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나는 대전에 있는 배재 대학교에 유치원 교사(체육담당)를 하고 있었다. 94년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중복장애인(정신지체,시각,청각,지체 등 여러 가지 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장애인을 가르킴) 아이들을 돌보던중 그 아이들의 정신연령이 꼭 유치원 아이들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아들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당시 배재대학교 유아교육과 학과장이시던 오영희 원장의 허락을 얻어 체육교사로 지내게 되었다.
유치원 건물에는 머리돌처럼 "욕위대자 당위인역"(慾爲大者 當爲人役)이라는 글귀가 벽에 새겨져 있었다. 그 뜻은 마태복음 20장 26-27의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는 성구를 한문로 바꾼 것인다.
배재대학교는 1885년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설립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1887년2월21일 아펜젤러의 일기에는 "오늘 선교부 학교이름을 국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배재학당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위의 성구는 아펜젤러선교사가 당시 배재학당의 당훈으로 정한 것인데 오늘날 배재대학교의 교훈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펜젤러 목사가 작사한 교가(학당가)를 현재 교가로 사용하고 있고, 아펜젤러 당시 배재학당에 교육을 통한 선교를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신학부를 뒀는데 현재도 배재대학교에는 신학과가 있다.
그로부터 8년후 인천내리교회에서 아펜젤러를 만날 수 있었다. 2003년 8월 5일(화) 벨리더십 성지순례 대행진 둘재날은 조별 미션을 수행하는 계획이 있었고 1,2조는 인천 내리 교회로 이미 정해져 있었고 아펜젤러는 다름아닌 내리교회의 초대 목회자였던 것이다. 인천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아펜젤러는 그 후 서울로 가서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초등학교인 영화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내리교회 2층에 가면 아펜젤러선교사의 초상화가 역대교역자들의 것과 함께 맨 앞줄에 걸려 있다. 내리교회는 1885년 4월 5일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이기도 하다.
아펜젤러는 갔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곳 곳에 남아 있다. 인천에 그리고 대전에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그의 후대들이 전국 그리고 전세계에 남아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학교를 세우고 싶은 꿈이 있다. "욕위대자 당위인역"(慾爲大者 當爲人役)"의 정신을 가진 지도자를 세우고 싶은 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중 하나이다. 아펜젤러가 그렸던 미래는 내가 그릴 미래와는 다를지라도 그가 생각한 리더의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다.
벨의 리더들도 그런 리더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 번 성지순례를 통해 그런 리더의 모습으로 한 발 다가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아펜젤러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2003. 8월 5일(화) 오전 11시 14분
대전광역시 서구 갈마동
벨 사무실에서
김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