 징벌을 받아도 율법을 알거나 아니면 누가 옆에서 가르치거나 지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리 하나님이 애가 타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이 수백 년씩 흘러가는 거야.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너무 너무 사랑하시고, 또 한국 교회가 그래도 지금 현재 이 지구상에서 어쩌면 유일한 하나님의 희망같이 다른 세계 대부분 다 교회가 무너졌으니까 지금 그런 형국이지만, 목회자들이 쉽게 이렇게 그 진리에로 다가오지도 않을 뿐더러 왔다가도 그 다가오지도 않고 돌아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고충이 오죽하겠는가?
그 사람이 그 옳은 것을 배우면 바로 실천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 실천이 안 된다고 하면 참 고민과 갈등을 안고 돌아 가는 거야.
일반 성도들은 보니까 상당히 잘하는 분들이 있는데 목회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야. 그 지도자들 일수록 자기 패턴에 한번 굳어지면 잘 못 고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여기 예후라든지, 여호아하스, 그리고 요아스 이런 사람들이 바알 신과 아세라 목상 같은 것을 뭐 오므리 왕조처럼 그렇게 심하게 섬기지는 않지만, 그 떠나지 못하는 것 하나, 그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 하나가 금송아지 섬기는 것인데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세라 목상도 아직 까지 그대로 두고 있어요.
여러분 옳지 않으면 이게 옳지 않다 싶으면 그냥 과감하게 떨어내야 합니다. 잘라내고 척결해야 하는데
그 뒤에 보면 4절에 보세요.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저희의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6 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었더라
이런 걸 왜 그저 두는지 모르겠어. 좀 아주 숙청을 하려면 깨끗하게 없애 버려야 하는데..
그래서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 한 9년 동안 있으면서 옳지 않은 것을 하나, 하나 없애는데 없애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아요. 꼭 그 없애는 것도 그 당회 원들하고 그 의논을 하고 없애기로 마음먹어야 하는데 그걸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여태까지 행했던 그 잘못을 시인해야 하거든요.
그 잘못된 것을 잘 시인 안하려고 그래요. 목사님 말씀이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하면서 그 하던 걸 잘 떨치지를 못하는 거야.
저는 원래는 상당히 급진적 그런 성격은 아니라도 옳지 않다고 싶으면 뭐 언제든지 뭐든지 다 떨어내는 그런 편인데 우리 한국 교회가 쭉 오면서 하나님 말씀 진리 그 자체를 제대로 붙들고 하지는 않고 비 본질 적이고 또 별로 필요도 없는 그런 것을 자꾸 교회에 도입을 했는데 한번 도입을 한 것 같다가 새로 이렇게 떨어내는 것이 잘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또 자꾸 가져오는데 그 가져오는 것 보면 비 성경적인데도 무슨 효과나 능률이 있어 보이니까 또 그걸 가져 와 가지고 그런 걸 갑자기 심으면서 또 교회가 어려움 당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일전에도 그 대전지역에서 어떤 분들이 좀 만나자고 그래서 올라갔다가 그 교회가 이른바 셀 목회라고 하는 것을 도입하는데 그 셀 목회라는 것이 분명히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배울 만한 것이 있고 장점이 상당히 있는데 그런데 거기에서 또 지나치게 한 것이 교회에 예를 들면 집사님 뭐 집사, 장로, 이런 것 다 무시해 버리고 그 직제 자체가 비성경적인것 무슨 뭐 국장, 부장, 뭐 이런 식으로 하니까 무슨 피라미드 회사처럼 돼 가지고 그러니까 교회가 그 한 천명 모이던 교회인데 아마 한 3분지 1은 남았고, 3분지 1은 나가서 따로 모이고 있고, 3분지 1은 각기 제 길로 가 버린 거야.
그래서 그 분들이 그래요. 나와서 따로 한 3백 명 이렇게 280명 이렇게 모여 있는 분들이 어디로 갈지를 모르겠다는 거예요. 거기서 나오기까지는 했는데 애굽에서 나오긴 나왔는데 가나안 땅이 안 보이는 거야. 어디가 가나안 인지..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중에 한 분이 에스라 성경 강좌 참여해 보고 아무래도 노 목사를 따라 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 노 목사 대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마산에 있으니까 따라 오지도 못하고 그래서 계속해서 어느 교단, 어느 노선을 따라 갈 것인가? 때문에 이런 저런 목사님 자꾸 불러서, 매주 다른 분을 불러서 설교를 들어 보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 옳지 않거든요. 매주 들어보면 매주 헷갈리죠?
한번 씩 와서 말할 때는 다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와 가지고 자기 제일 강점인 그 레퍼토리를 틀어 놓고 갈 텐데 그래 봤자. 그것은 성경 전체 진리에 일부분에 불과한 것인데 그래서 내가 그렇게 자꾸 들어보면 그래 자꾸 헷갈린다. 그래서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 또 갈라진다. 이런 식으로 가자. 저런 식으로 가자. 그렇게 하지 말고 누구를 사람을 좇아갈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 말씀을 좇아가려고 하면 적어도 성경을 66권을 다 가르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사람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좇아가려고 하면 다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야 되니까 그런 사람을 원한다면 내가 추천하겠다. 그러고 내려 왔는데 또 한 사람 말만 들은 그 방법도 또 한사람 말만 들어 보고는 따라 갈 수 없다는 거야. 그러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 한국이 다 종파에다가 그 또 아주 다양한 신학이 총망라되어 있어요. 다른 데는 가면 거의 국교회 형식으로 되니까 길이 하나 밖에 없는데 한국은 그야말로 얼마나 많은 노선들이 있는지 몰라요. 그래 좀 잘못 되면서 좀 급진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뭐 얼마 전에 보니까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그러면서 신학대학 정문에다가 큰 현수막을 써서 붙여 놓은 곳도 있고요. 아마 석가모니도 헷갈릴 거예요. 어째서 내가 이 신학교에서 환영 받는지? 그래서 영원불변의 그 절대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이것, 저것 다 그럴싸하면 다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닌 것은 딱 그저 잘라서 없애야 하는데 여기저기에다가 미련을 두고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7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같이 되게 하고,
그러니까 그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고 있는데, 그때 아람 왕이 와 가지고 티끌같이 다 날려 버리는 거죠?
.. 마병 오십과 병거 십 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니까 겨우 이스라엘 정도 자체 방어 할까 말까 하는 그 정도만 딱 남기고 완전히 다 진멸해 버렸다는 거예요.
8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것과 그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9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0 유다 왕 요아스의 삼십 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육 년을 치리하며
이럴 때는 요 남쪽도 요아스, 북쪽도 요아스야. 그러니까 좀 또 우리 잘못하면 역사를 모르면 혼돈이 오죠? 이때는 남북 왕국이 다 요아스입니다.
1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12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3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위에 앉으니라
이 여로보암은 ‘여로보암 2세’라고 구분합니다. 이스라엘 그 초대 왕과 구별하기 위해서 여로보암 2세라고 구별 합니다.
14절에,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 같은 그런 분도 결국은 그 마지막 병 한 개는 안 낫습니다.
그걸 보통 죽을병이라고 하죠? 일평생에 병이 백번 걸리면 99번은 낫고 한 번은 안 낫는 거야.
혹시 여러분 제가 사역하다가 병들어도 낙심하지 마세요. 누구든지 한번은 안 낫는 거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늘 물어 봐야 돼. ‘이것이 그때 입니까?’ 그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었다는 거야.
그래서 참 엘리사도 정말 진리를, 진리를 평생을 외쳤는데 한 사람도 회개한 꼴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거야. 그런걸 보면서 저 같은 사람도 때로는 낙심이 되는 거예요. 무슨 낙심이냐?
우리가 바르게 외치기만 하면 뭐가 될 줄 알지만 엘리야나, 엘리사가 바르게 외쳤죠? 뭐 어느 예언자치고 바르게 외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바르게 외쳤지만 그 시대가 변화되지 못하고 엘리사는 그저 죽을병에 들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한 시대가 서글퍼지는 거죠?
그래서,
..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그러니까 엘리야나, 엘리사 한 사람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모든 병거와 마병보다 더 강하죠?
여러분 이스라엘 병거와 마병 아무리 있어도 한 번도 적군을 막아 내지 못했는데 엘리야, 엘리사가 있을 때는 그 어떤 적국이라도 뭐 얼마든지 그저 막아 냈던 그런 일이 있으니까, 요아스가 그런 말 하는 것도 뭐 무리가 아니죠?
15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어가지고도 요하스 왕을 보고 이르기를,
..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손을 이렇게 그냥 손을 얹은 거죠?
17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이스라엘에 땅에서 동쪽이 바로 암몬하고, 아람나라가 있는데 그쪽을 보고 화살을 쏘라고 합니다.
..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18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그 뭔지 알지 못하고 손에다가 화살을 잡고 땅을 치라고 하니까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잘 새겨들어야 되는데 한번 해 보고, 두 번 해보고, 세 번 해 보고는 그만 더 이상 잘 안 해요.
삼세번 해 봤다. 그러면서 그 다음은 안 하는 거야. 그렇게 하지 말고 오륙 번을 해 보라고, 세 번하고 말지 말고, 다섯 여섯 번 해 보라는 거죠?
또 일곱 번씩 해 보고, 열 번도 해보고 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는 거죠? 열 번. 아니면 한 70번 찍는 거야. 그냥..
그런 면에서는 늘 제가 드리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그 베드로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야. 이 사람은 세 번 이 문제가 아니죠? 30번 문제가 아니라. 밤새도록 던지고 또 던지고 안 잡히는 것 계속 확인하고 계속 던지는 겁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뭐 그것 말고 장점이 있습니까? 그것 말고는 베드로에게 뭐 아무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문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별로 그렇게 수에 칠게 없어. 그리고 지나간 일은 있어버리는 거. 이것은 확실합니다. 뭐 어떤 실수했거나 무슨 실언했거나 그런 것 가지고는 뭐 고민 할 것 없어.
또 다음 실수하기 바빠서 그런 거하고 계속 던지는 거, 여태까지 던진 것 다 잊어버리고 계속 던져 또. 여러분 이런 점들이 그 베드로의 참 장점인데 예수님께서 아마 그 점을 참 높이 산 겁니다. 세 번하고 말면 그러면 안 돼요.
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하버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33수 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마침내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래 나오자 세상 안 떠나겠나? 또..
그래도 너무 쉽게 포기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 사람이 뭐 업적이 없는데 그것 하나는 남기잖아요. 33수했다고 저는 그 보다 더 위대한 분을 알고 있어요. 진주에 가면 이름은 모르지만 진주에 제일 큰 자동차 학원이 있는데 운전면허 시험을 몇 번 떨어졌느냐? 42번 떨어졌어. 그런데 43번째 합격 했다는 것 아닙니까?
참 대단한 사람이죠? 아니 그 한 40번 하면 그래도 그만 둘 만도 한데 그걸 두 번을 더 한 거야. 그런 정신은 어쩌면 우리가 본받을 만한 거죠? 두 번 세 번하고 말지 말고, 안 받아 준다고 할지라도 꾸준히 이렇게 하면요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변합니다. 우리야 변치 않는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변해요.
그러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계속하고 꾸준히 하면 그러면 열리고, 뚫리고 한다는 거죠? 콘크리트라는 것이 딱딱하지만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그 콘크리트를 뚫습니다. 뚫어요. 그 강함으로 가 아니고 그 잦음으로. 자주 계속하고 그 자주 때림으로 인해서 물방울이 콘크리트를 뚫는 다는 겁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뭐 한 두 번 해 보고 잘 안된다고 그 너무 쉽게 포기 하지 말고 꾸준히 도전하는 그런 정신.
어린 아이들이 일어나는 것 보면요 내가 그 어린아이 클 때 보면요 그게 어쩌다가 이렇게 반듯하게 누워 있다가 다리를 이리 젖혀보고, 저리 젖혀보고 이렇게 하다가 엎어지는 수가 있어요. 그 자기 딴에는 세상이 뒤집히는 거죠? 그래가지고 애가 자기 힘으로 일어나는데 그 굉장한 사건이죠? 일어났다는 것은 그 굉장한 사건이야. 그리고 앉았다가 또 뒤로 넘어지죠? 넘어진다고 아이가 일어나는 것 포기 하느냐? 어른들이 앉아 있는 것 보기 때문에 절대 포기 하지 않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그래요.
그리고 앞으로 긴다든지 이렇게 기다가 가만 보니까 어른들이 네발로 안 가고 두발로 가거든요. 그 자기도 그걸 보고 그 나보고 나를 따라 해라. 그 아무 말 안 해도 아이가 보고 서려고 하다가 그 잘 안되니까 뭘 붙잡고 서고 하다가 또 설듯하다가 또 엉덩방아를 꽝 찧으면 그 충격이 여간 아닐 텐데 그 충격에 충격 받고 나 다시는 일어서지 않겠다. 그런 아이는 없어요. 몇 번을 일어서는 거예요. 그 몇 번을 엉덩방아 찧고, 또 주저앉고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 보면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아니하면 꼭 하나님께서 그 어린애처럼 멍청해 지라는 것이 아니고, 어린아이는 참 단순하고, 겸손하고, 또 도전합니다. 그렇게 뭐 전도를 하는 거나. 기도를 하는 거나. 어떻든 기도하고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될 일을 가르쳐야 되는데, 왜냐하면 때가 우리가 계산하고 우리가 소원한 때보다 항상 하나님 더 좋은 것을 고르시기 때문에 옳은 것을 기도하고 바라고 추구한다면 낙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꾸준히 항상 한결 같은 마음으로 변함없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이루시는 겁니다. 어떤 때가 차고 양이 차야 돼요.
자. 20절입니다.
20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 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이것 참 굉장한 기적이죠?
죽은 엘리사인데도 거기다가 어떤 사람의 시체를 던졌는데 뭐 사람이 살아나는 그것은 정말 성경에 한번 나오는 사건인데 놀라운 일이죠?
22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4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딱 말한 대로죠?
세 번 아람 왕을 이길 거야. 했는데, 그 세 번 친 것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거죠?
뭐 애들 돌잔치 때 보면 애가 무슨 돈하고, 책하고, 뭐 여러 가지 갖다 놓고는 아이가 어느 것을 집으러 가는가? 보자하고 책이나 연필 잡으면 아. 이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 가 보다 하고, 돈을 집으면 얘는 아마 부자가 될 모양이다 하는데, 여러분 하나 더 갖다 놔봐. 성경책 갔다 놔봐. 혹시 목사가 될런지 압니까? 세 가지만 갖다놓지 말고.
그래 이 요아스 왕이 세 번 치는 것을 보더니 세 번 밖에 못 이겼다. 그런 말을 하는 거죠?
14장입니다.
[열왕기하 14장]
1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이 년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이 아마샤라는 사람은 그래도 남쪽 왕 중에 괜찮은 사람에 속하는데 그래도 뭐 별로 한 것이 없어요. 크게 뭐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4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 요아스가 못된 일하다가 나중에 신하들에게 맞아 죽었잖아요.
처음에는 잘 참고 넘어갔지만 나라가 자기 손에서 든든해지니까 자기 부왕을 죽이던 일에 앞장을 섰던 사람을 처단을 하는데요.
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이것이 하나님 법이죠?
그러니까 성경의 법은 ‘삼족을 멸하라’. 이런 것 없습니다.
아버지 잘못 때문에 아들을 죽이지 않고, 아들 잘못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데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7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8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서로 대면하자.’ 젊잖게 번역했는데 ‘한판 붙어보자.’ 이말입니다.
그 에돔 사람을 치고 자기가 조금 자랑하고 해서 하나님께서 에돔을 이기게 해 주니까, 괜히 또 은근히 그저 야망이 커진 거죠?
9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참 재미난 얘기죠?
그래 자기는 백향목이고 아마샤는 가시나무 밖에 안 되는 것이 격에도 안 맞는 제안을 했다는 얘기죠? 그 어떻게 가시나무 주제에 백향목하고 사돈 삼자. 하느냐? 이렇게 했다는 얘기죠?
들짐승이 가다가 가시나무를 확 짓밟았다. 이렇게 하면서..
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나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11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1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괜히 만용을 부릴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 아마샤가 잘하다가 또 잘하다가 그 실수한다니까..
항상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돼.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그런 이야기죠?
1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14 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그 잡아가는 것도 사실 역대상하서에 보면 이 잡아가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예언자가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5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권력과 또 유다 왕 아마샤와 서로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6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7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 오 년을 생존하였더라
18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이런 것은 다 열왕기하서 기자가 이 부분을 유다 왕 역대지략, 혹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이런 것에서 그걸 참고해서 인용을 한다는 말이죠?
19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0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 열조와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21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 육 세라
22 아마샤가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엘랏’ 하는 것은 지금 현재 보통 홍해 바다가 시나이 반도를 가운데 두고 이렇게 브이 형으로 되어있는데, 그 브이 형으로 해서 오른 쪽으로 올라간 홍해 그 안쪽에 아카바 만이라고 하는데, 알 아카바만이 그 이스라엘 하고 요르단 경계인데 경계에서 서쪽으로 이스라엘 지역은 엘랏이라고 하고, 동쪽으로 요르단 지역은 알 아카바. 항구가 같이 붙어 있어요.
아카바 항구하고, 엘랏 항구하고 붙어있는 홍해 바다로 다시 말하면 거기 빠져나가면 지중해로 갈 수 있는 해로가 열리는 곳이죠? 바다하고 붙어 있으니까.
..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지금까지도 그 엘랏은 이스라엘 땅으로 되어 있습니다.
23절 한편,
23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십 오 년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 일 년을 위에 있으며
북 왕국의 왕들 중에 가장 장기간 치리한 사람이죠? 41년 동안 왕위에 있었어요.
다른 분이 뭐 더 길게 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 사람이 온건하고 단 그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금송아지 섬기는 죄 그 죄만 아니면 그래도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은 그런데로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모든 면에서 참 탁월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그러니까 이때가 요나가 일하던 시절입니다.
북왕국 왕 여로보암시대에 그때에 남쪽에서는 웃시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이런 시대가 되는데 그때 요나가 우리가 요나서 말고, 구두로 예언했던 다른데 예언한 곳이 있었다는 거죠?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할 것이다.’ 하고 예언했고, 그래서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을 했다는 거죠?
그래서 여로보암 같은 사람은 상당히 정치를 잘 한 거예요. 단 아무리 일반 정치를 잘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우상숭배에 빠져 있으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점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26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그래서 그래도 어떻든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 외에 다른 뭐 큰 죄악이 보이지 않고 해서 장기간 왕위에 있기도 했고 또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는 일도 했습니다.
28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그 권력으로 싸운 일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여로보암이 그 열조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상당히 잘 한 거죠? 북왕국의 왕들 중에 여로보암 2세 만한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여로보암 이라는 사람이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혹 그저 예언자를 보내서 외치면 혹 들을까? 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도 보내고, 호세아도 보내보고 이렇게 했는데 사실 결과는 별로 안 좋았습니다. 아모스가 외쳐도 안 되고, 그리고 뭐 호세아가 와서 울어도 안 되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사람이 회개하려고 하면 그래도 기본 윤리가 있어야 돼.
기본적으로 믿음이 있어야 회개하는 거지, 뭐 아무것도 모르면 뭘 회개하여야 할지 몰라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회개하여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물론 신약시대는 사람이 거듭나야 되지만 율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그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니까, 그 교육이 없으면 회개가 안 돼.
오늘날도 우리가 성경을 참 잘 가르쳐 그 율법과 계명과 법도 잘 알아야만 그 자기 잘못을 처절하게 깨닫고 회개가 되는 거지. 그 교육이 없는 곳에는 회개도 안 되고, 교육이 없으면요,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성령도 역사할 길이 없어요.
온갖 이적을 다 체험해도 아무 회개도 안 되고 있다가, 여러분 아시는 데로 우리 성경강좌 오면 뭐 그렇게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것도 아니고 기도도 막 통성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 조용히 하나님 말씀 듣는데 사람들이 그 속에서부터 변화가 시작 됐다.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말씀을 들으니까, 그 66권 앞에 다 자기를 비쳐보니까, 뭐가 잘못 된 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 보여야 사람이 회개를 하는 거야.
그래서 이 그 꽤 괜찮은 사람들도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까 잘못되는 거야. 여러분 아시는 데로 삼손 같은 사람은 나실 인이요. 하나님의 그런 신령한 능력을 받아도 안 되고,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은총을 입어서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역시 율법을 모르니까 엉뚱한 짓을 해 가지고 결과가 좋지 않았어.
솔로몬은 성경을 세권씩이나 기록할 정도로 신령한 사람이고 지혜가 그렇게 출중하지만 역시 그 마음과 귀를 돌이켜서 율법을 듣지 않으니까 역시 결론이 좋지 않습니다.
여기 여로보암 2세도 마찬가지야.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고 정치도 잘 했는데 율법을 제대로 모르니까, 계명을 모르니까, 끝내 결론은 좋지 않았다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신앙 생활하는 중에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배워놓으면요 나중에 어떤 일이 있었을 때 우리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안다는 거야. 그 배우지 않고는 아무리 회개하고 뭐 아무리 성령이 역사해도 여러분 요 무지막지한 사람에게는 요 성령도 감당을 못해요. 율법을 제대로 배워서 가르쳐나야만 성령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거야.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요 교사. 어떤 직분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잘 가르치는 교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 우리 샤론교회가 성장해 지면요 특히 그 교사되는 사람들은 철저히 훈련해가지고 스스로를 다그쳐서 교사가 되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가르칠 수 있도록 부단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력이 없는데 누가 우리 제자 되려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부단히 공부를 해서 그리고 인격을 또 수양하고 그리고 다듬어서 실력이 있어야. 능력과 실력을 갖추게 되면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거나, 우리를 부르거나, 어디가든지 일이 있습니다. 준비만 되면 요 일꾼은 어디 가든지 일이 있습니다.
여기 이런 역사를 우리가 살펴보는 것은 그 대원칙하나가 있는데 교육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유언처럼 남긴 말씀이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아서 세례를 베풀고는 그리고는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유언이예요. 남을 가르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열심히 배워야 돼. 충분하게 성경 어디를 펴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부단히 노력을 해야 돼요.
일반 사회 사람들의 의식과 지식수준이 많이 올라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가르칠 때도 부단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 또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진리를 옳게 가르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역사서 가운데 예후왕조 왕들이 사람들이 그렇게 악하지는 않았지만, 율법을 가르치지 않았고 배울 때가 없기 때문에 그 결론은 항상 또 비극으로 끝나는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샤론교회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 말씀을 잘 배워서 모두가 다 피차 가르칠 수 있는 성숙한 하나님의 종들, 신실한 증인들 또 잘 가르치는 교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에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어떻게 회개할지를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잘 배워서 진리의 말씀을 옳게 전하고, 옳게 증거할 수 있는 또 사람들을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는 그런 거룩한 일에 쓰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