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慶州)를 가보자.
요즈음 허파에 바람이 들었는지 자고 일어나니 엉덩이가
들썩 들썩해서 wife에게 "우리 아침밥 먹고 심심한데 경주갈래?"
이렇게 물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가자"고 했다.
두사람이 한꺼번에 같이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연휴이다 보니 학생들은 등교를 하지않고, 농사일도 어중간 하고
이때가 아니면 힘들겠다는 마음에서 눈 질끔 감고 경주로 출발했다.
여름에 안압지 주변에 피어있는 연꽃이 보기좋다는 들은 말도있고,
가까운 곳에 살았어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안압지 주변에 경주시에서 공영 주차장을 무료로 운영해 차를 주차하는데
한결 수월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 2매를 구입해 들어 갈려니 안내원이 혹시 65세 이상되는
어르신이 아니냐고 물었다.
집나이는 66세(무자생:쥐띠)지만 주민 등록증에는 1949년 생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표를 구입했는데 얼굴에는 나이들은 티가 나는가 본다.
경주에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이 처음이고, 38년전 신혼여행을 왔을때가 두번째다.
그이후 수없이 경주를 왔지만 부부 둘이서 유적지를 다녀 보기는 두번째인것 같다.
한참을 걷다보니 경주 최(崔)씨 고택으로 가는길이 보였다.
경주 최씨 고택은 언젠가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배가고파 무얼먹고 배가 부르면 "조천 최부자 눈 아래로 보인다."
이런 말을 자주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조천이 아니고 교촌(校村)이라는걸 알았다.
9대를 진사를 했고 12대 만석을 했다니 요즈음 말하는 부(富)와 명예. 권력을
300년을 누렸다니 내 상식으론 이해 하기가 어렵다.
옛말에 "부는 3대를 지키기가 어렵고 권력은 花無十日紅"이라 이렇게들
표현을 하는데 이집만은 이논리에 해당되지 않는것 같다.
또,
나라가 어려울때 독립운동을 한 정말 멋지고 대단한 집안이다.
안내판에,
곡식을 쌓아두면 썩어 고약한 냄새가 나고 흩어주면 거름이 된다는 아주평범한
진리를 몸소 실천했기에 오늘날까지 추앙을 받는 그런 가문이 되지 않았을까?
지척에 계림(鷄林)이 있어 가보니 17대 내물왕릉이 있었다.
경주 김씨 후손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내물왕때 부터 경주 김(金)씨의 힘이
세어졌다고 했다.
길가에 있는 첨성대는 밖에서도 잘 보이지만 표를 구입해 안으로 들어가 wife와
돌을쌓은 단의 높이를 세어보니 27단 이었으면 선덕여왕이 만들어진 천문대라서
27단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릉원에 가서 천마총을 구경하면서 wife가 "옛날 임금이 키가 커지는 않았는것
같다"고 말해 내가 "옛날에는 6척이면 거구라고 했다."
1척이 30cm이니 6척 이래봐야 180cm이다.
요즈음은 엔간하면 볼수있는 기럭지다.
분황사에도 한번도 가보지 않아 이번에 꼭 가보기로 작정을 했다.
가보니 분황사도 분황사지만 황룡사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約 2만 오천평이라 하는데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사찰이 아니었을까 생각
하면서 입을 벌어져 다물수가 없었다.
(9월21일)
東方 徐希京
안압지(옛이름:동궁 월지).
안압지;오리가 날아든다고 안압지로 불리움.
반월성(半月城):초승달 처럼 생겼다고 함.
석빙고는 반월성 내(內)에 있음.
경주 최씨 고택은 옛날에는 99칸이라고 함.
향교 본 건물은 수리중.
17대 내물왕릉 계림숲안에 있음 (경주 김씨로는 두번째 임금)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에 관한 기록.
27대 선덕여왕때 건립한 동양 최초의 천문대. 27단으로 구성되어 있음.
대릉원 주차장에 세워진 조형물.
대릉원내에 있으면 말이 나는 그림이 출토되어 천마총이라고 함.
대릉원내에 있는 13대 미추왕릉 문이 굳게 닫혀있음.(경주 김씨로 첫번째 임금).
분황사 3층 석탑 앞에서....
분황사 경내에 있는 대종으로 1,000원 이상내고 한번을 침.(一人一打)
분황사 맞은편에 있는 당간지주. 분황사의 것으로 추정.
황룡사지 약 2만 오천坪.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사찰이 아니었을까?
궁궐을 지으려다 누런 용이 나타나 절을 지었다고 전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