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의 화해 (1)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시간이 과거로부터 멀어지면 자연 소멸되는 것들이 있다. 개개인이 가진 생명이 그러하고 시간과 함께 쌓여온 많은 흔적들이 그러하다. 흔적은 기록과 같이 뒤에 남은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는 자료가 있고, 입으로 전승되어오는 기억이 있다. 기억은 오래될수록 너덜너덜해지며 오래된 사진첩 속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낡은 흑백 사진처럼 거의 알아 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전통도 그런 흑백 사진 중의 하나와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모르게 맥이 끊어지기도 한다. 끊어져서 소멸되었다고 모두는 느낀다. 그러나 끊어져서 소멸되었다고 해서 그것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세계로부터 사라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그것은 기억 저 너머에 있는 무의식의 강에서, 순간순간의 시간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이런 생각을 담은 내용들이 전편에 걸쳐 깔려 있다. 작가는 이것을 우리들의 일상과 접목시켜 새로움이란 느낌으로, 혹은 낯설지만 눈에 익은, 기시감 같은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다. 다소 낯설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것으로.
주인공 나는 결혼했지만 아직 애가 없는 화가로 일반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활의 일부를 책임지며 나날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그(나)가 어느 날 아내로부터 이혼하자는 말을 듣고 집을 나와 방황하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친구(미대 대학 동기)의 주선으로 그의 옛집에 머물며 우연히 지붕 밑 다락에서 발견하게 된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 한밤중에 듣게 된 희미한 방울 소리와 그 근원지인 구덩이(마을 사당의 땅 밑 지하에 우물같이 생긴 구덩이),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초상화를 그려달라며 접근하는 언덕 너머 대저택에 혼자 사는 부유한 멘시키씨의 석연찮은 접근.
이 모든 것이 묘한 운명처럼 서로 엮이며 이야기를 오랜 시간 설득력 있게 끌어간다. 여기서 설득력은 묘한 뉘앙스다. 소설은 무엇보다도 흥미로워야 한다. 그러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이야기가 과도한 선을 넘어가 버리면 오랜 시간 갖가지 다채로운 이야기에 입맛이 길들여진 까다로운 독자들은 그만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그런 요소들이 곳곳에 깔려 있다. 그 요소들은 연결점을 찾지 못해 독자들의 이해로부터 차단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지는 꾸준히 넘어가고 있다.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건 순전히 작가의 행운이자 작품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에 가까운 애씀에 대한 무언의 보답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