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정보산업高
각 반 3~8명씩 '학생 튜터' 친구에게 부담없이 질문…
다른 학교들도 벤치마킹
올해 초 인천정보산업고에 진학한 진한빛(15)양은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싫어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자 점차 멀리한 것이다.
진양의 '수학 공포'는 고교에 입학해 더 심해졌다. 기초가 없으니 수업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중학교 수준의 기초적인 내용을 교사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었다. 결국 진양은 1학기 중간고사에서 30점대 점수를 받자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그즈음 학교에서 실시하는 '또래 튜터링(tutoring:개인 지도)'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인 '튜터'에게 의문이 생길 때마다 물어볼 수 있도록 한 제도였다.
진양은 처음엔 왠지 친구의 시간을 뺏는 것같아 미안했다. 그러나 옆 자리에 앉은 튜터 신혜선(15)양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 설명해주자 차차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특히 '약분'처럼 교사에게 묻기 힘든 기초적인 계산 부분도 튜터에겐 자주 물었다.
튜터를 통해 기초적인 의문들이 하나둘 풀리자 선생님의 수업 내용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튜터의 도움을 받아 공부한 지 3개월여 진양은 기말고사 수학 과목에서 70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친구가 선생님 되다
인천정보산업고는 진양처럼 기초가 부족한 학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준별 수업', '방과 후 교실' 등 여러 방법을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희경 교사는 "전문계고는 인문계고보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이 많아 수업을 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교사가 한명씩 붙잡고 가르쳐야 하지만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인천정보산업고는 1명의 교사가 학생 수십명을 가르치는 '1 대 다수(多數)' 수업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지난해 '또래 멘토링'제도를 고안했다. 공부가 부족한 학생일수록 교사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길 꺼려하고, 친구와 공부를 하다보면 학습에 대한 흥미를 북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선 작년 초 1학년 중 수학 성적이 뛰어난 학생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처음으로 튜터 12명을 선발했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자 올해부터는 전 학년으로 확대해 반마다 3~8명씩 총 175명의 튜터들이 하위권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했다.
튜터링에는 시간이 따로 없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뿐 아니라 수업 중에 문제를 풀 때도 자유롭게 튜터에게 다가가 묻도록 했다. 튜터들이 친구를 가르친 시간은 '분 단위'로 기록해 봉사점수로 인정했다.
◆튜터 "가르치니 내 실력도 좋아져"
학생들의 호응은 예상 외로 컸다. 도움을 받은 학생들은 "친구가 같은 눈높이에서 설명해주니까 이해하기 쉽다"고 반겼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튜터링제도로 자신감이 생겼다'는 학생이 70%였고, 40%는 실제로 수학 성적이 오르기도 했다.
튜터에게 배운 진한빛양은 "처음엔 튜터에게 무턱대고 '이거 좀 풀어달라'고 했지만 점점 실력이 늘어 '다 풀었으니 맞는지 봐달라'고 하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며 "내년에는 튜터가 돼서 다른 친구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봉사점수에 끌려 튜터에 지원했던 학생들도 튜터링 제도의 다른 장점을 발견했다. 1학년 황보라(15)양은 "처음엔 자꾸 와서 물어보니까 귀찮기도 했지만, 친구를 가르치다보니 더 정확히 알게 돼 내 공부에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튜터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모든 튜터들이 "친구를 가르치면서 복습을 하게 돼 학습 내용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또래 튜터링은 벌써 다른 학교에 소문나기 시작했다. 인천해사고는 내년부터 이 제도를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최근 인천정보산업고를 방문한 이강복 인천해사고 교장은 "학습 의욕이 없는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 적극 도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