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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스타 스크랩 [사진]이소룡 vs 최배달 승자는?
hse9001 추천 0 조회 3,676 17.01.06 17: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절권도의 창시자 이소룡(부르스 리) vs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최영의)




호리호리하고 날렵한 작은 체구지만 잔극육으로 뭉쳐진 광배근과 활배근을 통한 빠른 스피드로 타격하는 이소룡. 

약간 통통한 체격으로 강철같이 단련된 정권과 수도로 한 일격필살의 격파술로 상대를 거꾸러트리는 최배달. 

이들의 대결은 쉽게 승부를 점치기 어렵다. 예측불허다. 

다만 여러 강자들과의 실전대결을 바탕으로 단련된 신체능력과 체격에서 우위인 파워의 차이로 최배달의 우세가 점쳐진다.



이소룡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홍콩에서 자라났다.

연극 배우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영화인으로 일찍 데뷔해 18세에 이미 20여편에 출연함.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쿵후를 배웠는데 그의 무술에 지대한 영향을 준 무술 고수인 엽문에게 영춘권을 익힘.

미국 대학에 다닐 때는 쿵푸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 후 모든 무술을 섭렵하면서 거기에서 실전에 필요한 엑기스를 뽑아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시한다.

우리나라 배우 장혁이 절권도에 심취한 걸로 널리 알려졌으며 실제로 극중 액션씬에서 절권도 기술을 응용하고 있다.(추노 작품)



아무튼 이소룡은 절권도를 만들기 위해 스텝을 키우기 위해 펜싱을 배웠으며, 빠른 발차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태권도를 익혔으며, 싸움의 기본인 복싱 기술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사우스포로 단련했고, 레슬링과 유술, 무에타이, 사바트도 배웠다고 알려짐.

또한 무기술도 익혔는데 특히 필리핀 전통 무술 고수에게 단봉술을 익혔으며 쌍절곤(눈척크)이라는 독보적인 무기를 단련하여 필살기로 사용함.

게다가 스피드를 향상시키기 위해 몸에 전기 자극을 주는 모험을 했다는 이소룡.

그는 비록 액션배우로서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천상 무술인이었다.





최배달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장성한 후 일본에 건너가 가라데를 익힌다.

그리고 형식적인 일본의 가라데에 식상한 나머지 상대를 일거에 거꾸러뜨리는 실전형 무술인 극진 가라데(극진 공수도)를 창시한다.

그 과정에 무술의 개념을 깨우치기 위해 유도를 배웠으며 4년간 수련한 결과 4단이라는 고수가 되었다.

유명한 '도장깨기' '손날로 병목 날리기' '100인의 유단자와 연속 겨루기(쿠미테)'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자들과의 비무행' 을 펼치기도 한 승부사적인 무술가.

최배달의 주먹은 돌덩이처럼 단단하기 그지없다. 

정권과 수도에는 단련의 흔적인 굳은살이 투툼하게 도도라져 보여 그 강인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동전을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구부리는 초인적인 힘을 가졌다고 한다.



특이한 무술 수련 방법은 '황소뿔 자르기'다.

최영의는 일생동안 52마리의 황소와 대결하여 그들 중에 3마리를 즉사시키기도 하여 '신의 손' 으로도 불렸다.

그리고 때에 따라 위기에 쳐했을 때는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손가락 마디로 인중 공격, 손가락으로 눈찌르기(이지관수), 낭심 공격 같은 급소 공격이라는 필살기도 개발하고 수련한다.

그는 70세의 나이에 비흡연자였지만 안타깝게도 폐암으로 사망하기까지 무술인으로 평생 동안 부단히 자기 몸을 단련하며 열정을 다해 살다간 진정한 사나이였다.




절권도의 창시자 이소룡(李小龍)/부르스 리(Bruce Lee)


본명은 이진번(李振藩)

예명은 이소룡(李小龍)


1940년11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1973.7.20일 33세의 젊은 나이에 뇌부종으로 사망.

이소룡의 미망인은 미국의 린다 에머리. 그 둘 사이에서 브랜던 리(사망)와 섀넌 리의 두 자녀를 두었음.


주요작품

그린 호넷(1966~67)/말로우(1969)/롱 스트리트(1971)

당산대형(1971. 첫 주연작품)/정무문(1972. 쌍절곤 초연)/맹룡과강(1972)/용쟁호투(1973)/사망유희(1973. 촬영중 사망으로 미완성작품)




이소룡과 그의 연인 묘가수

































극진 가라데 유파 창시자 최배달(최영의)


최영의(崔永宜, 1922년 6월 4일~1994년 4월 26일)


전북 김제 태생.

예명 최배달.


일본에 건너가 1953년 도코에 '오야마 도장'을 설립함. 이후 극진가라데를 창시하여 많은 제자를 두었음.

최배달은 나이를 먹고 골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련은 멈추지 않았으며 격파시범에도 열정을 지피우며 자파 무술을 널리 알리는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사진이 별로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최배달. 아래 사진만 봐도 최배달의 강인함과 파워가 느껴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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