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ie Chon의 Light House"
(글 : 사진평론가 장한기)
등대는 항로표지의 일종으로 야간에 등화로서 선박에게 목표물을 제공하고 항로 또는 위험위치를 표시하기 위하여 강력한 등관을 설비한 탑 모양의 구조물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킬로미터 정도의 제방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 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예로부터 지중해 사람들은 선원들을 인도할 수 있는 거대한 기념물을 항구에 세웠다. 주로 엄청난 규모의 거상이나 먼 곳에서 보이는 신전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그러한 건물이나 거상이 항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배들이 낮에만 도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밤에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선박들의 선원이 항구를 볼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다. 그것이 바로 기원전 2백80년경에 파로스섬에 세워진 고대 역사상 가장 높은 등대를 건설하게 된 세계 최초의 등대로 전해지고 있다.
매년 8월 7일은 미국의 'National Light house Day'이다. 1789년 미 의회는 ‘등대의 날’을 제정, 등대를 비롯한 신호등이며 부표 그리고 공용 부두를 설치하고 지원하게 되었다. 미국의 등대의 역사는 1716년 보스톤의 ‘Little Brewster Island’ 에 첫 등대를 설치한 1700년대에 시작되었다. 3년 뒤에는 등대 옆에 대포를 설치했고 안개가 낄 때면 계속 신호를 보냈는데 이것이 최초의 안개용 신호였다. 원래의 보스톤등대는 미 독립 전쟁시 파괴되었고 1783년에 새로 만들어졌다. 이 등대는 미 해안경비대에 의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오직 하나의 등대이기도 하다.
New-England는 미국 북동부 지역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로서 미국 발전의 원동력이 된 땅이다. 특히 이곳 제임스타운의 남쪽 끝에는 비버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비버 테일(Beaver tails)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 가면 1749년에 지어진,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등대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등대가 흰색과 빨강색으로 외벽을 칠하는데 비해 이 등대는 대리석으로 되어있어 등대가 굴뚝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 등대가 지어진 것은 300년 정도가 되었지만, 등대지기를 공식적으로 채용한 것은 1859년이라고 한다. 집이 먼 등대지기를 배려해 관계 협회에서는 등대지기가 가족들과 함께 머물 수 있도록 1898년에 관사를 지어 주었다.
그 후 몇몇 등대지기가 이곳을 거쳐 갔고 그들 중 월터(Walter)는 역사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다. 아내 그리고 여섯 아이들과 함께 관사에서 지내던 월터는 1938년 9월 21일 거대한 폭풍을 맞게 된다. 당시 20년 경력의 베테랑 등대지기였던 월터는 폭풍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다른 곳으로 보내고, 뒤이어 자신의 보조원 슐리반(Sullivan)에게도 큰 폭풍이 아니라며 안심시킨 뒤 귀가를 권한다. 월터는 알았던 것이다. 큰 폭풍이 닥쳐 위험에 처하더라도 등대 보조원인 슐리반은 자신의 업무수행을 위해 노를 저어 등대 쪽으로 갈 것이란 걸, 월터의 예상처럼 그 폭풍은 바람과 함께 시속 100마일로 불어 닥쳤고 파도 역시 크게 일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등대에 남아 등대지기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했으나, 결국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고 말았다. 폭풍이 사라진 후, 그를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으나 끝내 그를 찾을 수는 없었으며 “등대는 월터가 바다를 침대삼아 등대 옆에 누워 있음을 기억한다.”라는 한 줄의 메시지만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등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New-England 지역의 보스턴근교에 는 미국 등대의 역사와 함께 주변에 아름다운 등대가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보스톤에 살고 있는 미국 사진가 재키 천이 이러한 등대를 주제로 5년여간 촬영한 작품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등대의 아름다움에 황홀함을 느끼게 된다. 재키 천이 이처럼 아름다운 등대사진을 촬영하게 된 배경에는 그녀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재키는 대한민국의 경남 마산에서 살았으나 1986년에 현재의 거주지인 미국의 보스톤으로 이주 하게 되었다. 그 후 27년간을 보스톤에 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엄습해 올 때마다 바닷가를 찾게 되었고, 막내딸을 대학교에 보내고 나서 가족들로부터 선물로 받게 된 카메라를 갖게 되면서부터 바닷가의 등대 사진을 즐겨 찍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이러한 활동은 마산 앞바다에서 생활하던 고향의 바다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등대사진을 통하여 고향에 대한 정을 더욱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재키의 사진적 경력은 그리 길지 않지만 작품을 통하여 바라본 그녀의 사진적 시각은 여느 프로사진가에 못지않은 세심함과 날카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2013년 9월 미주사진협회와의 인연으로 불과 3개월여의 기간 동안 사이트를 통하여 바라본 재키의 사진에서 작가적 기질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녀의 사진적 열정과 성실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필자는 국내에서도 기회 있을 때 마다 하는 말이지만,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사진은 찍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된다.
재키 천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다를 배경으로한 등대사진의 아름다움에 황홀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등대가 갖는 심미적 표현으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되는데, 재키의 사진에서는 마치 등대에서 비추는 불빛 같은 서광을 발견하게 된다. 동일한 피사체라도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에 따라 달리 표현되듯이 자연이란 환경은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무한한 변화를 하게 된다. 그러한 자연을 크롭핑하는 것은 자주 찾아 그 변화의 순간을 캐취하지 못하면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진은 사진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Out Door사진에서 전문가가 되는 길은 카메라에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인식시키고 셔터를 눌러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재키의 사력은 Precious Show(2011 Nov)/Soorye Art Gallery, Taking Flight Show(2012 Sep)/Soorye Art Gallery, New England Night Photographers 1st Annual Show(2013 Feb), Seacoast Photographers Spring SPA Photo Exhibit(2013 May) 등 4번의 그룹전과, (Beverly Mass)타운에 있는 ‘Beverly Cooperative Bank’에서 2012년 6월과 2013년 8월에 각각 5주간씩 두 번의 개인전을 실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해마다 전시를 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고 한다. 초심(初心) 열심(熱心) 노심(勞心:노력하는 마음) 이라는 단어를 책상 앞에 붙혀놓고 스스로를 채권질하며 사진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제키의 Light House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