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수도는 앙카라다. 그러나 앙카라는 1923년 공화국 수립 후에 국토의 균형 발전을 고려해서 수도로 정해진 것이고(지금은 인구 500만 정도로 터키 제2의 도시가 되어 있지만 수도로 지정될 당시 앙카라 인구는 3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터키를 대표하는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이스탄불은 1453년 오스만터키에 정복되기 이전까지 비잔틴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등으로 불리며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었고, 그 후에는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어 터키의 500년 수도가 되었다. 지금은 인구 1400만의 거대 도시가 되어 (지리적으로는 터키 영토의 한쪽 구석에 위치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터키의 중심 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 항공 노선도 앙카라가 아니라 이스탄불에 모여 있으므로 터키를 여행하려면 일단 이스탄불로 가야 한다. (물론 인근 국가인 그리스 불가리아 조지아같은 나라에서 육로나 해로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5월쯤에 검색해 보니 인천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표가 제법 비싸다. 비행시간이 12시간이라니 동남아보다 비싼 게 당연하긴 한데...... 카자흐스탄 경유편이 조금 싸게 나오기는 하는데 직항편과 큰 차이가 없고, 두바이 경유편은 직항보다 비싼 것도 많이 보인다. 의외로 대한항공 직항편이 최저가에 가까운 왕복 85만원에 나와 있어서 예약을 할까말까 - 며칠 들여다보는 사이에 85만원짜리가 없어져 버렸다. 그나마 90만원짜리가 보이길래 그거라도 확보하자고 서둘러 예약을 했다가, 9월초에 85만원짜리가 다시 나온 걸 보고 재빨리 갈아탔다 (출발일 90일 이전에는 무료 취소).
우리가 방문한 기간 동안에 신공항을 개항한다고 하여 돌아올 때는 신공항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 어떤지 어수선하기도 했다. 이스탄불 외곽 흑해 방면에 세계에서 제일 큰 공항을 지어 놓았다는데, 기존 아타튀르크 공항을 폐쇄하고 2018년 12월에 신공항으로 옮긴다고 발표를 했다가 2019년 1월로 연기한다고 한 것. 결국 1월에 부분 개항하고 3월에 완전 이전하는 것으로 또 연기가 되어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야 새 공항 구경하면 더 좋고, 아니면 그만이고 별 걱정이 없었지만, 터키 국내선을 함께 구입한 사람들은 이래저래 스트레스 좀 받았을 것이다. 3월에는 과연 순조롭게 이전이 될까?)
2018년 12월 7일 인천에서 2시 15분에 출발한 비행기가 12 시간을 날아서 오후 8시 15분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우리로서는 사상 최장 시간 비행이었지만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 영화 보다가 밥 먹고, 잠자다 일어나서 밥 먹고, 또 자고. 아직은(?) 12시간 정도는 무리가 아닌 듯하다. 12시간을 날아갔는데 시계는 6시간이 지났으니 터키와 우리나라의 시차는 6시간이다. 그런데 일부 인터넷 문서에 7시간으로 나오기도 한다. 왜그럴까? 종전에는 터키 시간이 UTC+2이고 우리나라 시간이 UTC+9라서 7시간이 차이가 났으나, 2016년 10월 터키에서 일광절약제(써머타임)를 해제하지 않기로 하면서 (1년 내내 써머타임?) 실질적으로 UTC+3이 된 것인데 이게 반영되지 않은 옛 문서들도 검색되고 있으니 헷갈릴 수도 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현지 화폐를 마련하는 것. 그런데 처음 시도한 ATM에서 문제가 생겼다.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열심히 잘 눌러 봤으나 세 번 연속 틀렸다면서 돈을 못 주겠단다. 스리랑카에서도 공항 ATM이 말썽을 부리더니 또 그러네! 그 때는 일단 신용카드로 소액을 찾는 식으로로 위기를 넘겼지만 이번에는 옆지기가 챙겨온 비상용 카드가 제 역할을 했다. 터키 화폐인 리라는 국내에서 구하기가 어려워서 달러나 유로를 가져와서 환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경험에 따르면 ATM 출금이 더 유리한 것 같다. 단, ATM 수수료가 6%인 은행도 있으므로 아무 ATM에서나 덥썩 출금해서는 안 된다. 직접 확인한 바로는 투르키예이쉬 은행이 6%, 가란티 은행이 2.5%, 찌라아트 은행이 1% 이내. 우리는 내내 찌라아트 은행에서만 인출을 했다. 다른 여행자들 얘기를 들어보니 ING 은행도 수수료가 저렴했다고 한다.
지하철(메트로) 타는 곳을 찾아서 일단 이스탄불카르트(교통카드, 지하철과 트램 버스는 물론 페리보트까지 탈 수 있다. 메트로와 트램의 1회 요금이 2.6리라인데 환승을 하면 1.85리라로 할인된다. 그런데 두 명이 하나의 카드를 사용하면 1명만 환승 요금이 적용된다.)부터 사고, 지하로 내려가니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출발역이니까 일단 타고 본다. 서 있는 젊은이들과 인사하며 술탄아흐멧을 간다고 말을 걸었더니, 악사라이에서 트램으로 갈아 타란다. 음? 아닌데?? 제이틴부루누에서 갈아탈 건데??? 노선도를 보니 두 역에서 같은 트램 노선이 연결되기는 하는데, 악사라이를 가기 전에 오토가르(시외버스 터미널)를 들르느라 메트로가 꽤 멀리 돌아간다. 친절한 젊은이의 추천을 무시하고 원래 생각대로 제이틴부루누에서 내려 트램으로 갈아탔다. 외국에서 길을 물으며 항상 느끼는 거지만 현지인이라고 해서 현지 사정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제이틴부루누는 메트로역과 트램역이 붙어 있지만, 악사라이는 메트로역과 트램역이 한참 멀더라고!)
술탄아흐멧역에서 내려 몇 걸음 걸으니 저것이 블루모스크요 저것이 아야소피아로구나! 영상으로만 보았던 위대한 건축물들이 눈앞에 떡하니 서 있다. 아, 우리가 터키에 왔구나!
(첫날은 사진을 안 찍고 슬쩍 둘러보기만 했다. 이 사진은 다음날 저녁에 찍은 사진)
숙소나 버스나 현지에 부딪쳐서 해결하는 게 원칙이지만, 첫날 숙소만큼은 예약을 해 두곤 한다. 이번에도 블루 모스크(술탄아흐멧 자미) 뒤편 숙소 밀집 지역에 있는 아흐멧에펜디하우스라는 곳을 2박 60유로에 예약했는데, 배낭을 지고 10분쯤 걸어서 찾아가 보니 그럭저럭 괜찮은 숙소였다. 시설이 살짝 오래된 분위기고 방들도 작은 편이었지만, 거실이 딸린 방으로 무료 업그레이드를 받은 걸로 불만은 사라졌다. 주인이 친절하고 다음날 아침 식사도 기본은 했으니 예약은 잘한 셈이다.
2018년 12월 8일
오늘은 (여독을 풀어야 하니까) 목적 없이 (유일한 목표는 유심칩 구입) 근처를 슬슬 돌아다니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느즈막히 숙소를 나서면서 구글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근처에 오래된 샘(? 원래 물이 나오는 구조물이었나 본데 지금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은 식용이었는지 자미에 들어가기 전에 발을 씻는 용도였는지 모르겠다)과 자미가 하나 보인다. 16세기에 지어졌다는 아크비익 자미 - 오래 전에 지어졌다는 점 외에는 특별히 볼 게 없는 것 같아서 패스하고1-2분 걸으니 블루모스크가 나타나고 바로 아래에 붙어 있는 아라스타 시장이 보인다. 슬쩍 둘러보다가 호객하는 주인을 따라 꽤 멋진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는 한 기념품점에 들어갔다. 붙임성 좋은 주인 아저씨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확인하더니 자기 삼촌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면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나저나 여행 첫날부터 무겁고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살 수는 없으니 다음을 기약하며 샛길을 찾아 블루모스크로 올라갔다.
(숙소 앞 골목이 예쁘다)
블루모스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큰 공사가 진행중인데, 예배 시간을 피해서 관광객의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무료 입장). 엄청 넓은 건물 내부를 둘러보니 화려한 도자기(타일) 장식이 대단하다. (사진으로 전달할 재주가 없는 게 아쉽) 본명이 술탄아흐멧자미인데 영어로는 주로 블루모스크로 알려진 이유가 뭔가 했더니 (밖에서 보면 별로 파랗지가 않아) 내부의 파란 타일 때문이었네! 파란 타일은 부르사 근처에 있는 이즈닉이란 곳에서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아야소피아 앞에서 사 먹은 시미트 빵. 한 개에 1.75 리라니까 400원쯤? 관광지 가격이 이 정도다.)
터키 전체에서 그리고 비잔틴 역사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로 꼽히는 아야소피아(성소피아 성당)는 밖에서만 둘러보았다. 터키를 한 바퀴 돌아 본 다음에 다시 이스탄불로 와서 본격적으로 감상하자고 아껴둔 것인데, 밖에서 슬쩍 보아도 어떤 장엄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번에 2박, 나중에 3박을 하면서 오며가며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구경한 것이 10번 정도? 이것만으로도 이 근처에 숙소를 잡은 보람이 있다.
그랜드바자르 가는 길에 있는 투르크셀이란 이동통신사의 지점에 찾아가서 유심을 구입하고 (심 구입비와 한달 6기가 패키지를 합하여 120 리라. 나중에 지방 도시에서 보니 이것도 바가지 가격이긴 한데, 공항에서는 이보다 더 바가지를 씌운다고 한다.) 바자르 안을 들어가 보았다. 이름처럼 엄청 그랜드한 (그랜드바자르는 영어식 이름이고 터키 이름으로는 카팔르 차르스, 닫힌 시장이란 뜻이다.) 시장이다. 이렇게 큰 시장이 한 지붕 아래 있다니! 게다가 옛날부터 실크로드의 종점 역할을 하던 유서깊은 시장이란다. 여기서도 역시 쇼핑은 하지 않고 구경만 했다.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구경거리가 많아서 좋은데, 밀폐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은 것이 옥의티였다. 여기뿐 아니라 이 나라 전체적으로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나와서 호객하는 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식당 이름이 쾨셈 레스토랑, 모퉁이 식당이란 뜻인가 보다. 작은 가게 밖으로 탁자들이 놓여 있지만 날이 제법 싸늘한 걸? 망설이고 있으니 2층으로 안내를 한다. 처음 시켜보는 케밥 요리라 일단 모듬 케밥을 2인분 시켰다. 맛은 그냥 저냥 괜찮은 편. 고기는 맛있는데 딸려 나온 밥이 필라브(터키식 볶음밥)가 아니고 보리쌀 삶아 놓은 듯한 것이라 입에 맞지 않았다. 다 먹고 내려와 계산을 하려는데 쪽지에 126 리라라고 적어 보여준다.어? 내 계산으로는114리라인데? 뭐냐고 따지니까, 1인당 6리라씩 세금인지 팁인지 뭐가 있다나? 에이, 뭔 소리야? 이것만 받아, 120 리라를 건네니 땡큐하고 받는다. 나중에 지방 도시를 다니며 밥을 먹어 보니. 이곳은 대도시고 관광지라서 약간의 거품이 포함된 가격이다. 좀더 깔끔한 식당에서 먹어도 케밥 2인분에 100 리라가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술탄아흐멧으로 돌아와서 아야소피아를 한번 더 구경하고 트램길 따라 내려가니 귈하네 공원이 나온다. 이름이 귈하네면 장미 공원이란 뜻인가? 찾아보니 장미가 몇 송이 보이기는 했지만 역시 겨울이라 그럴까, 왕궁 옆에 조성한 (톱카프 궁전이 바로 옆에 있으니 황제가 가끔씩 이 공원에서 산책을 했으리라) 공원 치고는 그다지 화려한 분위기는 아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나가니 바다가 나온다. 건너편으로는 아시아 지구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에미뇌뉘 항을 거쳐 갈라타 다리로 이어지는 곳. 갈라타 다리 쪽으로 슬슬 걸어가다가 호객꾼에게 이끌려 보스포러스 유람선에 올랐다. 한 시간 유람에 일인당 15리라라. 저렴하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돌마바흐체 궁전. 여행 막바지에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화려함과 사치의 절정))
(루멜리히사르. 이곳은 이렇게 배에서 보는 걸로 인연이 끝났다.)
(마침 시간대가 맞아서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일몰도 감상하고)
(이렇게 작지만 예쁜 자미도 전국 곳곳에 참 많더라)
(다시 아야소피아)
유람선을 탈 때는 에미뇌뉘 항구 근처였는데 내린 곳은 갈라타 다리 너머 쪽이다. 다리 건너 탁심 쪽이 아니라 다리 서쪽. 나중에 찾아보니 거기도 에미뇌뉘기는 하다. 에미뇌뉘 게지(유람) 부두.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는데 구글 지도에 의지해서 이 골목 저 골목 걷다 보니 제법 먼 길이다. 욕심 안 내고 가볍게 하루를 보내기로 했는데 좀 무리했나? 아소피아와 블루모스크 사이에 앉아서 야경을 즐기다가 숙소로 들어갔다.
이스탄불은 일단 이 정도로 놔두고,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터키 여행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