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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태화산 산행에 이어 두 주일 만에 친구들과 산행에 나섰다. 이번 산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의 경계에 자리한 대암산이다. 05:17 야탑에서 수인분당선 전철에 올랐다. 빈 좌석이 승차한 사람들로 거의 다 채워졌다. 군 복무 때 머물기도 했던 인제와 그 부근의 원통, 양구 등은 펀치볼, 박수근, 시래기, 두타연 계곡, 남침용 땅굴, 단장의 능선 전투 등으로 생각의 갈래를 가지 치게 한다.
암사역에서 친구들과 합류하여 가평, 홍천, 철정, 화양강, 소양강 등 지명들을 스쳐 지나고 원통군 북면 원통리를 관통하여 언북천 천변 금강로를 따라 서화면으로 들어섰다. 양구 지역 쪽 날씨를 조회하여 온도 24~25도 비 올 확률(2시, 4시) 60%라는 기상 정보를 확인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볼 수 있다는 금강산 조망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08:30경에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소재 '대암산 용늪 람사르 탐방자 지원센터'에 도착했다. 날은 흐리고 하늘은 잿빛 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지만 시계(視界)는 용늪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산군의 능선까지 뻗쳐 나간다. 컨테이너 세 개를 모로 세워 이어놓은 듯한 모습의 건물인 지원센터 2층의 사무실로 올라가서 탐방자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용늪과 대암산은 인제군 생태관광 홈페이지(sum.inje.go.kr)나 양구 생태식물원 홈페이지(www.yg-eco.kr)를 통해 예약을 해야만 탐방이 가능한데, M이 수고롭게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것이다. 오늘 10시 출발 탐방 예약팀은 우리 일행을 포함해 모두 10명으로, 탐방자 리스트를 보니 1948년생 최고령자 1명 외에 나머지 9명은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동년배들이다.
지원센터 1층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것이라는 각종 담금주, 사과, 고사리, 버섯, 기념 뱃지와 손수건 수수한 등이 탁자 위에 놓여 있다. 포장이나 꾸임 없이 놓여 있는 수수한 물품 중에서 제비동자꽃이 그려진 손수건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탐방 가이드에 이어 탐방 예약자들이 하나둘 차례로 도착했다. 탐방 가이드는 마을 주민 10명이 돌아가며 맡는다고 한다. 통상 용늪과 대암산 탐방객 수는 주말에는 3차례 총 100여 명, 평일에는 오늘처럼 10명 남짓으로 한두 차례라고 귀띔한다.
탐방객이 모두 도착하자 가이드의 안내로 09:30경 각자의 차에 올라 지원센터를 출발하여 탐방 출발점인 탐방안내소로 향했다. 금강로에서 용늪길로 들어서서 첩첩 산줄기들 사이 좁은 골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진 좁은 길을 7km여 달려 10시쯤에 해발 650미터 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각기 배낭을 메고 등산 모자에 스틱을 하나씩 든 탐방객들은 안내소의 장년(長年) 남성으로부터 출입증을 하나씩 받아 목에 걸고, 가이드로부터 탐방 일정 및 주의 사항을 듣고 난 후, 가이드의 뒤를 따라 용늪을 향해 출발했다. 탐방안내소를 출발하여 갈림길, 큰 용늪, 대암산 정상, 갈림길을 거쳐 탐방안내소로 원점회귀하는 약 12km 거리의 탐방은 5~6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시원한 소리에 기운찬 물줄기가 내려가는 계곡 위로 놓인 아치교를 건너 용늪을 향해 산비탈을 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한 줄로 서서 산길을 오르는 탐방객 행렬은 스틱 대신 소총만 들려주면 1개 분대 병력이 행군하는 모습과 진배없이 닮았다.
빠르게 치고 나아가는 선두와는 달리 걸음을 늦추며 행렬 맨 후미에서 걷는 최고령 탐방객인 70대 중반 노 산객과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았다.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지. 자신의 페이스대로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 진정한 힐링이지!"라는 노 산객의 말에 맞장구쳤다.
초입 급한 비탈에 올라서자, 우측으로 깊숙한 계곡을 내놓으며 평탄하고 너른 임도가 나타난다. 계곡의 물소리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활엽수가 때 이르게 낙엽을 떨구어 놓은 임도를 따라 고도를 높여 간다. 물소리에 더욱 우렁차고 크게 들려와서 계곡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계곡은 나뭇가지 사이로 폭포를 언뜻언뜻 내보이기도 한다.
얕지만 세찬 물줄기가 내리치는 폭포 위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너자 무성한 원시림 사이로 난 너덜 길이 숲 깊숙이 탐방객을 인도한다. 등로를 따라 기차처럼 한 줄로 길게 진행하던 행렬이 잠깐동안 제자리에 멈추어서 가질 않는다. 앞서 걷던 선두 그룹이 지금쯤 시기가 가장 많이 눈에 띈다는 금강초롱을 만나 걸음을 멈추고 눈 맞춤하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던 것이다. 바위 너덜 길을 앞서 걷던 노 산객이 허리를 굽혀 포도알보다 작은 무언가를 주어 내게 건넨다. 다래라고 하는데 껍질 속 알갱이를 입에 넣자, 그 특유의 달콤한 맛이라니...
고도가 높아지며 1,000미터 고지에 가까워지자, 숲을 감싼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몸에 부딪히는 안개 바람과 더불어 잎새에 이는 바람 소리조차 서늘한 느낌이 든다. 선두의 가이드가 등로 옆 낡고 오래되어 글귀가 희미하게 퇴색된 '어주구리(魚走九里)' 안내판 앞에 멈춰 서서 전설을 설명한다.
"용늪에서 살고 있던 물고기가 용이 승천하는 소리에 놀라 달아나다 나무꾼에게 잡혔는데, 나무꾼이 다음날 물고기가 용늪에서 도망쳐온 거리를 재어보니 십 리에 조금 못 미치는 구리(九里)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나라 때의 고사에도 등장하는 어주구리(魚走九里)는 '어쭈, 제법인데'라는 의미인 '어쭈구리'의 유래가 아닐까 어림짐작 된다. 세상 한낯 같잖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낭중지추처럼 돌연 나타낼 가상한 재주를 감추고 있을 수도 있으니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깔딱 고개라는 비탈은 경사가 급하지만, 신발을 당기듯 달라붙는 흙길은 힘겹지 않다. 무성한 잎사귀로는 성에 차지 않아 뿌리로도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시려는지 나무들은 등로 위로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비탈에 스탠딩 자세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용늪을 찾는 탐방객이 많아지면서 자칭 전국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59년생 가이드 김 여사는 마라톤으로 단련했다는 탄탄한 체력 때문인지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고향을 지키며 사과 재배 등 농사일과 식당 일에 바쁜 와중에 용늪 탐방 가이드를 하며 고향을 알리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배낭을 열고 출출한 배를 달랜 후 용늪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용늪 습지에서 내려온 개울은 등로 곳곳을 적시며 졸졸 흘러 숲으로 스며든다. 짙푸른 숲엔 안개가 빈틈없이 내려앉아 가시거리는 20여 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홀연 이곳에 떨궈 놓인다면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하고 어리둥절할 듯싶다. 높아진 고도의 찬 공기 때문인지 몸은 서늘한데, 머리에 흥건히 밴 땀은 모자를 비집고 이마로 흘러내린다. 흡사 야외 온천탕 탕 속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다.
대암산의 9부 능선 해발 1,280m 용늪 표지석이 있는 공터에서 탐방 가이드가 중년의 지방환경청 소속 자연환경 해설사에게 우리 일행을 인계하고 자신은 용늪 반대편 용늪 관리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겠다며 안갯속으로 사라져 갔다.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용늪은 남한 지역 유일의 산 정상부에 형성된 면적 7,490㎡의 고층 습원으로 1997년에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되었다. 탄화작용이 멈춘 이탄층(泥炭層)의 평균 깊이가 1m로 그 속에 4천 년이 넘는 자연생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해설사는 펀치볼, 도솔산, 대우산, 가칠봉 등 주변의 지형과 용늪의 환경과 생태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중에 금강초롱, 쑥부쟁이, 이질풀, 동자꽃, 진보라빛 고운 자태의 큰 용담(龍膽) 등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오늘 날씨는 공교롭게도 1년 중 안개에 덮여 있다는 170일 중 하루에 해당하여, 용늪 깊숙이 서식한다는 이 지역 깃대종(flagship species) 비로용담은 보기 어려울 듯하다.
안개에 휩싸인 나무데크는 전망대에서 내려서서 용늪 한가운데를 굴곡지며 350여 미터를 가로질러 관리소가 자리한 반대편으로 이어진다. 데크 옆 무성한 녹초(綠草) 사이에 앙증맞게 생긴 꽃 몇 송이가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해설사가 물매화라고 알려준다. 안갯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용늪에는 비로용담을 비롯하여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멸종위기야생생물인 기생꽃, 날개하늘나리, 닭 꽃, 제비동자꽃, 조름나물, 왕은점표범나비, 참매, 새호리기, 삵, 산양 등 약 1,180종의 생물이 이곳 용늪에 서식하고 있다고 안내판이 설명하고 있지 않았던가.
해설사를 필두로 한 줄로 앞서가는 일행은 안개비에 묻혀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한다. 몰아치는 바람에 제 무게에 겨워 비단실처럼 가는 비가 되어 뿌리는 안개가 얼굴을 때리고, 데크 아래 늪지를 덮고 있는 풀도 일제히 한 방향으로 몸을 눕힌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기 충만한 녹음을 띄고 용늪을 뒤덮고 있는 무성한 풀이 민초의 삶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일들은 좋았건 싫었건 즐거웠든 괴로웠든 편안했든 힘겨웠든 포도알처럼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영글어 잊을 만하면 꺼내어서 반추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군 복무 시절에 부르던 군가 <아리랑 겨레>가 떠올랐다. "밟아도 뿌리 뻗는 잔디 풀처럼시들어도 다시 피는 무궁화처럼끈질기게 지켜온 아침의 나라옛날 옛적 조상들은 큰 나라 세웠지우리도 꿈을 키워 하나로 뭉쳐힘세고 튼튼한 나라 만드세아리아리 아리랑~"
https://youtu.be/7RXQvurlo7I?si=GjbRkhP6ChNvqAgh
데크 옆 무성한 녹초(綠草) 사이에 앙증맞게 생긴 꽃이 몇 송이가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해설사가 물매화라고 알려준다. 안갯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1만여 평의 너른 용늪에는 대암산 깃대종이라는 비로용담을 비롯하여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멸종위기야생생물인 기생꽃, 날개하늘나리, 닭꽃, 제비동자꽃, 조름나물, 왕은점 표범니비, 참매, 새호리기, 삵, 산양 등 약 1,180종의 생물이 이곳 용늪에 서식하고 있다고 안내판이 설명하고 있지 않았던가.
용늪 탐방 데크를 빠져나오자 관리소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 김 여사가 다시 우리 일행을 인솔하여 1.5km 거리 대암산 정상 쪽으로 향했다. 등로는 용늪으로 올라올 때보다 더 거칠고 험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로 옆으로 철조망과 함께 '지뢰', '출입금지', '미확인 지뢰지대' 등의 글귀가 적힌 푯말이 군데군데 시야를 스쳐 지난다. 이어서 눈에 띄는 '작은 대바우(금강산 전망대) 50m'라고 적힌 이정표가 반갑기 그지없지만, "비에 젖어 위험하고 안개가 시야를 가렸으니 그냥 지나치자."는 가이드의 말을 거스를 명분이 없다.
대암산(大巖山)은 높이 1312m로 정상에서는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내려온 금강산 ~ 향로봉 ~ 설악산 구간의 백두대간 산줄기 능선이 선명히 보인다고 한다. 18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해동지도>와 <여지도>에 "사방으로 경치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이라는 의미의 '대암산(擡岩山)'으로 표기된 연유일 것이다.
궂은 날씨로 금강산 능선 일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턱밑에서 놓쳐버린 아쉬움을 등로 한편에 세워놓은 '대암산(臺岩山)의 지명과 백두대간 경치'라는 표제의 조감도로 달래 본다. 조감도는 펀치볼 지구 너머 금강산 지구로부터 시작하여 삼치령, 향로봉, 신선봉, 황철봉, 공룡능선, 대청봉, 한계령, 가리산으로 장성처럼 장대하게 이어진 능선을 길게 펼쳐 놓았다.
해발 1,000미터 고봉들로 둘러싸인 양구군 해안면(亥安面)은 6.25 전쟁 당시 UN군이 그 모습이 화채 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고 하여 '펀치볼(Punch Bowl)'이라 불렸는데, 그 일대는 1951년 8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펀치볼 전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 6.25 전쟁의 치열한 격전지였다. 구글 맵에는 국내 지도 앱에는 나타나지 않는 피의 능선 전투 격전지, 단장의 능선 전투 격전지 602 고지 673 고지 854 고지 등 펀치볼 전투 격전지 등과 제4 땅굴, 가칠봉 을지전망대 등의 위치를 상세히 검색할 수 있다.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연합군은 단장의 능선 전투(斷腸의 稜線 戰鬪; Battle of Heartbreak Ridge, 1951.9.13~10.13)에서 조선인민군과 중공군 연합군이 점령하고 있던 894 고지, 931 고지, 851 고지를 점령했다. 이 전투로 아군은 중동부 전선의 주저항선을 확보했고, 전장이 되었던 3개 고지 일대는 유엔군 3,700여 명과 적군 25,000여 명 피아 병사들의 피가 흥건히 배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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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바람에 성난 파도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날 선 공룡의 등처럼 이어진 능선 위 등로로 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나무 잎새에 맺힌 물기가 후드득후드득 몸으로 떨어진다. 산객들은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꺼내 입고 산정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어느덧 거대한 바위가 서로 엉기며 우뚝하게 솟아오른 대암산 정상 턱밑에 닿자, 가이드는 산객들에게 각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산정에 다녀오라고 한다. 층층 쌓이고 서로 엉겨 붙은 바윗길 등로에 암벽등반 하듯 엉겨 붙어 5분 남짓 씨름하며 정상 바위로 올라섰다.
안갯속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급전직하 절벽에서 거센 안개 바람이 산정으로 휘몰아쳐서 몸을 가누기조차 쉽지 않다. 탐방객 중 대부분은 정상 표지판까지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우리 일행은 바윗돌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대암산 312m'라고 적힌 40×20cm 크기 철제 표지판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가이드의 통제에서 풀려난 탐방안내소까지 4km의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다른 탐방객에 앞서 동행한 친구들과 함께 제일 앞서 외길 등로를 따라 발길을 재촉했다. 무게를 주체하지 못한 운무는 굵은 빗줄기로 변하여 나뭇잎과 등로와 우의와 우산 위에 뚝뚝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온 숲과 숲을 감싼 공기도 안개와 비에 축축이 젖었다.
하산로는 용늪으로 오르는 갈림길과 만나며 탐방안내소까지 익숙한 길을 내놓는다. 14:30경 안내소로 내려서며 예상대로 네댓 시간여 원점 회귀 탐방을 마무리했다.
당초 염두에 두었던 양구 해안면 펀치볼을 경유하는 귀로를 인제를 지나는 빠른 길로 바꾸었다. 양구는 아들 녀석이 입대한 훈련소가 있어 두어 번 다녀갔던 곳이다. 단풍이 붉게 물든 가로수길, 박수근(1914~1965) 화백의 <아이 업은 여인> 등 짙은 질감의 그림들로 벽면을 단장한 낮은 아파트 등의 정겨운 풍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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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리와 인제의 군부대에서 복무하던 시절에 비할 바 없이 교통편이 좋아져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다는 나으리."라 탄식할 일은 없겠지만, 인제를 거쳐 일부러 양구까지 발길 옮기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양구 특산품인 시래기밥 등을 맛보고자 끌렸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원통리 언북천 천변에 자리한 외딴 식당에서 산나물 비빔밥으로 허허로운 속을 채웠다.
오락가락하는 비처럼 무엔지 마음속에서 교차하는 아쉬움과 여운을 다독이는 사이 M의 넥소는 서울의 경계로 들어섰다.